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265화 (265/492)
  • 00265  제 67 장 - 타초경사(打草驚蛇)  =========================================================================

    천막을 조금 열어 살펴보니 본과 스켈레톤 부대의 기세에 눌려서 감히 안으로 들어올 생각을 못하는 웨어울프 전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소울과 비스크는 간단히 아침식사를 끝내고 레이칸 족장의 천막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족장의 천막 앞에는 야행성인 웨어울프들의 행동답지 않게, 아침 일찍부터 벌써 수백이나 모여 있었다.

    레이칸 족장과 칸슬로 주술사도 밖에 나와 카람코가 소집한 회합에 참석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울과 비스크는 웨어울프 전사들과 부족의 많은 웨어울프들의 인사를 받으며 그들의 앞으로 다가왔다.

    “불리, 어서 오게.”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덕분에 잘 잤다. 칸슬로 님과 어제 많은 대화를 나눴다는 소리를 들었다.”

    “칸슬로 님께서 많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레이칸은 자신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겸손하게 대답하는 소울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소환사가 되더니 정말 많이 성장했군.”

    “족장님, 이제 시간이 됐으니 빨리 발표하고 떠납시다.”

    “그러지요.”

    칸슬로가 옆에서 조언을 하자 레이칸은 정중한 태도로 칸슬로의 말을 따랐다.

    “모두 들어라!”

    레이칸이 큰 목소리로 소리치자 소란스럽던 장내가 일순 조용해졌다.

    수백의 웨어울프들이 모두 한곳을 바라보자 레이칸이 다시 목청을 높였다.

    “어제 우리는 부족이 전멸될 뻔한 위기에서 오히려 기습을 해온 트롤과 오우거들을 많이 잡아 죽이는 놀라운 승리를 거뒀다. 이 모든 것이 부족의 힘을 하나로 모아 사생결단의 자세로 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 승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누가 뭐라고 해도 불리와 그의 소환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를 따르기로 작심한 비스크의 활약도 대단했다. 그래서 오늘 나 레이칸은 부족의 족장의 권한으로 불리와 비스크를 부족의 전사로 인정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와아아아아아!

    레이칸의 제안은 수백의 웨어울프이 환호성으로 답을 대신했다.

    주변을 한번 오만한 표정으로 둘러본 레이칸은 한쪽 손을 들었다.

    그러자 장내가 떠나갈 듯 소리치던 웨어울프의 환호성이 순간 뚝 끊겼다.

    “모두 내 제의에 화답을 해줘 고맙다. 이로써 불리와 비스크는 이제 우리의 소중한 전사가 됐다. 또 한 가지 기쁜 소식을 전하겠다. 불리는 앞으로 칸슬로 님의 뒤를 이어 우리 부족의 주술사가 되기로 했다. 그러니 모두 예의를 갖추고 대하도록 하라.”

    “네!”

    레이칸의 말에 모두 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자 레이칸은 칸슬로를 쳐다보며 다시 한 번 크게 소리쳤다.

    “불리와 비스크의 공적에 대한 논공행상을 벌여야 마땅하나 현재 우리는 알라야 분지에 외유를 나온 상태라 당장은 곤란하다. 나중에 부족의 근거지로 돌아가서 하도록 할 것이니 조금 참아주기 바란다. 그러나 불리의 차기 주술사 임명은 지금 바로 거행하도록 하겠다.”

    레이칸의 말이 끝나자 칸슬로는 소울을 자신의 앞으로 부르더니 한쪽 무릎을 꿇게 했다.

    “나 칸슬로는 레이칸 부족의 주술사로 차기 주술사에 소환마스터 불리를 임명한다. 나의 지위와 권한은 이 순간 모두 불리에게 넘겨진다. 앞으로 불리는 부족의 주술사이자 소환마스터로써 부족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 주기 바란다.”

    와아아아아아!

    다시 한 번 커다란 환호성이 울렸다.

    칸슬로는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투박한 녹색의 돌이 달린 목걸이를 풀어 소울의 목에 걸어줬다.

    목걸이를 목에 걸자마자 머리와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이 보통 목걸이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

    “감사합니다.”

    인간 사회와는 달리 이들의 임명식은 정말 짧고 간단해서 좋았다.

    또한 족장이나 부족의 일원이나 허례허식에 얽매이지 않고 수직적인 관계보다는 수평적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도 인상 깊었다.

    한참동안 축하인사를 받고 인사를 하던 그들은 시간이 되자 미련 없이 자리를 떠서 알라야 분지 안쪽을 향해 걸어갔다.

    제일 앞에 부족의 엘리트 전사들이 자리하고 그 뒤를 레이칸 족장과 칸슬로가 따라갔다.

    칸슬로의 뒤에 소울과 비스크가 서자 뒤쪽으로 부족의 엘리트 전사가 섰다.

    열 명도 안 되는 단출한 규모였지만 레이칸 부족에게는 하나하나 중요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조금 걸어가다 보니 자신들처럼 무리를 지어 가는 몬스터 무리들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무리들은 안으로 더 들어갈수록 점점 불어났다.

    알라야 분지 끝에 도착할 즈음, 수백에 달하던 무리는 어느새 수천으로 변해있었다.

    소울은 알라야 분지 끝으로 갈수록 자신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알라야 분지 끝에 도착하여 넓이와 높이가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동굴의 입구를 보자 그의 심장의 박동은 절정에 달했다.

    “여기서부터는 우리 셋만 들어간다.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네, 족장님.”

    레이칸 족장이 부족의 엘리트 전사들에게 말을 하고 몸을 돌렸다.

    소울도 비스크와 살짝 눈을 마주치고는 레이칸 족장과 칸슬로 주술사의 뒤를 따라갔다.

    막상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기대했던 검문검색 같은 것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다만 드래곤의 치아에서 돋아났다는 전설의 스파토이(용아병)들이 중무장을 하고 동굴 입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스켈레톤도 부대도 같은 뼈로 만든 것인데 용가리 통뼈는 확실히 품질에서 차이가 있는지 스파토이들의 반짝이는 뼈에서는 뭔가 알 수 없는 묵직한 힘 같은 것이 느껴졌다.

    들어오기 전과는 달리 거대한 괴물의 검은 아가리처럼 보이는 동굴 안으로 발을 디디자 두근거리던 심장은 오히려 잦아지고 머리는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그걸 느끼자 자신은 아무래도 실전에 강한 타입의 인간이 아닌가 생각됐다.

    동굴의 입구를 지나 조금 안으로 들어가자 곧 축구장만한 거대한 광장이 나타났다.

    소울은 들어가자마자 조심스럽게 시선을 옮겨 코어의 위치를 찾아봤다.

    칸슬로가 그런 소울의 마음을 알았는지 눈짓으로 광장 끝에 코어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어? 저게 뭐야?’

    하지만 소울의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리, 코어라고 그의 눈에 보인 것은 허공에 뜬 반경 3m에 일렁이는 물결뿐이었다.

    광장 천장에 밝게 빛나는 발광석 같은 것을 달아 조명을 대신했지만 이 광장을 단숨에 대낮처럼 환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로 인해 조금은 어두운 광장의 한쪽 끝에 있는 물결은 신경을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절대 찾아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허공에 떠서 흔들리는 물결이라. 혹시 저게 차원의 문이라는 건가? 공간이동이나 차원이동을 할 수 있는 문이라는 얘기인데……. 어찌됐든 저 안으로 들어가야 진짜 코어를 볼 수 있겠구나. 어쩐지 일이 너무 쉽게 돌아가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 만만치 않은 관문이 나오는군.’

    소울은 코어 앞을 지키고 있는 스파토이(용아병)를 보면서 속으로 전의를 불태웠다.

    각 몬스터 부족들의 대표들은 광장 한쪽에 마련된 고대 로마의 야외경기장 같이 생긴 곳으로 들어와 앉았다.

    소울은 레이칸과 칸슬로를 따라가서 그들의 옆에 앉았다.

    트롤, 오우거, 사이클롭스, 미노타우로스, 드레이크, 바실리스크…….

    사방에는 하나 같이 범상치 않아 보이는 중대형 몬스터들로 가득했다.

    생각해보니 자신은 지금 아무 생존대책도 없이 몬스터의 소굴로 들어와 있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몬스터의 아가리에 목을 들이 민 것과 같은 형국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절로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둥둥둥!

    어디선가 커다란 북소리가 들려왔다.

    “히물레야 산맥의 지배자이신 히마 님의 가디언, 카람코 님이 오셨습니다.”

    둥둥둥!

    마법적인 처리를 했는지 거대한 광장 곳곳에서 일정한 크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에서 하는 말처럼 들려오는 목소리 뒤에는 또다시 북소리가 세 번 울렸다.

    각 부족을 대표하는 몬스터들이 그 소리에 일제히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러자 동굴 안쪽에서 검은 로브를 입은 수십 명이 차가운 기운을 풀풀 풍기며 걸어 나왔다. 로브의 안쪽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직 녹색 광망 두개만 빛나는 것을 보니 이놈들도 하나같이 언데드인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뒤로 머리통이 족히 하나는 더 큰 검은 로브를 걸친 해골바가지가 등장했다.

    ‘거 새끼 인상 참 더럽네.’

    소울은 속으로 카람코를 욕하며 쳐다봤다.

    카람코는 오만한 자세로 좌중을 한번 둘러보더니 야외경기장의 가장 상석, 우리 식으로 말하면 VIP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카람코다. 2차 회합을 시작하겠다. 모두 자리에 앉아도 좋다.”

    카람코의 목소리는 도저히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거북하기 짝이 없는, 비위를 상하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신기한 것은 카람코가 말을 하자 자신을 비롯한 모든 몬스터 대표들이 그의 말을 알아듣고 자리에 앉고 있다는 것이다.

    살짝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니 언제부터인가 공중에 수박만한 녹색의 공들이 둥둥 떠 있었다.

    아무래도 언어를 통역해주고 번역해주는 기능을 해주는 마법구가 아닌가 싶었다.

    “모두 신천지를 개척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줄로 안다. 각 부족의 전사들을 내놓는 비율을 가지고 아직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대계를 이루는데 커다란 장벽이다. 오늘 회합을 통해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해결책이 나올 것으로 믿는다.”

    카람코는 그 말을 끝으로 관심이 없다는 듯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열을 올린 놈은 가장 숫자가 많은 오크 족장들이었다.

    이놈들의 얘기는 사전에 카람코와 조율을 했는지 하나같이 부족의 절반 이상도 내놓을 수가 있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트롤 족장들과 오우거 족장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자 일시에 흐름이 뒤바뀌었다.

    결국 미리 예상한 대로 25~33% 사이에서 열변이 토해지고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도 더 이상 얘기에 진전이 없자 카람코가 일어나 마무리를 졌다.

    “더 이상 얘기를 해봐야 답이 나오질 않겠구나. 나 카람코가 결정하겠다. 각 부족의 전사 3할로 하도록 하자.”

    “…….”

    다들 그 정도는 미리 예상을 했는지 카람코의 말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아무도 이의제기가 없으면 3할로 결정한다. 오늘 회합은 이것으로 족하다. 혹시 다른 의제가 있는가?”

    “있습니다.”

    카람코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레이칸 족장이 일어섰다.

    “말해봐라.”

    “저희들은 어젯밤 트롤과 오우거의 양면 기습공격에서 부족이 전멸을 당할 뻔 했습니다. 신천지를 개척할 대계를 앞두고 이렇게 매일 밤 위협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희 부족을 알라야 분지로 부르신 것이 카람코 님이니 안전을 보장해주십시오.”

    “으음, 그런 일이 있었군.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지금 저녁에만 분쟁을 허락한 것도 일부 부족들에게는 원성이 대단하다. 히물레야 산맥의 법은 약육강식(弱肉强食), 강자지존(强者至尊)이다. 능력이 없어서 먹히는 것은 대자연의 당연한 섭리인 것이다. 자신을 지킬 방법은 스스로 강구해라.”

    “그럼 저희가 야영지를 옮기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건 본인 스스로 알아서 결정해도 좋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해가 떨어진 밤에서 다음 날 해가 뜨기 전까지만 분쟁을 허락한다. 그 외의 시간에 일어나는 분쟁은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다음 회합이 있을 때까지 모두 알라야 분지에서 대기하라. 신천지로 쳐들어갈 최적의 시간이 결정되면 모두에게 알려주도록 하겠다. 이상 회합을 마친다.”

    둥둥둥!

    회합은 거의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다.

    카람코는 각 부족의 대표자를 대우해주긴 했지만 그것은 이들의 전사들을 이용해먹기 위해서 보여주는 일종의 쇼에 지나지 않았다.

    소울이 느끼기엔 카람코는 몬스터들이 전부 죽던 말든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회합 자체를 하는 것이 귀찮다는 눈치였다.

    ‘저놈이 하는 행동을 보면 이번 사태의 주인공이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만약 저놈이 아니라면 누가 저놈을 부추겨서 일을 꾸민 걸까?’

    자세한 내막을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소울은, 차례로 광장을 빠져 나가는 각 부족의 대표들의 꽁무니를 따라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당장 코어로 가는 문인 물결덩어리 근처로 다가갈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일단 오늘은 그냥 물러가고 기회를 봐서 최대한 빨리 다시 오기로 했다.

    그는 레이칸 부족의 야영지로 오기까지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무슨 핑계를 만들어야 이곳을 다시 올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려 봤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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