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9 제 60 장 - 서북풍(西北風) =========================================================================
리상국 상장은 당황해서 변진섭 부관을 쳐다봤다.
눈치를 보아하니 변진섭 부관이 리상국 상장의 지낭(智囊)인 모양이었다.
“부관께서 안내를 해주시면 좋겠군요.”
“저는 해주호텔에 가봐야 해서 좀 곤란합네다.”
“그래요? 그럼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 한명이 저를 안내해주시면 되겠네요. 김중오 여단장이 좋겠습니다.”
“네에?”
“그, 그렇게 하는 것이 좋갔습네다.”
29 해상저격여단 김중오 여단장은 리상국 상장을 쳐다보면서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리상국은 인상을 팍 쓰면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변진섭 부관이 곧바로 리상국을 대신해 허락을 하자 길게 한숨을 내쉰 김중오 여단장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소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29 해상저격여단 김중오 여단장입네다. 마스터를 모시갔습네다.”
“제 무리한 청을 이렇게 흔쾌히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다들 나중에 뵙겠습니다.”
“네, 마스터.”
소울이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걸어 나가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하지만 국정현과 김영신 그리고 몇 명의 경호원들은 서둘러 그를 쫓아 밖으로 튀어나갔다.
맨 뒤에서 인상을 딱딱하게 굳힌 김중오가 느릿하게 밖으로 걸어 나갔다.
“마스터!”
“아! 국 사무총장!”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간 소울의 뒤로 국정현이 빠르게 달려와 그를 붙잡았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비서 겸 호위를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마스터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보좌해줄 것입니다.”
“네? 아니 왜 그런 일을? 하필 여기에서?”
“아직 이곳은 몬스터로부터 안심할 곳이 아닙니다.”
국정현의 말은 몬스터로부터 안심할 곳이 아니라 몬스터 같은 자들이 노리고 있으니 안심할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소울도 그 정도는 찰떡같이 알아먹었다.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아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고 소울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가 있으면 나중에 다시 얘기하면 그만이다.
당장은 국정현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소울은 고개를 돌려 어느새 다가와 자신의 바로 옆에 서 있는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능력자를 쳐다봤다.
분명히 전투슈트를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감적인 몸매를 유감없이 드러낸 이 여성 능력자는 코와 입을 완전히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모르긴 해도 마스크 안의 얼굴은 분명 미인일 것 같았다.
“하와유?”
“마스터! 이렇게 직접 얼굴을 보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 이름은 실비아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에엑? 한국말 잘하네요?”
“아버지가 한국인이십니다.”
“아, 그래요? 그럼 어머니가?”
“크흠, 마스터 지금 그런 질문을 할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소울은 국정현의 태클에 실비아를 어색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저야 말로 잘 부탁합니다. 그런데 그쪽 얼굴 한번만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너무 궁금해서 말이지요?”
“실비아라고 불러주세요. 그리고 제가 비서 겸 호위인데 그런 말투는 부담스럽습니다. 편하게 말씀 놓으셔도 됩니다.”
“차차 그렇게 하도록 하죠. 실비아!”
“감사합니다.”
실비아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더니 그의 턱 아래로 바짝 달라붙어 두 손으로 자신의 마스크를 내렸다. 그 모습이 마치 ‘너만 봐야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
소울은 그녀의 얼굴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입을 딱 벌리며 놀라워했다.
세상은 넓고 미인은 많다더니, 정말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미녀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호수처럼 푸른 눈이 반짝이는 금발의 미녀라서 그런지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만족하셨습니까?”
“네? 아! 네.”
소울은 실비아의 미모에 깜짝 놀라서 자신이 지금 무슨 대답을 하고 있는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제 얼굴을 본 값은 하셔야지요?”
“네?”
실비아는 웃으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인증샷 찍어도 되죠?”
“아! 네, 물론이죠.”
인증샷을 찍는다는 말에 소울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는 실비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의 허리를 실비아가 자연스럽게 팔을 돌려 감싸자 옆구리에 뭉클한 감촉이 전해지며 향긋한 체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소울이 살짝 허리를 구부려 다정한 포즈를 취하자 실비아는 한술 더 떠서 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댔다.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
스마트폰에서 사진을 찍는 효과음이 터지자 실비아는 그 자세 그대로 속삭였다.
“마스터, 한 장만 더 찍어도 되죠?”
“네, 그러세요.”
실비아는 미소를 지으며 소울의 허리를 두르던 그녀의 팔을 빼서 이번에는 소울의 목에 두르더니 더욱 다정한 포즈를 취했다.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소울은 그녀의 스마트폰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곧 그는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어느새 실비아의 부드럽고 촉촉한 입술이 그의 입술을 꾹 찍어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찰칵!
‘어’하는 사이에 소울은 실비아로부터 도둑키스를 당하고는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실비아는 어느새 스마트폰을 집어넣고 마스크까지 올린 채 전투헬멧을 쓰고 있었다.
소울이 계속 자기를 쳐다보자 실비아는 눈웃음을 짓더니 이내 한쪽 눈을 살짝 감아 윙크를 했다.
‘백인 여자들은 친구끼리 인사로 키스를 한다더니……. 정말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구나.’
소울은 비록 도둑키스를 당했지만 미녀와의 키스라서 그런지 그리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라서 그냥 쿨 하게 넘어가기로 했다. 무엇보다 실비아는 앞으로 자신의 생명을 지킬 호위이자 비서였다. 누구보다 가깝고 친하게 지내야 하니 이 정도는 애교로 봐주기로 했다.
그는 실비아를 향해‘능력 & 잠재능력 확인’ 스킬을 걸었다.
[능력 & 잠재능력 확인 대상: 실비아
능력: 1. 은신 및 경호 특화(B) 2. 암살자(C)
잠재능력: 없음]
그녀의 능력을 확인해보자 국정현이 왜 그녀를 자신의 비서 겸 호위로 선택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B급의 ‘은신 및 경호 특화’라는 특이한 능력에 C급의 ‘암살자’ 능력까지 가지고 있는 듀얼 능력자였던 것이다.
그녀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아직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결코 범상치 않은 능력이라는 것은 눈치 챌 수 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그 사이 소울 디펜스에서 고르고 고른 특급 경호원 열 명이 소울을 중심으로 등을 돌리고 반경 10m 안을 철통같이 둘러싸고 있었다.
“마스터, 그럼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저도 들어가서 계획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국정현과 김영신은 소울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본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방금 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정말로 못 본건지, 아니면 보고도 못 본척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김중오 여단장만 어정쩡하니 한쪽에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스터, 부용당으로 가시는 것 맞습니까?”
“응, 부용당으로 가자.”
실비아가 그에게 목적지를 물어보자 소울은 그녀에게 편하게 말하기로 작정을 하고는 짧게 대답했다.
“소형전술차를 준비했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의 앞에 소형전술차 다섯 대가 빠르게 달려왔다.
“김중오 여단장, 같이 타시죠?”
“네, 마스터.”
김중오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소울을 따라 중앙에 있는 소형전술차에 올라탔다.
실비아가 소형전술차의 뒷문을 닫고 운전대를 잡은 경호원 옆에 올라타자 소형전술차 다섯 대는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어느새 소형전술차의 짐칸에 몸의 크기를 줄인 푸티나가 떡 하니 들어와 앉아 있는 것이 느껴졌다.
“도청방지장치를 가동합니다.”
부용동에 있는 부용당을 향해 달리는 소형전술차 안에서 실비아의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어쩔 줄을 몰라 하던 김중오가 주변을 한번 쓱 훑어보더니 어깨를 당당히 펴고 소울을 쳐다봤다. 마치 사람이 한 순간에 확 달라진 것 같았다.
“아까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둘만 있으려면 이런 방법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좀 무리를 했습니다.”
“동지, 반갑습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29 해상저격여단 여단장인 김중오는 소울의 손을 붙잡고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품속에서 소형무전기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붉은 색 버튼을 꾹 누르며 숫자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314, 159, 265, 358, 977…….”
-104
한참 숫자를 불러대고 나자 소형무전기에서 짧은 숫자로 대답을 대신해왔다.
“부용당에서 황남조와 접선하자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만날 수 있게 됐네요.”
“아무래도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그렇게 했습니다.”
김중오는 너무나도 자연스런 서울 말씨를 쓰며 소울의 눈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번들거리는 눈빛에서 자신도 모르게 포식자가 흘리는 살기가 새어나오는 것을 아는지 모르지만 그의 입가에는 만족스런 미소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부우우우웅 끼익 끼익 끼익!
부용당에 도착하자 소울과 김중오 그리고 실비아는 천천히 걸어서 안으로 들어가고 경호를 위해 대원들은 부용당의 지붕과 주변 일대로 퍼져나갔다.
“꾸잉!”
푸티나가 뒤늦게 소울의 뒤를 쫓아와 부용당 한쪽 구석에 앉아 주변 경치를 관람하는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소울은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호젓한 주변 경치를 느긋하게 즐기며 김중오와 담소를 나눴다.
10분쯤 지났을까?
부용당 앞에 일단의 무리가 나타나 김중오를 찾았다.
그러자 김중오가 급히 밖으로 나가 열 명의 사내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마스터! 내가 황남조의 수장인 김용호입니다.”
“반갑습니다. 서머너즈 길드의 마스터 이소울입니다.”
소울의 손을 마주잡고 환하게 웃는 사내는 마치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항우를 보는 것 같았다.
거의 2m에 가까운 커다란 덩치와 온몸에 근육이 갑옷처럼 둘러싸여 있는 김용호는 낡아 빠진 옷을 걸치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호쾌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화통한 사내가 분명했다.
“황남조라는 것이 혹시 황해남도의 능력자 연합이라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황해북도는 황북조, 평안북도는 평북조라고 부르지요.”
“그렇군요. 뒤에 서 계신 분들은 황남조의 간부들입니까?”
“네, 맞습니다. 제가 소개를 시켜드리겠습니다.”
김용호는 푸티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곧 고개를 돌려 소울에게 황남조의 간부들을 한명씩 소개시켜주기 시작했다.
소울은 한명씩 손을 마주잡고 인사를 나누며 그들의 능력과 잠재능력을 확인해봤다.
놀랍게도 김용호를 비롯한 황남조의 간부들은 모두 C급 이상의 능력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놀랍구나. 북한에 이런 능력자들이 숨어 있었다니……. 그런데 이런 능력자들을 꼼짝 달싹 못하게 만든 것이 무엇일까? 이들의 가족을 볼모로 잡았나?’
그가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계획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한 가지만 제외하면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게 뭐죠?”
소울의 질문에 김용호는 살짝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리상국이 산둥성에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산둥성이라니요? 설마 중국의 산동성(山東省) 말입니까?”
“맞습니다. 산둥성의 성장(省長)인 곽수창에게 지원을 요청했는데 방금 몽금포에 도착해서 해주로 향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김용호는 아까와는 달리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소울은 그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리상국 그 개놈의 새끼가 우리 가족들을 볼모로 붙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녁 모두 몽금포로 데려가서 배에 태워 산둥성으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그랬군요. 산둥성에서 지원을 보낸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혹시 능력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도 숫자가 무려 천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중에는 중상위 능력자들도 꽤 있다는 첩보입니다.”
“이해할 수가 없군요. 산둥성의 성장이라는 곽수창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리상국 상장을 돕는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둘이 사돈지간이기 때문입니다. 리상국의 딸과 곽수창의 아들이 결혼을 해서 혈연으로 묶인 사이지요. 리상국 상장은 대한민국에서 본격적으로 4군단을 지원하고 황해남도에 구호품을 보내준다는 말에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자 차라리 중국을 끌어들여 대한민국을 견제하고 계속 권력을 유지할 속셈인 것 같습니다.”
============================ 작품 후기 ============================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의 댓글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선호작, 추천, 쿠폰, 후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