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2 제 51 장 -A New Stage =========================================================================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위험한 생각입니다. 이런 일은 정말 시작이 중요합니다.”
정일용이 소울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그러자 소울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정 변이 우리 대한민국의 정치계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데요?”
“네에?”
“말로는 아무 것도 안 바뀌잖아요? 그것보다 일단 한번 시도라도 해보게 내버려두세요. 여기 협회장님이나 지부장님이 알아서 잘하시겠죠. 우리는 선거 때 후보나 잘 살펴보고 제대로 표나 찍으면 될 것 같네요.”
“그, 그런…….”
생각해보면 소울의 말도 그리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정일용도 피가 뜨거운 한국인이라 고질적인 정부의 무능과 부정부패, 썩은 정치인들의 행태에 분통이 나서 예민하게 나왔던 것뿐이다.
“아직 전 정치에 대해 잘 모릅니다. 하지만 훌륭한 정치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선거운동에 참여하라는 것도 좋지만 일단 제대로 된 능력자 출신 정치인을 찾는 것이 우선 아니겠습니까? 정말 그 사람들이 제대로 정치를 하면 당연히 저도 힘껏 돕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결국 같은 놈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저는 바로 손 떼겠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협회장께서도 사실은 같은 말을 하고 계신 겁니다. 저희는 벌써 세 명의 뛰어난 인재를 확보했습니다. 나름 신경 써서 뒷조사도 했고 정치이념과 사상도 확실하게 검증했다고 자부합니다. 무엇보다도 능력자 출신에다 저희 생각에 적극 찬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단 이들부터 지원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렇군요. 그 말이 사실이라면 거절하는 것은 옳지 않겠네요.”
“처음부터 거창한 것까지는 바라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정도면 같이 사진 몇 장 찍는 것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저도 능력자이니 저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그 정도는 도와드려야지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입니까? 설마 저보고 사진 몇 장 찍어달라는 말을 하시려고 여기까지 두 분이 오신 거예요?”
소울의 말에 백두원과 천명훈이 동시에 서로의 눈을 쳐다봤다. 그러더니 먼저 천명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한민국의 능력자협회는 사실상 3대 길드, 7대 길드 그리고 7대 재벌 길드 이렇게 17개의 길드가 이끌어간다고 봐야합니다. 그런데 이 안에서도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길드에 관한 얘기가 시작되자 소울은 그 어느 때보다 쉽게 집중을 할 수 있었다.
“쉽게 말씀을 드리자면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대의 대형길드인 고구려, 사신, 히어로즈 이렇게 3대 길드와 그 뒤를 바짝 뒤쫓고 있는 중대형 길드인 백제, 칠성, 화랑, 서울, 월야, 천마, 네버다이 이렇게 7대 길드는 저희 능력자협회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그 뿌리가 대한민국 7대 재벌인 산성, 신경, 미래, 엔지, 포스칸, 로테, 한징 길드는 현재 능력자협회와 사사건건 충돌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능력자협회와 반목을 하고 있는 겁니까?”
“이들 7대 재벌 길드들이 현 정부와 국회, 정치계와 경제계 등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
천명훈의 말을 듣자 소울은 그들이 자신에게 뭘 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호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게 한쪽을 선택하라고 하신다면 전 재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의 재벌과 대기업은 처음부터 공정한 경쟁이라는 것을 모르는 종자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제 앞길을 가로 막는 놈들을 별로 좋아하게 될 것 같지 않네요.”
“하하하,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이정도면 충분한 대답이 됐나 모르겠네요?”
“충분합니다. 앞으로 저희가 적극적으로 밀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습니다.”
정일용은 변호사다. 그래서 사람의 말을 들을 때, 항상 법적 책임이 있는지, 책임 소재가 누구에게 있는지부터 파악을 한다.
소울이 의외로 확실한 대답은 회피한 채 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면서도 묘하게 상대를 만족시키는 것을 보고 그는 깜짝 놀랐다.
‘마스터가 의외로 이런 식의 협상과 대화에 재능이 있는 것 같구나.’
하지만 그건 정일용의 오해였다. 소울의 진짜 속마음을 알게 되면 아마 조금은 생각이 달라졌을 것이다.
‘내가 언제 재벌이나 대기업을 한번이라도 상대해봤어야 알지. 누가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내가 지금 어떻게 알겠냐? 나도 그냥 귀동냥으로 주어들은 것을 말하는 것뿐이니까 나중에 뭐라고 하지들 마라. 3대 길드와 7대 길드에서 나한테 떡 한쪽 준 적이 없는데 내가 미쳤다고 그놈들 편을 들겠냐? 그리고 7대 재벌 길드가 나한테 무슨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그놈들과 척을 져야하지? 싸우려면 나 빼고 네놈들끼리 박 터지게 싸워라! 난 그냥 이기는 놈이 우리 편이다. 에이, 립 서비스 해주는 것도 정말 더럽게 피곤한 짓이네.’
세상에 아가리만 터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로는 뭐든 못하겠는가?
그놈들의 말을 들어보면 마치 당장이라도 예수가 재림이라도 한 줄 알 것이다.
하지만 막상 행동을 살펴보면 결국 그놈이 그놈이고, 그 나물에 그 밥인 것이다.
소울은 일단 말로만 떠드는 사람은 믿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뭐라고 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좀 이기적으로 변한 성격을 가지게 된 소울은 근본적으로 남의 일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신의 앞가림을 하기에도 인생이라는 놈은 너무 무겁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3포 세대에서 5포 세대, 아니 이제는 7포 세대가 되면서 그 안에서 허우적대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삶이었다.
이제 간신히 그 지긋지긋한 가난과 7포의 늪에서 벗어났는데 쓸데없는 남의 알력 싸움에 자신이 피해를 보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원래 세상의 모든 일은 상대적이다.
예를 들어, 팔레스타인의 무장 병은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테러리스트이지만 팔레스타인들에게는 영웅이다.
반대로 이스라엘의 군인들은 이스라엘 국민들에게는 자신들을 지켜줄 소중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형제와 자매를 무참히 죽인 원수일 뿐이다.
이렇게 모든 것은 상대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들이 뭐라고 자신에게 감언이설로 떠들어봐야 결국 서로의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을 하는 이기주의 새끼들처럼 보일 뿐이었다.
사실 대한민국 최대의 대형길드라는 3대 길드나 뿌리가 재벌인 7대 재벌 길드 그리고 그 중간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7대 길드가 그에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결국 자신을 도와주고 이익이 되는 놈이 선한 놈이고, 자신에게 악한 짓을 하고 방해하는 놈이 나쁜 놈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분법적(二分法的) 논리로, 흑백논리(黑白論理)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사실 그게 편하다. 친구가 아니면 적밖에 없으니 얼마나 나누기 쉬운가?
하지만 그건 철부지 애들이나 하는 생각이다.
이제 나이가 한 살이라도 더 먹었다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상을 선인과 악인으로 나누게 된다면 지구에는 인간 자체가 멸종하게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누구의 눈에는 선인도 얼마든지 악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능력자협회 회장 백두원과 서울지부 지부장 천명훈은 소울의 말에 크게 고무되어 돌아갔다. 아마 그들은 소울이 자신들의 편이 됐다고 좋아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소울이 생각하는 편이라는 개념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정 변, 수고했어요.”
“아닙니다. 마스터께서 수고가 더 많으셨지요. 지난 일주일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천만에요.”
두 사람은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아 물을 따라 마시며 잠시 휴식을 가졌다. 그런데 정일용 변호사를 보니 아까부터 자꾸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혹시 저한테 뭐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습니까?”
“저……. 다른 게 아니고요. 리자드맨 포상금 있지 않습니까?”
“그게 왜요?”
“괜찮으시다면 아직 투자하지 않은 큰 덩어리가 몇 개 있는데 거기에다 투자하면 어떨까요?”
“네? 그러니까 이번에 제가 번 광고료 40억과 포상금 200억 그리고 리자드맨 포상금 1000억을 부동산 투자하게 내놓으라는 말입니까?”
“뭐 꼭 그런 뜻은 아닙니다. 사실 돈이 있으면 꼭 사놓으면 좋을 것 같은 부동산이 남아 있어서 말입니다.”
“하아, 이거 우리 부동산 투기 너무 심하게 하는 것 아닙니까?”
“투기라뇨? 그건 아니지요. 몬스터의 위협으로 인해 못살겠다고 짐 싸서 나간 사람들이 내놓은 부동산을 사는 것이 왜 투기란 말입니까?”
“그런가요?”
소울은 묘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정일용은 슬쩍 그의 눈빛을 피하면서도 뒤로 빠질 생각은 없어보였다.
“어디 한번 얘기나 들어봅시다. 도대체 어떤 부동산인데 그래요?”
“사실 이번에 제가 확실한 정보를 하나 입수했습니다.”
“그게 뭔데요?”
“며칠 안으로 우리가 투자한 강남구 세곡동 지역이 길드와 공격대 그리고 파티를 위한 특별구역으로 설정된다고 합니다.”
“네? 그게 정말이에요?”
“정말입니다.”
“어디서 난 정보입니까?”
“제가 누구한테 정보를 입수했는지는 정보제공자와의 약속 때문에 밝힐 수 없지만 1주일 안으로 결판이 난다고 합니다. 특별구역으로 설정만 된다면 그 지역 안에서의 개발은 거의 무제한에 가깝다고 합니다.”
“오! 그렇게 되면 정말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오르겠는데요?”
“그냥 오르는 정도가 아니라 분명히 폭등할 겁니다. 그것도 우리가 상상했던 정도의 폭은 훨씬 넘어가는 정도가 될 거예요.”
“정말 그렇게만 됐으면 좋겠군요.”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유정아 박사님도 같은 정보를 얻었다는 것을 제가 확인했다는 사실입니다.”
“흐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유정아에게 들어간 정보라면 아마 거의 확실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투자하는 지역의 부동산은 사실 길드와 관련해서 알차게 사용할 수도 있으니 미리 사놓는다고 딱히 손해 볼 일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투자할 부동산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일단 이게 제일 큰 덩어리 입니다.”
그는 미리 준비를 했는지 서류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강남구 세곡동의 지도와 각종 관련사진을 보여줬다.
매물은 대기업에서 만든 해리슨포드 테라스하우스 아파트 단지였다.
총 11개동, 199세대로 프리미엄까지 붙어서 평균 10억 원 이상을 호가하며 거래되던 테라스하우스였다.
산술적으로 따져 봐도 199세대면 총액이 1990억이나 하던 이곳이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 반에 반값으로 떨어졌다. 그 마저도 반 이상은 일시불이 아니라도 좋으니 제발 사달라는 조건이었다.
이곳은 원래 뒤쪽은 산이고 주위에는 영구임대 아파트, 공공임대 아파트, 분양아파트 등 골고루 둘러싸여 있었다.
그래서 일부 주민은 조금 살다가 나가야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몬스터 웨이브 이후로 자곡로를 중심으로 대 몬스터 장벽이 생기는 바람에 자곡로 이북과 서쪽 너머의 아파트들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나라에서 몬스터의 우리로 변하기 전에 다 헐어버리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이제 주변에는 더 이상 높은 아파트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 뒷산이 원래 이렇게 숲이 울창한 곳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마스터도 아시다시피 몬스터 필드와 가까운 곳일수록 나무와 풀이 성장하는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지지 않습니까? 아마 그런 이유 때문에 이렇게 큰 나무들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사진과 동영상을 보자 혹시 아마존에서 찍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긴 그런 현상으로 인해 요새 차원의 균열에서 마나가 흘러나온다는 소문이 돌고 있기는 하더군요.”
“정말 소문대로 마나가 인체에 유익한 것이라는 사실만 증명되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부동산 투자는 가히 황금알을 낳는 투자가 됐을 텐데……. 참 아깝습니다.”
“지금도 그것에 못지않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네? 아! 그, 그거야 그렇죠.”
“차차, 시간이 해결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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