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275화 (275/492)

00275  제 69 장 - 어부지리(漁父之利)  =========================================================================

쾅!

우당탕 쿵탕! 데굴데굴…….

거대한 와이번의 동체가 땅에 처박히며 데굴데굴 굴러갔다.

땅에서 먼지가 확 피워 오르고 대지가 지진이 난 것처럼 울렸다.

차라리 그대로 날아올랐으면 좋았을 텐데, 생전 처음 당해보는 화끈한 고통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몸의 중심을 잃어버린 와이번은 결국 추락하고 말았다.

소울과 본은 와이번의 동체가 바로 자신들의 뒤에 떨어져 굴러오자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급히 양 옆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다행히 와이번의 동체는 그들 사이를 스치고 계속 앞으로 굴러갔고, 소울과 본은 땅바닥을 구르긴 했지만 간신히 화를 피할 수 있었다.

[까망이 나이스!]

[규!]

정말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기지를 발휘하여 급하게 내린 명령을 까망이가 찰떡 같이 알아듣고 멋지게 성공을 시켰다.

나중에 반드시 까망이에게 상을 줘야겠다고 다짐하며 땅에서 일어난 소울은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와이번이 쓰러져 있는 곳을 쳐다봤다.

잘하면 와이번 한 마리를 거저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도둑놈 심보가 슬며시 마음속에서 기지개를 피고 있었다.

[까망아, 와이번의 마석을 한번 채취해봐!]

[규!]

일단 까망이부터 보냈다.

아직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위험한 놈의 근처에 다가갈 수는 없었다.

바로 앞에서 직접 보는 와이번의 위용은 한마디로 놀라웠다.

찔러도 피한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살벌하게 생긴 대가리와 날카로운 이빨, 머리부터 꼬리까지 촘촘히 돋아난 뼈와 단단해 보이는 비늘 그리고 거대한 날개를 보니 왜 와이번을 하늘의 제왕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규우! 마석을 뽑을 수가 없어요.]

[데엑, 그래? 그럼 도망가야지.]

[규!]

소울은 죽은 듯이 누워있는 와이번의 마석을 탈취하려다 실패하자 두 번 생각해보지도 않고 바로 도망쳤다.

까망이가 마석을 뽑을 수 없다는 말은 와이번이 죽은 척 하고 누워있거나 아니면 곧 일어난다는 말이다.

도도도도도도…….

소울과 본은 잽싸게 기둥들이 띄엄띄엄 세워져 있는 와이번의 거점을 벗어나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까망아, 이놈이 우리를 못 쫓아오게 날개는 꼭 태워라.]

[규!]

도망치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와이번이 살아나면 분명히 자신을 쫓아올 것 같았다. 그래서 까망이를 시켜서 와이번의 날개를 태우기로 했다.

까망이는 소울을 향해 다가오다가 그의 명령을 받자 잽싸게 다시 돌아가서는 쓰러져 있는 와이번의 날개에 염산, 황산, 백린을 골고루 뿌려줬다.

치이이이익!

쿠웨에에엑!

염산과 황산, 백린이 날개를 태우자 눈을 감고 있던 와이번이 고통으로 인해 정신을 차리더니 다시 한 번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을 정신없이 굴러댔다.

비명 소리에 놀란 다른 와이번들이 동족의 고통을 보다 못해 날아 내렸다.

그들은 와이번의 몸에 흙을 뿌려 불을 끄려고 했지만 백린이라는 것이 쉽게 꺼지는 것이 아니라서 오히려 고통만 가중시켰다.

결국 한쪽 날개에 커다란 구멍이 숭숭 난 와이번은 온몸에 피를 흘리면서 상처투성이의 동체를 일으켜 세웠다.

쿠화아아아아아아!

일어나자마자 와이번은 원독에 찬 포효를 길게 질러댔다.

얼마나 살기가 진했는지 주변에서 와이번을 도와주러 온 다른 와이번들이 다 놀라서 급히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염산과 황산으로 인해 눈알의 일부가 타서 더욱 살벌한 눈깔이 되어버린 와이번의 뇌리 속에 반드시 잡아 죽여야 할 불공대천의 원수의 모습이 또렷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소울은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알라야 분지에 최악의 적을 하나 만들어 놓고 말았다.

* * * * *

“세상에, 마스터는 주술의 천재이십니다.”

“하하하, 무슨 그런 말을…….”

칸슬로는 소울을 쳐다보며 진정으로 감탄했다.

이제껏 주술의 대해 이렇게 이해력이 뛰어난 자를 단연코 본적이 없었다.

문일지십(聞一知十).

한 가지를 들으면 열을 미루어 안다는 주술의 천재가 아니고서야 자신에게 주술을 배운지 이틀 만에 이럴게 완벽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소울은 부담스런 눈빛을 보이는 칸슬로의 눈을 살짝 피하며 속으로 후회했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보여줬나?’

밤에는 알라야 분지를 싸돌아다니면서 분탕질을 하고, 낮에는 칸슬로에게 주술을 배운지 이틀이 지났다.

소울은 칸슬로와 같이 앉아 오랫동안 주술을 배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잠이 들면 옥사나의 기억창고에 접속해서 중급 영혼체험을 통해 주술을 배웠다.

칸슬로가 아무리 뛰어난 웨어울프 족의 주술사라고 해도 주술사 중의 주술사, 주술계의 마스터 급인 옥사나에 비교할 수는 없었다.

이틀간 중급 영혼체험을 통해 주술을 배운 것만으로 이미 칸슬로의 경지를 한참 넘어버린 소울은 적당히 실력을 드러내어 칸슬로가 자신에게 주술을 가르치려고 하는 행동을 포기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조금 도가 지나쳤는지 칸슬로는 오히려 전보다 더욱 큰 의욕을 보이고 있었다.

“저와 같이 화덴을 만나러 가시죠?”

“화덴이라니?”

“웨어울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주술사 중의 한명입니다. 마스터라면 1년 아니 6개월만 배워도 화덴을 능가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소울은 고개를 살레살레 흔들었다.

“칸슬로, 이제 그만 하자. 화덴이고 화단이고 난 만나고 싶은 생각 없어. 그동안 적당히 장단을 맞춰줬더니 이제는 아주 머리꼭대기까지 기어오르려고 하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앞서갔나 봅니다.”

“쓸데없는 소리는 이제 그만하고 이 목걸이에 대해서 설명 좀 해봐.”

소울이 노골적으로 짜증을 내자 칸슬로는 즉시 고개를 숙이며 한발 물러섰다.

늙은 생강이 맵다더니 칸슬로는 즉시 화제를 돌려 소울이 원하는 대답을 해줬다.

“제가 드린 목걸이에 달린 마나석에 대한 설명을 원하시군요?”

“마나석?”

“그렇습니다. 광산을 가지고 있는 코볼트들에게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구한 귀중한 보물입니다.”

“설마 자연적으로 마나가 뭉쳐져서 만들어졌다는 그 마나석을 말하는 거야?”

“네, 맞습니다. 마나를 끌어다 사용할 수 있고 일정시간이 지나면 다시 채워집니다.”

“흐음, 그렇군.”

옥사나의 기억창고를 통해 마나석을 본 적이 있어 혹시 이것이 마나석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짐작대로 마나석이 맞았다.

“등급은 어느 정도나 되지?”

“하급 마나석입니다.”

“그렇군.”

참 아쉬웠다. 중급이나 상급 마나석이었으면 정말 대박일인데 겨우 하급 마나석이라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마스터, 하지만 하급 마나석 중에서 이 정도로 크기가 크고 순도가 높은 것은 찾기 쉽지 않습니다.”

“알겠어. 뭐 꼭 실망했다는 것은 아니야.”

“아! 네!”

사실 실망했다.

하지만 실망했다고 면전에다 대고 말하기는 좀 그래서 실망하지 않았다고 그냥 립 서비스를 해줬다.

“참, 칸슬로는 주술력을 불어넣어 아티펙트를 만드는 특기가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럼 이것 좀 봐줘!”

소울은 미리 준비해둔 반지, 팔찌, 목걸이, 귀고리를 각각 꺼내놓았다.

“이건 어디서 났습니까?”

“오크샤먼이 가지고 있던 액세서리야. 칸슬로가 보기엔 어때?”

기대 섞인 소울의 목소리에 칸슬로는 가차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하급, 아니 최하급의 주술 아티펙트 입니다. 실드를 내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주술력을 여기저기 흩어놓을 것이 아니라 하나로 몰아서 제작했다면 훨씬 더 강력한 아이템을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

소울은 이번에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칸슬로는 그제야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깨닫고는 급히 말했다.

“그래도 아주 허접한 아티펙트는 아닙니다. 이것을 제게 주시면 제가 주술력을 이용해 하나로 묶어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럼 최소한 하급 아티펙트는 나올 것입니다.”

“그렇게 해줄 수 있어?”

“물론입니다.”

“좋아. 그럼 가져가.”

“네, 마스터.”

소울은 미련 없이 오크샤먼의 액세서리를 칸슬로에게 넘겼다.

이미 자신에게는 실드 마법이 인챈트 되어 있는 타이타늄 팔찌가 두 개나 있었기 때문에 당장 오크샤먼의 액세서리는 필요 없었다.

그리고 공짜로 업그레이드를 해준다는데 말리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얼마나 걸리지?”

“사흘, 아니 이틀 안에 괜찮은 주술 아티펙트를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기대해보도록 하지.”

칸슬로의 말에 소울은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손을 흔들며 천막을 나왔다.

이제 두 번 다시 칸슬로에게 주술에 대해 배우지 않아도 될 생각을 하니 그래도 발걸음이 무척 가벼워졌다.

물론 칸슬로가 소울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칸슬로보다 주술에 대한 지식이 더 해박한 것을…….

칸슬로의 일방통행인 구애 아닌 구애에서 이제는 떳떳하게 벗어날 수가 있었다.

“마스터, 벌써 끝나셨습니까?”

“비스크, 오래 기다렸지?”

“아닙니다.”

칸슬로의 천막 밖에서 소울을 기다리고 있던 비스크가 고개를 숙이자 소울은 그의 어깨를 한번 툭 치고는 자신의 천막을 향해 걸어갔다.

“하일리가 천막 앞에서 마스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뭐시라? 아휴! 이거 정말 골치 아프네.”

소울이 인상을 쓰면서 관자노리를 주무르자 비스크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마스터, 그런데 하일리를 피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겁니까?”

“지금 내가 하일리를 건드려서 뭐가 좋겠어? 잘못하면 레이칸 족장을 장인어른이라고 부르게 된단 말이야.”

“그거야 아내로 맞아들였을 때나 그렇지요. 아내로 맞아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번 즐기자는 건데 그걸 왜 거절하시는지 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너 그거 외람된 질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니?”

“아! 죄송합니다. 제가 좀 주제넘은 짓을 했네요.”

“좀이 아니라 많이 주제넘은 짓이야. 네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알겠냐?”

안 그래도 자꾸 들이대는 하일리로 인해 힘들어 죽겠는데 옆에서 들쑤셔대니 소울은 정말 이중으로 피곤해지는 것을 느꼈다.

인간과 웨어울프의 가치관이 같은 수는 없다.

물론 웨어울프라고 모두 양다리를 걸치거나 난교를 즐기는 것은 아니다.

늑대처럼 일부일처제를 지키기도 한다.

하지만 소울은 그런 것보다 아직 종을 뛰어 넘는 사랑까지 할 자신이 없었다.

‘오늘따라 유정아가 무척 보고 싶네. 고하라나 실비아도 참 괜찮은데…….’

그때였다.

갑자기 레이칸 요새에 비상이 걸렸다.

뎅뎅뎅뎅…….

“와이번이다. 와이번이 나타났다.”

소울은 누군가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을 듣자마자 바로 천막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는 살짝 눈만 내밀어 하늘을 쳐다봤다.

‘허걱, 설마 저 와이번이 그때 그 와이번은 아니겠지?’

소울은 하늘 높은 곳에서 레이칸 요새 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와이번 한 마리를 보면서 침을 꿀떡 삼켰다.

“요새 와이번이 자주 나타나네요. 어젯밤에는 투멘 부족을 와이번 한 마리가 습격해서 난장판을 만들어 놓았다고 하던데…….”

“그, 그런 일이 있었어?”

“네, 벌써 이틀 동안 웨어울프의 거점만 노리는 미친 와이번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그, 그래?”

소울은 비스크의 말을 듣자마자 가슴이 뜨끔했다.

저 와이번이 그때 그 와이번이라는 것을 그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왜 저놈이 나를 쫓아오지? 설마 그때 나를 못 잡아먹은 것이 한이 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 정말이라면 속이 아주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놈이네. 다른 덩치 큰놈이나 잡아먹을 것이지. 왜 나 같이 고기도 몇 점 나오지 않는 놈을 찾고 지랄이야?’

소울은 즉시 자신이 입고 있는 와이번 가죽갑옷을 벗어던졌다.

“마스터, 갑자기 갑옷은 왜 벗습니까?”

“비스크, 아무래도 이거 진짜 와이번 가죽으로 만든 건지 의심스러워. 그러니까 네가 당장 가져가서 다른 쓸 만한 가죽갑옷으로 바꿔와.”

“네에?”

“내말 못 들었어?”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스크는 소울의 말에 와이번 가죽갑옷이라고 쓰고 와이번 짜가 가죽갑옷이라고 읽는 가죽갑옷을 받아 쏜살 달려갔다.

와이번은 한참동안 레이칸 요새를 빙글빙글 돌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소울은 앞으로 와이번의 공습까지 신경을 써야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골치가 아파왔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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