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79 제 70 장 - 코어(core) =========================================================================
하지만 아무리 쳐다봐도 마법진에 새겨진 문양과 기호 그리고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코어의 힘을 꺼내서 사용하는 마법진이라는 것만 간신히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붉게 빛나는 코어를 한번 만져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건 쓸데없는 호기심으로 자신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위험이 있어서 포기했다.
밤이 길면 꿈도 많은 법!
소울은 전투헬멧의 카메라 모듈을 통해 충분한 기록을 확보하자 곧바로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을 했다.
문제는 바깥으로 나가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아무래도 테라스를 잡아 죽여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당장 트롤과의 전쟁이 시작될지도 몰랐다.
한참동안 생각해봤지만 변수가 많아서 뭐라 딱히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이럴 때는 그냥 먼저 부딪쳐 보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는 본과 스켈레톤 부대가 있고, 비밀병기인 까망이도 있다.
최악의 경우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치명타를 날리고 난 후, 무조건 튀는 것으로 일단 행동지침을 설정했다.
[까망아, 나가자.]
[규!]
까망이가 그의 머리카락 속으로 들어오자 소울은 마지막으로 붉게 빛나는 코어를 한번 쳐다보더니 곧바로 허공에 떠 있는 물결 속으로 몸을 던졌다.
촤아아악!
역시 물이 갈라지며 다이빙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온몸의 감각이 사라지고 몸이 분자 단위로 분해되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묵직한 막을 온몸으로 뚫고 지나가자 곧 감각이 돌아오고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쿠웨에에엑!
놀랍게도 그레이 트롤 부족의 전사 테라스와 스파토이 간의 전투는 스파토이들의 일방적인 파상공세로 이어지고 있었다.
테라스는 그 막강한 힘과 공격력에도 불구하고 단 여섯의 스파토이를 맞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미 테라스의 몸 곳곳은 스파토이가 쥐고 있는 하얗게 빛나는 뼈로 된 검으로 난자당해 피를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테라스가 트롤이 아니었다면 아마 이미 출혈과다로 쓰러져 죽었을 정도의 상처였다.
물결 밖으로 나오자마자 주변을 빠르게 한번 훑어본 소울은 더 이상 테라스가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동굴의 입구로 향했다.
그런 소울의 모습을 발견한 레이칸과 투멘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눈치껏 빠져나오고 있었다. 확실히 부족의 족장들이라서 그런지 상황판단이 빨랐다.
소울은 레이칸과 투멘의 모습이 보이자 동굴 바깥으로 빠져 나가라고 손짓을 한 뒤 동굴 밖으로 나갔다.
그레이 트롤 부족의 족장과 주술사는 차기 족장으로 내정된 테라스가 스파토이들에게 죽임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 레이칸과 투멘이 사라진 것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동굴 밖으로 나오자 소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레이칸 요새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뒤에서 레이칸과 투멘을 비롯한 엘리트 전사들이 만나 뭐라고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일단 무조건 동굴과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속도를 더욱 높여 거의 전력을 다해 달려갔다.
도도도도도도!
그렇게 한참을 달려가자 멀리 레이칸 요새가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어느 정도 안심이 된 소울은 뒤를 돌아봤다.
레이칸 족장과 엘리트 전사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의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투멘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후우! 후우! 이제 좀 천천히 가세!”
“네, 족장님!”
그들은 달리던 속도를 천천히 줄이면서 호흡을 조절했다.
“투멘 부족이 합류하는 겁니까?”
“더 이상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없어서 판단하고 우리 부족에 들어오기로 했네.”
“소형 몬스터는 알라야 분지를 모두 나가야 한다는 카람코의 말 들으셨죠?”
“알고 있네. 안타깝지만 웨어울프 종족은 소형몬스터로 분류되니 그들의 말을 따라야 하겠지.”
레이칸은 약간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고블린이나 오크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는 불만이 은연중에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아까 그레이 트롤과는 왜 싸운 건가?”
“글쎄 아까 그 미친놈이, 혼자 씩씩대며 걸어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더니 괜한 화풀이를 저에게 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상대하게 된 것입니다.”
“으음, 그레이 트롤은 굉장히 호전적인 놈들이라서 가급적이면 상대를 안 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엮이고 말았군.”
레이칸 족장도 소울과 테라스가 어떻게 싸우기 시작했는지 대충 지켜봤기 때문에 이 분쟁이 설마 소울이 일으킨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까 그놈 스토파이들에게 엄청 깨지던데……. 그레이 트롤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요?”
“히물레야 산맥에서도 유명한 별종에다 독종인 놈들이라 반드시 복수를 하려고 들 거야. 제일 좋은 방법은 멀리 도망가는 것이지.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알라야 분지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것이 좋겠어.”
“차라리 신세계의 입구 쪽으로 가는 것이 어떨까요?”
“어차피 우리 부족의 근거지도 그쪽이니 그렇게 하는 것도 좋을 거야.”
일단 레이칸 족장은 알라야 분지 근처에서 알짱거리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레이칸 부족보다 훨씬 세력이 강성했던 투멘 부족이 한방에 훅 가버린 것이 좋은 반면교사가 됐다.
무엇보다 알라야 분지 밖에서 무슨 짓을 저질러도 좋다고 카람코의 말했으니 레이칸 부족이 알라야 분지 밖으로 나오게 되면 당장 그레이 트롤들이 습격해올 수도 있는 문제였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서 움직여야 합니다.”
“설마 신세계로 넘어가자는 소리는 아니겠지?”
“이곳의 몬스터들은 신세계에 있는 인간을 적으로 삼은 상황입니다. 엘프와 드워프 같은 유사인종과 웨어울프, 묘인족, 조인족 같은 수인족을 굳이 친절하게 배려해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최악의 경우 차라리 신세계로 넘어가서 적당히 둥지를 트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으음.”
억울한 부분이긴 하지만 소울이 한 말이 전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웨어울프 종족만 하더라도 인간으로 볼지 아니면 늑대로 볼 것인지에 따라서 적이 될 수도, 아군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머리를 쓰는 것보다 몸을 쓰는 것을 선호하는 몬스터들이 굳이 웨어울프의 입장을 배려해서 따로 구별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전체 몬스터의 숫자에 비하면 무시해도 좋을 미미한 숫자의 웨어울프 종족 따위는 그냥 여차하면 다잡아먹고 입 닦으면 그만이었다.
“마스터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신중히 고려해보도록 해야겠군.”
“감사합니다.”
레이칸 족장은 칸슬로 주술사가 자신의 자리를 소울에게 공식적으로 물려준 것에 대해 잊지 않았다. 그래서 소울이 하는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부족의 주술사는 족장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권위와 존경을 받는 자리이다.
족장의 부재 시에는 부족을 대표하기도 하고 특별한 경우에는 족장을 탄핵해서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도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게 주술사의 위치였다.
단순히 부족의 조언자 정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거기에다 소울은 이미 레이칸 부족의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기게 만들어 부족의 영웅으로 떠오른 상태였다.
가만히 있어도 힘이 모이는 자리에 부족의 청년들과 젊은 전사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었으니 그의 말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당연했다.
“족장님이 오셨다.”
“엘리트 전사들이 돌아왔다.”
“불리, 아니 주술사님이 돌아오셨다.”
“마스터가 돌아오셨다.”
레이칸 요새 입구에서 그들을 맞이하는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철수할 준비를 하고 모이도록 하세.”
“알겠습니다.”
레이칸의 말에 소울은 고개를 한번 숙이곤 자신의 천막을 향해 달려갔다.
천막 앞에는 열심히 쇠몽둥이를 휘두르고 있는 트로트의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서 앉아 구경을 하고 있는 푸티나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본, 소환!]
[예스, 마이로드.]
제일 먼저 본을 소환했다.
어금니가 저절로 어깨에서 떨어져 나가더니 ‘펑’하는 연기와 함께 본이 등장했다.
서늘한 연기를 주변으로 마구 뿜어낸 본은 곧바로 악어 입을 만들어 스켈레톤 부대를 토해냈다.
까드득 까득 까라라라라라라!
순식간에 스켈레톤 부대가 쏟아져 나오며 차례로 정렬을 했다.
[모두 잘 들어라!]
소울은 자신의 모든 소환수를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알라야 분지를 나가 히물레야 산맥을 빠져 나간다. 목적지는 일단 레이칸 부족의 본거지지만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개성필드다. 탈출하는 동안 그레이 트롤들과 분쟁이 일어날지 모르니 모두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해라.]
[규!]
[꾸잉!]
[예스, 마이로드!]
든든한 까망이와 푸티나 그리고 본의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차례대로 들려오자 소울은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비스크 이놈은 어디 갔지?”
“마스터, 저는 여기 있습니다.”
비스크가 천막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오자 소울은 깜짝 놀랐다.
그런데 천막 안에 있던 것은 비스크뿐만이 아니었다.
젊은 웨어울프들과 부족의 전사들이 우르르 천막 밖으로 몰려 나왔다.
“마스터!”
“마스터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반갑습니다.”
갑자기 자신의 손을 잡고 인사를 해대는 그들로 인해 소울은 잠시 정신없이 악수를 하면서 답례인사를 해야 했다.
비스크는 소울이 아직도 눈치를 채지 못하자 그의 곁으로 다가와서 슬쩍 귓속말을 흘렸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마스터를 추종하는 무리의 리더들입니다.”
“아!”
그제야 소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리더들이라면 이게 다가 아닌 모양이네?”
“당연하지요. 부족의 영웅이신 마스터를 추종하지 않는 젊은이는 사실 거의 없습니다. 이렇게 결과가 말해주지 않습니까?”
“그렇군. 그럼 다들 잠깐 천막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를 나누도록 하지.”
“네, 마스터.”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자신을 추종하는 무리의 리더들을 문전박대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당장 철수를 해야 하지만 잠깐 앉아서 통성명을 교환할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부족의 전사 라이코스입니다.”
“부족의 전사 안트로프입니다.”
“네우리입니다.”
“리카온입니다.”
“스투버입니다.”
…….
레이칸 부족의 전사의 수가 오십 정도다.
그중에서 전사들을 대표하는 자가 둘이나 찾아왔다.
또한 부족의 일부를 대표하는 자와 젊은이들을 대표하는 자도 찾아왔다.
잠깐 앉아서 얘기를 나눠보니 현재 부족의 전사 중 이십여 명이 소울을 추종하길 원하고 있었다. 전체 전사의 4할에 달하는 많은 숫자였다.
확실히 웨어울프들이 힘을 숭상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일부 부족민을 대표한다는 자의 말과 젊은이를 대표한다는 자의 말에 따르면 현재 부족민 중 백 명이나 소울을 따르고 싶어 했다.
구체적으로 자신을 따른다는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소울은 당장은 시간이 없는 관계로 모든 것을 비스크가 대행할 것이라고 얘기해줬다.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앞으로 시간을 두고 서로 친하게 지내도록 합시다. 다만 지금은 레이칸 부족 전체가 알라야 분지를 나가 히물레야 산맥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레이칸 족장이 곧 모두를 소집해서 자세한 설명을 할 것이니 그걸 들은 후 이곳에서 철수를 하도록 합시다.”
“네, 마스터.”
“예, 마스터!”
다들 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모두 천막을 빠져 나갔다.
뿌우우 뿌우 뿌우우우!
아니나 다를까 긴급소집을 뜻하는 뿔 나팔 소리가 레이칸 요새에 울려 퍼졌다.
“비스크, 그런데 이 천막은 어떻게 하지?”
“마스터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천막을 치고 운반하는 담당이 따로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그냥 몸만 가면 되겠구나?”
“그렇습니다.”
소울은 푸티나를 타고 비스크를 앞장세워 레이칸 족장의 천막 앞으로 갔다.
그의 뒤에서 본과 스켈레톤 부대가 질서정연하게 걸어오자 웨어울프들이 하나같이 감탄하는 표정을 지으며 소울을 우러러봤다.
레이칸 부족의 모든 웨어울프들이 모이자 레이칸 족장이 기차화통을 삶아먹은 것 같은 큰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이렇게 돼서 우리는 지금 당장 우리가 노력해서 만들어 놓은 레이칸 요새를 버리고 알라야 분지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알라야 분지 밖으로 나가면 밤과 낮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몬스터들의 기습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니 나가려면 최대한 빨리 나가는 것이 좋다. 모두 사슴 넓적다리 하나를 먹을 시간을 줄 테니 철수준비를 끝내고 레이칸 요새 서문으로 모이도록 하라!”
============================ 작품 후기 ============================
*** 감기가 지독히 안떨어지네요. 끝물이긴 한데 콧물감기 제대로네요. ㅠㅠ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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