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2 제 53 장 - 등용(登用) =========================================================================
소울이 신성한 감독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고 나가자 눈치를 보던 성유나도 잽싸게 인사를 건네고는 그의 뒤를 따라왔다.
“오빠, 잠깐만요.”
“응? 왜?”
“그냥가면 어떻게 해요? 연락처는 주고 가야죠.”
“아! 그렇구나.”
소울은 자신의 머리를 한 대 치고는 그녀와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황금보가 중간에 끼어들어 자신의 명함을 찔러주고 가자 소울은 성유나에게 작게 속삭였다.
“그날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와야 한다. 늦으면 안 돼!”
“네, 알았어요. 꼭 갈게요.”
성유나와 소울은 다시 한 번 손가락을 꼭 걸고는 각자의 밴을 향해 걸어갔다.
올 때는 황금보가 직접 밴을 운전했지만 갈 때는 서머너즈 길드의 홍보부 직원 하나가 와서 운전대를 잡았다.
소울과 황금보는 나란히 밴 안으로 들어가 편하게 의자를 뒤로 눕히고는 축 늘어졌다.
“연예인들이 왜 밴을 선호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이렇게 누워있으니까 정말 엄청 편하네요.”
“요새는 능력자들도 이런 밴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 밴도 능력자를 위한 옵션을 들어 있어서 필드로 바로 사냥 갈 수 있게 뒷좌석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반쯤 누운 자세로 그는 황금보의 말을 듣다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현재 서머너즈 길드의 길드원 숫자가 얼마나 되죠?”
“국내의 F급 소환계 능력자 75명, 해외 각국에서 영입한 F급 소환계 능력자 75명, 소환 능력이 아닌 다른 능력을 가지고 길드원으로 가입한 능력자가 50명입니다.”
“그럼 정확히 200명이네요.”
“그렇습니다.”
“음, 황 부장님이 앞으로 많이 노력해주셔야겠네요.”
“서머너즈 길드를 3대 대형 길드와 비교해서 조금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성장하게 만들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황금보는 소울을 향해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사실 서머너즈 길드에서 길드원을 가려 받고 있어서 그렇지 당장이라도 완전히 문호를 개방하면 들어오겠다는 능력자의 숫자가 결코 적지는 않았다.
“소환식이 언제죠? 모레 맞죠?”
“그렇습니다. 참, 내일은 자선바자회에 가셔야합니다. 정재계의 기라성 같은 실력자들이 다 모이는 곳이니 꼭 참석하세요.”
“모레, 금소희와 성유나가 길드로 찾아 올 거예요. 두 사람을 위한 길드원 계약서를 따로 준비하셔야 할 겁니다.”
“네? 금소희와 성유나가 우리 서머너즈 길드에 합류를 하는 겁니까? 아니 왜요?”
황금보는 소울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로써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금소희와 성유나는 능력자로써 저희 길드에 정식으로 가입하게 됩니다. 그렇게 아시고 준비해주세요.”
“두 사람이 능력자라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한 명은 아직 능력자가 아니지만 곧 능력자로 각성할 겁니다.”
“그럼 지금 마스터께서 금소희와 성유나를 우리 서머너즈 길드로 영입한 거란 말씀이십니까?”
“네, 맞아요.”
“아! 이럴 수가…….”
황금보는 입을 딱 벌리고 놀랐다. 어지간한 일로는 그를 놀라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도저히 그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금소희가 누군가?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다.
그녀를 섭외하려고 재벌이나 대기업에서도 얼마나 고개를 숙이고 비위를 맞추는지 모른다.
그런데 소울은 오늘 금소희를 처음보고 바로 서머너즈 길드에 가입시켜버렸다.
이건 상식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스터는 신입니다.”
“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입니까?”
소울은 황금보의 말에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아니라. 마스터는 영입의 신이라는 말입니다.”
소울은 ‘음악의 신’이나 ‘축구의 신’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영입의 신’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그건 아마 판타지 소설에서도 찾기 힘든 제목일 것이다.
“영입의 신이라는 말도 있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어떤 길드의 스카우터(scouter)가 금소희를 하루 만에 영입을 할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마스터는 무슨 마술을 부린 것입니까? 거기에다 성유나는 또 언제 유혹했습니까?”
“유혹이라니요? 거 참 큰일 날 소리를 하고 계시네요. 전 정정당당하게 영입제안을 해서 힘들게 데리고 오는 거란 말입니다. 이거 왜 이러세요?”
소울의 역정에도 황금보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금소희도 대단하지만 성유나도 요새 방송가나 광고계에서 섭외 대상 1, 2번을 다투고 있는 핫한 연예인입니다. 금소희와 성유나가 동시에 우리 길드에 들어오면 아마 서머너즈 길드에 가입하려는 능력자들의 러시(rush)가 일어나게 될 겁니다.”
“둘의 인기가 그 정도 대단합니까?”
“마스터! 금소희와 성유나입니다.”
결국 황금보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소울은 살짝 인상을 쓰면서 자신의 귓구멍을 후벼 팠다. 그리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금소희는 연예인 생활 접을 것 같고 성유나는 아마 계속 활동을 하려고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황 부장님이 정 변과 잘 상의해서 제대로 된 길드원 계약서를 작성해서 두 사람이 아무 어려움 없이 우리 길드에 잘 적응하도록 해주세요.”
“염려 마십시오. 그 정도야 제겐 일도 아닙니다. 제가 노예계약서에 준하는 계약서를 만들어서 두 사람을 평생 저희 길드에 있게 하겠습니다.”
“지금 그거 농담이시죠? 노예계약서는 절대 안 됩니다. 두 사람이 무슨 바보도 아니고 그런 계약서에 서명을 할 리가 없잖아요?”
“하하하! 농담 맞습니다. 제 마음은 그렇게 해서라도 오래 붙잡고 싶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길드는 원래 한번 가입하면 쉽게 다른 길드로 옮겨 탈수가 없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황금보의 말이 맞다.
능력자협회와 능력개발청, 기존의 대형 길드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만들어진 능력자특별법 길드 관련 시행령은 한번 길드에 가입하면 어지간해서는 다른 길드로 옮겨가는 것이 쉽지 않게 만들어졌다.
물론 그렇다고 길드를 옮기는 능력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중·상급 능력자들은 이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도 얼마든지 길드를 갈아탈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하급 능력자보다 훨씬 대우가 좋은 중·상급 능력자들의 길드의 수평이동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길드에서 이들의 요구를 거의 들어주는 편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미 어느 정도 자신의 자리를 확보한 중·상급 능력자들이 길드를 탈퇴하고 다른 길드로 가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을 그리 선호하지 않았다.
“전 서머너즈 길드를 통해 혼자 잘 먹고 잘 살 생각은 없습니다. 능력과 활약에 맞게 각자의 몫을 분배하고 나눠줘도 얼마든지 길드의 재정은 불어나게 만들 수 있습니다. F급 소환계 능력자들이야 소환수를 가질 수 있게 해준다는 결정적인 조건이 있어서 장기계약을 하는 것이지 그들의 몫을 빼앗아 길드의 배를 부르게 하겠다는 생각은 절대 아닙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결코 그런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잘해줄 것으로 믿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양심에 맞게 가세요. 그럼 길드는 저절로 커집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소울은 황금보가 잘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황금보의 성격을 보니 자신을 배반하지 않는 사람과는 굳이 척을 지려고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물론 자신의 적에게는 아주 냉혹한 면이 있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그런 성격은 길드를 위해서도 과히 나쁘지 않았다.
길드를 운영하다보면 항상 웃음으로만 대할 수 있는 법이 아니라는 것쯤은 소울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길드가 크는 만큼 반드시 적도 생길 것이라고 믿는 것이 당연했다. 아마 그때 황금보의 성격이 빛을 발할 것이다.
“마스터, 금소희와 성유나가 우리 길드로 들어온다는 사실은 언제쯤 언론에 공식적으로 발표할까요?”
“소환식이 끝나고 길드원 계약을 하고 나면 두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그리고 혹시 최악의 경우 두 사람의 소속사에서 태클이 들어오면 얼마가 되었든 간에 위약금 물어주시고 계약 파기시켜도 좋습니다.”
“네? 그건 너무 과하지 않을까요? 위약금으로 수십억 원을 물어줘야 할지도 모릅니다.”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아마 그보다 더한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꼭 위약금을 물어주라는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자세로 소속사를 상대하라는 말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먼저 능력자특별법과 시행령을 잘 아는 정 변에게 한번 물어봐야겠군요.”
“으음,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능력자협회에 능력자로 등록하고 나면 능력자로 활동하기 위해 현재의 고용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특별규정을 본 것 같기도 합니다. 저도 확실히는 잘 모르니까 역시 정 변에게 물어보는 것이 정답이겠네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으로 일어날 일의 파장에 대해 의논했다.
그때, 정일용 변호사한테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여보세요?”
-마스터, 지금 어디십니까?
“네? 광고촬영 끝내고 신사동 능력자협회 서울지부로 가고 있습니다.”
-그럼 강남구 세곡동의 서머너즈 길드 본관으로 와 주십시오.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지금 막 정부에서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대전, 광주, 울산, 7개 대도시에 인접한 각 몬스터 필드 근처에 ‘능력자 특별지구’를 선정했습니다.
“네? 능력자 특별지구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투자한 강남구 세곡동 지역이 지금 길드와 공격대 그리고 파티를 위한 특별구역으로 결정됐다는 말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그리로 가죠.”
소울은 전화를 끊고 곧 운전대를 잡고 있는 홍보부 직원에게 강남구 세곡동에 있는 서머너즈 길드 본관으로 차를 돌리라고 했다.
홍보부 직원은 전직이 혹시 총알택시기사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엄청난 속도를 내며 쏜살같이 차를 몰아 서머너즈 길드를 향해 달려갔다.
창가에 비친 소울의 얼굴이 마치 스마일 인형을 보는 듯 했다.
* * * * *
원래 서머너즈 길드에서 사들인 본관 건물은 서울 자곡 초등학교 건물이었다.
하지만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 자곡로를 기준으로 북쪽이 완전히 초토화되는 바람에 자곡로를 따라 대 몬스터 장벽이 세워진 지금은 강남구 세곡동으로 주소가 바뀌게 되었고 결국 서머너즈 길드의 본관 건물로 변모하게 되었다.
끼이익!
서머너즈 길드 본관 정문에 밴이 도착하자 안쪽에서 검은 제복을 입은 본관 경비원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 줄을 맞춰 섰다.
홍보부 직원으로 별명이 ‘김기사’인 김제동은 서둘러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밴의 뒷좌석 문을 열었다.
소울과 황금보는 밴에서 나오며 김제동의 어깨를 각각 한 번씩 쳐주더니 본관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서머너즈에 영광을! 마스터에게 충성을!”
“서머너즈에 영광을! 마스터에게 충성을!”
“서머너즈에 영광을! 마스터에게 충성을!”
…….
순간 소울은 귀청이 터져 나갈 것 같은 경비원들의 함성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워낙 이들이 소리치는 내용이 충격적이라 손을 한번 들어 흔들어 주고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2층 회의실로 가시죠.”
“그럽시다. 그런데 저 닭살 돋는 구호는 도대체 누가 만든 겁니까?”
“제가 얼핏 듣기로는 현재 우리 길드에 영입된 전 특수부대 출신 장교 중 민사심리전을 담당했던 전략·전술 전문가가 강력하게 주창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민사심리전이요? 아니 우리 길드에 그게 왜 필요합니까?”
“잘은 모르지만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만들었겠지요.”
민사심리전(民事心理戰)은 전쟁 중 특수부대에서 행하는 고도의 전술이자 심리전이다.
그런데 이걸 왜 서머너즈 길드에 도입했는지 소울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국정현 사무총장은 알고 있겠지요?”
“아마 그럴 겁니다.”
소울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은 회의실로 들어가서 직접 만나봐야 확실해질 것 같았다.
“어서 오십시오.”
“마스터, 어서 오세요.”
2층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자 국정현 사무총장과 정일용 변호사가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었다.
“정 변, 국 사무총장, 안녕하세요.”
“오늘 광고 찍는다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간단히 서로 악수를 하고 소울이 자리하자 정일용은 모두 앉으라고 눈짓을 하더니 곧바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소울은 그로인해 닭살 돋는 구호에 대해 묻는다는 것을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의 댓글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선호작, 추천, 쿠폰, 후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