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207화 (207/492)
  • 00207  제 52 장 - 상태창이 보여!  =========================================================================

    논현동의 타임 스튜디오는 아침부터 청소를 하고, 촬영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광고촬영 전문 스튜디오답게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필요한 모든 장비와 도구를 완벽하게 준비하는 모습은 역시 프로페셔널다웠다.

    대한민국 최고의 광고 감독으로 이름을 날리며 요새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신성한 감독은 다시 한 번 콘티를 확인하고 작가들과 오늘 어떻게 촬영을 하는 것이 좋을지 얘기를 나눴다.

    “이제 오실 때가 된 것 같은데…….”

    누군가 흘리듯이 던지는 말에 신성한 감독과 작가들의 고개가 일제히 문을 향해 돌아갔다.

    다들 아닌 척해도 사실은 모두 오늘의 주인공을 어서 빨리 만나보고 싶었던 것이다.

    다행히 그들의 마음이 통했는지 기다리던 사람이 도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십니다.”

    “그래?”

    신성한 감독은 반사적으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쳐다봤다.

    창밖을 내다보던 방한일 조감독은 연예인들이 주로 타고 다니는 밴에서 기다리던 주인공이 내리는 것을 확인하자 얼른 달려가서 문부터 열어줬다.

    덜컥!

    드디어 문이 활짝 열리자 눈처럼 새하얀 전투슈트를 입고 한손에 새끼 곰의 손을 잡고 서 있는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아!”

    문이 열리자 어두웠던 스튜디오는 대번에 환해졌다.

    스튜디오 안에 있던 이십여 명의 스텝들의 눈빛이 문을 향하자 그들의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튀어 나왔다.

    후광처럼 밝은 빛이 사내의 모습의 뒤에서 비춰지자 그의 실루엣은 마치 지상에 강림한 천사처럼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이소울 능력자 맞으시죠?”

    “네, 그렇습니다. 제가 이소울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방한일 조감독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저희 신성한 감독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네. 혹시 제가 늦은 것은 아니겠죠?”

    “아닙니다. 원래 저희들은 이렇게 일찍 와서 미리 준비를 다해놓는 게 일입니다.”

    “그렇군요.”

    문이 닫히고 방한일 조감독을 따라 안으로 들어온 소울은 수십 명의 스텝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자신을 쳐다보자 조금 쑥스러워졌다.

    그러나 이미 신문, 방송국, 잡지사 기자들과 인터뷰를 몇 번 해봐서 그런지 다행히 금방 분위기에 적응해나갈 수 있었다.

    “꺄악! 저 새끼 곰이 바로 그 비보잉 발광 곰이야!”

    “우와! 너무 귀여워!”

    “세상에 어쩜 저렇게 귀여울 수가 있지?

    소울은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여자들의 날카로운 비명소리에 놀랐다. 그러나 곧 그녀들이 푸티나를 쳐다보며 지르는 비명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자 피식 한번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신성한 감독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소울입니다.”

    신성한 감독은 악수를 하면서 예리한 눈으로 소울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봤다.

    평범한 얼굴이다.

    재기(才氣)가 눈에 번뜩이지도 않았고, 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말 그대로 흔하디흔한 얼굴상(相)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 그 무서운 몬스터를 수도 없이 때려잡는 능력자라고 하니 위화감이 물 밀들이 밀려들었다.

    “일단 이쪽으로 앉으시죠?”

    “네, 감사합니다.”

    소울은 그가 안내해준 의자에 앉아 주변을 빠르게 훑어봤다.

    TV나 영화에서만 보아오던 온갖 종류의 카메라와 조명, 촬영장비 등이 그의 눈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다.

    감독, 조감독, 작가, 조명, 메이크업, 헤어디자이너, 코디네이터 등 뭔 놈의 직업은 그렇게 많고 파트는 왜 또 그렇게 많이 나눠져 있는지…….

    그의 눈으로는 이놈의 요지경 같은 작업들이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확실히 촬영이란 영역은 그에게 미지의 세계가 분명해보였다.

    하지만 곧 잠시의 호기심도 금방 불이 꺼지고 말았다.

    솔직한 심정으로, 그는 지금 광고료를 제외한 광고촬영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냥 빨리 찍고 집에 가던가, 서머너즈 길드에 가서 일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이자, 신성한은 점차 혼자 만들고 혼자 빠져 놀았던 위화감에서 벗어나 그를 하나의 상품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생각은 곧 어떻게 하면 그를 잘 포장해서 그럴 듯하게 광고를 찍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바뀌어져 갔다.

    그러자 평소에 하던 데로, 그의 명령조의 투박한 말투가 서슴없이 터져 나왔다.

    “이소울 씨!”

    “네?”

    “저쪽으로 가셔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먼저 받고 오세요.”

    “아! 네.”

    말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소울은 그 짧은 사이에 톤과 뉘앙스가 확 변해버린 신성한 감독의 말투에 좀 당황스러웠다.

    원래 사람이 돈이 없으면 눈치가 늘게 마련이다.

    어려웠던 가정형편으로 인해 평생 남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온 소울에게 신성한 감독의 말투 속에 실린 감정을 눈치 채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사실 말이 되지 않았다.

    거기에다 그는 이제 예전의 무능했던 인간도 아니고 D급 소환계 능력자였다.

    일반인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해진 그의 오감은 소울의 생각에 확신을 더해줬다.

    그러나 그는 곧 이곳이 신성한 감독의 본진(本陣)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냥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얼굴에 쓴 미소만 흘렸다.

    ‘하긴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50% 먹고 들어간다는데……. 에이, 그냥 빨리 찍고 가자.’

    그놈의 광고 한번 찍는다고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로부터 각각 30억이나 되는 광고료를 각각 받아 챙겼다. 모두 합치면 60억이나 되는 거금이니, 사람이 돈을 받아먹었으면 적어도 하루 정도는 꾹 참고 돈 값을 해야 하는 게 마땅할 것이다.

    소울은 그래도 사람의 기본적인 도리는 잘 알고 지키는 이 시대의 개념 청년이었다.

    ‘가만, 그런데 황 부장은 왜 안 올라오는 거지?’

    서머너즈 길드가 만들어지면서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국정현은 길드 마스터인 소울과 서머너즈 길드를 위해 길드 홍보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인재를 발탁하여 포진 시키고 아침에 소울이 머물고 있는 신사동 능력자협회 서울지부로 홍보부의 부장을 보내왔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자신이 굳이 신성한 감독과 같이 얘기를 할 필요도 없었다.

    꿩 잡는 것이 매라고, 전에 잘나가던 영화감독 출신이라고 했으니 같은 감독끼리 붙여놓으면 알아서 잘 해결할 것 같았다.

    “참, 저 새끼 곰은 조금 화려하게 분장을 했으면 좋겠네요.”

    “푸티나는 오늘 광고와 전혀 무관하게 그냥 제가 데리고 왔습니다. 광고 찍을 생각 전혀 없습니다.”

    “네? 아니 왜요?”

    “일단 그런 내용은 계약서에 전혀 들어가 있지 않거든요.”

    “그건 지금 잘못 생각하고 계신 겁니다. 평범한 얼굴의 이소울 씨를 더욱 친근한 이미지로 돋보이고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 저 새끼 곰입니다. 마스코트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안합니다. 그리고 새끼 곰이 아니라 푸티나입니다.”

    “제가 볼 때 오늘 광고의 성패는 저 새끼 곰이 촬영을 하느냐 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꼭 같이 찍어야 합니다.”

    “푸티나는 신성한 감독이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푸티나라는 이름을 가르쳐줘도 자꾸 새끼 곰이라고 부르자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짜증이 치솟았다.

    신성한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소울의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그는 저 새끼 곰을 보는 순간, 이미 강한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던 오늘 촬영은 새끼 곰을 꼭 집어넣고 찍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이소울 씨, 이건 저만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정말 저 새끼 곰을 집어넣으면 그림이 확 살아서 기가 막힌 광고가 나올 거예요.”

    신성한의 말은 더 이상 소울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소울은 말이 안 통하는 신성한 감독과 소통을 하려는 생각을 그냥 깨끗이 버렸다.

    ‘이 사람도 어지간히 꽉 막힌 사람이네. 어째 사람 말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왜 자꾸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거지?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울이 짜증이 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안 그래도 작은 키에, 평범한 편에도 들어가지 못한 얼굴이 콤플렉스처럼 작용을 하고 있는 소울이었다. 그런데 신성한 감독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역린을 툭 건드리고 말았다.

    그러니 그가 이제 아무리 좋은 소리를 해도 소울의 귀에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일 따름이었다.

    다행히 키는 5cm 정도 더 커져서 어느 정도 콤플렉스를 극복했지만, 아직 평범한 얼굴은 아니었다.

    거기에다 신성한 감독은 푸티나를 쓰게 되면 내야하는 추가 광고료나 초상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고 있었다.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고 이익을 얻으려는 도둑놈 같은 심보가 소울은 더욱 맘에 들지 않았다.

    사실 1억만 더 준다고 했다면 소울은 일이 어떻게 됐던 간에 당장 고개를 흔쾌히 끄덕였을 것이다.

    덜컹!

    “하하하하! 안녕들 하십니까? 제가 왔습니다. 이 황금보가 왔어요.”

    “어? 황 감독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이때, 마치 자기 집 문을 발로 뻥 차고 들어오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등장하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예전의 홍콩영화에 단골로 출연했던 푸짐한 몸집의 액션스타와 아주 비슷한 얼굴과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촬영장에서 몇 년 동안 굴러먹던 방한일 조감독이 제일 먼저 황금보를 알아보고는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황금보는 그를 향해 가볍게 손을 한번 들었다 내리고는 소울에게 다가와 90도 각도로 고개부터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지요?”

    “황 부장님, 밖에서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주차를 하다가 아는 여배우를 만나 잠시 얘기 좀 하느라고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뭐 그건 괜찮아요. 대신 지금부터 저기 신성한 감독과 얘기 좀 해보세요. 나하고는 말이 잘 안 통하네요. 그리고 어지간하면 빨리 끝냅시다.”

    “네, 마스터.”

    황금보는 소울의 말이 다 끝나고 나서야 고개를 들고는 신성한을 쳐다봤다.

    “성한아! 오랜 만이다.”

    “황 감독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제 영화는 안 찍습니까? 그리고 부장이라니요?”

    “하하하, 그걸 다 설명하자면 말이 길어질 테니까 간단히 얘기할게. 지금은 여기 내가 모시고 온 서머너즈 길드의 마스터를 위해 일하고 있다. 여기 내 명함 받아라.”

    황금보는 한참 후배인 신성한에게 명함을 주면서 거침없이 반말을 했다. 그렇지만 영화계의 대선배인 그에게 신성한은 감히 뭐라고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황금보는 영화계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영화감독으로 대박을 친 영화는 없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중박은 되는 영화 몇 편을 찍은 영화감독이다.

    영화계에서 나름 잘나가는 황금보는 광고 촬영만을 하는 광고감독 신성한이 감히 자신도 감독이랍시고 거들먹거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사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영화계로 진출해서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영화감독들이 떨어져 나와 기웃거리는 곳이 요사이 광고계였다.

    광고감독으로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다는 신성한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명언처럼 영화계에서 제법 탄탄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황금보와 비견될 정도는 아니었다.

    ‘이거 골치 아프게 생겼네. 황 감독도 나름 한 성격 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설득을 하지?’

    아직 신성한은 포기를 한 것이 아니었다.

    “황 감독님, 저 좀 잠깐 보시죠?”

    “황 부장이라고 불러라. 지금은 그 직책으로 일하고 있으니 말이야.”

    “네, 황 부장님.”

    신성한은 초반부터 황금보의 카리스마에 눌려버렸다.

    그러니 얘기가 제대로 될 턱이 없었다.

    곧 황금보의 노호성이 폭포수처럼 터지며 신성한은 그에게 야단 아닌 야단을 맞아야했다.

    “네가 돈 내냐? 그리고 계약서 네가 다시 쓸래? 오늘 능력자협회와 능력개발청에서 너한테 주는 돈이 얼마인지 알면서 그딴 소리를 해?”

    “아니 그게 아니라 정말 저 새끼 곰을 같이 넣으면 그림이 잘 나올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우리 마스터가 푸티나를 껴서 찍기 싫다고 하잖아. 그리고 네가 마스터의 소환수를 찍으면 광고료 더 줄 것도 아니잖아. 안 그래? 혹시 너 우리 마스터와 광고 찍기 싫어서 일부로 그러는 거냐?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해. 차라리 그냥 내가 찍을게.”

    “아, 아닙니다. 절대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제발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신성한은 폭풍처럼 쏟아지는 황금보의 호통소리에 완전히 멘탈에 금이 가고 감성이 너덜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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