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09 제 78 장 - 대박행진 =========================================================================
소울은 푸티나의 등 뒤에서 오연히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주변을 쓸어봤다.
정면에 보이는 평원은 물론이고 사방에서 몬스터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캬아오 캬아!
겁 대가리를 상실한 고블린 몇 마리가 푸티나를 향해 다가오며 창을 들이댔다.
인간이고 동물이고, 아니 몬스터이고 간에 주제파악을 해야 하는데 이놈들은 꼭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서 먹어봐야 아는 놈들처럼 굴었다.
소울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는 냉정한 목소리로 본에게 명령했다.
[본, 죽여라!]
[예스, 마이로드.]
본은 두 말없이 푸티나의 등에서 땅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이빨을 내보이고 창을 들이대는 고블린들은 나름 위협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친 몸짓을 하며 본을 빠르게 포위했다.
하지만 커다란 대검을 천천히 뽑는 본에게 그들의 행동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팡!
촤악 서걱 서걱 찹찹찹 철썩…….
크아악 케에엑 커억 쿠웨에엑…….
본의 신형이 번갯불 같이 고블린들의 중앙으로 파고들자 푸줏간에서 뼈를 자르고 고기를 써는 것 같은 살벌한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동시에 고블린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귓청을 긁어댔다.
철컹!
어느새 본은 대검을 크게 한 바퀴 휘둘러 고블린의 피를 털어내고는 검집에 대검을 밀어 넣고 있었다.
그런 본의 발아래로 처참하게 토막 난 고블린들의 몸뚱이가 여기저기에 떨어져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독한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자 소울은 절로 인상을 쓰며 본에게 소리쳤다.
[고블린의 왼쪽 귀를 모두 잘라 와라!]
[예스, 마이로드.]
본은 소울의 명령에 지체 없이 고블린의 사체 속으로 들어갔다.
고블린의 대가리를 한손으로 잡고 다른 한손으로 단검을 쥐더니 고블린들의 왼쪽 귀를 모조리 잘라내어 모아왔다.
녹색 피에 절은 고블린의 왼쪽 귀 몇 개를 두 손으로 받쳐 올리자 소울은 한손으로 잡아 인벤토리에 던져 넣었다.
‘되는구나.’
순간, 소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자신이 직접 고블린을 잡아 죽이고 왼쪽 귀를 잘라 와야 퀘스트가 인정된다면 아마 상당히 피곤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잡나, 자신의 소환수가 잡나, 퀘스트를 깨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되자 그는 굳이 자신이 직접 나서서 손에 더러운 몬스터의 피를 묻혀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본, 스켈레톤 기병대를 소환해서 고블린과 코볼트 그리고 오크의 부락을 차례로 쓸어버려라.]
[예스, 마이로드.]
[고블린은 왼쪽 귀, 코볼트는 앞니, 오크는 왼쪽 새끼손가락을 모두 끊어오면 된다.]
[에스, 마이로드. 명령대로 이행하겠습니다.]
본은 소울의 명령이 떨어지자 즉시 악어 입을 만들어 스켈레톤 기병대부터 쏟아냈다.
그중에는 자신의 날개달린 해골전투마도 끼어 있었다.
본은 해골전투마를 손으로 불러 올라타고 제일 가까이에 있는 고블린의 부락을 향해 똑바로 섰다. 그러자 스켈레톤 기병대가 순식간에 정렬을 마치더니 그의 뒤에 칼 같이 각을 잡고 섰다.
그러자 본이 큰 소리로 스켈레톤 기병대에게 말했다.
“로드께서 명령하셨다. 이곳의 고블린과 코볼트 그리고 오크의 부락을 모조리 쓸어버리라고 말이다. 고블린 부락부터 정리한다.”
“예, 대장님! 로드께 승리의 영광을!”
본의 말에 스켈레톤 기병대는 한 목소리로 크게 소리치더니 고블린 부락을 향해 서서히 진군했다.
소울은 잠시 푸티나의 등 위에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훌쩍 아래로 뛰어 내렸다.
그때, 오크 몇 마리가 푸티나의 곁에서 떨어져 나오는 소울을 노리고 접근하는 것이 느껴졌다.
‘가소로운 놈들!’
참으로 같잖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는 오히려 다가오는 오크들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쿠오오 쿠오오!
소울의 당당한 태도에 발각된 것을 알았는지 오크들은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곤 마치 상대의 기를 단숨에 죽여 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거친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푸티나가 눈에서 살기를 폭사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푸티나는 곧 그 자리에 급정거를 하며 서야만 했다.
소울이 한손을 들어 푸티나의 행동을 막았기 때문이다.
“푸티나, 멈춰!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
“꾸잉!”
푸티나는 소울의 말에 힐끗 한번 쳐다보고는 엉덩이를 바닥에 다시 붙였다.
소울은 검집에서 청동검을 빼들고 달려오는 오크들을 향해 마주 달려갔다.
파앙!
빠른 속도로 앞으로 달리다 쉐도우 스텝을 밟아 지그재그로 몸을 움직이자 신형이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잔상을 만들어내 시선을 교란시켰다.
오크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달리는 속도를 줄이며 소울을 향해 각각 쥐고 있는 무기를 휘둘렀다.
휙 휘익 휘이익…….
하지만 소울과 오크 사이엔 이미 너무나도 큰 속도의 차이가 존재했다.
소울은 오크들이 휘두른 무기들의 움직임을 하나씩 눈으로 확인하며 일일이 청동검으로 막고 비틀어 후려치고 흘려보냈다.
그러면서 그 사이 사이에 존재하는 빈틈에 청동검을 한 번씩 쑤셔 넣었다.
창 티잉 스르르르렁!
푹 푸욱 푹푹푹…….
크악 케엑 커억 쿠억…….
오크들의 몸에 녹색의 꽃이 피어났다.
소울이 스쳐지나가며 청동검을 쑤셔댄 곳에서 피가 뭉클 솟구친 것이다.
오크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신의 몸을 손으로 감싸며 비틀거렸다.
심장, 폐, 간, 신장 등 오장육부 중 하나씩을 청동검에 찔렸으니 오크들이 온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건 더 이상 싸움이 아니었다.
격의 차이, 아니 클래스의 차이가 너무 났다.
그리고 소울은 지금 반칙과도 같은 칼라볼그의 상급검법인 글람검법까지 펼치고 있었다.
“이런, 왜 다들 이렇게 맥아리가 없어? 좀 더 힘을 내봐! 이래선 청동검과 가죽으로 만든 방어구를 테스트할 수 없잖아.”
소울은 친근한 어조로 오크들을 독려했다.
하지만 이미 오크들은 싸울 전의를 잊은 채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소울은 크게 실망한 나머지 고개를 좌우로 살래살래 흔들더니 빠르게 오크들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그의 청동검이 오크들의 몸에 닿은 것 같지도 않은데 이미 오크들의 목이 하나씩 허공으로 떠올랐다.
차차차착 툭 투투툭 데굴데굴…….
마치 공처럼 오크의 머리들이 땅에 떨어져 이리저리 굴러다니자 그는 푸티나를 한번 쳐다보고 손가락으로 오크의 왼쪽 새끼손가락을 가리켰다.
“꾸잉!”
개떡같은 그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푸티나는 찰떡처럼 그의 말을 알아먹었다.
푸티나는 즉시 죽은 오크의 사체로 다가가 왼쪽 새끼손가락을 끊어서 모아왔다.
‘역시 생각대로 오크는 이제 더 이상 내 상대가 아니네.’
그는 허공에 거칠게 청동검을 한번 휘둘러 오크의 피를 털어내곤 죽은 오크의 몸뚱이에 검신을 쓱쓱 문질러 닦았다.
검집에 청동검을 집어넣고 나자 그는 더 이상 자신이 튜닉과 조잡한 가죽으로 만든 흉갑을 입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테스트는 이 정도로 끝내도록 하자.’
그는 즉시 장비하고 있던 흉갑과 투구, 장갑 등을 해제하고 입고 있는 튜닉과 가죽샌들까지 몽땅 벗어서 인벤토리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오우거 가죽갑옷 세트를 꺼내 장비하고 토마호크를 꺼냈다.
사실 고블린이나 오크에게는 토마호크도 좀 과한 무기가 아닐까 싶었다.
[푸티나, 이제부터 네가 다가오는 놈들을 모두 처리해라.]
[꾸잉!]
푸티나는 대답을 하고나자 번개같이 한쪽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더니 허공으로 몸을 붕 떠서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대지를 발로 세차게 밟았다.
쿵!
순간 푸티나가 떨어져 내린 땅의 주변으로 라이트닝 파워가 섞인 충격파가 땅거죽이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것처럼 일렁여 나이테를 만들면서 퍼져나갔다.
땅속에서 녹색의 피가 울컥 솟구쳤다.
그 모습에 호기심을 느낀 소울이 얼른 달려가 확인했다.
코볼트들이 땅굴을 통해 몰래 접근하고 있는 것을 푸티나가 발견하고 간단히 처리한 것이다.
‘호오, 이놈들이 이제 제법 머리를 다 쓰네?’
땅굴을 통해 공격해오는 것은 그가 생각해도 참 신선한 발상이었다.
그런데 땅굴이 하나가 아닌 모양이었다.
푸티나는 마치 미친년 널뛰기 하듯 이리 저리 옮겨 다니며 풀쩍 뛰어서 땅을 굴렀다.
그때마다 땅속에서 녹색의 피가 뭉클 솟구쳐 올랐다.
소울과 푸티나가 이렇게 땅굴을 통해 접근하는 코볼트들을 두더지 잡듯이 잡고 있을 때, 본과 스켈레톤 기병대는 고블린 부락으로 돌진해 들어가 초토화를 시키고 있었다.
수백 마리의 고블린들이 결사적으로 항전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당장 눈앞에서 날뛰고 있는 거대한 스켈레톤 맘모스 두 마리조차 어떻게 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저 허무하게 허공을 손으로 쥐어가며 우수수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야했다.
거기에다 스켈레톤 맘모스 뒤에 돌진해오는 스켈레톤 기병대가 휩쓸고 지나가자 그들의 뒤로 살아남아서 서 있는 고블린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고블린 부락 하나를 순식간에 작살을 낸 스켈레톤 기병대는 곧바로 기수를 다음 목적지인 코볼트 부락을 향해 돌렸다.
그러자 까망이만 홀로 남아 고블린의 시체에서 마석과 고블린의 왼쪽 귀를 각각 챙기고 고블린 족장과 주술사의 방, 그리고 고블린의 창고까지 알뜰하게 털어먹었다.
과연 그 주인의 그 소환수 다운 행동이었다.
까망이가 느긋하게 코볼트 부락으로 자리를 옮길 즈음, 이미 코볼트 부락은 아비규환의 참상으로 변해 있었다.
통나무와 흙으로 세운 방벽은 처참하게 무너졌고 무덤처럼 생긴 집은 스켈레톤 맘모스의 발아래 처절하게 짓밟혀갔다.
그 뒤로 피도 눈물도 없는 스켈레톤 기병대의 차가운 말발굽만 코볼트의 온몸을 짓이기고 있었다.
까망이는 거대한 해일에 쓸려버린 해안가의 마을처럼 초토화된 코볼트 부락의 모습을 보자 서둘러 자리를 옮겨갔다.
이제 다시 까망이의 전리품 노획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고블린 부락과 코볼트 부락에 이어 오크 부락까지 완벽하게 박살이 나자 본과 스켈레톤 기병대는 그제야 기수를 돌려 소울에게 다가왔다.
해골전투마에서 내린 본은 소울을 향해 군례를 올렸다.
[마이로드, 명령을 완수했습니다.]
[수고했다.]
뒤늦게 전리품을 모두 챙겨온 까망이가 소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규! 저도 임무를 완수했어요.]
[그래 까망이도 수고했다. 이제 모두 그만 돌아가자.]
[규!]
[예스, 마이로드.]
[꾸잉!]
소울은 더 이상 이곳에서 볼일이 없자 곧바로 철수를 결정했다.
푸티나의 등에 올라타자, 본은 악어 입을 만들어 스켈레톤 기병대를 흡수했다.
까망이가 소울의 머리 위쪽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주변을 잘 살폈다.
[푸티나, 게이트를 향해 달려!]
[꾸잉!]
푸티나는 소울의 말에 게이트가 있는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신나게 달렸다.
허공으로 두 다리를 던지듯 쭉 뻗었다가 단단한 대지를 밟아 힘차게 밀어 냈다. 푸티나의 동체가 뒤에서 누가 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앞으로 쭉쭉 뻗어나갔다.
그때마다 푸티나의 윤기 나는 털이 물결치듯 출렁이며 흔들거렸다.
역동적이고 다이내믹한 푸티나의 질주는 주변의 몬스터와 초식동물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흥겨운 푸티나의 질주는 그 위에 올라탄 소울의 기분마저 최고로 고조시켰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때리며 스쳐 지나가자 소울은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한방에 다 풀리는 것 같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스포츠카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모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울의 눈에 게이트가 보였다.
허공에 떠서 출렁이는 연두색의 물결을 보자 그제야 자신이 지구가 아닌 다른 차원의 세계에 온 것이 실감났다.
달리는 속도 그대로 게이트를 통과하자 그의 몸이 광장 분수대 앞으로 튀어나왔다.
푸티나는 순간 마치 스키를 타고 내려오다가 몸을 돌리며 급정거를 하는 것처럼 온몸을 옆으로 누이며 몸을 틀었다.
가가가가가각!
검은 대리석 바닥이 날카로운 푸티나의 발톱에 긁히는 소리가 들리며 푸티나는 몸을 한 바퀴 돌리며 멋지게 멈춰 섰다.
그 모습에 수백 명의 서머너즈 길드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쳐댔다.
와아아아아아!
짝짝짝짝짝짝!
소울은 그런 길드원들의 모습에 오히려 얼굴을 붉히면서 썩소를 지었다.
갈수록 자신이 마치 무슨 연예인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푸티나, 빨리 의뢰소로 가자.]
[꾸잉!]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유쾌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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