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271화 (271/492)
  • 00271  제 68 장 - 혼수모어(混水摸魚)  =========================================================================

    조금은 늦은 아침을 먹고 나자 레이칸 족장과 칸슬로 주술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왔다.

    “레이칸 족장님, 어서 오세요.”

    “푹 잘 잤나?”

    “네, 잘 잤습니다.”

    “칸슬로님도 오셨군요.”

    “어제의 활약은 정말 감명 깊었네.”

    “천만에요. 부족의 힘을 결집한 결과일 뿐입니다.”

    레이칸과 칸슬로는 소울의 겸손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둘이 천막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자 소울과 비스크가 그들을 마주보고 나란히 앉았다.

    누가 성질 급한 웨어울프가 아니라고 할까봐, 레이칸은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아침부터 자네를 이렇게 찾아온 것은 어제 우리가 얻은 전리품을 나누기 위해서야.”

    소울은 레이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비스크와 칸슬로를 쳐다봤다.

    웨어울프들이 전리품을 어떤 식으로 나누는지 그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그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눈만 말똥거려야했다.

    그러자 비스크가 소울의 사정을 눈치 채고는 순발력 있게 치고 나왔다.

    “전리품을 나누신다고요? 하지만 여기 마스터께서는 트롤과 오우거의 사체에 아무런 욕심이 없으십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

    “물론입니다.”

    레이칸은 감동을 했는지 무릎걸음으로 순식간에 소울 앞으로 다가오더니 그 커다란 두 손으로 소울의 한손을 덥석 잡고 마구 흔들었다.

    “그동안 자네를 내가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어. 부족을 위해서 자신의 몫조차 생각하지 않다니 말이야. 이런 이타적인 경우를 봤나?”

    족장이 어째 감정적으로 변해가며 크게 오버를 해대자 칸슬로가 즉시 중간에 끼어들었다.

    “어제 우리 부족을 공격했던 트롤과 오우거 무리를 모두 때려잡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마스터의 공로입니다. 아무리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공적에 대해 포상을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반드시 다른 이들이 이것을 문제 삼을 것입니다.”

    “불리 전사를 이제 마스터라고 부르는 건가?”

    “그렇습니다. 불리는 전사이자 소환마스터이니 마스터라고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흐음, 뭔가 그럴듯한 호칭이군. 마스터라……. 좋아. 나도 앞으로 마스터라고 부르도록 하지.”

    죽은 놈의 이름인 ‘불리’로 불리는 것을 질색하는 소울이라 비스크와 칸슬로는 그가 소환마스터라는 것을 이용해 레이칸 부족에게 없는 새로운 호칭을 하나 만들어줬다.

    “저, 이야기가 옆으로 많이 샜습니다.”

    “아, 미안하네.”

    레이칸 족장은 썩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라서 그동안 칸슬로 주술사에게 많이 의지를 했다. 칸슬로 주술사는 레이칸 족장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항상 좋은 조언으로 부족을 이끄는데 큰 힘을 보태주는 존재다.

    그런 사실을 레이칸 부족의 모두가 다 잘 알고 있었다.

    “칸슬로 님,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사실 공적으로 따지면 마스터가 전체의 3분의 2를 가져간다고 해도 할 말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칸슬로가 말끝을 흐리면서 슬쩍 소울을 쳐다봤다.

    사실 소울이야 트롤과 오우거의 사체 전부 가지고 싶었다. 그렇지만 전부 가져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고 3분의 2를 가져가는 것도 너무 욕심을 부리는 짓이었다.

    3분의 1 정도가 적당할 것 같긴 한데 그것도 엄청난 양이 되기 때문에 당장 처리하는 게 쉽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소울이 나름 속으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비스크가 그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마스터, 차라리 트롤의 피와 오우거의 뼈를 달라고 하십시오.”

    “아!”

    비스크의 말에 소울은 자신이 지금 전혀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트롤의 사체 중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것이 트롤의 피다. 물론 이건 인간 세상에서나 비싼 재료지, 자체 재생력이 있는 웨어울프들에게는 하등에 쓸모없는 것이 트롤의 피였다.

    또한 오우거의 뼈는 본과 스켈레톤 부대에게 꼭 필요한 재료이다.

    당장은 소울 자신이 D급 소환계 능력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 본과 스켈레톤 부대의 성장이 정체되고 있지만, 앞으로 등급이 올라가게 된다면 오우거의 진한 기운이 담겨 있는 오우거의 뼈가 본과 스켈레톤의 뼈대를 이루는 중요한 전략자원이 될 것이다.

    물론 트롤의 뼈를 달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트롤의 뼈 보다 훨씬 강하고 단단한 오우거의 뼈가 있는데 굳이 트롤의 뼈를 달라고 할 이유는 없었다.

    “저에게 트롤의 피와 오우거의 뼈만 주십시오. 그럼 그럿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정말인가? 정말 오우거의 가죽을 하나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네, 그거면 족합니다.”

    칸슬로는 소울의 눈을 쳐다보고는 진심이라는 것을 깨닫자 레이칸을 설득했다.

    “이번에 얻은 오우거 가죽으로 갑옷을 만들어 무장하면 우리 레이칸 부족의 전력이 몇 배는 더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또한 트롤의 손톱과 이빨로 장창과 투창을 만들면 더욱 강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거 너무 쓸데없는 것만 줬다고 나중에 욕을 먹을 것 같은데…….”

    레이칸 족장은 소울의 제안에 크게 반색했다.

    하지만 나중에 해도 너무했다는 욕이 나올 것 같아 머뭇거렸다.

    웨어울프 들에게 가장 소중한 자원은 오우거의 가죽이었는데 그것을 하나도 주지 않았다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았다.

    “흐음, 당장은 딱히 뭐로 보상을 해주기도 어렵군. 나중에 부족의 근거지로 돌아가면 내가 책임지고 반드시 부족의 최고의 보물로 따로 보상을 해주기로 하지.”

    “뭐 그렇게 하시지요.”

    소울은 레이칸 족장이 하는 말에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세상에 말로 공수표를 남발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도 결국 립 서비스를 하는 정도일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결과는 나중에 뚜껑을 열어 봐야 알 수 있겠지만…….

    트롤의 피와 오우거의 뼈만 받아도 소울에게는 이미 크게 남는 장사다.

    그래서 더는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트롤과 오우거의 사체에 대한 분배 중 가장 큰 산을 넘기자 레이칸과 칸슬로는 들어올 때보다 훨씬 편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잠시 남아서 소울과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고 싶어 했다.

    그만큼 소울의 위치가 상승했다는 뜻이다.

    “당장 오늘 저녁부터 트롤과 오우거의 보복이 들어올 것 같은데,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할 것 없습니다. 어제 제가 주변을 돌아보니 오우거와 미노타우로스 사이에 큰 전투가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레이칸이 소리쳤다.

    “뭐시라?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제가 가서 두 눈으로 그 전투현장을 똑똑히 봤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됐는가?”

    레이칸은 침을 꿀떡 삼키며 조급하게 물어왔다. 어쩌면 부족의 생사와도 직결되는 문제니 저렇게 나오는 것이 아마 당연할 것이다.

    “미노타우로스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지금 오우거가 머물고 있는 장소에는 암컷과 새끼들 그리고 다 늙어 전투력을 상실한 오우거들만 남아 있을 겁니다.”

    “그럼 당장 오늘 밤 전사들을 몰고 가서 그들을 몰살시켜야겠군?”

    “그럴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아니라도 이빨과 발톱이 다 빠진 오우거 무리를 노릴 몬스터는 천지에 널려있으니까요.”

    “그거야 그렇겠지.”

    말끝이 안으로 먹히는 것이 아무래도 레이칸은 남은 오우거를 싹 쓸어버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안 될 말이다. 괜히 다른 놈들 공격하러 나갔다가 빈집털이라도 당하면 레이칸 부족만 손해를 보는 것이다.

    소울은 어제 까망이를 시켜 죽은 오우거들의 사체에서 마석을 다 뽑아놓았다.

    이미 챙길 수 있는 이득을 다 챙겼기 때문에 더 이상 남은 오우거들에게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냥 가만히 놔둬도 어차피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오우거 무리를 노리고 달려드는 놈들이 넘쳐날 것이 분명하니, 오히려 그런 전투를 기다렸다가 어부지리로 마석만 챙겨도 크게 불로소득을 얻게 되는 일이었다.

    “어젯밤 오우거와 미노타우로스 사이에만 전투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트롤과 드레이크 사이에도 큰 전투가 있었습니다.”

    “그런가? 이거 정말 알라야 분지가 복마전(伏魔殿)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됐군.”

    레이칸 족장은 그제야 소울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소울은 그런 족장에게 트롤과 드레이크 사이의 전투의 결과를 설명해줬다.

    “트롤과 드레이크 사이의 전투는 드레이크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습니다. 트롤이 완전히 전멸을 해버렸습니다. 아마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중대형 몬스터들이 트롤이 머물던 곳으로 바로 이동해올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트롤과 오우거의 군락지는 또다시 큰 전투가 일어날 것입니다.”

    레이칸은 소울의 설명을 다 듣고 무조건 레이칸 요새에서 방어에 집중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괜히 밖으로 싸돌아다니다가 엄한 놈에게 기습을 당해 부족이 큰 피해를 입을 것 같았다.

    사실 웨어울프 종족인 레이칸 부족의 힘도 결코 약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룻밤 만에 오우거와 트롤 무리가 전멸을 하는 상황이다 보니 이제 어떤 곳도 안전하다 말할 수 없게 됐다.

    “우리 레이칸 요새의 방비가 튼튼한지 확인을 하러 가봐야겠다.”

    “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마스터, 고맙네. 자네의 희생으로 우리 부족은 더욱 강해질 거야. 이런 사실을 부족 모두에게 말해두도록 하겠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모두 뛰어난 우리 레이칸 족장님의 영도력이 빛났던 것입니다.”

    “하하하하, 참으로 듣기 좋은 소리만 골라서 하는군.”

    소울은 끝까지 겸손했다. 레이칸 족장이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남기며 먼저 떠나가자 칸슬로가 소울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속삭였다.

    “마스터, 이제부터 제게 주술을 배우도록 하십시오. 매일 하루에 세 시간씩 배우시면 몇 년 안에 훌륭한 주술사가 되실 수 있을 겁니다.”

    “알겠다. 나중에 조용할 때 찾아가지.”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칸슬로는 정중히 그에게 인사를 하고 천막을 빠져 나갔다.

    그를 바라보며 소울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가 대가리에 총 맞았냐? 하루에 세 시간씩 몇 년씩 주술을 배우고 앉아있게? 당장 오늘밤 소울넷에 접속해서 주술사를 한번 찾아봐야겠다. 아니지. 굳이 주술사를 찾을 필요가 없네? 옥사나가 있잖아!’

    그는 옥사나가 떠오르자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하프오크 주술사 옥사나.”

    주술로 이미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하프오크 옥사나의 삶을 경험해봤던 소울이다.

    옥사나의 주술을 중급 영혼체험을 통해 배우게 된다면 굳이 냄새나는 다 늙어빠진 칸슬로와 서로 얼굴을 맞대고 몇 년씩이나 주술을 배울 필요가 없었다.

    사실 진짜 문제는 자신의 허접한 주술적 재능이다.

    아무리 주술을 배워봐야 써먹지 못하는데 배워서 뭘 하겠는가?

    하지만 소울은 이제 그냥은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배워보고 안되면 그때 가서 포기해도 늦지 않다.

    “정말 주술을 배우시려는 겁니까?”

    “그건 나중에 좀 생각해보기로 얘기하도록 하자.”

    “네, 마스터.”

    비스크는 소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울이 주술사가 되는 것은 영 아니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보다 오늘 저녁에 해야 할 일을 의논하는 것이 좋겠다.”

    “그렇군요. 빠르면 아마 오늘 저녁부터 살짝 맛이 간 놈들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할 겁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우리는 전투가 벌어지는 곳만을 찾아다니면서 어부지리만 챙기는 거야.”

    “푸하하하!”

    “크하하하!”

    소울과 비스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미친놈처럼 웃기 시작했다.

    이미 어제 한번 단단히 재미를 봤기 때문에, 오늘 저녁부터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대충 짐작이 갔던 것이다.

    “참, 마스터! 아주 중요한 보고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데?”

    갑자기 비스크가 정색을 하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레이칸 부족의 전사들 중 마스터를 따르고 싶어 하는 녀석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으래?”

    소울이 부리는 소환수들의 막강한 힘을 동경해 그를 따르고자 하는 무리가 생겨나고 있다는 말이다.

    “전사가 아닌 웨어울프들 중에서도 마스터에 대해 호의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 점점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흐음, 일단 그건 나쁘지 않군. 그런데 레이칸 족장이 과연 이런 것을 용납할까?”

    “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레이칸 족장이 나를 따르는 무리가 늘어나면 족장의 권위에 대한 위협으로 느끼지 않겠냐는 말이야.”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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