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264화 (264/492)
  • 00264  제 66 장 - 잠입(潛入)  =========================================================================

    그는 고개를 흔들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생각해보니 밸런스 붕괴를 걱정하는 것은 게임회사에서나 하는 짓이다.

    누가 지구에 차원의 균열을 열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그 존재는 밸런스 붕괴 따위나 걱정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마스터께서는 왜 갑자기 코어를 찾으십니까?”

    “그냥 가서 한번 보고 싶어서 그렇다. 하지만 드래곤의 레어에 있다면 가서 보는 것은 힘들겠군.”

    “뭐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그래, 어렵겠지. 응? 뭐라고?”

    소울은 방금 자신의 귀로 들은 말이 의심스러웠다.

    “코어가 보고 싶다면 저와 같이 가서 보시면 됩니다.”

    “코어라는 게 그렇게 아무나 보러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해있나?”

    “물론 그곳은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코어는 드래곤 레어가 시작되는 동굴 입구의 광장에 있습니다. 내일 각 부족의 대표들이 가디언 카람코를 만나러 갈 예정이니 저와 함께 수행원자격으로 가서 보시면 될 겁니다.”

    “그래?”

    소울의 얼굴이 급 화색을 띄웠다. 아까까지만 해도 죽을상을 했는데 칸슬로가 하는 소리를 들으니 마치 죽다 살아난 기분이 됐다.

    “참, 그런데 가디언 카람코는 누구지?”

    “카람코는 사악한 언데드 마법사로, 히물레야 산맥의 지배자 화이트 드래곤 히마가 거느리고 있는 일곱 가디언 중 하나입니다.”

    “언데드 마법사라면 혹시 리치를 말하는 건가?”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요.”

    “아!”

    히물레야 산맥의 지배자, 화이트 드래곤 히마

    가디언, 리치 카람코

    두 단어가 주는 무게가 이렇게 무거울 줄은 몰랐다.

    말에 힘이 실린다는 언령 마법도 아니고 그냥 드래곤과 리치라는 말을 듣는 순간 누군가 자신의 몸 위에 거대한 바위를 올려놓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든 것이다.

    “그런데 화이트 드래곤 히마는 관대한 거야? 아니면 배포가 큰 거야? 아무리 레어가 시작되는 동굴 입구 광장이라고 해도 엄연히 드래곤 레어인데 출입이 생각보다 까다롭지는 않네?”

    “저도 거기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드래곤 히마가 허락한 것이 아니라 카람코가 허락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확실한 정보는 아닙니다만 드래곤 히마가 동면에 들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드래곤이 동면에 들어갔다고?”

    드래곤은 수천 년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긴 세월을 사는 게 지루해서 그러는지 몰라도 몇 번에 걸쳐 동면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한번 동면에 들어가면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 동안 잠을 잔다고 한다.

    화이트 드래곤 히마가 동면에 들었다면, 현재 드래곤 레어는 무주공산이나 다름이 없다. 아니 일곱 가디언의 독무대나 다를 바 없었다.

    드래곤 히마의 가디언들이니 그의 의지에 벗어나는 행동은 하지 않겠지만 그가 설정해준 범위 안에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드래곤 히마가 동면에 들어갔다면 이건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봐야한다. 직접 보지는 못해서 드래곤의 정확한 능력을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이 이룬 최고의 경지인 9서클의 대마법사를 능가하는 마법의 조종(祖宗)이라고 했으니 그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다면 자신의 안방이나 다름없는 드래곤 레어 안에서 무슨 짓을 하던 금방 발각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동면에 들어갔다면, 그리고 카람코가 독단적으로 드래곤 레어 입구의 광장까지 출입을 허락했다면 코어에 접근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여러 가지 각도에서 생각해보니 칸슬로의 말이 전부 이해가됐다.

    카람코는 화이트 드래곤 히마의 이름을 앞세워 히물레야 산맥에 사는 모든 몬스터를 소환한 것 같았다.

    드래곤 히마가 동면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몬스터들 앞에 한번 현신을 하는 것으로 간단히 모든 몬스터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칸슬로가 들은 소문대로 드래곤이 정말 동면에 들어갔다면, 이건 카람코의 독단일 가능성이 높다.

    동면에 들어간 드래곤 히마가 몬스터들을 불러 모을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화이트 드래곤 히마의 의지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몬스터들은 절대 카람코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카람코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호가호위(狐假虎威), 즉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威勢)를 빌려 호기(豪氣)를 부리는 것처럼 드래곤 히마의 의지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을 써야한다.

    그 방법은 당연히 드래곤 레어로 몬스터들의 대표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비록 드래곤 레어가 시작되는 동굴 입구의 광장이라고는 하지만, 드래곤 레어 안까지 불러 들였는데 그걸 화이트 드래곤 히마의 의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몬스터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어찌됐든 지금 상황은 소울에게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보면 행운이 따발총처럼 그에서 쏟아지고 있는 지도 몰랐다.

    “드래곤 레어는 정확히 어디에 있지?”

    “알라야 분지 가장 안쪽에 거대한 동굴이 있습니다. 그 동굴을 따라 며칠을 걸어 올라가면 산 정상에 드래곤 레어가 나온다고 합니다.”

    “며칠 동안 걸어야 한다면 굉장히 깊고 긴 동굴이군?”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희들이 감히 드래곤 레어 안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턱을 쓰다듬었다.

    며칠 면도를 하지 않았더니 그새 까칠 거리는 털이 손가락에 잡혀왔다.

    “내일 회합에는 가게 되는 자의 명단이 있나?”

    “각 부족의 족장과 차기족장, 마법사나 주술사 그리고 다섯 내외의 수행원이 같이 가게 됩니다. 드래곤 레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족장과 마법사나 주술사가 전부입니다.”

    “그럼 나는 드래곤 레어 안으로 못 들어간다는 말이잖아?”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부족의 차기 주술사 자격으로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제가 이제 너무 나이가 많이 먹어서 오늘, 내일 하는 상황이라서 그 정도는 충분히 감안해줄 겁니다.”

    “으음.”

    아직 100% 가능하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드래곤 레어가 시작되는 동굴의 입구에 있는 광장이라고 했으니 어떻게 하던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십중팔구는 코어를 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동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면 가나 마나한 상황이었다.

    ‘아니다.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야. 일단 코어가 어디 있는지 정확한 위치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야. 그리고 기회를 봐서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게임 오버다.’

    그는 일단 칸슬로에게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다.

    “회합은 이번이 처음인 건가?”

    “아닙니다.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 회합에서 무슨 중요한 결정사항 같은 것 없었어?”

    “있었습니다. 히물레야 산맥에 살고 있는 모든 부족은 일정 비율의 전사를 내어 새로운 신천지를 개척하기로 했습니다.”

    “신천지라?”

    지구가 신천지라는 말이다.

    새로운 땅과 하늘에 자신들의 씨를 뿌려 번성시키겠다는 얘기이니 몬스터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모든 부족은 일정 비율의 전사를 내야한다는 그 대목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줘.”

    “네, 마스터! 첫 번째 회합에서 칸슬로는 모든 전사를 차출해달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각 부족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절반만 차출해달라고 말을 바꿨습니다.”

    “그럼 각 부족이 보유한 전사의 절반이 차출되는 건가?”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당장 저희 부족만 하더라도 전사의 절반이 빠져 나간다면 다른 몬스터들의 위협에 대처할 수 없게 됩니다. 오늘은 마스터가 계셔서 중대형 몬스터들의 기습에도 불구하고 부족의 안위를 지킬 수 있었지만 매번 운이 좋을 수만은 없는 법은 없지요.”

    “그럼 어느 정도나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몬스터들의 특성과 종류에 따라, 그리고 서로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충 3분의 1이나 4분의 1의 비율로 결정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25~33% 정도가 되겠군.”

    이 정도만 해도 지구로 연결된 각 몬스터 필드로 백만 단위가 넘는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 무리가 쏟아져 들어가게 된다.

    소형 몬스터들이야 재래식 무기로 어떻게 해볼 수 있겠지만 중대형 몬스터까지 끼게 되면 이들의 생체실드로 인해 재래식 무기가 얼마나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미지수다.

    거기에다 한두 마리가 들어가는 것이 아닌, 이름 그래도 중대형 몬스터 웨이브 이니 꽤나 많은 숫자가 한꺼번에 몰려 나가게 될 것이 틀림없다.

    각 나라가 어떤 식으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좀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결국 대형인명피해를 피할 수는 없게 됐다고 봐야했다.

    ‘지금 내가 그걸 걱정할 때가 아니지. 내가 무슨 슈퍼맨도 아닌데, 지구에 열린 많은 몬스터 필드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을 무슨 수로 막겠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에 미련을 두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

    소울은 그렇게 차갑게 머리를 식히며 어떻게 하면 코어에 잘 접근을 할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하고 칸슬로와 의논을 해봐도 결국 차기 주술사의 자격으로 회합에 참여하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럼 회합은 칸슬로의 의견대로 차기 주술사의 자격으로 참여 해야겠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게 제일 무난합니다.”

    “이 부족의 이름이 뭐지?”

    “족장의 이름을 따서 레이칸 부족입니다.”

    “그렇군. 내일 회합에서 우리는 부족의 야영지를 기습한 트롤과 오우거의 행동을 비난하고 만약 알라야 분지에서 안전을 확보 할 수 없다면 소형 몬스터들이 많이 있는 외각으로 야영지를 옮기겠다고 하자.”

    “네? 그렇게 되면 우리 스스로 약세인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다른 중대형 몬스터들의 대표들이 우리를 무시해서 더욱 큰 문제가 일어날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매일 밤마다 저놈들이 기습해오는 것을 방어만 해야 하는 건가?”

    “일단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항의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야영지를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칸슬로가 꽉 막힌 건지 아니면 몬스터들의 생태가 원래 그런 건지 모르지만 소울의 입장에서는 무척 답답한 소리였다.

    칸슬로가 아무리 자신을 부족의 구원자로 인정해도 자신이 나서서 부족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아직 스스로 나서서 말할 수 있는 발언권에도 한계가 있고 그를 지지하는 세력도 없는 이상 칸슬로의 말대로 하는 것이 일단은 정석이었다.

    소울은 일단 하루만 더 지켜보기로 했다.

    칸슬로와 소울이 한참동안 부족의 미래를 위해 의견을 교환하고 나오자 어느새 밖은 칠흑 같은 암흑 속에 빠져 들어 있었다.

    자신에게 배정된 막사로 돌아와 바로 잠을 청했지만 내일의 일이 걱정이 되는지 금세 잠에 빠지진 못했다.

    한참을 그렇게 뒤척이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아침이 되어 있었다.

    [본, 내가 얼마나 잤지?]

    [마이로드. 4시간 주무셨습니다.]

    다행히 본의 말대로 4시간을 잔 게 맞긴 맞는지 자리에서 일어나자 몸이 가뿐해져 있었다.

    [까망아, 세수와 양치를 부탁해.]

    [규!]

    만능재주꾼 까망이를 불러 세수와 양치를 시켰다.

    그러자 까망이는 허공에 푸른 물을 소환시키더니 그것으로 소울의 입안과 이빨을 청결하게 양치질 해주고 얼굴과 손발을 씻어주었다.

    가끔은 이렇게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까망이의 서비스를 받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까망이가 아공간에서 전투식량을 꺼내주자 소울은 뜨겁게 덥혀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본도 악어 입을 만들어 트롤과 오우거의 사체를 하나씩 꺼내더니 푸티나와 트로트에게 주었다.

    비스크가 욕심을 내자 오우거의 한쪽 팔을 넘겨주긴 했지만 트로트는 자신의 몸보다 몇 배, 아니 몇 십 배는 더 큰 오우거를 몽땅 먹어치울 기세였다.

    하지만 본이 꺼낸 트롤과 오우거의 사체를 대부분 해치운 것은 푸티나였다. 지금 푸티나는 트롤과 오우거를 씹어 먹는 대로 덩치를 키울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상태로 가면 지금까지 세상에서 가장 큰 곰으로 알려진, 2001년 미국 알레스카에서 잡힌 코디악 그래즐리곰(몸길이 3.8m, 체중 720kg)을 능가할 것 같았다.

    저벅 저벅 저벅…….

    식사가 거의 끝나갈 즈음,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웨어울프가 조심하면 이런 발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건 일부러 들으라고 내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불리, 레이칸 족장님과 칸슬로 주술사님이 부르신다.”

    “알겠어. 곧 간다고 전해줘!”

    소울 대신에 비스크가 대답을 했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건강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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