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16 제 79 장 - 던전 돌파 =========================================================================
만약 소울이 이들을 전멸시킬 마음이 있었다면 아마 이날 거미의 동굴은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울은 적당히 거미들을 박살내고 나자 미련 없이 퇴각해서 동굴에서 사라졌다.
의뢰소에 가서 퀘스트를 클리어 하고 다시 퀘스트를 잔뜩 받은 후, 간곳은 풍요의 들판이었다.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소울은 혹시 이곳이 성경에서 말하는 그 에덴동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꿈결같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곧 어떻게 알았는지 마구 몰려나오는 샤크비로 인해 소울과 그의 소환수는 잔뜩 긴장을 해야 했다.
그러나 샤크비는 소울과 그의 소환수를 결코 공격하지 않았다.
그들은 몬스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소울과 그의 소환수는 퀘스트에서 요구하는 각종 꽃과 기화요초를 채집하여 퀘스트를 무난하게 끝낼 수 있었다.
‘샤크비라고 했지? 나중에 테이머들을 잔뜩 데리고 와서 저놈들을 대량으로 테이밍 해봐야겠다. 잘 하면 몬스터의 씨를 말리는데 참 좋은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 거야.’
게이트를 나와 의뢰소에서 퀘스트를 클리어 하고 다시 나간 곳은 게이트의 마지막을 자리하는 통곡의 절벽이었다.
왜 통곡의 절벽이라는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정말 거대 도마뱀들이 많아도 너무 많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막막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시작도 안 해보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까망아, 거대 도마뱀 한 마리만 유인해 와!]
[규! 알겠어요.]
까망이는 아공간에 넣어둔 몬스터의 살점을 이용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있는 말만한 크기의 거대한 도마뱀 한 마리를 유인해왔다.
그리고는 그때부터 거대 도마뱀을 생포한 후 각가지 생체실험을 시작했다.
실험을 하면 할수록 소울의 얼굴표정은 점점 더 굳어갔다.
놀랍게도 이 거대 도마뱀은 방어력이 높고 속성저항력이 굉장해서 거의 약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지간한 몬스터는 푸티나의 라이트닝 파워에 스치기만 해도 배를 까뒤집고 바들바들 떠는데 이놈은 상당한 양의 라이트닝 파워에 노출되어도 꽤 잘 버텼다.
가죽도 바위처럼 단단했고 불에도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추위에 좀 약한 면을 보이긴 했는데 한두 마리라면 모를까 저렇게 수천, 수만 마리가 몰려 있는 상황에서는 광역마법이 아니면 답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넓은 둥지에 광역마법을 그것도 빙계마법을 펼칠 수 있는 자가 지구에 존재할리 없었다.
지구에 빙계 광역마법 비슷한 초능력을 쓰는 자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봤지만 당장 데리고 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결국 일반적인 방법으론 이놈들을 다 때려잡기는 요원한 일이었다.
그러나 소울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거대 도마뱀도 결국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명체였다.
반드시 약점이 존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잠시 곰곰이 생각을 해보던 소울은 결국 게이트를 통해 큐브 안으로 돌아왔다.
큐브 1층으로 내려온 그는 먼저 나인권 소울 디펜스 정보부장을 찾았다.
나인권 정보부장도 최하급 비약을 먹었는지 어느새 큐브 안으로 들어와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마스터, 부르셨습니까?”
“나 부장, 몇 가지 물어 볼게 있어.”
“네, 말씀하십시오.”
“4군단 접수할 때, 군단 비밀 무기고에서 사린 화학 탄두를 발견했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그거 말고도 생화학 무기가 꽤 됩니다.”
“그거 지금 어디 있지?”
“새로 지은 비밀 무기고에 안전하게 보관해놓았습니다.”
소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때문에 필요하니까 이것과 그것을 가져와!”
“네에?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래. 바로 가져올 수 있지?”
“군용 수송헬기를 사용하면 1시간 안에도 가능합니다.”
“그럼 은밀하게 서머너즈 길드 개성지부 지하 무기고로 당장 가져와.”
“네, 마스터.”
나인권은 소울에게 사용처를 직접 들어놓고도 절로 손이 벌벌 떨려왔다.
가지고 오려고 하는 것이 일반 폭탄도 아니고 무려 사린가스가 담긴 화학탄두였기 때문이다.
그는 즉시 큐브 밖으로 나가 믿을 수 있는 자신의 심복들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는 군용 수송헬기를 차출해서 해주시 북쪽 산기슭에 은밀히 새로 지어놓은 비밀 무기고로 날아갔다.
각종 보안장치를 통과한 그들은 커다란 두 개의 알루미늄 박스를 인수받아 서머너즈 길드 개성지부로 가져와 건물 지하에 있는 무기고로 옮겼다.
무기고 중앙에 커다란 알루미늄 박스 두 개를 내려놓고 부하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자 나인권은 그제야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자신의 등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곧 소울이 지하 무기고 안으로 들어와 그를 바라보자 그는 자세를 바로했다.
“이건가?”
“그렇습니다.”
“잠시 밖으로 나가있도록 하지?”
“네, 마스터.”
나인권은 순순히 지하 무기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소울은 문을 닫고 조심스럽게 알루미늄 박스 2개를 하나씩 열어봤다.
박스 한 개에는 사린 화학탄으로 가득 차 있었고, 다른 박스 한 개에는 사린가스 원료가 여러 개의 밀폐용기에 액체 상태로 담겨 있었다.
사린(Sarin)은 독성이 매우 강한 치명적인 화합물로 노출되면 중추신경계를 손상시켜 수분 내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
호흡기, 눈, 피부를 통해 인체에 흡수되며 호흡곤란, 시력저하, 메스꺼움, 구토, 근육경련, 두통 등의 증상을 보이다가 기도폐쇄, 호흡근육마비 등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다.
생화학무기로 사용되는 사린은 일반 사린 화합물 보다 수백 배나 더 강력하고 파괴적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린 탄두가 만약 남북한의 분쟁이나 전투에서 사용됐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지 아마 상상이 갈 것이다.
‘내가 너무 위험한 짓을 하고 있나? 아니야. 강력한 무기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질 수 있어. 난 사람에게 이것을 쓰려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협하는 몬스터에게 사용하려는 거야.’
소울은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정당화시키며, 자신도 모르게 떨려오는 손을 부여잡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사린 탄두 하나를 꺼내 인벤토리에 넣고는 알루미늄으로 된 상자의 뚜껑을 잘 닫았다.
[까망아, 아공간에 담아라.]
[규! 알겠어요.]
단호한 소울의 의지에 까망이가 즉각 호응했다.
눈앞에 알루미늄 박스 두 개가 사라지자 그제야 긴장감이 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는 지하 무기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인권 정보부장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곧바로 소형전술차에 올라타 개성큐브로 들어왔다.
“그럼 나 부장은 가서 일봐!”
“네, 마스터.”
나 부장은 소울의 눈치를 살피더니 쌩하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에 살짝 서운함을 느낀 소울은 고개를 살짝 좌우로 흔들며 계단을 타고 3층으로 올라왔다.
북쪽 게이트를 통해 다시 통곡의 절벽을 찾은 소울은 어느새 차갑고 비정한 미소를 입가에 짓고 있었다.
“오늘로 통곡의 절벽은 사라진다.”
그는 그 말을 남기고 바로 전신갑옷인 둠 플레이트를 장비했다.
혹시 몰라 방독면을 하나 더 쓰고, 타이타늄 팔찌로 실드를 3중으로 쳤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거대 도마뱀 둥지에서 멀리 떨어져 게이트 옆의 언덕 위로 올라갔다.
거대 도마뱀의 둥지는 마치 분화구처럼 움푹 팬 지형을 가지고 있었다.
소울은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펴본 후 바람이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본을 쳐다봤다.
[본, 거대 도마뱀 둥지에 연막을 쳐라.]
[예스, 마이로드.]
[까망아, 거대 도마뱀 둥지에 사린가스를 골고루 살포해라!]
[규! 알겠어요.]
소울은 혹시 몰라서 푸티나는 자신의 옆을 지키게 했다.
잠시 후, 거대한 둥지는 본이 뿜어대는 연막으로 인해 안개가 자욱해져 한치 앞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안개 속으로 까망이가 뿌려대는 사린가스가 무서운 속도로 퍼져 나갔다.
거대 도마뱀들은 둥지에 안개가 가득차자 졸음이 오는지 눈을 감고는 다들 잠에 빠져 들었다.
그렇게 쥐죽은 듯 조용한 둥지에서 서서히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컥컥컥 켁켁켁 크엑 쿠웩 커억…….
뭔가 잘못 먹고 체한 듯, 목이 멘 듯, 컥컥 대는 소리가 둥지 전체로 퍼져 나가더니 서서히 침묵으로 빠져 들었다.
하지만 소울은 그저 본이 친 연막 속을 가만히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30분이 흘렀다.
[본, 연막 치워라.]
[예스, 마이로드.]
명령은 받은 본은 곧바로 자신의 입을 커다랗게 벌리며 자신이 뿌려놓은 연막을 세차게 빨아 들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거대한 둥지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으음!”
소울은 절로 침음성을 삼켰다.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현실은 훨씬 무시무시했다.
수만 마리의 거대 도마뱀들이 코와 입과 귀에 피를 흘린 채 배를 까뒤집고 죽어 있었다.
덩치가 워낙 커서 혹시 생체실드를 발휘해서 사린가스에 저항하지 않을까 걱정했었지만, 결과는 둥지 전체에 무차별 살포된 사린가스에 별다른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앉은 자리에서 몰살당하고 말았다.
그는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인벤토리를 열었다.
인벤토리 제일 위 칸에 사린 탄두 하나가 보이자 소울은 손으로 꺼내봤다.
하지만 꺼내지지 않았다.
칸 자체가 마치 죽어있는 것처럼 어둡게 변해 비활성화 되어 있었다.
[전리품을 챙겨라! 거대 도마뱀의 꼬리 끝을 잘라 와라!]
[규! 알겠습니다.]
[예스, 마이로드.]
까망이와 본 그리고 스켈레톤 기병대는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 즉시 거대 도마뱀의 둥지를 향해 달려갔다.
그 사이 소울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생각에 잠겼다.
‘휴우우우우, 이로써 한 가지는 확실해졌군. 큐브 시스템이 제한을 거는 물건은 다른 차원이나 세계로 옮길 수 없다는 것을 말이야. 하지만 까망이의 아공간을 통해서는 아무 문제도 없이 옮겨지는 것을 보면 그것도 완벽한 것은 아니네.’
사린 탄두와 사린 액체가 들어있는 밀폐용기가 담긴 알루미늄 박스 2개는 까망이의 아공간에 넣고 통곡의 절벽으로 옮겨왔다. 직접적인 사용에도 아무런 문제없이 가공할 위력을 드러냈다.
하지만 사린 탄두 하나가 들어간 인벤토리 한 칸은 아예 비활성화가 되어 꺼낼 수가 없었다.
이걸로 볼 때 큐브 인터페이스의 인벤토리는 단순히 물건을 담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스캔을 하는 기능도 같이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오천 명이나 되는 서머너즈 길드의 능력자들이 큐브로 들어올 때 지구에서 만든 다양한 종류의 무기와 방어구, 의복과 전자장비 등을 가지고 들어왔다.
하지만 하나도 큐브 안으로 들여오지 못하고 모두 외부 상태창에 비 활성화된 채 묶여버렸다.
만약 생체실드 중화탄을 사용하는 기관총을 가지고 들어올 수만 있었다면 큐브 내의 퀘스트를 더욱 쉽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 큐브 시스템은 지구의 무기와 방어구, 의복과 전자장비 등을 다른 세계로 가져가지 못하게 원천봉쇄를 했을까?
왜 꼭 차원의 균열 안의 세계에서 만든 물건이나 큐브 상점에서 산 물건만 큐브를 출입하는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소울의 뇌리 속으로 떠오르는 시나리오가 몇 개 있었다.
첫 번째는 환경오염이다.
현대 화약무기에 들어가는 납이나 중금속, 화학물질 등이 다른 세계를 오염시킬 수 있다.
환경문제에 둔감한 지구인과는 달리 어쩌면 외계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행성의 환경문제에 매우 민감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연에서 얻은 천연재료를 사용한 물건만을 큐브 시스템이 허락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밸런스 붕괴다.
별 전투력도 없는 F-급 능력자들이 큐브 속으로 소총이나 기관총을 가지고 들어오면 자신의 능력에 맞지 않는 상위 레벨의 퀘스트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5인 파티 전원이 소총이나 기관총으로 무장한다고 했을 때, 수십 마리의 소형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은 사실 일도 아니었다.
거기에다 수류탄이나 기타 현대 화약무기를 사용하면 얼마든지 그 이상의 전투력과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원천적으로 밸런스를 붕괴할 만한 무기나 장비의 반입을 금지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큐브 시스템 자체가 능력자들의 능력의 상승을 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퀘스트를 진행해보면서 느끼는 것은 초반에 지나치게 많은 혜택을 주면서까지 능력자들이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게 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유쾌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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