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6 제 54 장 - 책략(策略) =========================================================================
소울은 자신과 싱크로율과 적합도(궁합)가 잘 맞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봤다.
역시 생각대로 오러와 마나에 대한 재능이 최악이라서 그런지 마법사와 기사들을 위한 대부분의 중급 영혼체험 목록들은 여지없이 하급과 최하급으로 나타났다.
정령과 소환에 관한 스킬과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중급 영혼체험 목록들이 그나마 간신히 중급이었고 상급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다만 아까 이상하게 마음에 들어 하던 카오스나이트인 칼라볼그의 검법인 글람만이 89로 최상급에 올라있었다.
‘후우! 이건 뭐 처음부터 선택의 여지가 아예 없었던 거네.’
그는 일단 깨끗이 마음을 비웠다. 그리고 주저 없이 카오스나이트인 칼라볼그의 기억창고에 접속하여 그의 비전의 검법인 글람을 배울 수 있는 중급 영혼체험 목록을 선택했다. 우주를 가로지르는 경험은 이미 지겹게 해봐서 옵션 설정에서 건너뛰기를 설정해놓았다.
소울은 곧바로 니콜라스 행성 페르거스 왕국의 카오스나이트인 칼라볼그의 기억창고로 들어가 그가 자신의 비전 검법인 글람을 처음 배울 때부터 완숙한 경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중급 영혼체험을 통해 체험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급 영혼체험은 하급 영혼체험 따위가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생생한 현실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소울은 중급 영혼체험을 하는 내내, 마치 자신이 카오스나이트인 칼라볼그가 되어 글람을 배우고 수련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중급 영혼체험이 끝나고 나자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글람에 대한 모든 지식과 경험이 완숙한 경지까지 들어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무슨 이런 미친 시스템이 다 있지? 우주의 가장 고차원의 상위 지성체는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거야?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시스템, 소울넷을 만들었지?’
그는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지금 같아서는 소울넷 접속을 해제해서 당장 현실로 돌아가도 얼마든지 글람 검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소울넷 접속 해제를 하고 직접 확인해보자.’
결국 그는 소울넷 접속해제를 선택하고야 말았다. 어린아이가 새 장난감이라도 받은 것처럼 소울은 잠시도 기다릴 수 없었던 것이다.
어둠이 장막처럼 그의 눈앞에 쏟아져 내렸다.
* * * * *
“형, 일찍 일어났네?”
“응, 할 일이 좀 있어서. 소망이 너는 무슨 일이 있는데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내일 소환식을 한다고 했잖아? 당연히 소환마법진이 새겨진 은판에 마나를 충전시키려고 일어났지.”
소울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소망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지하실을 향해 걸어갔다.
“서머너즈 길드 본관 지하연무장에 설치하고 있는 마나집적진은 아직 준비가 안 된 거야?”
“오늘 해가지기 전까지 완성해 놓을게. 활성화는 저녁에 와서 하면 돼.”
“라펠소환진이 새겨진 은판은?”
“그건 이미 준비해 놨어.”
“소환마법진이 새겨진 은판은 몇 개나 준비했어?”
“1차로 200개를 만들어 놨어. 하지만 마나가 풀로 채워진 것은 아직 반 밖에 되지 않아.”
“무조건 오늘 저녁에 서머너즈 길드 본관 지하연무장에 가서 마나집적진을 활성화 시켜놓아야겠구나.”
“얼마나 좋은 효율을 보일지는 모르지만 기존의 것보다는 확실히 강력해질 거야.”
“그래야지. 그것 만든다고 들인 돈이 얼만데……. 어쨌든 수고해라.”
소울은 현관을 향해 몸을 돌렸다.
“형도 좋은 하루 보내.”
“응, 너도.”
지하실로 내려가며 소리치는 소망의 인사에 한 손을 들고 흔들며 답을 해준 소울은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규!]
[꾸잉!]
소울이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느낀 까망이와 푸티나가 서둘러 정원을 돌아 그를 향해 다가왔다.
말없이 까망이와 푸티나의 머리를 각각 한 번씩 쓰다듬어 주고 뒷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뒷산을 타고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금세 서머너즈 길드 본관이 눈앞에 나타났다.
자신의 집에서 뒷산을 타고 넘어가면 서머너즈 길드까지 400m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 짧은 거리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 오히려 빙 돌아가야 한다. 가끔은 그가 걸어가는 시간보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이 더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서머너즈 길드 본관은 서울자곡초등학교를 사들여 인테리어를 바꿔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본관을 중심으로 여러 건물이 들어서 있고, 이번에 건너편의 건물들까지 묶어서 서머너즈 길드가 사용하기로 결정하는 바람에 기존에 있는 담과는 별개로 외부에 새롭게 높고 단단한 장벽을 세우기로 했다.
“충성! 마스터 일찍 오셨습니다.”
“아, 수고가 많습니다.”
소울은 순찰을 도는 서머너즈 길드의 경비원들을 만나자 반갑게 인사를 교환했다.
본관 옆에 있는 실내연무장 정문으로 들어간 그는 안쪽의 컨트롤박스를 찾아 지붕의 차단막부터 열었다. 서머너즈 길드 길드원들의 수련을 목적으로 개조된 전 초등학교의 실내체육관은 이제 실내연무장으로 훌륭하게 탈바꿈했다.
밝은 햇빛이 지붕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다. 가만히 살펴보니 조명을 켜지 않아도 안이 충분히 밝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실내연무장을 한번 빠르게 훑어보더니 동서양의 각종 무기와 장비들이 놓여 있는 선반을 향해 걸어갔다.
선반 왼쪽에는 동양의 온갖 종류의 도검(刀劍)과 창봉(槍棒)이 빽빽이 걸려 있었고 오른쪽에는 서양의 중세무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소울은 그중에서 목검을 하나 집어 이리저리 휘둘러봤다. 살며시 고개를 가로 저으며 그냥 내려놓았다.
그 옆에 있는 카타나를 꺼내 휘둘러봤다. 역시 뭔가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 오지 않았다. 있던 자리에 그대로 내려놓고 선반 오른쪽으로 가서 롱소드를 꺼내 휘둘러봤다. 조금 짧은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는 옆에 있는 바스타드 소드를 집어 들었다.
칼라보르가 쓰던 검과 가장 비슷했고 또 길이도 맞는 것 같아 손목을 회전시키면서 가볍게 휘둘러봤다.
붕붕 휙휙!
롱소드 보다는 크고 묵직한 것이 그래도 개중에서는 가장 괜찮은 느낌이 들었다.
‘글람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 따로 바스타드 소드를 하나 맞춰야하나?’
그는 바스타드 소드를 들고 실내연무장 중앙으로 걸음을 옮겼다.
“후우우우!”
가늘고 길게 심호흡을 한번 한 그는 이내 천천히 바스타드 소드를 들어 글람을 펼치기 시작했다.
붕 붕 붕 휙 휙 휙!
위로 들었던 바스타드 소드를 아래로 떨어뜨리면서 생긴 원심력을 손목을 이용해 한 바퀴 돌리자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왔다.
한발 전진하면서 정면을 대각선으로 베고, 떨어지는 바스타드 소드를 손목으로 다시 휘돌리며 한발 전진해서 또다시 대각선으로 벴다.
몇 번 같은 방식으로 정면을 대각선으로 베면서 전진하자 그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똑같다. 중급 영혼체험을 통해 배운 그대로다. 미미하게 차이가 나는 것은 칼라볼그의 몸과 내 몸이 다르기 때문이다. 굳이 칼라볼그가 쓰던 검으로 맞출 필요가 없구나. 그냥 지금의 내 몸에 가장 잘 맞는 검을 선택하여 쓰는 것이 정답이었어.’
처음에 들었던 생각은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선반으로 돌아가서 바스타드 소드를 제자리에 걸어놓고는 왼쪽으로 이동하여 이것저것 자신에게 맞는 검을 골라봤다.
고대 삼국시대에 한반도를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열도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됐다는 환두대도(環頭大刀)를 집어 들었다.
전통공방에서 고대의 검을 현대의 최신 제철제강기술을 이용하여 복원해낸 환두대도는 편도형 직도였다.
팅!
손가락으로 검의 날을 튕겨보자 맑은 소리가 들려왔다.
묵직한 느낌에 적당한 길이가 마음에 들었다.
글람을 쓸 무기를 결정하자 소울은 본격적으로 검법을 펼쳐보기로 했다.
환두대도는 엄밀히 말하면 직도(直刀)이지만 글람 검법의 특성상 도법으로 사용해도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넉넉한 손잡이를 이리저리 움직여보며 실내연무장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후우우우우!”
길게 심호흡을 한번 한 순간, 갑자기 소울의 눈에서 날카로운 예기가 뻗어 나오며 온몸이 긴장으로 급속도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팡!
그의 몸이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앞으로 튀어나갔다.
휙 휘휙 휙휙휙…….
환두대도가 날카롭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오며 그의 몸이 풍차처럼 돌아갔다. 8자를 그리면서 좌우로 대각선을 그려내는가 하면 어느새 그의 몸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사방으로 환두대도의 날을 번뜩였다.
전투에 들어가면 결코 물러섬이 없는 글람 검법의 특성상 소울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며 개인연무장을 원을 그리면서 돌았다.
그의 몸 주변에서 환두대도의 서슬 시퍼런 칼날이 번쩍거리며 폭풍 같은 기세로 전진, 또 전진해나갔다.
글람 검법의 요체는 눈앞의 적을 씹어 먹을 정도의 패도적인 기세와 폭풍처럼 몰아닥치는 연환공격에 있다.
적의 공격이 들어오면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공격까지 더해서 힘으로 짓눌러 버리고 어쩔 수 없이 피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연어가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오르듯 적의 공격을 타고 올라가 몸의 한 부분을 무기처럼 사용해서라도 꼭 한 대 치고 나와야한다.
어떻게 보면 소울과 상성이 전혀 안 맞는 이 검법은 소울이 가지고 있는 내단의 독특한 성향으로 인해 최고의 궁합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상대가 있어야 더욱 강해지는 글람 검법의 특성 상, 소울은 어쩔 수 없이 글람 검법의 일부만을 구사하며 빠르게 검법을 자신의 몸에 맞게 체화시켜나갔다.
미묘한 엇박자와 뭔가 어색하고 미세한 동작의 차이는 그가 검법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피피핑 핑핑 휘위이이잉!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그의 손에서 펼쳐지는 글람 검법은 더욱 완숙한 경지에 들어서고 있었다.
X자 공격, 8자 공격, 풍차공격, 무한질풍 공격 등 글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검법이 쉬지도 않고 연속으로 펼쳐지자 실내연무장의 기류가 크게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소울의 움직임이 다시 한 번 변했다.
글람에다 소울넷 상점에서 구입한 하급 몽크의 체술을 접목시킨 것이다.
어차피 글람은 적의 공격을 피하지 않는다. 그 공격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 치명적인 일격을 퍼붓는다.
그래서 글람을 제대로 익히려면 필연적으로 체술을 배워야 했다. 하지만 글람에서 사용하는 체술은 말 그래도 글람을 완성시키기 위한 보조적인 역할에 불과했다.
그러나 소울은 그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글람에 들어간 체술보다 상위에 있는, 자신의 피 같은 소울넷 포인트를 때려 부어 구입한 몽크의 체술을 굳이 썩힐 필요는 없었다.
다행히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기술을 사서 익힌 순간, 정신과 몸에 자연스럽게 각인되어 버리는 바람에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해오던 기술처럼 한 몸에 동화되어 버린 몽크의 체술은 글람에 자연스럽게 접목이 되어 버렸다. 아니 오히려 글람을 한 단계 높은 경지로 승화시켜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소울은 글람과 몽크의 체술이 완벽하게 자신의 몸에 체화됐다는 것을 깨닫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실험을 준비했다.
“파워스트라이크!”
파아앙!
“파워스트라이크!”
파아앙!
소울은 글람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소울넷 상점에서 구입한 스킬, 파워스트라이크를 사용했다. 연속적으로 사용하자 파워스트라이크는 오러나 마나를 사용하는 대신 자신의 생기를 가져다 쓰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러나 마나를 가지고 있는 기사라면 파워스트라이크를 쓸 때 당연히 오러나 마나를 소모하게 된다. 만약 그런 것이 없다면 아마 잠력을 뽑아 쓸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정제된 오러나 마나가 딱히 없는 소울은 단전에 꽈리를 틀고 있는 내단의 기운 즉, 생기(生氣)가 이를 완벽하게 대신하고 있었다.
‘지금은 상대하는 적이 없어서 그냥 내단의 생기만 소비하게 되는구나. 하지만 상대할 적이 있다면 파워스트라이크를 쓴 이후에 적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생기를 흡수하게 될 거야. 내 예상이 맞는다면 난 적이 존재하는 한, 파워스트라이크를 무한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내단은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기운을 흡수하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고 흡수한 기운을 압축시켜 정제하는 속도도 놀라웠다.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면 기운을 흡수하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겠지만 몬스터로부터 얻게 되는 혼탁한 기운을 압축시키며 정제하는 시간도 꼭 필요한 것이라 무조건 몬스터와 많이 싸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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