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272화 (272/492)

00272  제 68 장 - 혼수모어(混水摸魚)  =========================================================================

“아! 그건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지요. 우리 웨어울프들은 강자지존(强者至尊)의 법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족장이 강하면 무조건 좋은 것 아닙니까? 이대로 레이칸 족장을 따르는 무리를 넘어서게 된다면 마스터는 자연스럽게 우리 레이칸 부족의 족장이 되시는 겁니다.”

“얘기가 그렇게 되는 거야?”

소울은 오히려 웨어울프들의 관습이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종족보존과 생존에 가장 큰 무게를 두고 있는 웨어울프들은 두 가지 목적에 가장 어울리는 강한 자가 무리를 이끄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낀다.

‘호오, 이거 일이 아주 재미있게 돌아가잖아. 그럼 이참에 내가 아주 웨어울프들의 족장이 한번 되어볼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니 슬그머니 욕심이란 놈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성체가 된 웨어울프의 전투력은 E급 강화계 능력자를 훨씬 능가한다.

비록 E급 몬스터로 분류를 하고 있지만 실제적인 대인전투력은 E급 강화계 능력자 세 명이 달라붙어도 이길까 말까 한다.

그런 웨어울프들이 무려 사백도 넘게 있었다.

웨어울프의 전사 계급은 이미 공인된 D급 몬스터이다. 엘리트 전사와 족장은 D급을 넘어서 C급 몬스터로 분류한다.

이런 막강한 전력을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이건 정말 엄청난 축복이나 마찬가지였다.

“비스크, 너에게 전권을 주겠다. 아니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겠다. 레이칸 부족에서 끌어 모을 수 있는 나의 지지자들을 모조리 끌어 모아라.”

“크흐흐, 마스터, 드디어 마음의 결정을 하셨군요.”

“그래. 이참에 나도 한번 갈 때까지 가보려고 한다. 안되면 깨끗이 포기하도록 하지.”

“헤헤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웨어울프들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그리고 한번 충성을 맹세하면 어지간해서 배반을 잘 하지 않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해 마스터를 족장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호오오!”

소울은 비스크의 호언장담에 삐딱한 표정을 하며 노려봤다.

‘이게 어디서 개 구라를 떨고 있어? 네가 나를 족장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지. 숭무(崇武) 정신이 투철한 웨어울프들에게 내 능력이 먹힌 거잖아. 이 새끼가 꼭 잘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네.’

정말 성질 같아서는 매타작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타고난 성품이 원래 이런 비스크라서 쉽게 고쳐질 것 같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레이칸 부족의 족장이 되더라도 비스크에게 중임을 맞길 생각은 없었다.

비스크의 쓰임새는 경호를 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나서기 껄끄러운 일들을 앞장서서 조용히 처리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스크, 두 말 하지 않을 테니까 조용히 나가서 진지하게 내 명을 수행하도록 해라.”

“네, 마스터!”

소울의 눈초리가 싸늘해지자 눈치 빠른 비스크는 얼른 입을 다물고 조용히 천막을 나갔다.

비스크의 얄밉게 생긴 뒤통수를 보며 꺼질 듯이 한숨을 내쉰 소울은 까망이를 불렀다.

[까망아, 나와라!]

[규!]

까망이가 그의 앞에 나오자 소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까망아, 우리 그동안 알레야 분지에서 얼마나 마석을 모았는지 한번 정산을 해보도록 할까?]

[규!]

우리의 순진한 까망이는 오늘도 소울을 향해 긍정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자, 그럼 여기 담요 위에서 그동안 챙긴 마석들을 한번 다 쏟아 봐!]

[규! 규!]

촤르르르르륵!

순식간에 담요 위에 호두알에서 어린 아이 주먹만 한 큼직한 붉은색 마석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간간히 주황색 마석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붉은색 마석이었다.

마석이 작은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여가는 것을 바라보는 소울의 얼굴에는 어느새 만족한 빛이 가득했다.

‘아! 정말 소득이 풍성하구나. 내 정체만 밝혀지지 않는다면 이런 식으로 한 달이면 재벌소리 듣고도 남겠구나.’

붉은 색으로 빛나는 마석은 C급 마석으로 기본이 10억부터 시작한다.

그런 것이 저렇게 많이 쌓여 있으니 앞으로 더 얼마나 벌어갈 수 있을지 기대가 됐다.

당장 오늘밤부터 본격적인 난리가 일어난다면 그의 수입은 더 크게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다 레이칸 족장에게 받기로 한 트롤의 피와 오우거의 뼈를 생각해보면 알라야 분지에 목숨을 걸고 잠입한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보람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었다.

‘해떨어지면 또 어제처럼 열심히 돌아다녀야 하니 지금 낮잠이라도 한숨 자야겠다.’

소울은 그렇게 마음을 먹고 그래도 담요 위로 발라당 자빠졌다.

[까망아, 마석 도로 집어넣고 양치나 좀 해줘!]

[규!]

눈을 감고 살짝 입을 벌렸다.

그러자 까망이는 담요 위에 마석을 싹 쓸어 담고는 허공에 푸른빛이 일렁이는 물을 소환해서 소울의 치아를 깨끗이 청소해줬다.

개운한 기분이 된 소울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배를 벅벅 긁고는 잠에 빠져들었다.

* * * * *

2시간이나 잤을까?

기분 좋게 낮잠을 때리고 나자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F급 강화계 능력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D급 소환계 능력을 베이스로 깐 상태에서 나오는 듀얼 능력인지라 자체회복 능력의 효율이 꽤나 괜찮았다.

거기에다 그에게는 만능의 재주꾼 까망이가 있었다.

치유와 회복과 정화를 아낌없이 퍼주는 나무가 옆에 있었으니 그는 사실 체력이 떨어질까 봐 걱정을 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

‘점심은 뭐로 하지?’

매일 하루 세끼를 뭐로 먹을까 생각하는 것도 사실 고민 아닌 고민이다.

그는 까망이의 아공간에서 뭔가 꺼내 먹으려다가 뭔가 굽는 냄새가 나자 호기심에 천막을 걷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본, 이게 무슨 냄새지?]

[전 냄새를 못 맡습니다.]

[엥, 정말이야?]

[아쉽게도 사실입니다.]

말의 뉘앙스를 통해 뭔가 안타깝다는 감정이 그의 마음을 콕콕 찔렀다.

[알았다. 푸티나에게 물어봐야지.]

[죄송합니다. 마이로드.]

[네가 죄송할 게 어디 있어? 물어본 내가 미안하지.]

[아닙니다.]

소울은 본의 어깨를 한번 툭 쳐주고는 푸티나를 찾았다.

[푸티나, 어디있니?]

[꾸잉!]

[아! 알겠다. 어디있는지. 내가 그리로 갈게.]

[꾸잉!]

푸티나가 대답을 하자마자 어디에 있는지 느껴졌다.

그는 느긋하게 천막을 따라 레이칸 요새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지글지글…….

거기에는 거대한 오우거와 트롤이 통째로 한 마리씩 구워지고 있었는데 비스크가 온갖 양념을 발라대며 열심히 요리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저놈이 또 어디서 요리 프로그램을 하나 보고는 허풍을 떨고 있네?’

척 봐도 뭔가 사이비 요리사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비스크의 감언이설에 다른 웨어울프들은 마치 대학교에서 교수의 명 강의를 듣는 자세로 집중해서, 아니 홀린 듯이 듣고 있었다.

그들의 옆에서 푸티나가 사람처럼 바위에 앉아 있다가 다 익은 오우거의 등살을 잘라 트로트에게 먹이고 있었다.

트로트는 어느새 자신보다 훨씬 큰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트롤이라고 웨어울프들이 잡아 죽이려고 하는 것을 비스크가 마스터의 펫이라고 소개하는 바람에 지금은 누구도 트로트에 대해 적대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소울은 트로트에 대해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디서 지냈는지 뭘 먹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행히 푸티나가 트로트를 잘 챙겨주고 있어서 트로트는 무럭무럭 잘 자라났다.

요즘 주로 먹는 고기가 오우거 고기다 보니 트로트의 성장은 정말 눈이 부셨다.

“마스터, 나오셨습니까?”

“비스크,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

“네.”

비스크가 소울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자 소울이 온 것을 발견한 수십의 웨어울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부족의 영웅에 대한 예의와 주술사의 대를 잇는 신분에 대한 예의 그리고 부족의 전사에 대한 예의가 그 고갯짓 하나에 모두 담겨져 있었다.

소울도 정중하게고개를 숙이며 마주 인사를 하자 웨어울프들은 모두 황송한 표정을 지었다.

비스크는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라고 하자 정말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자신의 비전 요리법에 대해 강의를 시작했다.

가만히 들어보면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도 그들은 그것이 마치 무슨 전설의 요리법이라도 되는 양 듣는 꼴이 너무나 우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비스크가 하는 일에 대해 산통을 깰 수는 없었다.

그보다는 이제 너무나 분명히 트롤의 모습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트로트의 몸에 뭔가를 걸쳐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제 트로트도 자신의 밥값을 하게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본, 트로트에게 기본적인 체술을 가르쳐봐. 트롤의 몸에 맞게 적당히 고칠 것은 고쳐야 할 거야.]

[예스, 마이로드.]

[트로트의 양쪽 팔목을 보호할 수 있는 팔목보호대나 작은 방패를 부착시켜주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무기도 하나 주고 그에 맞는 무기술도 가르치도록 해!]

[예스, 마이로드.]

결국 소울은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트로트를 밥값을 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훈련을 시켰다.

이미 덩치가 웨어울프만 한 트로트는 체술을 익히고, 무기술을 배워 무기를 들고 싸운다면 아마 비슷한 체구의 몬스터 중 쉽게 당해낼 자가 없을 것이다.

강력한 재생능력이 있는 트롤이니 어지간한 놈은 살을 주고 뼈를 깎는 전법을 사용하면 바로 순삭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푸티나, 충분히 먹였으면 트로트를 본에게 데리고 가서 지금 당장 훈련시켜!]

[꾸잉!]

그렇게 트로트는 밥 먹다가 훈련을 하러 끌려갔다.

‘에이, 고소한 냄새가 나서 뭔가 맛있는 것을 만드나 했더니 웨어울프들이 오우거를 불에 구워 익혀먹고 있었구나. 돌아가서 점심이나 먹어야겠다.’

그는 배가 고파서 당장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왔다. 절대 비스크가 하는 개소리를 듣기 싫어서 서둘러 온 것이 아니었다.

까망이의 아공간에 넣어둔 도시락 중 돼지갈비 정식을 꺼내 먹은 소울은 후식으로 식혜 한 병을 통째로 비웠다.

역시 양치질은 자신이 직접 하는 게 귀찮아서 까망이를 시키고 다시 담요 위에 발라당 자빠졌다.

“불리!”

그때였다.

갑자기 천막 앞에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뜨게 만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엥? 이게 무슨 코멩멩이 소리지? 헐, 설마 불리의 여자 친구라도 온 건가?’

순간 소울은 소름이 끼쳤다.

잘못하면 오늘 웨어울프와 그렇고 그런 짓을 벌여야 할지 모르는 위기가 찾아온 것을 깨달은 것이다.

“누구지?”

“불리, 나야! 헤일리야!”

“헤일리?”

“응, 나 좀 들여보내줘. 천막 앞에 불리의 소환수들이 막고 있단 말이야.”

소울은 등에서 식은땀이 절로 나는 것을 느꼈다.

“여, 여긴 왜 왔어?”

“왜 오다니 약속을 지키러 왔지. 불리는 나 안보고 싶었어?”

“그동안 나 무척 바빴잖아.”

“그런데 불리는 왜 밖으로 안 나와? 그리고 목소리는 또 왜 그렇게 많이 변했어?”

“소, 소환사로 각성하면서 내 몸에 변화가 일어났어. 그리고 난 이제 예전의 불 리가 아니야. 그러니까 우리 이제 좀 진지해지자.”

죽은 불리라는 놈이 분명히 이 암컷 웨어울프와 뭔가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소울은 천막을 살짝 들쳐서 몰래 헤일리라는 이름을 가진 암컷 웨어울프를 살펴봤다.

‘내가 제대로 씻지도 않는 냄새나는 웨어울프와 그렇고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뭐야 얘 왜 이렇게 섹시해? 이거 완전히 사람이잖아?’

소울은 자신의 눈을 손으로 한번 비볐다.

놀랍게도 천막의 밖에는 사람의 모습을 한 어여쁜 처녀 한 명이 서 있었다.

그제야 소울은 자신이 지금까지 웨어울프들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웨어울프는 원래부터 사람의 모습을 할 수도 있고, 이족보행이 가능한 늑대의 모습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레이칸 부족은 지금 몬스터로 가득한 알레야 분지의 한 가운데에 있다.

그러니 당연히 레이칸 부족 전체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맞아. 우리는 이제 진지해져야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자꾸 얘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소울은 입에 침이 마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불리를 거절해서 미안해. 나는 불리가 이렇게 훌륭한 부족의 영웅으로 성장할지 몰랐어. 그냥 개망나니로만 생각했어. 미안, 내가 오해를 했던 것 같아. 하지만 이제 난 불리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어. 아빠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신다고 했어.”

“너의 아빠가?”

“응, 족장의 일을 하시느라 바쁘셔서 내가 미쳐 말을 하지 못했는데 오늘 자기 칭찬을 하기에 내가 살짝 불리가 그동안 나한테 들이댔던 것을 얘기하시니까 아주 좋아하셨어.”

소울은 순간 턱이 땅으로 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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