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5 제 59 장 - 유정아의 베일 =========================================================================
“내가 뭘 잘못했는지 말을 해줘야 고칠 것 아니야? 안 그래? 그리고 사실 이런 말은 남자가 여자에게 해야 어울린다고…….”
유정아의 부드러운 말에 소울은 드디어 무거운 입을 열었다.
“그냥 어린아이처럼 한번 투정을 부려보고 싶었어.”
“그래서 소울메탈에서 사려는 땅값을 4배로 올린 거야?”
“250억에 사면 사실 소울메탈이야 좋겠지. 하지만 원래 그곳의 땅값은 천억이 적당한 가격이야. 아니 천억에 사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세가 2~3배로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나보다 정아가 더 알잖아?”
“소울메탈 지분의 반은 자기가 가지고 있잖아? 자기가 소울메탈의 실질적인 주인인 것 몰라서 그래?”
“모르겠어. 말이야 지분의 반이 내 것이라고 하지만 정말 소울메탈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 회사가 맞기나 한 거야?”
“아!”
유정아는 그제야 소울이 느끼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실질적으로 소울메탈 지분의 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소울이 맞다. 하지만 소울메탈의 나머지 지분은 유정아를 비롯한 미국과 유럽의 여러 부호와 정치가,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가지고 있었다.
소울메탈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또 누구도 쫓아오지 못하는 독보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렇게 빠르게 제품을 생산해서 수출까지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생산해내는 제품이 각국의 정부와 국방부, 능력청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한 ‘생체실드 중화탄’이라는 민감한 품목이니 누군가 막강한 실력자가 뒤를 봐주지 않는다면 그 짧은 시간 안에 미국과 유럽에 수출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하지만 유정아는 자신의 인맥을 통해 이를 어렵지 않게 해결했다.
바로 그 과정에서 소울은 철저히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소울은 소울메탈이 자신의 것이 아닌 남의 회사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런 그의 감정을 느끼자 유정아는 지금 자신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알게 되자 곧 소울과 자신의 관계가 어느새 한계에 부딪치고 있는 것도 같이 깨달았다.
살짝 멍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을 못하자, 이번에는 소울이 그녀의 얼굴 한쪽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정아야, 우리 앞으로 어디까지 가야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한 설정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는 소리야.”
“아!”
유정아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갔다. 그녀는 마치 올게 왔다는 듯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너와 나의 관계의 시작은 섹스 파트너였어.”
“…….”
소울의 냉정한 소리가 들려오자 왠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아니 지금 우리의 관계가 과연 예전의 그 관계가 맞기나 한 거야? 내 생각에 우리는 이미 그런 관계를 넘어선 사이 같은데……. 아니야?”
다그치는 눈빛에 결국 그녀는 입을 열고야 말았다.
“처음의 관계를 넘어선 것은 맞아. 이미 여러 곳에서 얽히고설킨 상태라 지금은 사업파트너와 비슷한 상태가 됐다고 봐야해.”
“사업파트너라……. 그거 아주 좋은 말이네. 그런데 너 도대체 정산 언제 해줄 거야?”
“무슨 정산?”
“부호 출신 F급 소환계 능력자를 위해 소환수 소환해 준 것하고, 정력제 만들어 판 것도 커미션 정산해줘야 할 것 아냐?”
“아! 그거! 해줘야지. 당연히 해줘야 하고말고! 그런데 내가 요새 좀 바빠서 정산이 좀 늦어지고 말았네. 헤헤!”
유정아가 혀를 내밀어 애교를 떨어대며 그의 말을 인정하자 소울은 다시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그래. 은근슬쩍 몇 놈을 소환식에 끼어 넣어서 챙길 것 챙기고 우리 길드원이 되게 만든 것 정도는 얼마든지 넘어가 줄 수 있지. 또 기다리고 있으면 정아가 알아서 나중에 해줘야 할 정산을 모두 알아서 잘 정산해주겠지.”
“…….”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것은 정아가 나에게 원하는 관계가 도대체 어디까지야?”
“음, 되게 곤란한 질문을 하고 있네?”
유정아는 미안함에서 시작해서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바뀌며 소울의 눈빛을 슬쩍 피했다. 사실 자신이야 말로 누구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더 알고 싶었다.
정말 처음 시작은 이게 아니었다.
장난 반, 호기심 반으로 그녀의 부탁을 들어준다는 것이 이제는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더 이상 장난이 아닌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남녀 사이라는 것이 서로 살을 부딪치다보면 없던 정도 생기게 마련이라는 것을 너무 간과한 것일까?
유난히도 자존심이 높았던 그녀는 남자들이 자신의 욕정을 여자들에게 마음껏 풀 듯, 자신도 남자들에게 욕정을 풀어버린다고 생각했다.
여자라고 굳이 한 남자를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남북전쟁 이전에나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너무나도 작고 평범한 소울을 택했을 때도 나중에 충분히 즐기고 나면 깔끔하게 떼어낼 수 있겠다고 오히려 좋아했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모든 것이 자신이 계획하고 생각한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소울이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처음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요상한 스킬과 흥미로운 아이템을 가지고 와서 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드웨어가 한참 떨어져서 별로 큰 만족을 느끼지 못했을 때도 이런 점 때문에 그럭저럭 대충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오우거와 트롤의 생식기에서 추출한 약을 통해 그의 하드웨어의 문제가 해결되고, 어디서 무엇을 주어먹고 왔는지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을 과시하기 시작하자 조금씩 그를 보는 자신의 시선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느꼈다.
물론 그의 신장이 예전에 비해 더 커져서 올려다보게 됐다는 그런 의미는 결코 아니다.
거기에다 반쪽짜리 능력자라는 F급 소환계 능력자로 빌빌대던 그가 갑자기 폭풍성장을 이뤄내더니 이제는 D급 소환계 능력자로 승급해서 막강한 소환수들을 거느리고 매일 승승장구 해나가고 있었다.
길드를 만든다기에 별로 기대를 안 하고 그런가 보다 했는데, 어느새 337 길드를 위협하는 거대 길드를 일궈내어 마스터의 자리에 당당히 올라서자 그녀의 방심은 변덕스런 여름 날씨처럼 마구 흔들리며 두근대기 시작했다.
그녀의 마음이 흔들린 것은 그가 돈을 많이 벌게 됐다거나 능력자로 승급해서가 아니다. 돈은 이미 그녀에게도 충분하게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가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을 봤을 때, 매일 변해가는 육체와 쑥쑥 늘어가는 실력을 확인했을 때, 더 이상 자신을 바라보며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한 눈빛을 보여줬을 때, 아마 그럴 때마다 그녀의 단단하고 차갑게 굳은 마음에 균열이 조금씩 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녀의 상념은 소울의 말에 신기루처럼 사라져갔다.
“우리의 관계는 이제 한계에 봉착했어. 이 정도로 만족을 할지, 아니면 서로를 믿을 수 있는 더 깊은 관계를 재설정할지 결정해야 해!”
“흐음,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럼 자기가 원하는 관계는 뭐야?”
“내가 먼저 물어봤어.”
“미안, 부탁이야. 제발 먼저 말해줘!”
유정아가 두 손을 모으며 애절한 표정을 짓자 소울은 그녀의 가슴을 한번 쓰다듬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아마 느끼지 못하고 있겠지만 그녀가 ‘제발’이라는 표현을 쓰며 자신에게 부탁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좋아. 그렇게 소원이라면 내가 먼저 말해주지. 결혼을 해서 내 아내가 되는 방법과 결혼을 하지 않고 애인이 되는 방법이 있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서로 비밀을 공유하며 도저히 떨어질 수 없는 파트너도 나쁘지 않을 거야.”
“아직 결혼을 할 생각은 없어.”
일단 결혼에 관해서는 생각이 확고부동해 보였다.
“오해하지 말고 들었으면 좋겠어. 자기와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난 결혼에 대한 생각 자체가 아예 없다는 말이야.”
“잘 알겠어. 정아도 오해 없이 들었으면 좋겠어. 나도 정아와 결혼하고 싶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야. 그런 선택이 있을 수 있다는 예를 든 것뿐이야. 그리고 결혼 자체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다는 것은 정아의 가치관이니 내가 뭐라고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잖아. 네 생각을 존중해줄게.”
유정아는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고 했다. 자신이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다고 해도 상대방도 같은 생각으로 딱 잘라 말하는 것은 결코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마워!”
“그럼 애인이 되는 방법과 파트너가 남았네?”
소울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유정아도 비슷한 미소를 지었다.
“난 두 개를 적당히 섞었으면 좋겠어.”
“어떻게?”
“일단 너와 지금처럼 계속 사랑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
“그건 나도 동감이야.”
소울은 유정아의 말에 바로 동의를 했다.
어디가서 이런 관능적이고 뇌색적인 미녀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서로 믿을 수 있는 사이였으면 좋겠어.”
“믿을 수 있는 사이라……. 나도 그 의견에 동감해. 그런데 너처럼 비밀이 많은 여자를 내가 어떻게 믿을 수 있지? 안 그래?”
유정아는 소울의 말에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잠시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봐야했다.
과연 소울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 거대한 비밀을 말해야 하는가? 아니 그와 이런 비밀을 공유하는 것이 정당한가?
결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마 예전의 소울이라면 아예 이런 생각 자체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도 7대 중대형 길드에 버금가는 서머너즈 길드의 당당한 마스터였다.
무엇보다 그녀는 이렇게 매일 숨이 막혀버릴 것 같이 자신의 어깨를 짓눌러대는 이 엄청난 비밀의 중압감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대나무 숲에 대고 외쳤던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의 주인공처럼 그녀도 아마 비슷한 심리상태가 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녀의 입술이 하얀 이빨 사이에 끼여 짓눌려졌다.
“나에게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어. 그것은 누구도 그 비밀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했던 거야. 하지만 자기가 푸티나를 걸고 내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에게 절대 얘기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면 얘기해줄게.”
“푸티나를 걸고 맹세를 하라고? 그런 건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하다 보니 나도 우연히 소환식을 한번 구경할 수 있었어. 그래도 내가 명색이 서머너즈 길드의 고문 아니야? 그 정도는 볼 수 있지. 뭘 그래?”
아무래도 그녀의 직책이 문제인 듯싶었다.
길드에 무려 300억을 기부한데다, 고문에, 막강한 배경과 비밀을 가지고 있는 유정아에 대한 경각심이 어느새 무장해제가 된 것 같아 그는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녀의 말대로 해준다고 해도 결코 소울에게는 아쉬울 것이 없었다.
까망이를 걸고 맹세를 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이런 맹세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소울이었다. 물론 푸티나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좋아, 지금부터 정아에게 들은 얘기는 정아가 허락하기 전까지 절대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지 않는다고 푸티나를 걸고 맹세한다.”
“아! 고마워!”
유정아는 소울이 이렇게 대번에 맹세를 해버릴지 몰랐다. 그리고 크게 기뻐했다.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이 벗어놓은 가운을 찾아 그 안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왔다.
“이 안에 내가 직접 만든 도청방지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어.”
“그래?”
그녀는 소울의 옆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한가운데로 몰리며 굉장히 섹시한 자태가 만들어졌다.
소울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갑자기 단단한 녀석이 힘차게 용트림을 하는 것을 느끼고는 입맛을 다셨다.
“뭐야? 그렇게 하고 또 생각난 거야?”
“뭐 그렇게 됐네?”
“얘는 도대체 왜 이렇게 정력이 좋아졌어? 랩터킹의 간을 먹은 것이 그렇게 효과가 좋은 거야?”
“아마도…….”
소울은 이 상태로 참는 것보다 차라리 한 차례 화끈하게 열정을 불태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유정아는 도저히 그를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침대 옆의 탁자에 내려놓고는 오히려 그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입술을 찾으며 아래쪽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침대 위는 다시 한 번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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