00317 제 80 장 - 사(死)의 찬미 =========================================================================
퀘스트만 잘해도 현대 화약무기의 도움 없이 얼마든지 능력을 성장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큐브 1층의 퀘스트만 잘 끝내도 최하급 비약 10개에서 20개 정도는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정도 숫자의 최하급 비약이면 등급 하나를 올리는 건 문제도 아니다.
물론 최하급 비약은 소울넷 상점에서 구하는 소울 크리스털에 비해 10배에서 100배 정도 묽게 만들어진 대량생산 보급품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건 소울 크리스털을 구입할 수 있는 소울에게나 해당되는 사항이니 아예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네 번째는 큐브 상점을 이용한 지구 경제의 종속이다.
조금 생각이 앞서는 감이 없지는 않지만 이건 충분히 생각해 봐야할 문제였다.
큐브 상점에는 사실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파는 물건의 종류가 많고 또 다양했다.
밀가루, 쌀, 전분 등 곡류에서부터 철광석, 구리, 알루미늄 등 광석까지 지구에서 존재하는 식량과 천연자원 등이 전혀 비싸지 않은 가격에 무한구매가 가능한 것이다.
이 말은 지구에 큐브 시스템만 제대로 연결되어 있다면 농사를 전혀 짓지 않거나 광산을 개발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식량과 천연자원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지구에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뛰어난 효과를 내는 포션이나 해독제, 화상치료제 등이 큐브 상점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었다.
물론 지금 당장은 큐브 6층까지밖에 개척을 하지 못한 상태라 최하급 포션과 하급 포션 까지만 살 수 있지만, 그것만 하더라도 당장 환자의 상처에 들이 붓기만 하면 눈에 띄게 즉시 회복이 가능해졌다.
만약 이러한 사실을 종합병원들이 알게 된다면 아마 한바탕 큰 난리가 일어나지 않을까 싶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있었지만 소울은 이쯤해서 생각을 멈췄다.
최소한 소울에겐 큐브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이러한 제약을 간단히 비켜나갈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혼자 생각해서는 답을 낼 수 없다. 이건 나중에 다 같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해야 한다. 특히 식량과 자원의 수급은 절대 큐브 시스템에 의존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같은 지구 안에서라면 어떻게든 좀 나눠 달라고 빌붙어볼 방법이라도 찾을 수 있겠지만, 큐브 시스템에 의존하기 시작하게 되면 지구는 순식간에 큐브 시스템에 경제가 종속되게 될 것이다.
소울이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진 사이, 거대 도마뱀 둥지는 까망이와 본 그리고 스켈레톤 기병대에 의해 착실하게 전리품(?)이 수거되어 텅 빈 분화구 같은 모습으로 변해갔다.
까망이는 마치 스캐빈저라도 되는 양, 무서운 속도로 거대 도마뱀의 사체를 아공간으로 옮긴 뒤 마석을 채취하고 거대 도마뱀의 기운을 흡수했다.
가죽과 뼈만 남게 되어 아공간에서 빼서 밖으로 버리면 스켈레톤 기병대가 가죽을 벗기고 본이 뼈를 통째로 입안으로 빨아들여 흡수했다.
재미있는 것은 까망이가 거대 도마뱀의 기운을 몽땅 흡수하면서 사린가스의 성분을 따로 분류해 자신의 아공간 한쪽에 보관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아직 소울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지능이 높아진 까망이라면 조만간 이것을 소울에게 보고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린가스는 무한재활용이 가능해지게 된다.
사린가스의 무한재활용, 정말 무서운 말이다.
통곡의 절벽에서 사린가스로 거대 도마뱀을 대량 학살하는데 성공한 소울은 전리품 수거가 끝나자 미련 없이 게이트를 통해 큐브 안으로 돌아왔다.
의뢰소에 들려 퀘스트를 클리어 하고 막대한 보상을 챙긴 소울은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말풍선에 걸음을 멈췄다.
-전직 달성 요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신전에서 전직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히든 클래스 ‘마검사’가 개방되었습니다. 신전에서 전직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히든 클래스 ‘서먼나이트(소환기사)’가 개방되었습니다. 신전에서 전직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전직 요건을 충족시켜 전직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히든 클래스가 무려 두 개나 동시에 뜬 것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검사’와 ‘서먼나이트’라는 히든 클래스는 아마도 소울의 전투스타일을 지켜본 큐브 시스템에서 될 성싶은 소울을 위해 특혜를 준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
아니면 상위 네트워크의 유저라는 어드밴티지를 적용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됐든 일반 능력자와 차별된 특혜를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마검사와 서먼나이트에 관한 상세설명을 열고 읽어봤다.
일단 마법과 검법을 동시에 다루는 마검사라는 직업이 무척 탐나긴 했다.
이미 소환사로는 지구에서 거의 정점에 올라있다고 자부하고 있으니 마법사의 강력한 광역마법과 다양한 보조능력 등이 탐났던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자 자신의 전투스타일과 앞으로의 행보를 볼 때 서먼나이트(소환기사)가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냥 큐브 시스템에서 권해주는 직업에 불과한데 내가 굳이 이런 것을 가지고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이미 B급 멀티플 능력자로 등극한 소울의 자신감은 이런 고민을 단 한방에 날려버렸다.
그는 서먼나이트로 전직을 하기로 마음먹고 큐브 1층에 있는 신전을 향해 걸어갔다.
큐브 1층 중앙광장 분수대 북쪽에 위치한 신전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케 했다.
새하얀 대리석 같은 도릭 오더양식의 기둥이 정면에 8개, 측면에 17개로 사면에 줄지어 선 개방형 건물이었는데 곳곳에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영웅(英雄)과 신수(神獸)들의 조각상이 가득했다.
신전의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며 조각상을 자세히 살펴보자 대부분의 영웅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귀가 뾰족한 엘프나 근육질의 짜리몽땅한 드워프, 그리고 늑대와 고양이를 닮은 수인족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반면 신수들은 사신도에 나오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와 해태, 기린, 봉황을 비롯하여 드래곤, 피닉스, 사대 정령왕 등 종류가 참 다양했다.
신수들은 전설 속에서만 나오는 영물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조각상이 신전 앞에 떡 하고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 신수가 당장 눈앞에 나타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계단을 올라 거대한 신전 안으로 들어가자 길드원 몇 명이 신전 안을 조사하고 있다가 소울을 보곤 즉시 군례를 올렸다.
가볍게 한손을 치켜들어 답례를 해준 그는 느긋하게 신전의 모습을 구경하면서 중앙에 있는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신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전직의 방으로 들어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전직하시겠습니까?
연속으로 떠오르는 말풍선을 보면서 소울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직하겠다.”
-전직할 직업을 선택하여 주십시오. 일반 전직과 히든 클래스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소울은 일반 전직이란 말에 일단 일반 전직을 선택해서 살펴봤다.
전직의 큰 틀은 몸을 쓰는 파이터와 마법을 쓰는 메이지로 나눠져 있었는데 그 직업이 참으로 다양했다.
워리어, 나이트, 로그, 위저드, 서머너, 클레릭, 스카우트, 어쌔신, 몽크, 샤먼, 스케빈저, 아티산, 힐러…….
일반 전직에 해당하는 직업들을 하나씩 살펴보던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히든 클래스를 선택했다.
-히든 클래스를 선택하셨습니다. ‘마검사’와 ‘서먼나이트’중 하나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서먼나이트를 선택하겠다.”
-히든 클래스 ‘서먼나이트’를 선택하셨습니다. ‘서먼나이트’로 전직하시겠습니까?
“서먼나이트로 전직하겠다.”
-히든 클래스 ‘서먼나이트’로 전직하셨습니다.
순간 신전의 천장에서 새하얀 빛이 그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소울은 고개를 들어 새하얀 빛을 바라보면서 입을 딱 벌렸다.
‘허억, 이건 스피릿 파워 아냐?’
자신의 힘에 근간을 이루는 실질적인 두 개의 큰 힘이 있다.
스피릿 파워와 내단이 바로 그것이다.
그 중 스피릿 파워는 영력, 기, 포스, 차크라, 정령력, 소환력, 주술력 등 각종 영적 & 초자연적인 정신적 기운들이 융합되어 만들어진 기운이다.
그런 스피릿 파워가 신전의 천장에서 지금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피릿 파워는 소울의 몸속으로 흡수되지 않고 그냥 스쳐지나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까망이, 본, 푸티나 빨리 이리 와서 이 기운을 흡수해!]
[규!]
[예스, 마이로드.]
[꾸잉!]
소울은 까망이와 본 그리고 푸티나에게 즉시 스피릿 파워를 흡수하라고 의지를 보냈다. 동시에 자신도 정신을 집중해서 스피릿 파워를 흡수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러자 1000에서 1~2 정도만 간신히 몸에 흡수되던 스피릿 파워가 5~6 이상을 흡수되는 비율이 3배 이상 늘어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울에게 쏟아져 내리던 축복의 빛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끊겨버렸다.
“아!”
안타까움에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왔다.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으면 B+급인 스피릿 파워를 한 단계 더 올릴 수 있었는데 마지막 고개를 넘으려는 순간에 쏟아져 내리던 빛이 멈추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 잠깐사이, 자신이 흡수한 스피릿 파워의 양은 결코 적지 않았다.
아쉬워하는 소울의 얼굴과는 달리, 그를 중심으로 삼각형을 이루고 서 있는 까망, 본 그리고 푸티나는 의외로 꽤나 만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뭘 제대로 흡수한 것 같지는 않았고, 그냥 기분 좋게 선탠이라도 한 것 같은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소울만의 착각일 뿐이었다.
화악!
화르르르!
파츠츠츠츠츠츳!
까망이의 몸에서 진한 남색의 광채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본의 몸에서 푸른 불길이 솟구쳐 올라왔다.
푸티나의 몸이 전등처럼 밝아지며 몸 전체에 푸른 방전이 마구 일어났다.
“승급하는 건가?”
소울은 그 놀라운 모습에 조금도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자신의 소환수들을 쳐다봤다.
그때, 그의 눈앞으로 말풍선이 떠올랐다.
동시에 그의 뇌리 속으로 새로운 지식이 떠오르고 새로운 능력이 각인 되었다.
-서먼나이트로 성공적으로 전직하셨습니다.
-히든 클래스 전직 보상으로 각종 최하급 비약 30개를 지급합니다.
-서먼나이트 전용스킬 ‘트렌스 페인’을 배우셨습니다.
-서먼나이트 전용스킬 ‘네크로멘시’를 배우셨습니다.
-서먼나이트 전용스킬 ‘커스 오브 둠’을 배우셨습니다.
-서먼나이트 전용스킬 ‘뱀피릭 미스트’를 배우셨습니다.
-서먼나이트 전용스킬 ‘쉐어링 어빌리티’를 배우셨습니다.
이미 입은 벌릴 만큼 벌리고 있어서 더 벌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서먼나이트 전용스킬을 보는 순간, 놀라움은 배가 됐다.
그는 자신의 소환수들이 승급하는 것을 쳐다보면서 서먼나이트로 전직하면서 배우게 된 전용스킬을 하나씩 눌러 상세설명을 읽어봤다.
트렌스 페인: 데미지의 10%를 소환수에게 전이한다.
네크로멘시: 언데드 소환수의 능력을 10% 증폭한다.
커스 오브 둠: 일정 영역 안에 있는 적들의 모든 능력을 10% 감소시킨다.
뱀피릭 미스트: 죽음의 안개를 살포해 저주와 속성 데미지를 주고 20%를 생명력으로 치환하여 흡수한다.
쉐어링 어빌리티: 소환사의 능력 10%를 소환수에게 전이한다.
더 벌릴 입이 있었다면 그는 분명히 놀라서 다른 입을 벌렸을 것이다.
온라인 게임에서도 히든 클래스가 엄청나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이 정도인 줄은 정녕 몰랐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히든 클래스인 서먼나이트로 전직하면서 받은 스킬들은 하나같이 진짜배기들이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정말 놀라운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귀한 스킬들이었다.
‘가만 이거 스킬의 숙련도를 올리면 혹시 더 강력해지는 스킬인가?’
정말 자신의 생각대로라면 눈앞에 보이는 퍼센테이지(%)가 큰 폭으로 늘어나게 될 것 같았다.
히든 클래스 전직이 이정도면 과연 일반 전직은 어느 정도나 될지 정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서먼나이트 전용스킬을 확인하는 사이, 소환수들의 승급이 모두 끝났다.
눈이 부실정도로 강력한 광채가 사라지고, 푸른 불꽃이 사그라지고, 방전이 멈추자 변해버린 소환수들의 모습이 하나씩 드러났다.
“헉! 설마 네가 까망이?”
“주인님!”
까망이의 모습을 본 순간, 소울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고 눈이 더 이상 크게 커질 수 없을 만큼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 작품 후기 ============================
* 서먼나이트(소환기사)로 전직했습니다. 전용스킬로 무장한 주인공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유쾌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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