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74 제 69 장 - 어부지리(漁父之利) =========================================================================
처음에는 10cm도 어디냐고 생각했는데 막상 써먹으려고 보니 써먹을 데가 없었다.
대인전을 하게 된다면 혹시 모를까 그가 주로 상대할 대상은 몬스터였기 때문이다.
결국 순간이동 중급을 살 때까지 봉인 외에는 답이 없어 보였다.
[마이로드, 전투가 끝났습니다.]
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오자 소울은 눈을 돌려 전장을 훑어봤다.
이번 전투는 예상을 깨고 새롭게 등장한 트롤 일족이 미노타우로스 무리를 모조리 잡아 죽이는 쾌거를 이룩했다.
[까망아, 마석 수거해라.]
[규!]
소울은 트롤들이 미노타우로스들을 모조리 씹어 먹기 전에 얼른 까망이를 보내 마석부터 챙기게 했다.
“마스터, 레이칸 요새로부터 급보입니다. 사이클롭스가 접근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웨어울프들이 어지간히 만만해 보였나보내? 개나 소나 다 오잖아? 안 그래?”
“그러게 말입니다.”
비스크의 눈에서 살기가 풀풀 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소울은 그 소식을 전하려고 열심히 달려온 비스크의 어깨를 한번 두드려줬다.
[푸티나!]
[꾸잉!]
푸티나가 즉시 그의 앞으로 달려왔다.
소울은 훌쩍 푸티나의 등으로 뛰어 오르더니 지체하지 않고 레이칸 요새를 향해 달리게 했다.
[레이칸 요새까지 최대속도로 달리자.]
[꾸잉!]
우두두두두두!
일단 레이칸 요새가 주변이 안정이 되어야 다른 곳도 맘 편하게 돌아다닐 수가 있다.
이런 식으로 계속 다른 몬스터에게 공격을 받으면 소울은 알라야 분지를 싸돌아다닐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확실히 어제와는 달리 몬스터들의 준동이 격렬하구나. 역시 미치광이 풀이 제대로 효과를 내는 건가?’
미치광이 풀을 알라야 분지의 수원(水源)에 대량으로 살포했다고 해도 몬스터들을 당장 미치게 만들 수는 없다.
끽 해야 평상시 보다 쉽게 흥분하고 분노조절을 좀 못하는 정도일 뿐이다.
하지만 이게 쌓이고 쌓이다보면 언젠가는 ‘펑!’ 하고 터져 버릴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알라야 분지가 광란의 밤으로 변하게 될 날이다.
사이클롭스는 작게는 5m 에서 크게는 10m 에 이르는 거대한 외눈박이 거인이다.
커다란 몽둥이를 가지고 다니면서 주로 오크나 고블린 마을을 공격해서 잡아먹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웨어울프들이 요새를 만들어 놓은 돌로 된 언덕을 공격해왔다.
“어라? 저게 뭐야? 완전히 허당이잖아?”
소울은 레이칸 요새 남쪽으로 공격해 오는 사이클롭스들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우와아앙!
그아아앙!
함성을 질러대며 돌로 된 언덕 위를 마구 달려가던 사이클롭스들은 어느 순간 기우뚱거리더니 중심을 잃고는 나자빠져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져 굴러 떨어졌다.
그러길 몇 차례 거듭하자 씩씩대던 사이클롭스들이 안되겠다 싶은지 몸을 돌려 오크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비스크, 이거 뭐야? 괜히 달려 왔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사이클롭스들이 쳐들어 온다고 해서 급보를 전했더니 콩기름 몇 통 돌길에 뿌린 것으로 끝나버렸네요.”
비스크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였는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해보니 레이칸 요새는 오늘까지 돌로 된 성벽을 쌓은 작업을 완전히 마친 상태라 중대형 몬스터들이 공격해온다고 해도 어지간해서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다 트롤의 이빨과 발톱으로 창도 넉넉히 만들어 놓았고 오우거 가죽으로 갑옷과 방패도 만들고 있었다.
식량은 트롤과 오우거 고기를 대량으로 훈제하고 있어서 당분간은 충분해보였다.
“비스크, 레이칸 요새에다 푸티나를 놓고 갈 테니까 위험하다 싶으면 푸티나에게 말해.”
“네, 마스터.”
그래도 혹시 몰라 보험 하나 들어놓는다고 생각하고 푸티나를 두고 가기로 했다.
비스크와 푸티나가 레이칸 요새로 들어가자 소울은 본을 데리고 곧바로 동쪽으로 달려갔다.
어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오우거들을 누가 끝장을 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을 해보니 놀랍게도 오우거들이 있던 자리를 블랙오크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소울은 크게 놀랐다.
‘우와아, 약점을 드러내니까 오우거들도 정말 한방에 훅 가버리는구나. 약탈로 부족의 생계를 이어간다는 블랙 오크라서 그런지 기회를 제대로 잡았네? 하지만 이곳은 블랙오크들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곳인데…….’
소울은 새롭게 자리 잡은 블랙오크들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중대형 몬스터가 자리를 잡은 곳이라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오우거들이 자리를 선점하고 있어서 다른 중대형 몬스터들이 가만히 있었던 것이지 블랙오크 따위가 그런 명당자리를 빼앗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본, 일단 다른 곳을 한번 둘러보자.]
[예스, 마이로드.]
소울은 본을 데리고 그 자리를 떴다. 굳이 그곳에서 블랙오크들을 지켜봐야 할 이유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알라야 분지에 온 목적은 코어에 접근하기 위해서다.
중대형 몬스터의 마석을 챙기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입을 챙기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알라야 분지 전체가 지금 몬스터들의 난동으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보이고 있는 이때에 부지런히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챙길 수 있는 부수입도 열심히 챙겨야 나중에 후회를 안 할 것 같았다.
각 몬스터들이 거점을 중심으로 공격과 방어가 반복되는 전투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원래부터 흉포한 몬스터였지만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그들의 폭력성을 잘 드러내는 밤이었다.
소울과 본은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죽은 몬스터들의 사체에서 마석을 챙기고 쓸만한 중대형 몬스터의 사체를 빼돌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소울과 본은 자신들이 드래곤 레어로 통하는 동굴 쪽으로 너무 가깝게 접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 이리로 계속가면 화이트 드래곤 히마의 레어가 시작되는 동굴이 나온다. 우회하자.]
[예스, 마이로드.]
소울은 본을 데리고 조용히 우회를 했다. 하지만 그가 우회한답시고 간 길은 히물레야 산맥의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어라, 길을 잘못 들었네? 다시 돌아가야 하나?’
그는 즉시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몸을 돌리려고 했다.
그때 본이 그를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마이로드, 저 언덕 너머에 엄청난 마나의 유동이 느껴집니다.]
[마나의 유동?]
본의 말에 그는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호기심을 막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가서 살펴만 보자.]
[예스, 마이로드.]
소울은 본과 함께 눈앞에 언덕을 조심스럽게 기어 올라갔다.
주변에 돌과 잡초가 무성한 곳이라 마땅히 몸을 숨길 곳이 없었던 그들은 평상시보다 배는 더 시간을 들여 은밀하게 다가갔다.
“흡!”
언덕 꼭대기로 올라가 고개를 살짝 내밀어 아래를 내려다 본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막고는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지고 등에서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본, 너도 보이냐? 세상에 이 넓은 계곡이 뱀으로 가득 차 있는 게?]
[마이로드, 저들은 일반 뱀이 아닙니다. 맹독을 가지고 있는 바실리스크입니다.]
본이 소울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을 지적해줬다.
소울은 본의 말에 다시 한 번 커다란 뱀들을 잘 살펴봤다.
본의 말이 맞았다.
이 거대한 계곡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바실리스크였다.
‘설마 중대형 웨이브의 핵심이 바실리스크였어?’
소울은 머릿속으로 상상해봤다.
저 많은 바실리스크가 개성필드를 통해 나오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말이다.
그의 고개가 저절로 좌우로 도리도리를 치고 있었다.
상상해볼 것도 없이 대재앙이 일어날 것이다.
바실리스크 한 마리는 지구에서 가장 덩치가 크다는 아나콘다 보다 훨씬 거대한 뱀 몬스터이다.
껍질이 단단해서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상처도 나지 않고 거기에다 맹독까지 가지고 있다.
자신이 직접, 죽은 바실리스크의 시체를 수거해서 독낭을 채취해 수원에다 살포했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소총은 아예 말도 꺼낼 필요가 없었고, 중(重)기관총을 난사한다면 모를까 대물저격총으로 쏴도 아마 단단한 껍질로 인해 쉽게 죽이기 어려울 것이다.
‘소이탄, 그것도 네이팜탄이나 백린탄으로 대 몬스터 장벽 안에 저놈들이 모여 있을 때 폭격을 하지 않는 이상 저놈들을 다 잡아 죽이기는 힘들 거야. 지금 당장 내 손에 핵배낭이라도 있으면 한방에 다 날려 버릴 수 있을 텐데…….’
너무도 쇼킹한 장면을 목격하자 소울은 그토록 혐오하는 무기인 핵무기를 써서라도 처리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본, 이만 물러나자.]
[예스, 마이로드.]
소울은 본을 데리고 조용히 물러났다.
이건 도저히 자기 힘으로 뭘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최선은 최대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 중대형 몬스터 웨이브의 핵심이 바실리스크라는 것을 대한민국을 비롯한 온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도도도도도…….
소울과 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장을 빠져나와 레이칸 요새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다 문득 자신들이 이상한 곳을 지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거대한 기둥을 땅에 박아 놓은 것 같은 요상한 곳이었다.
주변에는 몬스터의 뼈들이 가득했는데 가끔 기둥 위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헉, 저건 와이번이잖아?’
소울은 너무 놀라서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거대한 기둥 위, 희미한 달빛에 비친 그림자는 바로 하늘의 제왕 와이번의 모습이었다.
[본, 왼쪽으로 틀어라.]
[예스, 마이로드.]
도도도도도…….
소울은 무조건 달리던 방향을 틀어서 와이번이 모여 있는 곳을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와이번 한 놈이 눈치를 챘는지 거대한 동체를 하늘로 끌어올리듯 날아올랐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눈치 챘어도 소울과 본은 달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멈추면 오히려 갇혀서 다시는 빠져 나가지 못할 것 같았던 것이다.
‘가만 나 지금 와이번 가죽으로 된 갑옷을 입고 있는데……. 이걸 저놈들이 알면 절대로 날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소울은 달리면서 얼굴이 갑자기 하얗게 변했다.
물론 이것은 비스크가 만들어낸 소울의 전적인 오해였다.
와이번 가죽으로 된 갑옷이 얼마나 귀한 물건인데 몽불란이 불리 같은 불효막심한 놈에게 줬겠는가?
불리가 하도 와이번 가죽 갑옷을 달라고 하니까 몽불란이 어디서 비슷하게 생긴 가죽으로 갑옷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는 와이번 가죽갑옷이라고 구라를 친 것이다.
불리는 제 아비가 한 말로 인해 와이번 가죽갑옷이라고 철썩 같이 믿었고 그런 그의 당당한 태도에 비스크까지 홀딱 넘어가 소울을 본의 아니게 속이게 된 것이다.
어찌됐던 지금 소울은 와이번 가죽으로 된 갑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에 머릿속까지 하얗게 변해서 도망치는데 전념을 다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달리기가 아무리 빨라도 하늘을 나는 와이번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펄럭 펄럭…….
와이번은 우아하게 소울과 본의 머리 위를 날아가더니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는 곧 쏜살같이 공중에서 지상으로 쏘아져 내려왔다.
쐐애애액!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를 내며 와이번이 빠르게 다가오자 까망이가 급히 소울에게 경고성을 발했다.
[규우! 와이번이 내려와요.]
소울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뒤로 돌아봤다.
밤하늘에 달빛을 받으며 거대한 와이번이 쏜살같이 날아 내려오는 모습은 뒷골이 시릴 정도로 살벌했다.
‘이건 절대로 못 피한다. 어떻게 하지?’
절체절명의 순간 본은 소울을 자신의 몸으로 감싸려는지 그의 뒤쪽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와이번의 저 날카로운 발톱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저 정도의 속도에 저 정도 크기의 발톱은 스치기만 해도 뼈와 살이 박살날 것이 분명했다.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 소울의 머릿속에 번개같이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까망아, 와이번이 날아오는 공간에 염산, 황산, 백린을 뿌려라!]
[규!]
소울의 머리 위에서 와이번을 요격할 준비를 하던 까망이가 즉시 그의 명령에 반응했다.
소울과 와이번이 직선을 이루는 공간의 한 점에 까망이가 아공간에서 꺼낸 염산, 황산, 백린을 아낌없이 투척한 것이다.
촤아아아아!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내려오던 와이번은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향해 쏟아지는 물체에 놀라 급히 급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대로 멈추기에는 와이번 자신이 낸 속도가 너무 빨랐다.
치이이이익!
쿠웨에에엑!
염산과 황산 그리고 백린을 머리에 뒤집어 쓴 와이번은 급히 눈을 감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눈알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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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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