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8 제 52 장 - 상태창이 보여! =========================================================================
나중에는 소울이 옆에서 보기 민망할 정도까지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하지만 신성한도 만만한 놈은 아니었는지 끝까지 넉다운(knock down) 되지 않고 잘 버티고 있었다.
그런 신성한의 독기는 그래도 칭찬해줄만했다.
그래도 역시 이 싸움에서 오롯이 빛나는 것은 황금보였다.
서머너즈 길드의 홍보부장인 황금보의 씩씩한 모습을 보자 좀 대견하기도 하고, 믿음직스럽기도 하고 해서 앞으로 그의 활약이 어떨지 기대가 됐다.
“이제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오늘 우리 마스터와 같이 찍게 될 상대배역은 누구고 또 어떻게 찍을 건지 설명해봐!”
“네,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성한은 기합이 바짝 든 훈련병처럼 그의 앞에서 차렷 자세를 유지하면서 빠릿빠릿하게 말하고 움직였다.
“첫 번째 촬영은 금소희와 함께 능력개발청의 광고를 찍을 예정입니다.”
“흐음, 그래? 금소희면 나쁘지 않네.”
황금보의 얼굴이 대번에 펴지는 것을 보면 그녀가 어떤 여배우인지 가히 짐작이 갔다. 황금보는 잠시 신성한의 말을 더 듣다가 곧 소울에게 쪼르르 달려와 오늘 촬영에 대해 친절하고 정확하게 설명했다.
“우와, 금소희요?”
“하하하, 그렇습니다. 마스터! 능력개발청에서 이번에 제대로 힘 좀 준 것 같습니다.”
“금소희라면 내가 생각하는 바로 그 미녀 여배우 말인가요?”
“맞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미녀이자 대체불가의 여배우인 금소희입니다.”
황금보는 소울의 눈이 살짝 풀려가는 것을 보고 역시 마스터도 남자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대한민국에서 사내로 태어난 놈 치고 금소희를 보고 입 꼬리가 올라가지 않는 놈은 없을 것이다. 있다면 그건 무조건 여자이거나 호모들일 것이 분명했다.
“얼마 전에 연하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하던데…….”
“그렇지요. 하하하, 잘하면 마스터와도 좋은 인연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크흠, 황 부장님도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십니까?”
황금보의 낮고 은근한 말투에 소울은 그만 살짝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하지만 소울의 말과는 달리 그는 결코 싫은 티는 내지 않았다.
금소희와 광고를 같이 찍는다는 것은 연예인이 아닌 민간인에게 로또에 당첨되는 것보다 더한 행운이었다.
소울은 황금보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촬영에 대한 얘기로 다시 돌아오자 가능하면 빨리 끝내고 금소희와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는 말로 자신의 의사를 대변했다. 역시 소울은 제사보다 제삿밥에 관심이 더 많았다.
덜컹!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얘기를 나누던 소울의 고개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청아한 목소리를 향해 저절로 돌아갔다.
문이 열리자 청바지에 긴팔 티셔츠를 입은 긴 생머리의 여자 하나가 연신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며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소울이 아니라 그의 옆에 있는 신성한 감독을 향해 오는 것이었지만 소울은 마치 그녀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미친 미모가?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다더니……. 과연 명불허전이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유정아 인줄로만 알았는데 유정아보다 더 예쁜 여자가 이렇게 내 앞에 나타나다니…….’
금소희는 신성한 감독을 향해 고개를 숙이더니 황금보 부장을 보자 깜짝 놀라 박수를 쳤다.
“어머! 이게 누구야? 황 감독님 아니세요?”
“소희야, 오랜 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니?”
금소희는 대번에 황금보를 알아보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금소희가 아직 신인으로 뜨지 못하고 있을 때, 황금보가 감독한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했던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네, 저야 덕분에 잘 지냈지요. 그런데 오늘 광고를 황 감독님이 찍는 거예요?”
“아니다. 여기 신 감독이 찍을 거야.”
“그럼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먼저 인사부터 드려라. 서머너즈 길드의 마스터이자 오늘 너와 같이 광고를 촬영할 주인공이신 이소울 마스터이시다.”
금소희는 소울을 전혀 못 알아보다가 그제야 그가 누군지 기억이 났는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금소희에요.”
“안녕하세요. 저는 다행히 처음은 아니네요. TV나 영화로 많이 봤으니까요. 반갑습니다. 이소울입니다. 그리고 금소희 씨의 열렬한 팬입니다.”
“호호호, 어머 제 팬이셨군요. 사실은 저도 이소울 마스터의 열렬한 팬이에요.”
“네? 제 팬이시라고요?”
“물론이죠. 어떻게 대한민국을 지키시는 멋진 우리의 영웅이자 능력자인 이소울 마스터의 팬이 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소울은 순간 영혼이 몸을 빠져 나가 구름위로 붕 뜨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 미인의 칭찬은 정말 혼이 나갈 정도로 무서운 것인가 보다.
하지만 다행히 유정아를 자주 보는 관계로 미녀에 대한 면역이 조금 남아있어서 금세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금소희의 칭찬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이번에 일어난 리자드맨 웨이브와 랩터 웨이브 때 전 정말 큰 감동을 받았어요. 이소울 마스터가 몬스터를 하나씩 때려잡을 때마다 저도 주먹을 꼭 쥐고 허공에 같이 마구 휘둘렀거든요.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되고 무서웠지만 끝까지 지켜보며 응원했어요. 이소울 마스터 같은 분이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아! 아니 뭐 꼭 그렇게까지…….”
이번 칭찬은 도저히 어떻게 방어를 할 틈조차 없었다.
그냥 그녀의 칭찬 한 방에 얼굴에 가득 미소가 생겨나고 절로 웃음이 돌았다.
무엇보다 그녀의 말은 진실해보였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서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덕분에 소울의 금소희에 대한 호감은 수직으로 급상승하고 말았다.
“두 분 잠시 얘기를 나누고 계세요. 우리는 저쪽에 가서 잠시 촬영에 관한 의논 좀 하고 오겠습니다.”
“네? 아니, 지금 촬영을 해야…….”
“어허, 신 감독, 잠깐 이쪽으로 와서 얘기 좀 하자니까?”
“아! 네!”
황금보가 눈치껏 소울을 위해 신성한 감독을 끌고 가자 소울은 황금보에게 특별보너스를 지급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혹시 더블 웨이브를 막을 당시, 어디 몸이 다치거나 하진 않으셨죠? 얼마나 많은 몬스터가 몰려오는지 방송을 보는 제 간이 다 쪼그라들었어요. 그땐 제가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몰라요.”
“금소희 씨가 걱정해주신 덕분에 저는 전혀 다치지 않았습니다.”
다쳤어도 절대 안 다쳤다고 얘기를 할 상황이었다. 남자가 미녀 앞에서 어떻게 약한 모습을 보이겠는가? 더군다나 모든 남자들의 로망인 금소희 앞에서는 절대 다칠 수 없었다.
소울은 옆에서 보기에도 입 꼬리가 턱에 걸릴 정도로 좋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리고 금소희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금소희는 진짜 소울의 열렬한 팬이었던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팬이다 보니 서로에게 호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고, 얘기가 즐겁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빠르게 지나갔다.
능력개발청의 광고촬영은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부드럽게 진행됐고 눈 깜짝할 사이에 촬영이 끝나버렸다.
물론 여기에는 황금보 홍보부장의 살벌한 개입이 따로 존재했지만 당사자인 소울과 금소희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광고촬영에 집중할 수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소울과 금소희는 나란히 서서 스텝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정말 두 분이 그렇게 서 계시니 참 잘 어울리십니다.”
“네?”
“진짜 잘 어울리세요.”
황금보의 말에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서로 흘깃 쳐다보고는 얼굴을 붉혔다.
서로에게 나 호감 있다고 얘기하는 표정이라서 황금보가 아니더라도 현장에 있는 스텝들은 모두 잘하면 일 나겠다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벌써 점심시간이 다 됐네요. 마스터, 옆에 있는 일식집에 제가 자리를 잡아 놓았습니다. 오늘 점심으로 일식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금소희 씨는 일식 괜찮으세요?”
“네, 저 일식 좋아해요.”
“잘됐네요. 그럼 우리 바로 내려갈까요?”
소울과 금소희가 나란히 밖으로 나가자 황금보는 그들을 따라가려는 신성한의 어깨를 잡았다.
“너 왜 이렇게 눈치가 없냐? 내가 도시락 배달시켜 줄 테니까 넌 그냥 여기서 먹어라.”
“네.”
신성한은 황금보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가 상대하기에 황금보는 아직 넘사벽이었다.
황금보는 순간적으로 변하는 그의 눈빛을 보며 신성한의 본질을 알아채고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정말 자신에게 날을 세우는 날에는 진짜 바닥에서 손가락을 박박 긁게 만들어 줄 용의가 있었던 것이다.
금소희의 로드 매니저는 황금보가 신성한에게 하는 행동을 보고 이미 그의 의도를 눈치 채곤 조용히 황금보의 뒤에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황금보는 문을 열고 나가면서 금소희의 로드 매니저의 팔을 잡아끌었다.
“빨리 뛰어가자.”
“네.”
두 사람은 급히 달려가 옆 건물에 있는 일식집으로 먼저 들어갔다.
그들은 소울과 금소희가 일식집에 들어오자 마치 이곳의 매니저라도 되는 것처럼 두 사람을 예약해 놓은 룸에 안내를 하더니 조용히 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홀에 있는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일식집 매니저를 불렀다.
“특실에 스페셜 코스로 두 개 넣어주시고, 여기는 모듬 스시와 사시미 대자로 하나 주세요.”
“네.”
“요 옆의 스튜디오로 제일 싼 런치스페셜 도시락 하나 보내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일식집 매니저가 정중히 인사를 하고 몸을 돌리자 황금보는 앞에 앉아 있는 금소희의 로드 매니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 나 누군지 알지?”
“네, 황금보 감독님이십니다.”
물을 한 잔 마신 그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넌지시 물었다.
“이름이 뭐냐?”
“정은동입니다.”
“몇 살이야?”
“스물일곱입니다.”
“금소희 로드 매니저 한지 얼마나 됐냐?”
“2년 됐습니다.”
“그럼 어지간한 사정은 잘 알고 있겠네?”
“그렇습니다.”
황금보는 주변을 살짝 둘러보더니 은근한 어조로 작게 물었다.
“전에 사귀던 연하 남자친구하고는 완전히 끝난 거냐?”
“네, 확실히 정리됐습니다.”
“진짜야?”
“그렇습니다.”
정은동의 말에 황금보는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두 사람이 만일 서로 좋아해서 사귄다면 소속사에서 어떻게 나올 것 같아?”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소울 마스터와 사귄다면 아마 소속사에서 무척 좋아할 겁니다. 그 자체로 이미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네, 그렇습니다.”
“은동아!”
“네.”
“앞으로 형이라고 불러라.”
“네, 형님.”
황금보는 말 한마디로 정은동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정은동은 느닷없이 나타난 굵은 동아줄 하나를 거머쥐게 됐다.
“싫다는 것을 억지로 호텔방에 넣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둘이 서로 좋아하면 잘 사귀게 돕자는 거다. 그러니 우리 서로 정보는 공유하도록 하자.”
“물론입니다. 형님.”
“가끔 너한테 스케줄이나 받으면 된다. 그 이상은 안 바래. 그리고 나중에 잘 안 되도 네 이름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회사에서 잘리거나 어디 갈 데 없으면 나를 찾아와라.”
“감사합니다. 형님.”
“그래. 앞으로 잘해보자.”
“네, 형님.”
정은동은 황금보에게 꼬박꼬박 형님소리를 붙여가며 깍듯하게 대했다.
사실 말이 로드 매니저이지 쥐꼬리 같은 월급을 받으며 온갖 잡일을 다하는 것이 로드 매니저의 현실이었다.
자신의 시간은 거의 찾아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뭔가 특별히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담당하는 스타를 위해 죽어라고 운전하고, 온갖 사소한 잡일에다 짜증까지 다 받아내야 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아마 졸면서 운전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면 그게 이 일을 하면서 유일한 배운 것일 것이다.
그러니 그의 제안을 정은동이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황금보 정도 되면 그냥 대놓고 소속사 사장에게 전화해서 금소희의 스케줄을 받아 낼 수도 있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자신에게 다가온 황금보의 호의가 고맙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편, 벌써부터 부하직원의 과잉충성으로 인해 일식집의 특실이자 밀실에 둘 만 남게 된 두 사람은, 1인분에 수십만 원이나 하는 일식집 특별코스를 느긋하게 즐기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두 사람은 그들의 앞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게 될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서로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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