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73 제 69 장 - 어부지리(漁父之利) =========================================================================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복병이 튀어 나왔다.
헤일리가 아빠라고 부르는 자는 무려 레이칸 족장이었던 것이다.
‘이 개놈의 새끼가 족장의 딸을 어떻게 해보려고 그동안 부지런히 들이댔었나 보구나. 이거 골치 아프게됐네.’
불리는 정말 개가 맞다. 종류가 늑대라서 그렇지 개 같은 개놈이 맞았다.
소울은 속으로 불리를 열심히 욕하면서도 천막 틈 사이로 헤일리를 열심히 쳐다봤다.
헤일리는 커다란 가슴과 풍만한 엉덩이를 간신히 가린 가죽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얼굴은 소녀라고 해도 믿을 만큼 동안인 속칭 베이글 미녀였다.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가는 헤일리가 그에게 몸이 달아 있는 모습이 보이자 소울은 갑자기 정욕이 미친 듯이 치솟아 올랐다.
‘안 그래도 전투로 인한 스트레스가 쌓여서 폭발하기 일보직전이라 손오공을 소환하려고 했는데 헤일리 같은 미녀가 내 눈앞에 나타나다니……. 이건 정말 운명의 장난인가? 아니면 신의 농간인가?’
차라리 안 보느니만 못했다.
헤일리는 그냥 그림의 떡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헤일리와 그렇고 그런 관계를 가지게 된다면 바로 정체가 탄로 날 것만 같았다.
“헤일리,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조금만 줘. 지금 나는 부족의 안전을 위해 다른 곳에 한눈을 팔수 없는 입장이야.”
“아! 불리, 정말 많이 변했구나. 그럼 잠깐만 밖으로 나와서 나를 봐. 네가 그렇게 원하던 모습이야.”
“아니야. 지금 네가 날 보면 실망할거야. 아직은 내가 많이 부족해.”
그는 정말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가며 굴러들어온 호박을 발로 차야만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동안 불리한테 말하진 않았지만, 원래 난 이 모습을 더 좋아해. 그러니까 너도 이제 그만 자신의 작고 약한 몸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어. 이제 나와 약속한 대로 모습을 바꿔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소울은 답답한 마음에 대답을 하면서 속으로 ‘아차!’ 했다.
하지만 하일리는 오히려 불리의 마음을 감싸주려는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약속을 한 것을 벌써 잊었어? 내가 이 모습을 처음으로 네게 보여주면 너도 인간 남자의 모습을 나한테 처음으로 보여주기로 했잖아.”
“아!”
소울은 그제야 이들의 약속이 뭔지 이해했다.
‘그럼 하일리는 아직 인간의 모습을 한 불리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얘기잖아? 어떻게 하지? 그냥 화끈하게 사고를 한번 쳐버릴까? 아니야. 이대로 욕정에 무너지면 안 된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여자들과 쓸데없이 엮이는 짓은 하지 않기로 스스로 약속했잖아.’
그는 피눈물을 흘리면서 결국 하일리를 포기하고야 말았다.
“하일리, 사실 난 언젠가 인간의 세상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어. 그래서 이대로 하일리를 만나게 되면 참지 못하고 널 범하게 될지도 몰라. 책임지지 못할 일은 하고 싶지 않아.”
“어머, 이제는 책임감까지? 정말 확실하게 달라졌구나? 예전에는 어떻게든 나를 범하려고 그렇게 기를 쓰더니…….”
“크흠, 그, 그건 미안하게 됐어.”
하일리의 말에 소울은 불리를 정말 잡아 죽이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그놈을 죽이러 천막을 박차고 튀어나갔을 것이다.
“아니야.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야. 난 그냥 너무 많이 변해서 조금 놀랐을 뿐이야. 그리고 우리 웨어울프 종족은 이젠 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 1부1처가 뭐야? 늑대도 아니고……. 서로가 좋으면 얼마든지 즐길 수도 있는 거잖아. 안 그래?”
“당연히 그렇지……는 않지.”
소울은 간신히 하일리의 말을 부정할 수 있었다.
입은 하일리의 말을 부정하고 있지만, 정직한 몸은 당장이라도 하일리를 안고 싶어서 환장할 지경이었다.
어찌 이리 목 아래와 위가 다르게 움직이는지 그는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하일리, 미안! 오늘은 이만 돌아가 줘. 그리고 내게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줬으면 좋겠어.”
“알았어. 내가 오늘 너무 마음이 들떠서 그랬나봐. 다음에 다시 찾아올게.”
“그, 그래.”
하일리가 아쉬워하며 돌아가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어떻게 간신히 넘겼지만 빨리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다음에 반드시 사고를 칠 것만 같아 불안해졌다.
‘정말 욕망 앞에 흔들리는 촛불같은 비참한 수컷의 운명이로구나.’
정욕의 늪이 이리 깊을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젊고 건강한 사내가 풀지는 못하고 쌓이기만 하니 상당히 괴로웠다.
거기다 그는 랩터킹의 간을 먹어 무한정력의 화신으로 변한 능력자가 아닌가?
그렇게 보면 자신의 옆에 유정아가 있다는 것이 정말 큰 도움이 됐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아마 하렘을 만들어 놓고 매일 수많은 여자들과 질펀하니 즐기느라 세월 가는 줄 몰랐을 것이다.
“마스터, 레이칸 족장께서 트롤의 피와 오우거의 뼈를 보내왔습니다.”
“그래? 나가보자.”
밖으로 나오니 부족의 전사들이 직접 소울에게 트롤의 피가 담긴 나무통 네 개와 오우거 뼈가 가득 담긴 수레를 가져왔다.
소울은 수고한 전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고, 전사들은 소울과 친해지고 싶은지 모두 그의 눈치를 살살 보며 웃음을 지었다.
잠시 그들의 수작에 적당히 맞장구를 치다 돌려보낸 소울은 트롤의 피가 담긴 나무통은 까망이의 아공간에 넣고 오우거의 뼈는 본에게 넘겼다.
“비스크, 너 혹시 하일리 알아?”
“하일리요? 마스터는 어떻게 아세요?”
“내가 먼저 물었거든?”
“죄송합니다. 하일리는 레이칸 족장의 무남독녀로 우리 부족 최고의 미녀전사입니다.”
“전사라고?”
“그렇습니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끝내주는데다 전투에서도 아주 용감해서 부족에서 하일리를 마음에 두지 않는 수컷은 없습니다. 발정기가 오면 하일리의 꽁무니를 수컷들이 수십이나 따라다닌 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 놈도 성공하지 못했답니다.”
“그럼 설마 처녀란 말이야?”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래 훔친 사과가 맛있고 못 먹는 감이 더 맛있게 보이는 법이다.
소울은 오늘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아이고 아까와라. 병신, 정말 줘도 못 먹는다는 말이 딱 내 짝이로구나. 휴우!’
그는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비스크는 소울이 어떻게 하일리의 이름을 아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분위기를 봐서는 물어보지 않는 게 만수무강에 지장이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역시 비스크는 눈치가 빨랐다. 그리고 위기에 강했다.
“특별한 일 없으면 가서 쉬어라. 저녁에 바쁘게 돌아다니려면 체력을 비축해야지.”
“네, 마스터.”
잔뜩 찌푸린 얼굴에 삐딱한 말투, 비스크는 자신이 지금 지뢰밭을 무사히 건너왔다는 것을 실감하고는 정중히 인사를 하자마자 쏜살같이 자신의 천막으로 내뺐다.
소울은 비스크가 밖으로 나가자 다시 담요 위에 발라당 자빠져서는 한숨을 푹푹 쉬다가 눈을 감고 이리저리 뒤척이며 시간을 죽였다.
시간이 더럽게 가지 않았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아까 천막 사이로 봤던 하일리의 삼삼한 얼굴과 한입에 넣어도 비리지 않을 것 같은 싱싱한 몸매가 아른 거렸다.
‘아! 이놈의 음란마귀를 어떻게 쫓아내지.’
그는 자신이 음란마귀의 시험에 들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리자 조금 진정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는 천막 앞 공터에 서서 자오검을 꺼내 들었다.
‘이럴 때는 그저 미친 듯이 몸을 움직이고 검을 휘두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소울은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기왕 밖으로 나온 것 그동안 익혀왔던 스킬들을 점검해보기로 했다.
그는 제일 먼저 기술습득 소울 크리스털로 배운 기사의 검술 하급을 펼쳐봤다.
휘익 휙휙 휘익 휙휙…….
확실히 하급이라서 그런지 기사의 검술은 기초적인 검술 보다는 조금 위인 기본 검법에 불과했다. 다만 온전히 마스터하면 탄탄한 기본기는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30분 정도 기사의 검술을 펼치다가 곧바로 칼리볼그의 글람 검법으로 넘어갔다.
글람 검법은 뭔가 제대로 된 검법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무엇보다 펼치면 펼칠수록 손에 익는 것이 위력도 더욱 강해질 것 같았다.
그동안 몬스터를 잡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어서 애써 익힌 기술과 스킬들의 숙련도를 올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을 잊고 열심히 검을 휘두르자 중급 영혼체험을 통해 얻은 글람 검법의 오의(奧義)가 하나 둘씩 떠올라 그를 기쁘게 만들었다.
우등생은 등수가 올라가면 즐겁고 무사는 실력이 올라가면 즐겁다.
소울은 점점 글람 검법에 빠져 들어갔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 번 펼쳐보니 모든 것이 새로웠다.
어느새 불같이 솟구쳐 오르던 욕정이 사라지고 몸에서 더운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하자 소울은 글람 검법에 쉐도우 스텝을 섞어서 사용해봤다.
스팡 훅훅 스팡 훅훅…….
확실히 난이도가 더 올라갔지만 그에 비례해 글람 검법이 더욱 은밀해지고 치명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남은 왼팔과 자신의 몸을 무기화시켜 몽크의 체술 하급까지 섞어 넣었다.
그러자 그의 움직임이 아까보다 훨씬 더 다이내믹해졌다.
벌처럼 쏘고 나비처럼 날아가다 번개처럼 들어와 발로 차고 주먹으로 찌르고 후려갈겼다.
몸을 뒤집어 두 다리를 풍차처럼 돌리다가 반대로 상체를 돌리며 검을 마구 쑤셔댔다.
뒤로 물러서며 사방으로 X자를 만들며 몸을 뒤틀더니 쏜살처럼 다가와 파워스트라이크와 슬래쉬 스킬을 연속으로 때려 넣었다.
팡 파파팡 피잉!
쾅 콰쾅!
적당히 움직이려던 생각을 버리고 스킬까지 집어넣자 폭음이 일어나며 주변에 세찬 바람이 몰아쳤다.
문신강체술이나 버프까지 받고 움직였다면 아마 더 큰 소음이 일어났겠지만 레이칸 요새의 웨어울프들의 주의를 끄는 데는 이것으로도 충분했다.
웨어울프들은 삼삼오오 소울이 수련을 하고 있는 공터로 다가오더니 적당히 떨어져서 구경을 했다.
레이칸 부족의 전사들이 하는 수련과는 전혀 다른 인간의 검법을 펼치고 있어서 그런지 그들은 소울의 움직임에 꽤 큰 흥미를 보였다.
나중에는 엘리트 전사들까지 나타나서 소울의 수련을 지켜봤다.
하지만 지금 소울은 주변에서 누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수련에 집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수련은 한 시간이 넘도록 계속됐다.
가끔 부족의 전사들과 엘리트 전사들이 소울의 움직임을 보며 뭔가 깨닫기라도 하는지 혼자 손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본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구경하는 것은 전혀 막지 않았지만 일정 거리 이상을 다가오면 스켈레톤 부대를 이용해 바로 저지했다.
그런 본과 스켈레톤 부대의 뒤쪽으로 트로트가 뼈로 된 방패와 역시 뼈로 된 메이스를 들고 기초적인 체술과 무기술을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다.
소환사와 소환수가 이렇게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는 가운데 알라야 분지의 하늘은 마치 불이라도 난 것처럼 붉은 노을이 넓게 펴오르기 시작했다.
* * * * *
캬아아오오오!
크와아아아앙!
으와아아아앙!
해가 떨어진 광활한 알라야 분지에 거대한 암흑의 장막이 드리워지자 마치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 각종 몬스터 무리가 준동하기 시작했다.
어제는 그래도 서로 눈치를 보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완전히 노골적으로 상대의 거점을 공격해 들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특히 어젯밤 전멸에 이르는 피해를 입은 오우거의 군락지와 몰살을 당한 트롤의 거처는 조금 더 좋은 환경과 유리한 지역을 점령하려는 중대형 몬스터들의 잇단 침입과 도발로 크고 작은 전투가 끊이질 않았다.
그런 모습을 수풀 속에 숨어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소울의 머릿속에는 엉뚱하게도 온통 순간이동 스킬에 대한 고민이 가득 차 있었다.
‘쿨타임 5초에 10cm 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조루야.’
다른 웨어울프들의 눈을 의식해서 레이칸 요새를 나와 이곳까지 은밀하게 이동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순간이동을 사용해봤지만 마땅히 사용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사용하는 것은 특별히 문제가 없었지만 일단 이동하는 거리 자체가 짧아도 너무 짧았다.
‘1m, 아니 30cm 만 돼도 어떻게 해보겠는데……. 역시 순간이동은 당분간 봉인해야하나?’
============================ 작품 후기 ============================
* 마음에 드는 제목을 짓지 못했네요. 좋은 제목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즐거운 하루 되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