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55 제 64 장 - 전조(前兆) =========================================================================
사실 오늘 이렇게 방송국 리포터와 기자들을 왕창 끌어 모은 것은 소울의 생각이었다.
홍보부장 황금보를 시켜 멋진 작품을 만들어 보라고 하자 황금보가 의욕적으로 온 방송국과 언론사를 쑤셔댔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네 길드의 길드마스터와 길드원들은 하나 같이 안색을 굳히고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들 지금 움직이셔야 합니다.”
“아! 그렇지요.”
“모두 같이 갑시다.”
“우리도 시작하죠.”
…….
소울의 권유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7대 중대형 길드 중 4개 길드의 마스터들은 급히 소울의 뒤를 따라가면서 길드원들에게 각각 출동명령을 내렸다.
그들의 뒤로 거대한 건설용 중장비와 덤프트럭들이 끝도 없이 개성필드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개성필드 주위에 대 몬스터 장벽을 이중으로 세우는 일은 최첨단 건설공법을 이용한 전격전이나 다름없었다.
적당히 땅을 파고 쇠기둥을 박고, 사방을 강철 패널을 조립하여 막은 뒤 특별히 제작된 액체 콘크리트를 안으로 뿌려 넣으면 된다.
액체 콘크리트는 분사되는 순간 특수한 용액과 섞이게 되어 원래의 콘크리트가 굳는 속도의 수십 배의 빠르기로 단단하게 굳어갔다.
민족의 특성인 ‘빨리빨리’ 문화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비록 건설단가가 좀 오르기는 했지만 시급을 다투는 대 몬스터 장벽을 세우는 이 대역사는 그 어떤 나라도 대한민국의 건설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소울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놀라운 시공능력과 빠른 일처리에 그저 감탄을 할뿐이었다.
그의 뒤에서 화랑 길드의 김우신과 서울 길드의 명박인이 이상하다는 듯 자꾸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 마스터, 이거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네요. 도대체 그 많던 몬스터들은 다 어디로 갔죠?”
“정말 이상하네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몬스터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김우신과 명박인의 말에 그들의 옆에 서 있던 월야 길드의 구문달과 천마 길드의 마장동이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명 마스터, 저기를 보세요. 지금 서머너즈 길드의 파티가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걸 보면 몬스터가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김우신과 명박인은 구문달과 마장동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고 소울의 뒤통수를 쳐다봤다.
분명 그는 뭔가 알고 있을 것이다.
명박인은 대놓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괜히 면박을 당할까 두려워 꾹 참았다.
갑자기 튀어나온 서머너즈 길드의 마스터라는 새파랗게 어린놈에게 비웃음이라도 사면 엄청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가 진실을 말해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과론이지만, 만약 이들이 개성레어로 직접 가서 확인을 해봤다면 아마 얘기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놀랍게도 개성레어가 있는 극락봉 주변은 텅텅 비어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무거운 엉덩이를 굳이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길드의 피해를 줄이려는 사소한 목적을 가지고 온 자들이기 때문에 대국적인 시야로 현실을 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소울은 그들이 하는 얘기를 엿들으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생각했던 것보다 배포가 너무 작은 자들이었다.
그는 적당히 네 사람과 어울리다가 개성필드를 한 바퀴 둘러본다고 핑계를 대고는 소형전술차를 타고 떠났다.
“마스터, 어디로 갈까요?”
“개성필드를 한 바퀴 돌다가 개성레어로 빠지자.”
“네, 마스터.”
실비아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즐거운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액셀러레이터를 힘차게 밟았다.
운전석 옆의 보조석에 탄 비스크는 그런 그녀를 무표정한 얼굴로 한번 쳐다봤다.
부아아아앙!
먼지가 확 피어오르자 소형전술차는 빠른 속도로 개성필드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확실히 유정아가 전해준 정보가 맞긴 맞았다.
몬스터는 거의 찾아보려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이런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 소울은 곧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이렇게 몬스터들이 전부 개성필드에서 사라져 차원의 균열 중심부로 갔다면, 그곳까지 가는 길은 정말 텅 빈 아우토반을 스포츠카를 타고 마음껏 쌩쌩 달리는 것과 진배없는 것이 아닐까? 이 기회에 차원의 균열 중심부까지 한번 다녀와 볼까? 혹시 알아? 운이 좋으면 차원의 균열 중심부에 있는 코어를 보게 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소울은 크게 한번 모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조심 또 조심하면서 소극적이던 그는 오늘만큼은 왠지 ‘남자는 직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그를 태운 소형전술차가 극락봉 앞에 멈춰져 있는 것을 알게 됐다.
-마스터, 여기까지 오셨네요?
“나 부장! 지금 어디지?”
-조금만 위로 더 올라오시면 제가 보일 겁니다.
“알았어.”
소울은 실비아를 시켜 극락봉 위를 향해 조금 더 소형전술차를 몰고 올라가게 했다.
산길은 험한 오프로드였지만 국내 기업이 개발한 소형전술차는 큰 무리 없이 무난하게 잘도 길을 타고 올라갔다.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자 서머너즈 길드 제4 전투단과 소울 디펜스 제1 영업부 대원들이 극락봉 주변을 새까맣게 덮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후후후, 역시 쪽수는 위대하군.’
나 부장을 찾아보며 소형전술차에서 내려선 그는 역시 대대적인 전력을 투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락봉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몬스터들의 둥지나 집단서식지를 싹 태워 없애는 것 같았다.
“마스터, 이쪽입니다.”
“아! 나 부장.”
“마스터, 재미있는 것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재미있는 것?”
“하하하, 잠시만 기다려보십시오. 곧 가지고 올 겁니다.”
나인권은 웃으면서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소울은 호기심이 치밀어 올랐지만 뭔가 이유가 있는 듯해서 가만히 기다렸다.
극락봉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개성레어는 순조롭게 초토화 되어가고 있었다.
다시는 몬스터들이 서식하지 못하게 우물을 막아버리고 서식지를 불태우고 동물들을 쫓아냈다.
간간히 나타나는 다 늙은 오크들과 어린 오크들은 예외 없이 잡아 죽이고 극락봉 입구에서 대기 중인 미래백화점그룹 몬스터 부산물 처리반에게 넘겨졌다.
“꾸잉!”
갑자기 푸티나가 고개를 돌려 극락봉 위쪽을 쳐다봤다.
소울은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돌려 푸티나가 쳐다보는 방향을 바라봤다.
서머너즈 길드원 네 명이 특수합금으로 만들어진 케이지(cage, 우리)를 들고 달려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마스터, 저겁니다.”
“응?”
소울은 나 부장의 말에 그들이 들고 온 케이지 안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 마스터가 계신다.”
“어라, 마스터시잖아?”
“마스터를 뵙습니다.”
“마스터?”
특수합금으로 만들어진 케이지를 들고 온 서머너즈 길드원 네 명은 서머너즈 길드의 마스터인 소울이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수고가 많군.”
“아닙니다. 마스터.”
잠시 그들의 노고를 치하한 소울은 손가락으로 케이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뭐지?”
“트롤이 살았던 곳으로 보이는 동굴에서 발견한 놈입니다. 아무래도 갓 태어난 트롤 새끼 같습니다.”
케이지에 들어있는 생명체를 극락봉 중턱에 있는 동굴에서 처음 발견한 길드원 한명이 설명을 하자 소울은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케이지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 있던 트롤 새끼가 뒤뚱거리며 밖으로 기어 나왔다.
“눈 하나는 멀었고 팔과 다리도 뒤틀렸군. 장애 트롤인가? 아니면 돌연변이 트롤인가?”
“이걸 어떻게 할까요?”
“으음, 이 트롤 새끼는 내가 알아서 하도록 하지.”
“네, 마스터.”
그들은 주먹으로 왼쪽 가슴을 두 번 치고는 즉시 케이지를 들고 극락봉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나 부장은 소울이 트롤 새끼를 어쩌려고 하는 지 꽤나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소울은 굳이 그에게 미주알고주알 얘기해주지 않았다.
“여긴 순조로운 것 같으니 난 그만 내려가 봐야겠다.”
“네, 마스터. 조심해서 내려가십시오.”
나 부장의 말에 소울은 피식 웃음을 흘리더니 소형전술차를 탔다.
“푸티나, 저놈은 네가 안고 타라.”
“꾸잉!”
푸티나는 트롤 새끼를 한손으로 번쩍 들더니 소울의 옆자리에 앉았다.
“마스터, 어디로 가실 겁니까?”
“개성필드로 돌아가자.”
“네.”
실비아는 두 말 없이 개성필드를 향해 소형전술차를 몰았다.
소울은 옆에서 자신을 바라보면 한쪽 눈을 깜빡거리는 트롤 새끼를 보며 생각했다.
‘이놈은 애초에 태어날 때부터 병신으로 태어난 게 분명해. 그래서 트롤 어미에게 버림을 받은 거야. 팔다리가 저렇게 비틀어져있으니 성장해봐야 제대로 된 트롤이 못되는 것을 알고 개성필드 안으로 들어갈 때 버리고 간 거야.’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나름 유추를 해봤다.
그러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까망이를 불렀다.
[까망아, 이놈 눈과 팔다리를 치유할 수 있어?]
[규!]
까망이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소울은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실비아에게 말했다.
“개성필드 근처에 차를 세워!”
“네, 마스터.”
부우웅 끼익!
소형전술차가 멈추자 소울은 차에서 내렸다.
푸티나가 트롤 새끼를 안고 내리자 소울의 의중을 눈치 챈 비스크가 슬그머니 소형전술차에서 내려 소울의 뒤에 섰다.
“실비아! 나 부장에게 가서 내가 개성필드 주변을 탐색할 거라고 전해.”
“네, 마스터. 말을 전하고 바로 다시 오겠습니다.”
실비아가 미처 대답을 다하기도 전에 소울은 개성필드 안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실비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소형전술차에 타더니 쌩하고 나 부장을 향해 차를 몰았다.
[규!]
까망이가 그의 머리카락 속에서 나와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비스크가 크게 숨을 들이 마시며 팔다리를 흔드는 것이 느껴졌다.
소울의 의지에 따라 본이 소환되어 나타났다.
본은 여전히 정중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마이로드!]
[따라와라!]
[예스, 마이로드!]
그가 소울의 뒤를 따르자 서열에서 밀린 비스크가 본의 뒤에서 쫄랑거리며 따라왔다.
몬스터가 없는 개성필드는 한 마디로 을씨년스러웠다.
용흥리가 있던 자리에는 다 무너져 가는 집들이 간간이 보였는데 역시 사람 한명 살지 않는 곳이라 적막하기 이를 때 없었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뭔가 투명한 막을 통과하는 느낌이 들더니 눈앞에 넓은 들판이 나타났다.
간간히 서머너즈 길드원들이 파티를 이루고 돌아다니다 그를 보고는 약식 길드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푸티나, 너를 타고 가야겠다.”
“꾸잉!”
푸티나는 즉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거대한 불곰이 되자 푸티나의 팔에 안겨있던 트롤 새끼가 놀라서 몸을 바들바들 떨어댔다.
“비스크, 트롤 새끼는 이제부터 네가 안고 간다. 절대 겁주지 마라.”
“네, 마스터!”
푸티나가 트롤 새끼를 비스크에 넘기자 소울이 푸티나가 내민 앞발을 밟고 훌쩍 뛰어 등에 올라탔다.
“달려라! 푸티나!”
“꾸잉, 꾸잉!”
푸티나는 넓은 들판을 달리라는 소울의 말에 신이 난 듯, 지체 없이 앞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불곰은 시속 60km로 달릴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최대 속도가 그렇다. 시속 66km까지 달리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고 하니 절대 느린 속도는 아니다.
그런데 푸티나는 불곰이자 소환수라서 그런지 시속 100km는 너끈하게 달렸다. 그것도 소울을 생각해서 최대한 흔들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달리는 속도였다.
3~4km만 시속 60km의 속도로 달려가도 지구력이 엄청난 빠른 불곰이라고 할 텐데 푸티나는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30km를 넘게 달려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들판을 한참 달리자 이제는 언덕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리 희미하게 산맥 같은 것이 보였다.
“푸티나, 1시 방향에 있는 저 언덕 위로 올라가 보자.”
“꾸잉!”
언덕 위를 오르자 주변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뒤 따라온 비스크는 살짝 거친 숨을 쉬며 호흡을 가다듬었고, 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조용히 그의 뒤에 시립했다.
털썩!
소울은 잔디가 깔린 바닥에 주저앉아 전투배낭에서 생수를 꺼냈다.
자신이 달린 것도 아니면서 혼자 물을 마시더니 언덕 아래 한곳을 가리키고는 비스크에게 명령했다.
“비스크, 저 아래 도랑이 보인다. 가서 트롤 새끼를 깨끗하게 씻겨 와라.”
“네, 마스터.”
비스크가 언덕을 마구 달려 내려가 도랑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던 소울은 전투배낭에서 초코파이 상자를 꺼내더니 하나씩 까먹었다.
============================ 작품 후기 ============================
* 목감기에 걸려 일을 보러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글은 왜이렇게 잘 써지는 걸까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자리에 앉아 글을 쓰다가 서비스로 한편 올려봅니다.
즐겁게 읽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