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267화 (267/492)
  • 00267  제 67 장 - 타초경사(打草驚蛇)  =========================================================================

    사백이 넘는 웨어울프는 주변에 산재한 중대형 몬스터들의 전력에 비해 그렇게 많은 숫자가 아니지만 모두 열정적으로 힘을 합치자 계획한 일들을 하나씩 차례로 진행시켜 나갈 수는 있었다.

    레이칸 부족의 노인과 아이들은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질서정연하게 천막을 쳐 내려갔고, 중병기를 든 웨어울프들은 칸슬로의 지시에 따라 돌로 된 언덕의 바깥부분을 차례로 깨서 무너뜨렸다.

    전사가 아닌 웨어울프들은 수컷과 암컷을 가리지 않고 깨진 돌멩이를 가죽부대에 담아 위로 실어 날랐는데 삼면의 출입구를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에 일정하게 쌓기 시작하자 점점 그럴듯한, 돌로 된 성벽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혹시 모를 몬스터들의 기습을 방어하는데 투입된 전사들도 일부 경계병을 세워놓고 모두 작업에 스스로 동참하여 솔선수범(率先垂範)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다.

    소울은 본과 스켈레톤 부대를 동원하여 언덕 아래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들을 쉬지 않고 모아 위로 실어 나르게 했다.

    푸티나도 소울의 의지에 따라 커다란 바위를 뽑거나 굴려 돌로 된 성벽의 기초를 쌓는 것을 도왔다.

    “칸슬로 님, 대단하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정말 가능할까 의심을 했었는데 막상 전 부족이 힘을 모아 돌로 성벽을 쌓으니 대역사가 이뤄지네요.”

    “이 모든 게 불리의 머릿속에서 나온 겁니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소환사가 되더니 제대로 각성한 모양입니다.”

    레이칸 족장은 다시 한 번 크게 놀랐다.

    자신이 아는 불리는 절대 이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칸슬로가 자신의 뒤를 이을 주술사로 불리를 선택한 것이 괜히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이번일로 명백해졌다.

    “저기 엘리트 전사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날도 지고 있습니다.”

    레이칸의 말 뒤에 칸슬로가 무거운 어조로 조용히 한 마디를 첨언했다.

    둘의 시선이 동시에 서쪽 하늘로 향했다.

    밝게 빛나던 태양은 어느새 기울어져 가고 하늘에는 붉은 노을만이 타오르고 있었다.

    “석벽을 쌓는 작업을 이제 마무리 하라.”

    “통로를 보강하라.”

    “바리게이트를 설치하라.”

    “함정을 만들어라.”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제는 레이칸 족장까지 나서서 팔을 걷어붙이고 힘을 쏟았다. 그의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웨어울프들은 마치 버프라도 받은 것처럼 펄펄 날아다녔다.

    소울은 본과 스켈레톤 부대 그리고 푸티나를 총동원해서 언덕 아래의 입구에서부터 석벽이 이어지는 위쪽 통로까지 깨끗이 쓸고, 닦고, 갈아서 매끈하게 만들었다.

    급하게 작업을 하느라 반짝반짝 광을 내지는 못했지만 거의 얼굴이 희미하게 비칠 정도로 작업을 시켰으니 짧은 시간에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알 수 있었다.

    마무리 작업이 끝나자 소울은 까망의 아공간에서 콩기름통과 석유통을 꺼내 동문, 남문, 서문으로 각각 나눠 보냈다.

    칸슬로에게 콩기름과 석유통의 쓰임새를 얘기하자, 그는 손뼉을 치며 즉시 부족들이 가지고 있는 기름을 모아 오게 했다.

    잠시 후, 소울이 꺼낸 양보다 훨씬 많은 기름이 모이자 칸슬로는 모두에게 어떤 식으로 중대형 몬스터의 침입을 방어할지 소울 대신 설명해줬다.

    칸슬로가 하는 행동을 옆에서 지켜보던 소울은 자리를 옮겨 엘리트 전사들과 같이 그들이 모아온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을지 작전을 세웠다.

    그렇게 정신없이 바쁘게 시간을 보내는 사이, 알라야 분지에 어둠이 장막처럼 드리워졌다.

    오늘따라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껴서 달빛 한 점 보이지 않았다.

    밤이 되자 성질 급한 놈들이 벌써 시작을 했는지 알라야 분지 여기저기에서 몬스터들의 비명소리와 함성소리가 섞여서 들려오고 있었다.

    “마스터, 이것 좀 드시고 하세요.”

    “뭐야?”

    “사슴고기로 만든 스프와 찐 감자입니다.”

    “고마워.”

    아침부터 지금까지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보니 밥 먹는 것조차 깜빡 잊어버렸었나보다.

    고소한 스프 냄새와 찐 감자를 보자 그동안 뱃속에서 꾹 참고 있었던 식충이들이 때는 이때다 하고 난리를 피웠다.

    꼬르륵 꼬르르륵…….

    자신의 배는 너무나도 정직한 놈이란 것을 소울은 이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부끄럼도 없이 꼬르륵 대는 배를 달래기 위해 소울은 스프와 찐 감자를 맛있게 먹었다.

    생각해보니 모든 일의 시작은 잘 먹고 잘 살려고 한 짓이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니 도대체 지금 자신이 어쩌다 이런 짓을 서슴없이 벌이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은 보통사람인데, 크게 뛰어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닌데, 그저 그럴듯한 직장에 다니면서 여우같은 마누라에 토끼 같은 자식을 키우고 싶은 소시민에 불과한데 어쩌다 이런 큰 전투에 휘말리게 된 걸까?

    가만히 보면 은근히 오지랖이 넓은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아니야. 이건 오지랖이 넓은 게 아니라 지금 내게 다가온 기회를 잡기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야.’

    소울은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스터, 뭔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모두 전투준비를 하라고 해라.”

    소울은 남은 스프를 후루룩 마셔 버린 후, 나무 그릇을 옆에다 내려놓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레이칸 부족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제일 늦장을 부린 것은 소울이 되는 셈이었다.

    “불리, 아니 마스터! 서쪽에서 적이 다가오고 있다.”

    “트롤이군요.”

    칸슬로는 간절한 눈빛으로 소울을 쳐다봤다.

    칸슬로는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오직 승리하는 것만을 바라지 않았다.

    레이칸 부족이 오랫동안 살아남아 번영하기를 바랄뿐이었다.

    다 늙어 빠진 웨어울프 한 마리가 바라보는 눈빛이 왜 그렇게 무거운지 소울은 갑자기 어깨에 10톤짜리 바위를 얹어 놓은 것처럼 무거워졌다.

    틀림없이 책임감이라는 싸가지 없는 놈일 것이다.

    “적의 돌진은 나와 내 소환수들이 막을 것입니다. 레이칸 족장님과 칸슬로 님은 신호를 기다렸다가 총공격을 해서 마무리를 지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다.”

    “그러지.”

    소울의 이 한마디에 레이칸 부족의 전투에 대한 주도권은 소울이 가져갔다.

    사백여 쌍의 눈동자가 일제히 소울을 바라봤다.

    책임감이란 놈이 따따블로 자신을 짓누르는 기분이 됐다.

    하지만 그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서문을 향해 당당히 걸어갔다.

    [본, 적을 최대한 가까이 끌어들인다. 저격 후에 화공을 퍼부어라. 마무리는 레이칸 부족에게 맡긴다.]

    [예스, 마이로드.]

    [푸티나, 서문을 막아라. 너의 임무는 단 한 놈의 트롤도 네가 선 그 자리를 통과시키지 않는 것이다.]

    [꾸잉!]

    [까망이는 대물저격총 하나와 트롤을 잡을 수 있는 생체실드 중화탄을 비스크에게 주도록 해. 그리고 서문으로 다가오는 놈들을 알아서 기습하도록 해라.]

    [규!]

    본과 푸티나 그리고 까망이에게 차례대로 명령을 내린 소울은 수제 명품 대물저격총을 손에 들고 서문 왼쪽 석벽 꼭대기 위로 올라가 비스크를 쳐다봤다.

    비스크에게 눈짓을 하자 비스크는 찰떡 같이 그의 뜻을 알아먹고는 서문의 오른쪽 석벽 꼭대기로 올라갔다.

    까망이가 기다리고 있다가 비스크가 올라오자 비스크에게 대물저격총과 생체실드 중화탄이 들어있는 있는 탄창을 넘겼다.

    캬아아오오오!

    쿠워어어어어!

    어제 당한 트롤 부족이 복수를 하러 오는지, 아니면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트롤들이 웨어울프 족을 우습게보고 쳐들어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트롤끼리 전혀 정보교환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울은 수제 명품 대물저격총에 야간조준경을 부착하면서 거침없이 다가오는 수십 마리의 트롤들을 쳐다봤다.

    들판이나 공터 같은 곳에서 만나 싸웠으면 아마 레이칸 족은 전멸을 면치 못했을 정도의 무시무시한 전력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이곳은 언덕이다. 돌로 쌓은 석벽으로 둘러싸인 요새 같은 곳이다.

    소울과 비스크가 대물저격총에 생체실드 중화탄이 담긴 탄창을 결합하고 전투준비를 끝내자 본과 스켈레톤 부대도 푸티나와 함께 서문 앞에 서서 트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스켈레톤 부대는 커다란 방패를 꺼내 빈틈없이 맞대어 땅에 박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특수합금으로 된 단단한 방패의 벽이 서문 앞에 만들어졌다.

    본이 대물저격총을 꺼내자 곧이어 스켈레톤 부대도 모두 대물저격총과 저격소총을 꺼내들었다.

    마법소음기를 부착한 대물저격총과 저격소총이 돌진해오는 트롤들을 향해 세워지자 소울은 본에게 즉각 공격명령을 내렸다.

    [본, 지금이다.]

    [예스, 마이로드!]

    퉁 퉁 퉁 퉁 퉁…….

    투투투 투투투…….

    캬아악 쿠웨엑 케에엑 쿠웍…….

    어두운 밤에 돌로 된 언덕에서 무수한 불빛이 번개처럼 번쩍거리자 서문을 향해 돌진해 오던 트롤들이 온몸을 뒤틀면서 하나씩 쓰러져갔다.

    이 놀라운 광경을 지켜본 웨어울프들은 하나 같이 턱을 저절로 땅을 향해 떨어뜨리면서 입을 딱 벌렸다.

    어떻게 쇠막대기에서 번개를 소환해 적에게 쏘아대는지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과연 일개 소환사가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제일 전면에서 달려들던 트롤들이 다 쓰러지고 두 번째 줄에 있던 트롤까지 썰려 나가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어쭈, 저놈 봐라.’

    거의 일방적으로 도살을 하는 분위기로 가려던 전황이 세 번째 줄에서 달려오던 놈들이 하는 기괴한 행동에 딱 막히고 말았다.

    트롤들은 죽은 동료의 시체를 방패삼아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지독한 놈들이라고 욕을 해줘야 마땅하지만 어떻게 보면 굉장히 현명한 전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소울은 비스크에게 바로 신호를 보냈다.

    비스크는 소울의 신호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물저격총을 등에 돌려 매고는 아래로 뛰어내렸다.

    휘익! 척!

    비스크는 대뜸 한쪽에 쌓여 있는 콩기름통을 들어 서문 앞에 잘 다듬어 놓은 통로에다 사정없이 콸콸 부어버렸다. 비스크가 하는 짓을 지켜보던 웨어울프 몇이 비스크를 도와 같이 작업을 했다.

    콩기름은 돌바닥을 타고 아래로 빠르게 쏟아져 내려갔다.

    “그리스! 그리스!”

    캬아악!

    쿠어어!

    우당탕 쿵탕!

    꽈당 데구루루…….

    서문을 향해 돌진해오던 트롤들은 어두운 밤이라 바닥을 흐르는 콩기름을 전혀 보지 못했다. 미끄러운 콩기름에다 소울이 그리스 마법까지 섞어 버리자 트롤들은 도저히 균형을 잡을 수 없어 차례로 넘어졌다.

    그리스 마법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진 트롤들이 콩기름에 미끄러져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 내려가자 뒤이어 따라오던 트롤들까지, 볼링공에 핀 쓰러지듯 쓰러지며 한꺼번에 언덕 아래로 쓸려 내려갔다.

    “비스크, 이제 석유를 부어라!”

    “예스, 마스터!”

    소울의 신호에 비스크와 웨어울프 도우미들이 석유통을 꺼내 바닥에 콸콸 쏟자 콩기름에 매끄러워진 돌바닥을 타고 무서운 속도로 석유가 흘러내려갔다.

    [본! 화공을 펼쳐라.]

    [예스, 마이로드.]

    본은 소울의 명령을 받자 즉시 스켈레톤 메이지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스켈레톤 메이지가 각각 손바닥 위에 커다란 불덩어리를 하나씩 소환해내더니 언덕 아래로 굴러가고 있는 트롤들을 향해 냅다 던져 버렸다.

    화르륵 휘이이익!

    쾅 쾅!

    화아아아악!

    펑 펑!

    두 개의 파이어볼이 석유와 콩기름으로 범벅이 되어 서로 얽히고설켜있는 트롤들의 몸을 직격하자, 일순 주변이 환해질 만큼 밝은 빛이 쏟아져 나오더니 곧 천둥 같은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지금입니다. 총공격!”

    아우우우우우우…….

    소울의 총공격이란 말에 레이칸 족장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크게 하울링을 했다. 그러자 레이칸 부족의 엘리트 전사와 일반 전사 그리고 웨어울프들까지 모두 힘차게 자리를 박차고 트롤들을 향해 튀어 나갔다.

    우두두두두두…….

    우두두두두두…….

    삼백여 마리의 웨어울프들이 전속력으로 달려가자 마치 들판에서 수백 마리의 말들이 달려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캬아아악 쿠웨에에엑 케에에엑 쿠워어웍…….

    안 그래도 콩기름과 석유에 범벅이 된 몸에 파이어불을 맞아 온몸이 불타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 치고 있던 트롤들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웨어울프들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어 온몸을 발톱(클로)으로 난자해버리자 야간기습으로 별미를 맛보고자 욕심을 부렸던 트롤들은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 작품 후기 ============================

    * 목감기가 끝나니까 이제 코감기가 시작되네요.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즐거운 하루 되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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