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285화 (285/492)
  • 00285  제 72 장 - 보고서(report)  =========================================================================

    자식을 잃은 고통도 작지 않았지만 족장의 입장에서 와이즐리 같은 현자를 잃은 고통과 슬픔은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그레이 트롤 부족을 동족 최강의 부족으로 만드는 데는 와이즐리 주술사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그의 지혜와 주술사의 능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아마 백년 내에 와이즐리 같은 트롤 현자는 다시 나오기 힘들 것이다.

    바카써스는 심신 양면에서 끓어오르는 고통과 슬픔으로 인해 피눈물을 줄줄 흘려대며 이를 갈았다.

    “한 시간을 주겠다. 현장을 수습하고 출발준비를 해놓아라.”

    “네, 족장님!”

    이를 갈고 있는 것은 그레이 트롤 부족의 족장인 바카써스만이 아니었다.

    전사들과 부족 전체가 모두 도망친 웨어울프들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족장님, 이 상태로는 빠른 추격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셔야합니다.”

    “헤이즐리,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와이즐리 주술사가 키우고 있는 제자인 헤이즐리의 말에 바카써스는 귀를 기울였다.

    와이즐리의 재능과 지혜에는 감히 따라오지 못했지만 그래도 헤이즐리는 부족의 주술사였다.

    “지금까지 상황으로 봐서, 어쩜 우린 부족의 운명을 걸어야할지도 모를 정도의 사악한 웨어울프 부족을 상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바카써스는 헤이즐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각해보십시오. 세상에 그 어떤 몬스터가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면서 우리 그레이 트롤 부족의 전사와 투사들을 수십이나 죽일 수 있겠습니까?”

    “그렇군. 이건 일반 웨어울프의 소행이 아니군. 사악한 웨어울프 주술사들이 저지른 짓이었어.”

    “맞습니다. 이런 강력한 폭발은 절대로 그냥 일어나지 않습니다. 최소한 중·상급 마나석을 이용한 마나폭탄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거기에다 낭트 전사님의 사체에다 수작을 부려놓은 것을 보면 악독하고 사악하기가 이를 데 없는 놈이 분명합니다.”

    바카써스는 헤이즐리의 말에 완전히 빠져 들었다. 그가 말하는 얘기가 모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바카써스 본인 또한 주술사들에 못지않은 지식을 지닌 독특한 트롤 족장이었다.

    헤이즐리가 하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못 알아차릴 정도로 그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의 요점이 무엇인가?”

    “첫 번째는 선택과 집중입니다. 모든 부족의 전사와 투사가 전부 몰려가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말입니까? 전사와 가장 전투력이 뛰어난 투사들을 선별해서 데리고 가십시오.”

    헤이즐리의 말을 듣고 보니 일견 타당한 말이기도 했다.

    “두 번째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 부족의 미래를 이어갈 후계자를 정해달라는 겁니다. 테라스 전사께서 사망한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이대로 전투를 하다가 만약 족장님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우리 그레이 트롤 부족의 미래는 끝장나게 됩니다.”

    “으음, 그건 당장 쉽지 않군. 하지만 헤이즐리가 있으니 최악의 상황이 오면 후계자를 직접 정해주면 되겠군.”

    바카써스가 자신에게 후계자 지명권을 주자 헤이즐리는 그의 말에 내심 크게 기뻐했다.

    “세 번째는 알라야 분지에 남아있는 암컷들과 새끼들을 본거지로 데리고 갈 전력을 즉시 보내야 한다는 겁니다. 현재 저희들은 지금 너무 흥분해 있습니다. 원래는 히물레야 산맥 밖으로 나올 생각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이대로 계속 어디까지 쫓아가실 겁니까? 테라스님이 조금만 참으셨다면 사실 전혀 일어나지 않아도 될 부족의 피해가 지금 계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그레이 트롤 부족을 농락하는 웨어울프 놈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잊고 계신 것이 있습니다. 이미 낭트 전사께서 이끌고 가셨던 추격대는 전멸했습니다.”

    “크으으!”

    헤이즐리의 말에 설마하고 있던 그의 생각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부족의 전사와 투사 서른다섯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누군지도 모를 웨어울프의 주술사의 함정에 빠져 또다시 수십이나 되는 부족의 귀한 전사들과 투사들이 개죽음을 당했습니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안 일어난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헤이즐리의 논리적인 말에 머리는 동의를 하고 있었지만 심정적으로는 강한 반감이 치솟았다.

    하지만 바카써스는 미련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해보고는 곧 절충안을 마련했다.

    “헤이즐리는 부족의 전사와 투사 오십을 데리고 돌아가서 부족의 미래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족장님.”

    “난 부족의 전사와 투사, 이백 오십으로 추살대를 꾸려 직접 복수를 하러 가겠다.”

    “부디 조심, 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알겠다.”

    헤이즐리의 말대로 그레이 트롤들은 너무 쉽게 흥분하는 경향이 있었다.

    힘이 없을 때는 자중했지만 힘이 생기니 그레이 트롤들은 참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바카써스 족장은 헤이즐리를 부족의 미래에 대한 안전장치로 삼아 엘라야 분지로 돌려보내자 마음 한구석이 가벼워졌다.

    이제 족장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오롯이 자신의 아들인 테라스와 와이즐리의 복수를 위해 마음껏 날뛸 수 있게 되자 바카써스는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레이 트롤 부족의 족장 바카써스, 전사와 투사를 합쳐 이백 오십의 추살대가 어둡기 만한 야밤의 들판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 * * * *

    오싹한 한기가 드는 느낌에 소울은 자신의 양쪽 팔을 안으며 부르르 떨었다.

    ‘너무 찬바람을 많이 쐬어서 그런가? 쌍화탕이라도 하나 마셔야 할까보다.’

    우두두두두…….

    한참을 달렸는데도 레이칸 부족을 쉽게 따라 잡을 수 없었다.

    예상보다 훨씬 더 먼 거리를 이동한 것을 보면 그만큼 레이칸 부족도 나름 결사적인 모양이었다.

    하긴 이제 그레이 트롤 부족을 만나면 웨어울프들은 그냥 무조건 튀는 게 상책일 것이다.

    그레이 트롤 전사의 죽은 사체 안에 장난질을 쳐놓았는데 그게 또 제대로 적중해서 대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어두운 들판을 환하게 밝혀주는 불빛과 버섯구름 비슷한 게 만들어진 것을 봤는데, 그 정도면 최소한 몇 마리는 죽었을 테니 이제 그레이 트롤 부족은 레이칸 부족을 아마 원수처럼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그놈들은 이제 웨어울프를 보기만 하면 다 잡아 죽이려고 들지도 몰라. 그러기 전에 레이칸 부족과 투멘 부족을 데리고 개성필드로 튀어야한다.’

    소울은 아직 자신이 한 짓 때문에 그레이 트롤 부족의 차기 후계자인 테라스가 분자단위로 증발하고 주술사인 와이즐리가 폭사한 것을 몰랐다.

    거기에다 몇 마리가 죽은 것이 아니라 그레이 트롤 전사와 투사가 수십 마리나 죽었다는 것도 전혀 알 턱이 없었다.

    그래서 열이 받은 그레이 트롤 부족의 족장인 바카써스가 직접 부족 최강의 전사와 투사들로 추살대를 만들어 죽어라고 쫓아오고 있는 것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그레이 트롤 부족 전체가 쫓아온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울과 그의 일행은 빠른 속도로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힐, 부스트 스태미나, 라이트 스텝, 헤이스트…….”

    강력한 마법은 아니지만 스켈레톤 메이지가 중간에 잠깐 쉬어갈 때 이렇게 힐과 각종 보조 마법을 넣어줘서 오랫동안 달린 것치곤 소울 일행의 컨디션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푸티나를 타고 며칠 동안을 달려서 히물레야 산맥에 도착한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한참은 더 달려가야 한다. 엘리트 전사들이야 문제가 없지만 과연 레이칸 부족 전체가 그레이 트롤 부족이 쫓아오는 속도보다 빨리 개성필드 밖으로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

    혼자라면 지치지 않고 달리는 푸티나에 타고 얼마든지 도망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육백오십이 넘는 레이칸 부족을 데리고 가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비스크, 레이칸 부족 전체가 더 빨리 개성필드로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헉헉, 생각해보니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

    비스크는 푸티나의 옆에서 열심히 달리느라 헉헉대면서 머리를 굴려댔다.

    “이 들판을 가로지르는 강을 타고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배가 있어야 하잖아?”

    “헉헉, 사실 그게 문제입니다.”

    소울은 황당한 표정으로 비스크를 쳐다봤다.

    방법이 있다고 해서 들어봤더니 역시나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강을 타고 내려가려면 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데 배가 없는 상황에서 강을 타고 내려가면 된다고 하니 이게 말인지 막걸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발상의 전환을 한번 해봤다.

    ‘가만, 꼭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단정 지을 필요는 없잖아? 배가 없으면 만들면 된다. 왕회장의 말처럼 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안 된다는 생각을 할 필요는 없어.’

    소울은 흔들리는 푸티나의 등에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당장 가지고 있는 재료로 어떻게 배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일단 레이칸 부족이 넉넉히 가지고 있는 재료로 만들 만한 것은 몇 개 없었다.

    천막을 칠 때 사용하는 가죽을 이용해 카누나 카약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기본적인 골격과 뼈대를 이룰 통나무는 있어야했다.

    “비스크, 혹시 강 근처에 통나무로 쓸 만한 나무는 없어?”

    “당연히 있습니다. 이곳이야 들판이라서 큰 나무가 없지만 강가에는 제법 큰 나무가 많습니다.”

    “그럼 통나무로 뗏목을 만들어 붙이고 그 위에 천막을 치는 가죽으로 돛을 세우면 되겠네. 노도 같이 저으면 속도도 그리 떨어지지 않겠어.”

    “네에?”

    비스크는 소울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정말 자신이 한 말을 가지고 실행을 할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뗏목을 만든다는 말에 대충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일단 레이칸 부족을 찾는 게 급선무다.”

    “냄새로는 반나절만 더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무서운 속도로 도망쳤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우리 부족이 이렇게 줄행랑을 잘 치는지는 요번에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비스크의 말에 옆에서 같이 달리던 엘리트 전사 하나가 무안한지 비스크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푹 찔렀다.

    “자! 모두 조금 더 힘을 내서 달려보자. 우리 부족의 특기를 조금 더 살려보자고.”

    “하하하하!”

    “크크크크!”

    “푸하하하!”

    …….

    소울의 농담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지금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들판을 달려가기 시작했다.

    동녘에 희미한 빛이 비춰오는 것을 보니 이제 날이 밝으려는 모양이다.

    어느새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마스터, 저기 우리 부족이 있습니다.”

    “오! 드디어 찾았군.”

    우두두두두두…….

    엘리트 전사 스프린트의 목소리에 다들 힘이 나는지 일행은 발걸음을 더욱 빨리해서 결국 레이칸 부족과 합류하게 되었다.

    “레이칸 족장님!”

    “마스터, 이제 오시는가? 수고가 많았네.”

    레이칸과 소울은 서로의 손을 굳게 마주잡고 인사를 했다.

    “아닙니다. 저보다는 족장님이 수고하셨지요. 레이칸 부족 전체를 데리고 이렇게 멀리 오시다니 참 대단하십니다.”

    “하하하, 대단할 게 뭐 있는가? 그저 다 살아보려고 하는 짓인데…….”

    레이칸은 소울이 놀라워하자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정말 그의 말대로 레이칸 부족과 투멘 부족은 생각보다 많이 지쳐 보이지 않았다.

    종족 자체가 재생의 아이콘, 웨어울프라서 그런지 체력이 아주 좋았다.

    “그것보다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라니?”

    소울은 자신이 직접 설명하려다가 좀 귀찮은 생각이 들자 말하고 싶어 환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비스크와 라이코스에 바통을 넘겼다.

    시작은 비스크가 했지만 확실히 라이코스가 조리 있게 설명을 잘했다.

    라이코스의 설명을 모두 들은 레이칸은 결국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안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부족의 전사들을 집으로 보냈네. 조상의 유물들만 잘 챙겨서 신세계의 출입구로 오라고 했지. 이제 보니 내가 결정을 아주 잘한 셈이군.”

    “선견지명이 있으셨군요. 정말 잘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합니다. 그레이 트롤 부족 전체가 총출동해서 우리를 쫓아오고 있습니다.”

    “라이코스의 말을 들어보면 마스터, 자네가 엄청난 전공을 세운 것 같은데……. 그런 피해를 당하고도 그레이 트롤들이 우리를 쫓아온다는 말인가?”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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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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