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70 제 68 장 - 혼수모어(混水摸魚) =========================================================================
결정적으로 알라야 분지의 몬스터들은 배가 고파서 서로 잡아먹어야만 살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굳이 소울이 난리를 피우지 않아도 어차피 서로 간에 싸우는 일은 부지기수로 일어나고 있었다.
다만 적당히 배가 부르면 끝날 수 있는 싸움을 소울이 중간에 끼어들어,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식으로 서로에게 커다란 피해를 줄 수 있게 일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소울이 각본을 쓰고 까망이가 주연, 본이 조연으로 나선 알라야 분지의 광란의 밤은 이렇게 엉뚱한 한 인간에 의해 후끈 달궈져 가고 있었다.
광란의 밤은 새벽이 되어 동녘 하늘에 해가 뜰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 * * * *
알라야 분지는 강수량이 많아 물이 풍부한 곳이다.
크고 작은 강이 흐르고 샘도 있었다.
하지만 마실 물이 있는 곳은 언제나 경쟁이 치열하다.
동물이나 몬스터나 반드시 물은 마셔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런 물이 오염된다면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비스크, 정말 이게 맞아?”
“그렇습니다. 제가 아는 미치광이 풀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희미한 별빛에 반사되는 웨어울프 특유의 섬뜩한 붉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말하는 비스크를 보며 소울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소울에게는 넓은 들판에 자생하고 있는 눈앞의 이 풀이 일반 풀과 뭐가 다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일단 이것으로 해보자. 그렇지만 혹시 모르니 플랜 B도 같이 쓰도록 해야겠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플랜 B는 바실리스크(basilisk)였다.
알라야 분지를 돌아다니며 온갖 분탕질을 하고 있는 소울의 눈에 바실리스크 떼와 그리폰 무리가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것을 목격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사자의 몸통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 앞발을 가진 그리폰과 맹독을 가진 거대하고 단단한 껍질을 가진 뱀의 모양을 한 바실리스크의 싸움은 그야말로 용호상박(龍虎相搏)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 두 무리가 싸움을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결국 전투는 숫자가 적은 그리폰의 승리로 끝났다.
아무리 덩치가 크고 맹독을 가지고 있어도 물리지 않으면 그만이다.
거기에다 그리폰은 독수리의 그것을 닮은 날카로운 앞발로 바실리스크의 단단한 껍질을 사정없이 찢어버렸다.
그들의 싸움을 지켜본 소울은 바실리스크의 천적이 혹시 그리폰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치열하지만 일방적인 싸움으로 기억됐다.
그리폰들은 바실리스크의 대가리를 발기발기 찢어 버린 뒤 간만 쏙 뽑아서 씹어 먹고는 위풍당당하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소울은 ‘이게 웬 횡재냐?’ 하고 달려가 바실리스크의 마석을 모조리 챙겼다.
이미 레이칸 부족을 공격하다가 박살이 난 트롤과 오우거의 마석을 모두 챙긴 그는 알라야 분지 사방을 싸돌아다니면서 서로 싸우다가 죽은 몬스터의 사체 안에 있는 마석들을 챙기는 꽤나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어부지리(漁父之利)도 이 정도면 횡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행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바실리스크의 혀, 쓸개, 비늘 등 많은 부분이 전사들의 장비나 마법사들의 마법 재료로서 이용된다는 비스크의 조언으로 인해 바실리스크의 사체가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소울은 죽은 바실리스크의 사체까지 몽땅 챙겼다.
거기에다 바실리스크가 맹독을 지닌 몬스터라는 것을 알게 된 소울은 자신의 계획에 마침표를 찍어주는 바실리스크의 독낭(毒囊)을 채취하며 유레카를 불러댔다.
‘미치광이 풀과 바실리스크의 독낭을 수원(水源)에 풀게 되면 한바탕 난리가 나겠구나.’
본과 스켈레톤 부대가 열심히 미치광이 풀을 베어 모으고 있는 사이 소울은 까망이와 비스크를 시켜 주변의 몬스터들이 사용하는 수원지를 찾아다녔다.
밤이슬을 맞으며 열심히 알라야 분지를 돌아다닌 소울이 레이칸 부족이 머무는 돌로 된 언덕, 아니 이제는 레이칸 요새라고 불리는 곳으로 돌아온 것은 새벽이 다 되어서였다.
“모두 수고했다. 한숨 자고 아침에 보자.”
소울은 연이은 전투와 밤새도록 알라야 분지를 싸돌아다닌 탓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아주 피곤했다.
그는 자신에게 배정된 천막으로 들어오자마자 바로 담요에 몸을 누이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까망이가 피와 땀에 전 그의 몸을 깨끗하게 씻어주고 정화시켜줬다.
그제야 소울의 얼굴 표정이 편하게 풀려갔다.
소울이 잠에 빠져 고른 숨을 쉬자, 푸티나는 자신의 덩치를 확 줄인 후 천막 안으로 들어와 마치 그를 지키기라도 하듯 곁에 웅크리고 누웠다.
본과 스켈레톤 부대는 소울이 쉬고 있는 천막의 사방을 철통같이 에워싸고 지켰다.
그들의 눈이 한시도 쉬지 않고 주변을 향해 번뜩거렸다.
비스크도 좀 지쳤는지 옆의 천막으로 건너가자마자 바로 코를 고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소울의 긴 하룻밤이 지나갔다.
* * * * *
“하하하, 아주 난리가 났군.”
소울넷에 접속된 소울은 인터페이스를 띄우자마자 신나게 웃었다.
자신의 생각대로 타이로스, 탄탈라스, 세이지, 칼라볼그, 로빈을 비롯한 많은 유저들이 소울넷에 보고를 할 때 자신의 이름을 보조 보고자로 올려달라고 부탁을 하는 쪽지가 수없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소울은 일단 아무런 대가없이 보조 보고자로 올려달라고 구걸하는 거지새끼들을 싹 정리해서 분류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자신은 지금 이 일에 목숨을 걸고 있는데 아무런 노력도, 대가도 없이 거저먹으려는 하는 놈들을 보자 울화통이 치밀었다.
역시 어디를 가나 이런 양심에 털 난 놈들이 꼭 있었다.
떨거지들을 털어내고 영양가 있는 쪽지를 확인하기 시작하자 곧 그의 얼굴이 밝아져갔다.
타이로스, 탄탈라스, 세이지, 칼라볼그, 로빈 등 많은 유저들이 선물로 보내온 소울넷 포인트와 제안서를 보자 절로 미소가 돌았다.
소울은 가장 먼저 타이로스부터 온 제안서를 읽어봤다.
‘친애하는 이소울 마스터에게, 먼저 서먼너즈 길드의 발전과 사업의 번영 그리고 가정의 평안을 빕니다. 어려운 역경을 넘어 이제 차원의 균열 중심부로 가게 된 것을 축하하며 반드시 코어를 확인하여 소울넷에 보고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아울러 메인 보고자로 보고할 때 저를 꼭 보조 보고자로 보고해주시기를 앙망합니다. 만약 그렇게 해주신다면 제가 아끼는 보물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스킬 중 하나를 상급 영혼체험 할 수 있는 권리를 드리겠습니다. 아무쪼록 현명한 판단을 해주시길 기대합니다. 마스터를 응원하는 친구 타이로스.’
타이로스가 보낸 쪽지, 아니 제안서는 나쁘지 않았다.
타이로스가 가지고 있는 보물이 어떤 것이 있는지 아직 확실히 모르지만 그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꽤 괜찮아 보였다.
만약에 중급이나 상급 아티펙트라도 하나 걸린다면 횡재를 하는 셈이다.
거기에다 그의 가장 강력한 스킬 중 하나를 상급 영혼체험 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는 것도 꽤 매력적이었다.
물론 아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급 영혼체험이 어떤 효과를 줄 수 있을지 그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중급 영혼체험을 경험했던 소울은 절대 자신이 실망하지 않을 만큼 놀라운 체험이 될 것을 확신했다.
“역시 타이로스는 말하는 게 싸가지가 있어. 보물도 주고 자신의 강력한 스킬도 준다니 말이야.”
소울은 타이로스의 화끈한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
소울넷 인터페이스를 통해서 정식으로 계약을 맺게 되면 먹튀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런 식의 제안과 계약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소울은 한 가지 사실에 주목했다.
‘보물을 준다고? 가만 보물이면 그게 뭐가 됐던지 물건이잖아. 내가 알기로는 영적인 능력이나 기운 같은 비 물질적인 것이 아닌 물질은 소울넷을 통해 보낼 수 없다고 알고 있는데?’
그랬다.
이건 좀 말이 이상했다.
소울은 혹시나 싶어 탄탈라스, 세이지, 칼라볼그, 로빈이 보낸 쪽지를 읽어보았다.
쪽지에는 그들의 제안이 각각 들어있었는데 하나같이 탄탈라스와 비슷한 형식의 제안을 하고 있었다.
세이지는 아트란의 위자드 마스터답게 상급 아티펙트 하나와 마법서 하나를 내놓겠다고 했고, 페르거스 왕국의 카오스나이트 칼라볼그는 검 한 자루와 자신의 비전검법인 글람을 제안했다.
문라이트 왕국의 보우마스터 로빈은 엘프족의 명장이 선물한 ‘실리엔’이란 이름의 활과 사일런트 신궁을 상급 영혼체험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여기까지 그들의 제안을 확인한 소울은 보고를 하고 난 이후에 확실히 물건을 전달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을 확신했다.
아무도 그에게 얘기해주지 않았지만, 동시에 여러 사람이 똑같이 물건을 주겠다고 했다는 것은 충분히 자신이 있는 곳으로 물건을 보내줄 수 있는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말이다.
‘처음에는 안 되는 것으로 알았는데 이제 보니 물건도 보내줄 수 있나보구나. 그런데 어떻게 보내준다는 걸까? 이건 절대 개개인이 나한테 따로 보내줄 수 있는 범위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보고와 뭔가 관련이 있다는 것인데……. 내가 혹시 보고를 하면 등급이 올라가기라도 하나? 그렇다면 말이 된다. 지금은 비록 하급 유저이지만 중급 유저의 특권으로 물건을 보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위자드 마스터인 세이지 정도면 충분히 중급 유저는 될 거야. 아니 내가 모르는 중급 유저들도 꽤 되겠지. 그럼 왜 저들은 처음부터 나한테 물건을 보내서 유혹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할수록 소울넷의 시스템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소울넷 유저들이 자신에게 뭔가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소울은 일단 라펠에게 물어보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아 자신의 의문을 담은 쪽지를 보냈다. 다행히 라펠의 답장은 금방 왔다.
아마도 자신에게 쪽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친애하는 이소울 마스터, 질문에 대한 답을 바로 해줄 수 없어 무척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 의지가 아니라 소울넷이 정해놓은 규칙 때문임을 밝힙니다. 제 생각에는 이번에 코어에 대한 보고가 성공하게 되면 모든 의문이 저절로 풀리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니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밝히고 싶지만 할 수 없어 답답해하는 제 심정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무사히 코어를 확인하고 보고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벗, 라펠.’
라펠이 보낸 정중한 문구를 읽어보자 더 이상 이 문제에 파고 들 생각이 사라졌다. 모든 의문은 일단 코어를 확인하고 보고를 하게 되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 분명해보였기 때문이다.
“크흠, 이번에는 라펠, 울피리나, 옥사나가 보낸 제안서를 읽어볼까?”
소울은 기대가 가득한 표정으로 라펠, 울피리나, 옥사나가 보낸 제안서도 확인했다.
그동안 자신을 여러모로 도왔던 셋도 모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귀한 보물을 선물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 라펠, 울피리나, 옥사나는 양심이 있었다.
‘하하하, 좋아. 잘됐어. 이렇게 되면 내가 영혼체험을 했던 여덟 명 모두를 보조 보고자로 이름을 올려주는 셈이네. 나머지 두 명은 제일 좋은 제안을 한 사람으로 뽑도록 하자. 보고 순서는 내게 가장 도움이 많이 되거나 가장 좋은 것을 준 사람 순서대로 하면 되겠지.’
소울은 남은 쪽지 수백 개를 신중하게 검토해서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제안 두 개를 뽑아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타이로스, 탄탈라스, 세이지, 칼라볼그, 로빈, 라펠, 울피리나, 옥사나 여덟 명에게도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곧 순차적으로 하나씩 그들에게서 소울넷 인터페이스에서 제공하는 형식의 계약서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소울은 계약서를 하나씩 잘 읽어보고 서명을 했다.
특히 자신이 느끼기에 가장 좋은 제안을 한 순서대로 보조 보고자의 이름을 올리겠다는 문구와 코어를 얻기 전까지 얼마든지 추가로 제안을 첨부할 수 있다는 조항을 잘 확인했다.
10개의 계약서에 서명을 마치자 소울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소울은 의욕이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소울넷에 접속할 수 있는 능력을 준 신에게 감사했다.
“이제 코어만 확인하면 된다.”
소울넷을 떠나기 전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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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 몸이 조금 괜찮아져서 다시 한 편을 올려봅니다. 여러분 감기조심하세요.(쿨럭!)
** 쾌유를 빌어주신 여러분께 이자리를 빌어 감사 인사 드립니다.(꾸벅!)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즐거운 하루 되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