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236화 (236/492)

00236  제 59 장 - 유정아의 베일  =========================================================================

그녀의 몸에 대해서 이미 달통해있는 상태라 어디를 어떻게 해야 좋아하는지 뻔히 알고 있는 그는 빠르게 그녀를 정상을 향해 몰아붙였다.

유정아는 이미 소울에게 차분히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까지 그 정도는 아니라고 스스로 부인하며 자위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그녀는 소울에게 조금씩 더 깊이 빠져 들고 있었다.

뜨거운 춘풍이 한 차례 지나가고 나자 두 사람은 뜨거운 물로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다시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이번에는 미리 스마트폰의 도청방지 시스템을 틀고 자신의 목걸이에 부착된 비밀장치도 가동시켰다.

소울은 그녀의 행동을 모두 주의 깊게 살펴본 후에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녀의 입김이 그의 목을 간지럽히기 시작하자 지금까지 그녀의 정체를 가리고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베일이 서서히 한 꺼풀 벗겨지고 있었다.

* * * * *

유정아는 미국의 가정에 입양된 입양아다.

그녀의 본명은 한국어로 유정아가 맞다. 하지만 그녀의 법적인 이름은 유정아가 아닌 제인 존슨이다.

그녀에게는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아름다운 백인 자매가 한 명 있었는데 이름은 양부모인 벤 존슨과 엘리자베스 아덴이 지어준 엘리스 존슨이다.

제인과 엘리스는 비슷한 시기에 벤 존슨과 엘리자베스 아덴에게 입양되었다.

두 사람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부족함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 그들은 티 없이 맑고 예쁘게 무럭무럭 자라났다.

제인과 엘리스는 어릴 적부터 친자매이상으로 사이가 무척 좋아서 항상 같이 먹고 자고, 같이 손을 잡고 돌아다녔다.

심지어는 옷과 신발까지 쌍둥이처럼 같은 것을 입고 다녀 사람들의 웃음을 불러 일으켰다.

말 그대로, 두 사람은 누구보다도 친한 단짝이자 절친이었다.

하지만 엘리스와 제인이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조금씩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제인은 어릴 적부터 자신이 한국에서 입양된 입양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을 키워주고 사랑해주는 양부모와 엘리스가 사실은 자신과는 다른 백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벤 존슨과 엘리자베스 아덴이 친부모처럼 사랑해주고 엘리스도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고 허물없이 지내자, 자신이 그들과는 다른 동양인, 특히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크게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상황은 바뀌었다.

누가 어린아이가 순수하고 선하다고 했는가?

아니 어쩌면 순수라는 괴물로 덮여 있기에 더욱 자신과는 다른 피부, 다른 눈, 다른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제인을 잔인하리만큼 집요하게 괴롭히고, 무시하고, 차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제인은 학교에서 철저히 약자이자 소외계층이었다.

무리를 지어 똘똘 뭉쳐있는 히스패닉이나 흑인들보다 오히려 그녀가 더욱 괴롭히기 쉬운 상대로 보였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당했던 제인도 이때부터 이를 악 물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양부모도 없었고 엘리스도 그녀를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제인은 이때부터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뭐든지 배우고, 기억하고, 익히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그 어떤 백인 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기를 썼다.

이렇게 시작된 일이 결국 그녀의 악마적인 천재성을 세상에 유감없이 드러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제인은 한마디로 하늘이 내린 천재였다.

아이큐가 200이 넘네 마네 하면서 학교를 놀라게 하더니, 어느 순간 매년 마다 다른 아이들을 추월하며 월반을 시작했다.

초등교육과 중등교육 과정을 월반이라는 제도로 순식간에 끝내버리고, GED(미국의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교육 과정은 아예 패스해버렸다.

이때쯤 학교에서는 누구도 그녀를 감히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잘못하다간 그녀의 까다로운 질문 세례에 개망신을 당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결국 제인은 4년 전액장학금과 생활비와 용돈까지 받으며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했다.

당연히 그녀는 최연소의 나이로 하버드 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하게 되어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세계적인 천재들만 모인다는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을 한 제인의 행보는 거침없이 이어졌다. 아니 오히려 하버드 대학교이기에 더욱 그녀의 천재성이 돋보였다.

1년간 물리학과의 교수들을 모조리 경악하게 만든 그녀는 다음해에 화학과를 들어가 복수전공을 시작했다.

그 다음해에는 물리학과를 2년 만에 졸업하고, 의대로 들어갔다.

3년 째 되던 해에 화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MIT 공과대학에 특별히 초청되는 방식으로 입학하게 됐다.

1년 만에 MIT 공대는 그녀의 천재성에 초토화되어 제인을 ‘공대의 신’으로 받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결국 공대 전체의 시스템을 새롭게 바꾸는 대역사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녀가 하버드 대학교와 MIT공대가 있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州), 캠브리지에서 4년을 사는 동안 딴 박사학위만 4개라는 사실은 석학들을 전혀 놀라게 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을 정도였다.

어떤 교수도 그녀와 3분만 얘기를 나눠보면 날카로운 송곳처럼 튀어나오는 그녀의 천재성에 놀라서 밤을 새며 얘기를 나누고 싶어 했을 정도였다.

제인은 물리, 화학, 의학, 공학 분야에서 4개의 박사학위를 따고 난 뒤 대학원을 가지 않고, 하버드와 MIT공대의 여러 교수들과 공동연구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제인이 이렇게 자신의 약점을 타고난 천재성으로 밟아 누르며 초특급 성장을 하고 있을 때, 엘리스는 너무나도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니 평범한 삶을 살아가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엘리스는 태어날 때부터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시간이 지나며 귀여운 여자아이는 예쁜 소녀로 변했고, 2차 성징이 나타난 이후에는 아름다운 처녀로 변했다.

물론 제인도 엄청난 미녀로 성장했지만 외모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살려 연구실에 처박혀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악마적인 재능을 가진 제인과는 달리 엘리스는 정말 가공할 아름다움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름다운 금발과 시리도록 푸른 눈에 중력의 법칙을 거스른 가녀리고 글래머러스한 몸매는 학교와 주변 일대에 일찌감치 미의 여신으로 군림하게 만들어 주었다.

공부를 썩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미모에 혹한 교수들의 적극적인 공세로 그녀도 대학에 무사히 입학하고 아름답지만은 않은 미국 대학의 캠퍼스 생활을 시작했다.

두 자매가 각각 한쪽으로 절정의 재능을 개화시키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방학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와 둘이 꼭 붙어 지내며 자매의 우의를 다졌다.

이렇게 성인이 되어버린 두 사람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마도 그들의 양부모인 벤 존슨과 엘리자베스 아덴의 교통사고일 것이다.

CIA에서 오랫동안 톱 애널리스트로 활동해온 벤 존슨과 엘리자베스 아덴의 교통사고는 누군가의 의도적인 살해라는 말도 있었지만 결국 단순한 교통사고로 끝이 나고 말았다.

이때부터 제인과 엘리스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벤 존슨과 엘리자베스 아덴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기절을 하고 난 뒤 엘리스 존슨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제인도 이를 믿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이 하나, 둘씩 현실이 되고 나자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엘리스는 대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틀어박혀 우주의 신비한 현상과 초자연적인 것에 몰두했다.

제인은 엘리스가 걱정이 되어 휴학을 해서라도 같이 있고 싶어 했지만 엘리스는 오히려 소울넷을 통해 우주의 상위지성체와 연결되어 괜찮다며 제인을 학교로 억지로 돌려보냈다.

한동안 대학에서 연구에 몰두하며 지내다 잠깐 집으로 돌아간 제인은 엘리스가 어쩐지 자신이 알고 있는 예전의 엘리스가 아닌 것처럼 느껴져 깜짝 놀랐다.

그러나 다음 날, 엘리스는 예전의 그녀로 돌아와 제인을 기쁘게 맞이했다.

엘리스는 제인에게 자신의 몸에 그들의 방문, 즉 빙의를 허락해서 그렇다는 말로 시작해서 그간 있었던 얘기들을 숨김없이 말해주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과 계획까지 예언처럼 얘기를 해줬다.

제인은 다른 것은 몰라도 그녀가 말하는 새로운 지구를 만들겠다는 계획에는 절대 동참할 수 없다며 오히려 그녀의 계획을 적극적으로 말렸다.

제인의 반대에 부딪친 엘리스는 큰 충격에 빠진 듯 했다.

제인은 아마도 그때 그 논쟁 때문에 엘리스와의 사이가 틀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두 사람은 친자매이상으로 사이좋게 지냈다.

엘리스는 제인을 설득시킬 계획이 있어서인지 그녀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틈이 날 때마다 자주 얘기를 해줬다.

엘리스가 해준 얘기 중 가장 충격적인 얘기는 바로 지구에 곧 차원의 문이 열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문이 열리게 되는 날, 자신처럼 소울넷을 통해 우주의 상위지성체와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능력자가 죽게 된다고 했다.

결국 그녀의 예언대로 한 세기에 8번 발생하는 희귀현상인 ‘테트라드(Tetrad)’ 중 세 번째 월식이 일어난 2015년 4월 4일에 차원의 문, 아니 차원의 균열이 열리고야 말았다.

이날 이후, 제인은 더 이상 엘리스를 볼 수 없었다.

아니 엘리스의 몸은 그대로 있었지만 그녀의 안에 들어 있는 것은 결코 엘리스가 아니었다. 엘리스가 말한 우주의 상위 지성체가 빙의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제인은 자꾸 자신의 계획에 동참을 강요하는 엘리스로 인해 고민을 하다가 결국 그녀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보이지 않는 엘리스, 아니 엘리스의 몸을 차지한 자의 압박이 시작됐다.

하버드와 MIT공대 양쪽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연구중단이 선언됐고 그녀가 일할 수 있는 모든 여건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제인은 고인이 된 양부모인 벤 존슨과 엘리자베스 아덴의 친구의 도움으로 미국을 떠나 한국에서 정착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을 벗어나자 엘리스의 몸을 차지한 자들도 더 이상은 압박을 가해오지 않았다.

그 틈을 이용해 제인은 하버드와 MIT공대에서 자신이 연구하고 있던 과제들을 빠르게 정리해서 미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연구소와 공동연구라는 미명으로 상업화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로열티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벤 존슨과 엘리자베스 아덴의 유산이 엘리스와 제인에게 똑같이 나뉘어져, 그녀는 로열티로 돈을 벌기 전에도 이미 억만장자였다. 하지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연구에 들어가는 돈은 항상 모자라기만 했다.

‘테트라드(Tetrad)’중 네 번째 월식이 일어나 9월 28일에 결국 엘리스가 예언한대로 더블 웨이브가 일어났다.

한국에서는 소울이라는 영웅이 탄생하며 선방하는 바람에 크게 조명 받지 못했지만 해외 각국에서는 더블 웨이브로 인해 수억의 사상자가 발생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어야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소울에게 3년 후에 일어날 개기월식, 즉 2018년 1월31일에 지구는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엘리스가 예언했다는 것을 끝으로 자신의 긴 얘기를 마쳤다.

* * * * *

그녀로부터 모든 얘기를 다 들은 소울은 일단 하염없이 울고 있는 유정아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그녀는 마치 비 맞은 참새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친자매처럼 지냈던 엘리스가 생각났는지, 아니면 2018년 1월31일에 지구가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던 엘리스의 예언 때문인지,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몸을 떠는 이유를 지금은 알 수 없었다.

사실 두렵고 떨리기는 소울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해보니 엘리스가 차원의 문이 열리는 날, 그녀처럼 소울넷에 접속할 수 있는 지구에서 유일한 능력자가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던 ‘테트라드(Tetrad)’ 중 세 번째 월식이 일어난 2015년 4월 4일에, 그는 교통사고로 황천길을 갈 뻔 했다.

다행히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각성을 했는지 간신히 살아남았고 결국 소울넷에 접속을 하여 지금에 이를 수 있게 되었다.

그제야 소울은 자신의 능력이 소환사가 아니라 소울넷에 접속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었다.

유정아가 하는 말을 모두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소울넷에 관한 말은 한마디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쌍둥이 동생들에게까지 철저하게 비밀을 지켰다.

그러니 유정아가 소울넷을 언급한 순간, 소울은 그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테트라드 중 세 번째 개기월식이 일어나 차원의 균열이 열린 날처럼, 테트라드 중 네 번째 개기월식이 일어난 9월28일도 뭔가 큰 이상이 생겨 더블 웨이브가 일어났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2018년 1월31일에 일어나는 개기월식과 맞물려 지구가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엘리스의 말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날, 정말 지구는 멸망할 수도 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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