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282화 (282/492)
  • 00282  제 71 장 - 그레이 트롤 추격대  =========================================================================

    만약 자신들이 그레이 트롤 전사와 싸웠다면 어찌됐을까 생각해보니 새삼 그의 무력에 대한 답이 절로 깨달아졌다.

    본의 아니게 엘리트 전사들에게 무장이자 지장의 이미지를 만들어 준 소울은, 어디론가 떨어져 버린 와이번의 마석과 사체를 챙기지 못해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간신히 떼고 있었다.

    ‘분명히 B급, 아니 A급 마석일 텐데……. 이번에 진짜 와이번 가죽으로 갑옷 하나 만들어서 입어볼까 했는데, 정말 안타깝구나.’

    소울은 전리품을 회수하고 현장을 빠져나가며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와이번 마석과 사체를 챙기러 간다고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소울 일행이 번갯불이 콩 구워먹듯 매복과 기습에 이은 퇴각을 단행하고 난 한참 후, 절벽의 위쪽으로 그레이 트롤 부족의 추격대가 나타났다.

    그들의 몸은 하나같이 상처와 그을음으로 가득했다.

    트롤 종족의 특성인 재생이 없었다면 그들 대부분은 아마 화상으로 인해 벌써 세상을 떴을 것이다. 다행히 넉넉한 회복시간이 있어서 이들의 피부와 상처는 대부분 재생에 성공했다.

    하지만 재생으로 온몸이 회복했다고 해서 온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당한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참혹한 고통의 시간만큼 이들의 눈은 살기로 뒤덮여갔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시작한 사냥이었다.

    그레이 트롤 삼십에 그레이 트롤 전사가 다섯이나 포함된 추격대였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몬스터 부족은 반나절이면 씹어 먹을 수 있는 전력이었다.

    하지만 현재 그들의 숫자는 스물넷에 불과했다.

    그레이 트롤 열에 그레이 트롤 전사 하나가 죽거나 실종된 것이다.

    “크르릉, 우리의 전사 하나가 죽었다. 도저히 이놈들을 용서할 수 없다.”

    “맞다. 당장 추격해서 모조리 씹어 먹자.”

    “아니다. 우리만 가서는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다. 타로낭! 너는 가서 족장에게 전해라. 그레이 트롤의 전사 낭트의 이름으로 전쟁을 선포한다고 말이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레이 트롤 부족이 전멸하던지 웨어울프 레이칸 부족이 전멸하던지 결판이 나겠군.”

    “크르릉, 이 씹어 먹을 놈들을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

    전사들이 전쟁을 선포하자 그레이 트롤들은 오히려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반 그레이 트롤 셋이면 오우거도 도망간다.

    그런 그레이 트롤 부족 전체가 전쟁에 참여한다니 절로 흥분이 되고 있었다.

    “타로낭, 출발해라.”

    “알았다. 낭트, 금방 돌아오겠다.”

    타로낭이라고 불리는 그레이 트롤 전사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절벽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낭트는 회색의 무시무시하게 생긴 상판대기를 치켜들며 소울 일행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팔을 뻗었다.

    “추격을 시작한다.”

    그레이 트롤 추격대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일제히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두 번이나 당했으니 조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소울의 예상과는 달리 그레이 트롤 추격대는 추격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들의 뒤로 그레이 트롤 부족 전체가 전쟁을 선포하는 전사의 말에 미친놈들처럼 무섭게 달려오고 있었다.

    * * * * *

    쾅!

    멀리서 폭음소리와 함께 연기가 솟구쳤다.

    자동으로 고개를 뒤로 돌린 소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이거 생각보다 빨리 왔는데?”

    “마스터, 아무래도 이놈들이 돌았나 봅니다.”

    “그런 것 같군. 두 번이나 당했으면 조심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예상보다 너무 빨리 다가오고 있어.”

    일단 그들은 다시 이동을 계속했다.

    매복을 하고 기습을 하려고 해도 적당한 지형이 필요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앞의 지형은 완만한 경사로 바뀌고 있었다.

    히물레야 산맥을 거의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거 정말 골치 아프게 됐네. 너무 빨리 가면 레이칸 부족과 합류하는 꼴이 되고 그렇다고 미적거리자니 뒤쪽에서 쫓아오는 놈들이 신경쓰이고…….’

    소울은 큰 딜레마에 빠져 버렸다.

    레이칸 부족과 합류해서 그레이 트롤 추격대를 상대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만약 그레이 트롤 추격대가 게릴라 전법이라도 펼치게 된다면 이만저만 골치 아픈 것이 아니었다. 잘못하면 레이칸 부족 전체가 발목을 잡혀 이곳에서 고사당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레이 트롤 추격대를 맞상대하자니 전력의 차이가 너무 컸다.

    지금까지 짭짤하게 재미를 봤던 것은 지형의 이득을 보며 매복과 기습을 병행했기 때문이다.

    정면 대결을 하면 절대 답이 없었다.

    “마땅한 매복지점이 없네.”

    “갈수록 나무의 크기가 작아지는 것을 보면 히물레야 산맥을 이제 벗어나게 된 모양입니다.”

    소울의 말에 라이코스가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땅이라도 파야하나?”

    “네?”

    라이코스는 소울이 계속 뭔가를 생각하면서 중얼거리자 그제야 혼잣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이대로 계속가면 레이칸 부족의 뒤를 밟히게 된다. 참호를 파서 유인을 해야겠다.’

    소울은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모두 최고속도로 전방을 향해 달려간다.”

    “네, 마스터.”

    우두두두두두!

    도도도도도도!

    그들은 좀 전과 같이 느긋하게 걷지 않고 소울이 탄 푸티나의 속도에 맞춰 전력질주를 했다.

    무서운 속도로 쌩하니 달리는 소울 일행은 곧 탁 트인 들판이 펼쳐지는 것을 보면서 속이 다 시원해졌다.

    하지만 소울의 얼굴만은 새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역시 히물레야 산맥을 벗어나게 되는구나. 산맥을 나오기 전에 결정타를 먹였어야 하는데…….’

    히물레야 산맥을 벗어나자 더 이상 매복을 할 만한 지형을 찾을 수 없었다.

    적당한 굴곡이 있고 수풀이라도 좀 있어야 하는데 이놈의 들판은 멀리서도 한눈에 사방이 훤히 보이는 평평한 지형에다 잡초만 무성할 따름이었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 소울은 계속해서 달렸다.

    아마 이런 식으로 한 시간만 더 달리면 레이칸 부족의 뒤꽁무니에 따라붙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허억 허억 허억…….”

    “헥헥헥…….”

    소울은 옆에서 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다가 한숨을 쉬고 말았다.

    비스크와 트로트가 전력질주를 달리는 것에 한계가 왔기 때문이다.

    “푸티나, 이제 좀 천천히 달리자.”

    “꾸잉!”

    푸티나가 대답을 하면서 속도를 확 줄이자 그제야 비스크와 트로트가 좀 살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소울은 연신 주변의 지형을 살펴봤다.

    ‘생각하자! 생각해내야 해! 뭐가 있었지? 어떤 방법이 있을까? 내게 지금 당장 이득이 되는 환경은 뭐가 있지? 사방팔방이 뻥 뚫려 있고 풀들이 좀 보이고 날이 지고 있구나.’

    소울은 적당한 매복지를 찾을 수 없자 오히려 반대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조건이 뭔지 생각해봤다.

    당장 생각이 나는 것은 날이 어두워지고 있는 것과 웨어울프들이 야행성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본과 스켈레톤도 밤이 되면 더욱 강해진다.

    ‘역시 참호를 파야겠다. 우리의 몸을 숨길 곳이 없으니 땅속으로라도 기어 들어가야지. 그리고 이런 지형이 우리에게 아주 불리한 것만은 아니야. 저격을 하기에는 이보다 좋은 지형이 없으니까?’

    이 들판은 어디로 숨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대물저격총의 사거리가 2km 이니 반경 2km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그야말로 살아있는 표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셈이 됐다.

    석양이 지기 시작하자 소울은 더 이상 이동하지 않았다.

    대신 ‘T’자로 참호를 파게 했다.

    스켈레톤 부대는 땅 파는 도사들이다.

    태생이 언데드 답게 땅과 아주 친한 족속이라서 그런지 무지하게 삽질을 잘했다.

    모르긴 해도 허구한 날 삽질을 시켜 삽질의 달인이 된 대한민국의 국군 장병 뺨치는 실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삽질은 마치 저절로 땅바닥이 벌어지는 기적을 보는 것 같았다.

    스켈레톤 부대는 기가 막힌 속도로 순식간에 참호를 파고 다졌다.

    소울은 그 모습에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안에다 적당히 함정을 설치했다.

    “1km 뒤쪽에다 참호 하나를 더 파라.”

    “예스, 마이로드!”

    본과 스켈레톤 부대는 즉시 참호 밖으로 나와 달려갔다.

    소울의 명령대로 그들은 1km 뒤쪽에다 ‘T’자로 참호를 하나 더 팠다.

    소울이 다가와 함정을 설치하며 명령했다.

    “기왕 하는 것 한 개 더 파자. 거리는 500m 뒤쪽이다.”

    “예스, 마이로드.”

    그렇게 본과 스켈레톤 부대는 총 3개의 참호를 팠고 소울은 참호마다 함정을 설치했다.

    “푸티나와 트로트는 맨 뒤쪽의 참호 안으로 들어가 있도록 해라.”

    “꾸잉!”

    “쿠잉!”

    트로트는 푸티나와 오래 다니다 보니 말투가 갈수록 푸티나를 닮아가고 있었다.

    “첫 번째 참호로 모두 이동한다.”

    “네, 마스터.”

    “오늘의 작전은 간단하다. 해가 떨어지면 다가오는 적들을 저격한다. 5인1조로해서 다섯이 한 놈을 집중 사격하여 숨통을 끊는다. 1조와 2조는 이미 다섯이니 됐고 본은 스켈레톤 부대를 적당히 나눠서 집중 사격할 수 있도록 하라.”

    “예스, 마이로드.”

    모두 첫 번째 참호로 들어가자 소울이 함정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작전에 대한 개요를 알려줬다.

    “우리는 여기 맨 앞의 참호에서 일자로 서서 그레이 트롤 추격대를 저격한다. 적이 다가오면 엘리트 전사 1조와 2조는 중앙의 교통로를 통해 아래로 내려간다. 본은 이때 이 주변에 연막을 펼쳐 다음 참호를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모습을 안보이게 해야 한다. 그레이 트롤 추격대가 참호 안으로 난입해오면 본은 즉시 물러나 두 번째 참호로 오면 된다. 알아들었나?”

    “네, 마스터.”

    작전은 지극히 간단했다.

    참호에서 적을 저격하여 끌어들이고 도망간다. 참호의 함정이 터지면 다음 참호에서 다시 저격을 시작하여 적을 끌어들인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간단한 작전을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그레이 트롤 추격대를 맞이하느라 열심히 참호를 파고 함정을 설치하는 가운데 드디어 해가 떨어졌다.

    오늘은 마침 달빛 하나 없는 캄캄한 밤이었다.

    이대로 자면 정말 기가 막히게 단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스터, 질문 있습니다.”

    “뭐지?”

    2조 조장인 엘리트 전사 안트로프가 물었다.

    “만약 그레이 트롤 추격대가 더 이상 추격을 하지 않고 이대로 밤을 지새우면 우린 어떻게 합니까? 이 참호가 다 무용지물이 되는 것 아닙니까?”

    “맞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 저놈들이 공격을 안 해오면 우리에겐 그만큼 우리의 부족이 움직일 시간을 벌어주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참호에 가만히 앉아 있을 생각은 없다. 해가 뜨기 전에 우리가 직접 가서 기습을 하면 된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소울의 말에 모두들 자신감을 되찾았다.

    밤은 웨어울프들의 편인 것이다.

    하지만 그레이 트롤 추격대는 절대 추격을 멈출 생각이 없는지 빠른 속도로 추격해왔다.

    “낭트, 놈들이 이리로 갔다.”

    “계속 추격하자.”

    “달빛 하나 없는 밤이다. 너무 위험한 것이 아닌가?”

    “사냥을 할 때 추격을 멈추는 것처럼 바보 같은 짓은 없다. 이럴 때는 잠을 자지 못하게 더욱 고삐를 죄는 것이 좋은 것이다.”

    “좋다. 그럼 계속 추격하도록 하자.”

    이렇게 그레이 트롤 추격대는 웨어울프들을 쫓기로 의견을 모으고 들판을 빠르게 달려갔다.

    그레이 트롤은 야행성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중대형 몬스터 중에서는 꽤 밤눈이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흐릿한 별빛만으로도 대충 지형을 살필 수 있었다.

    뭐 평평한 들판이 끝도 보이지 않게 펼쳐져 있으니 살필 지형도 별로 없었지만 말이다.

    우두두두두두…….

    육중한 그레이 트롤들이 달려가자 수백 마리의 말들이 들판을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내는 소리정도는 무시하고 돌진할 정도로 스스로의 무력에 자신이 있었다.

    그때였다.

    핑 핑핑 핑핑핑…….

    케엑 커억 크아악 쿠에엑…….

    갑자기 뭔가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앞장서 가던 그레이 트롤 몇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기습이다.”

    “엎드려라!”

    “옆으로 퍼져라!”

    사방이 훤히 뚫린 들판에 적이 매복을 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그레이 트롤 추격대는 대경실색을 하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하지만 저격을 끊임없이 이어졌다.

    “정면에서 빛이 반짝인다. 저기에서 뭔가를 쏘는 모양이다.”

    “이대로는 안된다. 전원 돌격하자.”

    “돌격!”

    쿠워어어어어어어어!

    낭트가 돌격을 외치며 들판이 떠나가라 포효를 질렀다.

    ============================ 작품 후기 ============================

    *** 여러분 기뻐해주세요. 드디어 감기가 떨어졌습니다. 무하하하하하!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즐거운 하루 되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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