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60 제 65 장 - 히물레야 산맥 =========================================================================
사사삿 사사삿!
달빛 아래에 몇 개의 그림자가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소울과 그의 소환수들 그리고 비스크의 모습이 보였다.
빠르게 움직이는 소울과 비스크의 뒤를 푸티나와 본은 조금도 뒤쳐지지 않고 잘 따라왔다.
“마스터, 드디어 히물레야 산맥의 알라야 분지에 도착했습니다.”
“으음, 그동안은 네 동족을 피해 다녀야했는데 이제는 거꾸로 네 동족을 찾아가야 하는 신세가 됐군.”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다 알아서 잘 해결하겠습니다.”
“휴우!”
소울은 차마 비스크에게 ‘사실 네가 제일 걱정이 된다.’라는 소리는 하지 못했다.
비스크는 중간 중간에 코를 킁킁대면서 몬스터들이 설정해놓은 영역사이를 교묘히 비집고 다니며 동족들이 있는 곳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그동안 그린 오크 무리의 뒤를 따라와 큰 어려움 없이 히물레야 산맥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이 넓은 알라야 분지 안에 엄청난 숫자의 다양한 몬스터들이 꽉 차 있는 모습을 보자 그는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이놈들이 왜 여기서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지 의문이 별빛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이미 기호지세였다.
그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판단하고 이 넓은 알라야 분지에서 그나마 가장 안전하다고 볼 수 있는 비스크의 동족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몬스터 천국으로 변해버린 알라야 분지에서 소울 일행만 따로 떨어져 있다면 아마 매일 밤마다 몬스터들의 습격에 골머리를 앓아야 할 것이다.
한두 번 정도는 잘 막을 수도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습격을 당한다면 결국 마지막에는 몬스터의 똥으로 나오게 될 확률이 무지하게 높았다.
‘빌어먹을, 누가 이렇게 넓은 분지에 몬스터가 가득모여 있을 줄 알았나?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당장 내일이라도 비스크를 이용해서 차원의 균열의 중심부가 어딘지 알아보자. 코어만 확인하고 잽싸게 도망치는 거야. 지금은 그게 최선이다.’
소울은 잔뜩 긴장한 채로 비스크의 꽁무니를 따라 열심히 발을 놀렸다.
“마스터,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소울은 비스크의 말에 전면을 쳐다봤다.
그때 그의 코로 피비린내가 확 풍겨왔다.
“어? 뭔가 이상합니다.”
“피 냄새다.”
“허억, 이건 트롤과 오우거의 냄새입니다. 아무래도 부족이 습격을 받고 있나 봅니다.”
“그럼 어서 가보자.”
“네, 마스터.”
소울은 비스크를 재촉해 서둘러 현장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속으론 잘 됐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정신없을 때에 슬며시 무리에 끼어들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도도도도도…….
사사삿 사사삿…….
소울과 비스크가 웨어울프의 야영지에 도착하자 상황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캬아아아!
크와아아아앙!
왼쪽에는 수십 마리의 트롤 떼가 오른쪽에서는 십여 마리의 오우거 무리가 나타나 양쪽에서 웨어울프들을 정신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별미를 맛보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몰살을 작정하고 나선 것으로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씨발, 좆 됐다. 이렇게 되면 당장 도망가든가, 아니면 어떻게든 웨어울프와 힘을 합쳐 트롤과 오우거를 물리쳐야 한다는 얘긴데…….’
소울은 피 냄새가 나기에 몇 마리의 트롤과 오우거가 쳐들어와서 웨어울프 몇 마리를 잡아가는 정도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막상 와서 보니 이건 아예 웨어울프 부족 하나를 통째로 씹어 먹으려는 트롤과 오우거들의 암묵적인 음모였다.
[본, 연막을 깔아!]
[예스, 마이로드!]
본이 즉시 주변에 서늘하고 하얀 연기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달빛에 빛나는 연기는 반경 25m을 순식간에 덮어 버렸다.
[푸티나는 따로 떨어진 트롤을 유인해와!]
[꾸잉!]
푸티나가 트로트를 땅에 내려놓더니 곧바로 연기 사이로 달려갔다.
“비스크는 트로트를 들고 내 뒤를 지켜!”
“네, 마스터.”
소울은 점점 짙어지는 연기, 아니 연막 속을 초롱초롱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우연하게 발견한 것이지만 사실 소울은 자신의 소환수인 본이 펼친 연막을 쉽게 뚫어볼 수 있었다.
연막 자체가 소환수인 본이 펼친 것이기에 소환사인 소울은 연막 안을 보는 것이 허락되었던 것이다.
단순히 연막을 치는 것만으로도 웨어울프들은 조금 전처럼 트롤과 오우거에 의해 무참히 잡혀죽진 않았다.
눈이 보이지 않은 연막 안에서는 아무래도 감각이 예민하고 동작이 빠른 웨어울프가 크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실드, 실드, 실드……. 문신강체술!”
소울은 일단 실드로 온몸에 도배를 하고 문신강체술을 펼쳤다.
그의 몸에 새겨진 문신에서 강한 힘이 휘몰아쳐 나와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주먹을 두어 번 쥐어보며 문신강체술이 펼쳐진 것을 확인한 소울은 수제 명품 대물저격총을 까망이에게 꺼내 달라고 하려다 이내 고개를 젓고는 자오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자오검에 뿌려댔다.
“그리스!”
휘익 쿵!
푸티나를 쫓아오던 트롤 한 마리가 소울이 펼친 그리스 마법에 의해 바닥의 마찰력 계수가 0로 변하자 그 즉시 중심을 잃고 벌러덩 자빠져 등부터 땅에 떨어졌다.
달려온 속도와 자신의 체중이 합쳐져 등부터 땅에 떨어지자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순간 입을 딱 벌렸다.
[까망아, 지금이다.]
[규!]
까망이는 소울의 명령에 즉시 트롤의 얼굴로 날아가 최루액을 분사했다.
쿠웨에엑 퀙 퀙 퀙…….
최루액이 트롤의 콧구멍 속으로 들어가자 트롤은 순간 그 지독한 매운 맛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켁켁 댔다.
세계에서 지독하기로 손가락에 꼽히는 국내산 최루탄은 일부 국가에서 사람에게 쓸 물건이 아니라고 수입 불가 조치까지 내렸을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그런 최루탄을 액체 분사 방식으로 만든 최루액은 최루탄보다 몇 배는 더 독하다는 것을 사실 소울도 모르고 있었다.
기회를 잡은 그는 쉐도우 스텝을 써서 번개같이 트롤에게 달려갔다. 자오검을 높이 치켜들고 글람 검법을 펼친 그는 멋지게 트롤의 아킬레스건을 잘랐다.
비스크는 소울이 왜 저렇게 온갖 똥 폼을 다잡으면서 달려가서 겨우 트롤의 아킬레스건을 자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기왕이면 목을 자르던지 아니며 애초에 저렇게 온갖 똥 폼을 잡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건 비스크가 모르는 소리였다.
D급 소환계 능력자인 소울이 자오검을 잡는다고 바로 D급 강화계 능력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겨우 F급 강화계 능력 뿐이었다. 거기에다 문신강체술을 추가해야 겨우 F급을 넘기는 능력이 나올 뿐이었다.
그러니 같은 D급이라고 해도 중대형 몬스터에 들어가는 트롤의 목을 소울이 자오검으로 단번에 자른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것보다는 자오검에 독을 바르고 이렇게 아킬레스건을 잘라놓는 것이 트롤의 기동력을 빼앗아 유리한 전투를 할 수 있어 더 좋다.
사악!
다행히 트롤이 정신을 못 차리는 틈에 아킬레스건을 자르는데 성공했다.
푸티나의 전격공격에 이은 대물저격총 한방으로 트롤의 머리통을 날려버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다른 트롤이나 오우거의 주의를 끌면 다굴을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본, 나처럼 대검에 독을 바르고 아킬레스건을 잘라라.]
[예스, 마이로드!]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원래는 정정당당한 결투를 선호했던 본도 사악한 주인의 심성을 조금씩 닮아 가는지 지금은 이런 비겁한 명령을 잘도 따르고 있었다.
소울에게 받은 독을 자신의 대검의 날에 골고루 묻힌 본은 소울이 이미 한쪽 다리의 아킬레스건을 잘라놓은 트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사정없이 나머지 한쪽 다리에 대검을 내리찍었다.
퍽!
꾸웨에에엑!
아킬레스건을 자르라고 했더니 본은 아예 트롤의 발목 반 이상을 잘라놓고 있었다.
그로인해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에 빠진 트롤이 죽는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모두 이리로!”
소울은 즉시 비명을 지르는 트롤에게 벗어나 연막 사이로 파고들었다.
괜히 그 자리에 있어봤자 구하러 달려오는 트롤에게 다굴이나 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앞으로 트롤 한 마리가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자 소울은 지체 없이 그리스 마법을 펼쳤다.
“그리스, 그리스, 그리스!”
하지만 그리스 마법에 걸리고도 이번 트롤은 쉽게 자빠지지 않았다.
결국 세 번이나 그리스 마법을 펼친 끝에 간신히 넘어뜨릴 수 있었다.
까망이는 이제 말이 없어도 곧바로 최루액을 트롤의 콧속으로 뿌려 넣었다.
쿠웨에엑 퀙 퀙 퀙…….
최루액이 콧속으로 뿌려지는 고통은 당해보지 않은 트롤은 말을 하지 말아야 했다.
이건 재생능력이고 지랄이고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제일 좋은 것은 물로 씻어내는 것이고 그 다음은 애초에 그런 공격을 당하지 말아야 했다. 일단 최루액이 콧속으로 들어가면 어떤 트롤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사악!
철썩!
꾸웨에에엑!
소울과 본이 각각 발목 한쪽씩을 맡아 검과 대검을 펼치자 넘어진 트롤은 천지가 떠나가라 비명을 질러댔다.
그 사이 본은 더욱 더 많은 연막을 주변으로 마구 뿌려내고 있어 이제 사방 50m 이내에는 한 치 앞도 눈으로 볼 수 있는 자가 없었다.
아니 소울과 그의 소환수들만은 연막에 상관없이 훤하게 보면서 트롤 떼를 공격하고 있었다.
처음에 당한 기습에서 큰 피해를 입었던 웨어울프족은 이제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조직적으로 트롤과 오우거 무리에게 대항하기 시작했다.
트롤과 오우거의 냄새를 맡아 위치를 파악하고 치고 빠지는 작전을 펼치며 트롤과 오우거에게 지속적인 상처를 주는 공격은 단연 웨어울프의 장기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사냥법이다.
“거기 누구냐?”
“불리 형님과 비스크입니다.”
“불리와 비스크라고?”
“네, 불리 형님이 소환사로 각성하셨습니다. 지금 소환수를 이용해 적의 발목을 잘라 기동력을 빼앗고 있습니다.”
“오오오! 우리 부족에 소환사가 나타나다니……. 그래. 잘 됐다. 계속 그렇게 분발해주길 바란다.”
“예, 족장님.”
비스크가 연막 속에서 들려오는 족장의 목소리에 대답을 하자 소울은 비스크를 쳐다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비스크, 불리의 가족과 그를 알아볼만한 놈들을 이번 기회에 모두 제거하자.”
“네, 마스터.”
소울의 사악하고 잔인한 명령에 비스크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어차피 불리와 그의 가족 그리고 그들의 주변 친구들은 비스크에게 원수나 마찬가지다.
안 그래도 언제 복수하나 했는데 이렇게 빨리 복수의 시간이 다가오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비스트는 소울의 명령을 크게 반기며 솔선수범해서 빚잔치를 준비했다.
[푸티나, 비스크에게 트로트를 받아라. 그리고 기회가 생기면 기습을 하도록 해.]
[꾸잉!]
비스크가 트로트를 넘기고 연막 속으로 사라지자 푸티나는 트로트를 자신의 목 뒷덜미에 올려놓았다. 트로트는 트롤과 오우거들의 광폭한 살기, 피와 살육의 현장을 온몸으로 느끼자 푸티나의 목을 꼭 잡고 오돌오돌 떨어댔다.
푸티나는 그런 트로트의 사정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살금살금 따로 떨어져 있는 트롤 한 마리의 뒤로 다가갔다.
이미 푸티나는 거대한 불곰의 모습으로 변한 상태여서 트롤의 옆에 몸을 일으켜 세우면 대충 비슷해보였다.
촤악!
꾸웨에에엑!
푸티나가 트롤의 뒤에서 날카로운 앞발톱으로 목덜미를 긁어버리자 트롤의 목이 무려 반 이상 잘려 나가며 피가 폭포수처럼 흘러 나왔다.
놀란 트롤은 즉시 자신의 목을 잡으며 몸을 땅바닥에 굴려 예상되는 다음 공격을 피하곤 종족의 고유특성인 재생력을 극대화시켰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의 상처는 조금도 재생되지 않았다.
푸티나의 클로가 트롤의 목에 닿는 순간, 짜릿한 전력이 흐름과 동시에 트롤의 살을 새까맣게 태워버렸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푸티나의 클로는 강력한 일렉트릭 파워를 머금고 있어서 몬스터의 생체실드 방어자체가 무효다.
그러니 아무리 재생력을 발휘해봐야 숯덩이가 된 살이 재생이 될 리가 없었다.
정면대결이라면 모르지만 기습을 당하게 되면 속수무책이 되는 것이 푸티나의 무서운 클로 공격이다.
크와아아아앙!
오우거 한 마리가 소울의 냄새를 맡고는 빠른 속도로 연막을 가르며 달려왔다.
“그리스!”
휘익 콰당! 우당탕 쿵쾅!
멋지게 달려오던 오우거는 그리스 마법에 의해 중심을 잃고 쓰러지더니 땅바닥을 정신없이 굴러왔다.
휘익 휙!
팍팍!
쿠히이이잉!
뭔가가 날아가 오우거의 몸에 맞고 깨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돌연 오우거가 죽는다며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아, 미안! 고의는 아니었어.”
순간 소울은 같은 수컷으로써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했다.
염산과 황산이 담긴 암기를 오우거에게 던졌는데 이게 마침 재수 없게도 오우거의 생식기에 맞아 깨지면서 주변의 살을 몽땅 태워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두 다리를 안쪽으로 바짝 오므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대로 가만히 계속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지만 마치 자신이 당한 느낌으로 인해 쉽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본은 이것이 기회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고 오우거의 생식기를 향해 거침없이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싹둥!
쿠히이이잉!
또다시 오우거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오우거는 두 손으로 자신의 사타구니 사이를 잡으며 인상을 쓰더니 결국 앞으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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