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211화 (211/492)
  • 00211  제 53 장 - 등용(登用)  =========================================================================

    ‘저건 정말 사람의 몸매가 아니네. 인간이라면 저런 몸매를 가질 수는 없을 거야. 혹시 조상 중에 엘프가 있나?’

    남자인 자신도 놀랐지만 여자 스텝들은 모두 하나같이 긴 한숨을 내쉬며 노골적으로 부러운 티를 냈다. 그 옆에서 있는 신성한과 황금보도 감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곧 다들 정신을 차리고 촬영에 들어갔다.

    “컷! 좋았어요. 다음 신(scene)도 한 번에 갑시다.”

    “네.”

    능력개발청 광고를 찍을 때는 광고계의 여왕인 금소희가 워낙 잘 리드를 해줘서 촬영이 어려운 줄 모르고 지나갔다.

    하지만 성유나와 같이 호흡을 맞추면서 광고를 찍자 금소희가 얼마나 자신을 배려하면서 촬영을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성유나가 전혀 노력을 안 하거나 따로 논다는 것은 아니다. 그녀도 최선을 다해 소울과 같이 멋진 광고를 찍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데뷔한지 몇 년 되지 않아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금소희와 같은 정상급 프로의 향기를 내기에는 아직 내공이 좀 모자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울이 금소희와 같이 이미 능력개발청 광고를 한번 찍고 난 이후라 광고촬영에 어느 정도 적응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무수한 엔지(NG)를 내서 오늘 촬영이 이렇게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컷! 좋았어요. 10분만 쉬었다가 다시 갑시다.”

    “네.”

    신성한 감독은 잠시 휴식을 선언하고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황금보가 그때 소울에게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빠르게 속삭였다.

    “성유나의 로드매니저와 얘기해봤는데 오늘 스케줄이 너무 타이트해서 시간을 따로 내지는 못할 것 같다고 합니다. 차라리 지금 잠깐 방으로 들어가셔서 얘기를 나누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요? 할 수 없죠. 그렇게 합시다.”

    “네, 그럼 제가 신호를 보내면 방으로 들어가세요.”

    황금보가 물러나자 소울에게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코디네이터가 다가와 머리를 만지고 얼굴에 분 같은 것을 발랐다.

    소울의 눈이 황금보를 쫓아갔다.

    황금보는 성유나의 로드매니저에게 다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뭐라고 손짓을 하며 말했다. 그러자 로드매니저는 자연스럽게 성유나에게 다가가 그녀에게 귓속말을 했다.

    성유나가 살짝 고개를 돌려 소울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 괜찮으시면 싸인 좀 해주세요?”

    “네?”

    “싸인 받으려고 티셔츠를 가져왔단 말이에요. 싸인 좀 해주세요.”

    “네, 그러죠.”

    역시 여자들의 피에는 여우의 피가 흐르고 있나보다.

    그녀는 앙큼하게도 싸인을 받는다는 핑계를 대고 자연스럽게 소울과 같이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실을 만들었다.

    황금보가 그를 쳐다보며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소울도 그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성유나의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이 방으로 들어가자 스텝들은 밖으로 담배를 피러 가거나 음료수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했다. 그 와중에도 각자 할 일을 찾아 다시 일을 하고 있는 워커홀릭(일중독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여기에다 해주시면 되요.”

    “아!”

    소울은 성유나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자신의 커다란 가방에서 파란색 매직펜과 노란 새 티셔츠를 꺼내자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진짜 자신에게 싸인을 받으려고 준비를 하고 왔는지는 상상도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가 내민 노란 티셔츠에 소울은 커다랗게 싸인을 해줬다.

    “헤헤, 고마워요. 애들한테 자랑해야지.”

    성유나는 방금 전과는 달리 제법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싸인 받은 노란 새 티셔츠를 곱게 접어서 챙겼다.

    “성유나 씨, 제가 뭣 좀 물어봐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아참, 그리고 제가 두 살 어리니까 말 편하게 놓으세요.”

    “그래도 될까요?”

    “물론이죠. 그럼 계속 그렇게 존댓말 쓰시려고 했어요?”

    소울은 그녀의 당돌한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녀의 말에 자극을 받은 그는 당당히 어깨를 피며 말했다.

    “고맙다. 사실은 나도 말 놓고 싶었어.”

    “호호호, 그런데 저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시던데 그게 뭐에요? 저에 대해 뭐가 궁금하세요?”

    성유나는 당당하게 서서 가슴을 쭉 펴면서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의 가슴이 마치 그를 향해 다가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소울은 그녀의 그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등록은 했니?”

    “네?”

    “능력자 등록은 했냐고?”

    “어?”

    그렇게 자신 만만해하던 성유나는 소울의 말 한마디에 순간적으로 움찔하더니 말문이 막히고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는 소울의 뒤에 있는 문을 한번 바라보더니 따지듯이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아무에게도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없는데…….”

    “그냥 우연히 알 수 있었어. 내가 좀 예민하거든.”

    “그 말 정말이에요?”

    성유나는 살짝 수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 정도로 소울의 두꺼운 얼굴 가죽을 뚫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물론이지. 설마 내가 널 스토킹이라도 한 것처럼 의심하는 것은 아니겠지?”

    “정말 스토킹 한 것 아니에요?”

    “뭐라고? 푸하하하하! 내가 왜? 난 오늘 널 처음 보는데……. 네가 능력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 소환수 푸티나와 인사를 했기 때문이야. 푸티나는 나를 제외한 누구와도 절대 인사를 하지 않거든. 그리고 너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널 어떻게 해보려는 것이 아니라 능력자협회에 정식으로 능력자로 등록하고 우리 서머너즈 길드의 길드원으로 들어오라고 영입제안을 하는 거야.”

    “서머너즈 길드원이요?”

    그제야 성유나는 소울의 진의를 파악했는지 굳어있던 얼굴을 피면서 말했다.

    “그래. 내가 서머너즈 길드의 마스터로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지?”

    “네.”

    “지금 서머너즈 길드에서는 은밀하게 길드원을 모집하고 있어. 내가 볼 때 유나는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고 또 우리 길드와도 상성이 잘 맞을 것 같아 영입하려고 했던 거야.”

    “하지만 서머너즈 길드는 신생길드잖아요.”

    “맞아. 신생길드지. 하지만 무조건 큰 길드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야. 자신에게 잘 맞는 길드에 가는 것이 중요하지.”

    “서머너즈 길드와 제가 잘 맞는다는 것은 어떻게 아세요? 아니 어떻게 확신하세요?”

    성유나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소울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없는 스킬이 있었다. 바로 능력과 잠재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스킬이다. 그러니 당연히 다른 사람과는 차별된 영입전략을 사용할 수가 있었다.

    “유나에게는 테이밍 능력 말고도 소환 능력이 잠재능력으로 존재하고 있어. 아마 그런 사실은 모르고 있었겠지?”

    “네? 저한테 소환 능력이 있다고요?”

    “아직 개화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유나에게는 소환 능력이 있어. 당연히 나에겐 그 능력을 각성시켜줄 수 있는 방법이 있고.”

    “정말이세요?”

    성유나는 소울의 말에 크게 놀라더니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옆에서 보니 확실히 다리가 길었다. 소울은 괜히 비교되는 것이 싫어서 살짝 몸을 옆으로 틀었다.

    “대한민국에는 3대 대형 길드, 7대 중소형 길드 그리고 7대 재벌 길드가 유명하지. 하지만 앞으로 우리 서머너즈 길드가 이들의 명성을 다 씹어 먹게 될 거야. 아니 세계 최강의 길드로 우뚝 서는 날이 올 거야. 유나가 이번에 들어오면 길드의 창립멤버가 되는 거야. 회사에서도 창립멤버는 특별히 대우한다는 것 잘 알고 있지?”

    “네.”

    “당연히 유나도 특별대우를 받게 될 거야. 그러니까 괜히 큰 길드 기웃거릴 필요 없어. 이미 자리를 다 잡은 길드에 들어가 봤자 자기한테 돌아올 자리가 어디 있겠어. 그렇다고 남의 자리를 빼앗을 수는 없잖아? 하지만 우리 길드는 이미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이야. 그러니 지금 들어오면 유나는 길드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서 할 수 있을 거야.”

    소울은 얘기를 하다가 보니 자신의 말에 자신이 취해 잔뜩 흥분해버렸다. 하지만 성유나는 그런 소울의 자신감에 찬 모습에 뭔지 모를 강한 카리스마를 느꼈다.

    “제가 정말 길드의 중책을 맡을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내가 된다면 되는 거야. 서머너즈 길드의 마스터가 바로 나잖아.”

    “아!”

    “오빠만 믿어! 내가 소환 능력도 각성시켜주고, 길드의 중책도 맡을 수 있도록 힘껏 밀어줄게. 푸티나가 내 소환수라는 것만 봐도 모르겠어?”

    “진짜 오빠만 믿고 가면 되는 거예요?”

    “물론이지. 오빠만 믿어!”

    역시 고금을 막론하고 여자에게는 ‘오빠만 믿어!’ 이상의 효과적인 드립이 없었다.

    성유나는 혼자만 간직하고 있던 자신의 비밀을 떡 하니 밝혀낸 소울을 처음에는 무슨 스토커를 보듯 하더니, 이제는 마치 신실한 신도가 구원자를 바라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소울을 쳐다보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귀여운 푸티나의 주인이라는 말에 그녀는 그냥 홀라당 넘어가고 말았다.

    일단, 소울의 선심공약성이 농후한 말에 성유나가 넘어가자 그 뒤의 일은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성유나는 능력자협회에 정식으로 등록을 한 뒤, 서머너즈 길드에 길드원이 되기로 약속했다. 그녀의 정식 길드원 가입은 당연히 그녀에게 소환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날로 정했다.

    소환 능력을 각성시켜 주는 것도 아니고 그녀에게 소환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정도야 소울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물론 소울은 소환식이 있는 날, 성유나의 소환 능력을 각성시켜 줄 것이다.

    소울과 성유나가 새끼손가락을 걸고 굳은 약속을 하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신성한 감독이 갑자기 방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겁니까? 광고촬영 안할 겁니까?”

    신성한은 소울과 성유나가 마치 오누이처럼 딱 붙어서 웃고 있는 모습을 보자 마치 자신의 마누라라도 뺏긴 괴랄 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머? 죄송해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그러게 말이야.”

    소울과 성유나는 신성한의 싸늘한 눈초리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여유 만만하게 방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방밖으로 나오자마자 황금보에게 쪼르르 달려가더니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황금보 감독님 맞으시죠?”

    “응. 내가 황금보야.”

    “저, 감독님 영화 전부 다 봤어요. 정말 감동이었어요. 진작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내가 이렇게 정장으로 쫙 빼입고 다니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날 잘 못 알아봐.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거나 요새 아이돌들은 거의 못 알아본다고 봐야지.”

    황금보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 같은 포즈로 성유나가 자신에게 아양을 떠는 것을 지켜봤다.

    당연히 황금보에 대한 얘기는 소울이 그녀에게 직접해줬다. 이제는 감독이 아니라 서머너즈 길드의 홍보부 부장이라는 얘기도 덧붙여서 말이다. 그러니 앞으로 한솥밥을 먹게 됐다고 생각하는 성유나가 황금보에게 살갑게 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모습에 신성한 감독의 가슴이 시커멓게 타 들어갔다.

    하지만 신성한도 역시 프로라서 광고촬영 자체를 말아먹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에서 하는 짓만 봐도 소울이 지금 절대 갑(甲)이라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아니 소울을 어떻게 해보기에 앞서 황금보의 벽을 넘는 것조차 불가능해보였다. 그러니 을(乙)은 일찌감치 정신 차리고 빨리 광고촬영이나 끝내는 것이 현명한 처세였다.

    덕분에 남은 촬영은 단 한 번의 엔지도 없이 스트레이트로 빠르게 진행됐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촬영이 끝났다.

    “컷! 좋았어요. 모두 수고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성유나의 가는 허리를 한손으로 껴안아 자신을 향해 바짝 붙인 채 엄지손가락을 위로 올리는 포즈를 하고 있던 소울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오빠, 수고하셨어요.”

    “어! 그래. 너도 수고했다.”

    그녀는 이미 소울을 오빠라고 부르고 있었다. 벌써부터 같은 길드 소속이라는 동질감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신성한 감독이 다 같이 회식을 하러 가자는 말에 소울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이나 되는 스텝들을 다 데리고 가서 호구 잡힐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신성한이 하는 짓을 봐서는 스텝들을 부추겨서 최고 등급의 한우를 먹으러 가자고 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마 그는 그렇게라도 복수 아닌 복수를 하고 싶을 것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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