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201화 (201/492)

00201  제 51 장 -A New Stage  =========================================================================

그 모습에 지동현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보더니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쳤다.

“그럼 500억을 드리겠습니다.”

“법정에서 봅시다.”

“안녕히 계세요.”

소울과 정일용이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걸어 나가자 그제야 지동현은 입술을 꽉 깨물면서 소리쳤다.

“1000억을 일시불로 드리겠습니다.”

회의실 밖으로 나가려던 소울과 정일용의 몸이 순간, 그대로 딱 멈췄다.

소울이 잽싸게 고개를 돌리더니 지동현 청장의 말을 받아쳤다.

“1000억 받고, 1500억을 15년에 걸쳐 나눠서 지급해주세요. 그리고 저희가 신청하는 군단을 지원할 수 있게 해주시고요.”

“좋습니다. 하지만 군단까지 입맛대로 고르는 것은 곤란합니다. 대신 2, 4, 5, 12군단 중 하나를 고르시면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약속하겠습니다. 당연히 정부에서도 최대한의 지원을 보장할 것입니다.”

소울과 정일용은 서로의 눈을 마주보더니 일단 포상금 문제는 넘어가기로 눈빛을 교환했다.

“포상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죠. 하지만 북한의 군단 지원에 대한 약속을 어떻게 믿습니까?”

“어떤 길드가 3군단이나 7군단을 맡을지 모르지만 결정이 나게 되면 그들과 계약한 최종계약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아! 그 최종계약서를 보고 다른 길드와 비교해서 판단하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먼저 신청서를 한번 줘보세요. 그리고 만약 2, 4, 5, 12군단 중 하나를 지원하게 된다면 능력개발청에서 얼마나 지원이 가능한지, 또 우리 길드가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세요.”

“좋습니다.”

소울과 정일용은 지동현 청장의 대답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동현 청장과 백인천 과장도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백인천 과장의 가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서류를 읽어보며 하나씩 꼼꼼하게 살피고 물어보면서 경우의 수를 따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소울과 정일용은 황해남도 해주시에 있는 4군단을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일단 가계약을 맺도록 하지요.”

“좋습니다. 최종계약은 다른 길드의 최종계약서를 확인한 후 하도록 하지요?”

“물론입니다.”

지동현 청장은 현재 소울이 가지고 있는 높은 인지도와 명성이 무척 부담스러웠다.

그가 말 한번 삐끗하게 하면 자신의 자리가 당장 위태로울지 모를 정도로 소울은 빠르게 거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마 능력개발청의 광고가 나가기 시작하면 그런 현상은 더욱 커질 것이다.

“먼저 포상금 문제부터 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1000억은 일시불, 1500억은 매년 100억 씩 15년에 걸쳐서 지불한다는 계약서입니다. 여기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네.”

정일용은 미리 준비한 서류를 꺼내 지동현에게 내밀었다.

그걸 보고 지동현은 자신이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줘야하는 포상금이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억울하지는 않았다.

원칙적으로는 포상금을 일시불로 줘야 했지만, 이렇게 5분의 2만 먼저 주고 나머지 5분의 3은 15년으로 나눠서 매년 지급하기로 했으니 능력개발청의 입장에서는 한꺼번에 예산을 쏟아 부어야 하는 악수(惡手)에서 벗어난 셈이다.

무엇보다 소울이라고 하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능력자가 대한민국의 영웅으로 우뚝 서 있는 상황에서 그와 척을 지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웠다.

사실 15년에 걸쳐 매년 100억씩 지불하는 정도는 현재의 능력개발청의 예산으로 봤을 때 그리 큰 부담은 아니었다. 지동현 청장이 아쉬운 소리를 했던 것과는 달리 능력개발청은 이 정도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예산을 가지고 있었다.

역시, 세상엔 믿을 놈 하나 없었다.

“포상금은 언제 지불하실 계획이십니까?”

“그건 바로 지급해드리겠습니다. 백인천 과장님!”

“네, 청장님.”

“이소울 길드장의 은행계좌로 바로 넣어드리도록 하세요.”

“네, 청장님.”

그 사이 신색을 회복한 백인천은 멀쩡한 표정으로 돌아와 능력개발청에서 가져온 은행업무용 기기를 사용해 소울에게 천억 원이라는 거금을 바로 쏴줬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까 한 짓도 사실은 전부 연극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오마이갓! 1000억 원이 내 계좌에 한 번에 들어오다니……. 완전히 한 방의 블루스네? 역시 돈이 들어오니까 힘이 난다. 아주 좋아! 그렇다고 해도 북한군의 1개 군단을 지원하고, 그 지역의 몬스터를 토벌하고, 이권을 챙기는 것은 좀 더 신중하게 접근을 하는 것이 좋겠다.’

소울은 어마어마한 액수의 포상금이 자신의 은행계좌로 들어오자 가슴이 다 벌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오늘의 일을 계기로 정부와 능력개발청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형길드들과 어떻게 엮이게 될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다만 정일용 변호사는 막연히 앞으로 좀 피곤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물론 어떤 식으로 견제와 압박, 경쟁과 방해가 들어올지는 그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빨리 이 일이 해결되어 천만다행입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서로 잘해보자고 한 일이 중간에 있었던 허물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덮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역시 공무원은 얼굴이 두껍고 뻔뻔했다.

방금 전까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이미 몽땅 잊어버린 듯, 지동현과 백인천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소울과 무지하게 친한 척을 해댔다.

옆에서 지켜보면 둘이 혹시 죽마고우(竹馬故友)가 아니냐고 물어 올 것만 같았다.

온갖 사탕발림과 아부신공 그리고 띄워주기가 난무했다. 마지막에는 ‘우리가 남이가?’하며 씨알도 안 먹히는 조크를 씨불여댔다.

정말 천억만 입금을 안 시켰어도 냉정하게 떼어냈을 텐데, 그래도 거금을 지급해준 사람들이니 오늘 하루 정도는 꾹 참고 넘어가주기로 했다.

백인천이 소울에게 달라붙어 있을 때, 지동현은 정일용과 어떻게든 친해지려고 애를 썼다. 소울에게 반골기질이 보이자 아무래도 말이 좀 통해 보이는 정일용과 친해져서 끈을 이어놓으려는 생각 같았다.

이들의 친화력이 장난이 아니어서 나중에 이들이 떠날 때에는 혹시 원래 우리들이 예전부터 이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을까 헷갈릴 정도였다.

“그럼 안녕히 들어가세요.”

“이 길드장, 나중에 같이 술 한 잔 합시다.”

“네, 청장님! 조심히 얼른 가세요.”

“언제든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제게 연락해주십시오. 24시간 365일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인천 과장님! 살펴가세요.”

진드기 같이 붙어대는 두 사람을 간신히 떼어내 돌려보내자 소울과 백인천은 등에서 진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능력자협회 백두원 협회장과 천명훈 서울지부 지부장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지동현 청장과 백인천 과장 때문에 아직 이 자리에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는 잠시 잊고 있었다.

“우리 잠깐 앉아서 얘기 좀 할까요?”

“네. 그러죠.”

소울과 정일용은 지동현 청장과 백인천 과장에게 시달리느라 좀 피곤했다. 하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대한민국 능력자협회 협회장인 백두원과의 대화를 거절할 배짱은 아직 없었다.

네 명의 사내가 다시 회의실 의자에 앉았다.

백두원은 그들의 눈치를 보더니 이내 본론을 꺼냈다.

“피곤하게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괜찮겠죠?”

“물론입니다. 저희도 그게 좋습니다.”

“그럼 용건을 말하겠습니다. 중과세에 의무만 가득한 능력자들의 권리와 이익을 회복하고, 보장받기 위해 우리 대한민국 능력자협회와 각 지부는 이번에 정치세력을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네?”

“아!”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한다고 하더니 백두원은 정말 거두절미하고 돌 직구를 팍 던졌다.

소울과 정일용은 백두원의 말에 크게 놀랐다. 그리고 괜한 얘기를 들었다는 생각이 했다. 어째 이 얘기를 듣고 나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뭔가 억지로 해야 할 것이 생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그가 하는 말을 들었고, 눈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소울의 입장에서 절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차라리 능력개발청의 청장인 지동현이 편하지, 같은 능력자에다 자신이 속한 단체이자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될 능력자협회의 협회장인 백두원은 무척 부담스럽고 껄끄러운 상대였다.

“정치세력을 만든다면 신당이라도 창당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일단은 능력자 출신의 정치가를 지원해서 선거를 통해 승리로 국회의원의 숫자를 늘려보려고 합니다.”

“혹시 저에게 바라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선거운동에 참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죄송합니다만 그건 좀 어렵겠습니다.”

소울은 이전투구의 양상을 가진 대한민국의 정치에 참여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괜히 정치라는 진흙탕에 들어가 봐야 썩은 오물에 악취만 맡고 잘못하면 자신까지 썩어서 문드러질 가능성이 높았다.

딱 잘라 거절하는 소울의 말에 백두원은 설마 이렇게 대놓고 거절할 줄은 몰랐던지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천명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협회장님이 원래 좀 돌 직구 스타일이십니다. 원래 큰일을 하는 사람들은 작은 일에 일일이 신경을 쓰기 힘들어서 배경설명 같은 것을 잘 안하지요. 이소울 길드장에게 선거운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가 지원하는 후보자와 사진 몇 장만 찍어달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말이라는 것이 ‘아’다르고 ‘어’다르다. 결국은 같은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천명훈의 말은 쉽게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소울을 대신하여 정일용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취지는 잘 알겠습니다. 불합리한 능력자특별법을 뜯어 고치고, 능력자들이 기존의 기득권층의 압력에서 벗어나 새로운 신흥세력으로 단단히 자리를 굳히려는 의도도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을 저희에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뭐죠?”

“정치를 하려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앞으로 정치세력을 만들면 그것으로 대한민국에서 무엇을 하실 작정이십니까?”

“네? 그거야 당연히 능력자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아!”

백두원은 아까처럼 능력자의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말을 하려다고 뭔가를 깨닫고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이제야 정일용이 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능력자만을 위한 정치세력화는 결국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눈에 핏발을 세우고 있는 현재의 기득권층과 다를 바가 없다.

능력자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대의명분에 너무 집착하다보니 그동안 사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했다.

능력자만을 위한 정치세력을 과연 일반 시민들은 어떻게 볼까? 아마 고운 시선이 되진 않을 것이다.

당장은 능력자협회와 각 지부의 지원과 도움으로 능력자 출신 정치가를 국회의원에 당선시키기도 하겠지만 정치세력의 이념과 목표가 분명하지 않다면 결국 언젠가는 바닷가의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

“제가 아직 거기까지는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능력자들이 혜택은커녕 불합리한 취급을 받는 게 그저 억울하고 분해서 능력자들을 비호할 세력을 만드는 데만 몰두했네요. 정일용 변호사의 말을 듣고 보니 역시 대한민국이라는 큰 그릇을 먼저 생각해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대한민국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썩은 정치세력을 일소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정치세력을 만드시겠다면 저도 적극 동참할 의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능력자만을 위한 정치세력화라면 좀 곤란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정일용의 말에 백두원과 천명훈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때 소울이 가볍게 손을 위로 들고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전 좀 생각이 다릅니다. 그런 말 백날 해봐야 바뀌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정치인들 중에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생각해보면 협회장님의 생각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능력자들을 위한 정치세력화 좋네요. 일단 처음에는 그렇게 하나, 둘씩 뭉치다가 나중에 정말 정치세력이라고 부를 정도로 세를 불린다면 신당이라도 하나 창당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부정부패 척결이나 썩은 정치세력의 일소도 뭐 힘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얀 고양이던 검은 고양이던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에 이득이 된다면 능력자만을 위한 정치세력이 등장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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