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0 제 50 장 - 광란(狂亂) =========================================================================
지동현은 두 손을 들어 그들을 만류하며 백인천의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잠시 고정하시고 일단 좀 앉으세요. 내가 이제부터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먼저 이 얘기를 들으시고 난 후, 어디 가서 함부로 말을 퍼트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밀은 지켜져야 그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능력개발청 청장 지동현이 정색을 하고 말하자 그제야 백두원과 천명훈도 마시던 와인 잔을 내려놓고 진지한 자세를 취했다.
‘어라? 뭐지? 이거 정말 뭐가 있는 모양이네?’
소울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뭔가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정일용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의 신호에 정일용은 슬그머니 일으킨 엉덩이를 의자에 도로 붙였다.
“백 과장이 얘기를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백인천 과장은 지동현 청장을 향해 고개를 한번 숙이더니 곧 자신이 가져온 서류가방, 일명 007가방이라는 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잠금장치를 푼 뒤 가방을 열자 안에서 ‘대외비’라고 쓰인 서류들이 쏟아져 나왔다.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한 장씩 대외비 서류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게 뭐죠?”
소울은 북한의 지도가 그려져 있는 서류를 보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백인천을 바라봤다.
백인천은 아까와는 달리 아주 신중한 어조로 설명을 시작했다.
“북한은 현재 사실상 붕괴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아시다시피 평양과 개성 그리고 함흥에 차원의 균열이 생긴 이후,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한 북한은 지도층이 몬스터 웨이브로 몰살로 당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각 군벌을 중심으로 사분오열(四分五裂)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으음.”
“함흥 필드에 대 몬스터 장벽을 빠르게 세워 적절히 대처한 것을 제외하면, 평양 필드와 개성 필드는 현재 레어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평양은 북한의 수도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각 군벌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몬스터를 소탕하고 있습니다만 개성은 벌써 레어화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제가 받을 포상금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소울은 곧바로 핵심을 찔러 들어갔다.
“조금만 제 얘기를 들어보시면 아마 큰 흥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요? 좋습니다. 말씀하세요.”
백인천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소울은 조금 더 인내심을 가지기로 했다.
그의 목소리가 다시 회의실을 울렸다.
“북한의 군단은 중국을 마주보고 압록강의 신의주에서부터 두만강 끝, 함경북도 온성까지 8군단(평안북도 염주), 10군단(량강도 혜산시), 9군단(함경북도 청진)이 주둔해있고, 비무장지대를 따라 황해남도에서 강원도까지 4군단(황해남도 해주시), 2군단(황해북도 평산), 5군단(강원도 평강군), 1군단(강원호 회양군)이 주둔해있습니다.”
“…….”
“평양 서쪽에 3군단(남포특별시), 북쪽에 11군단(평안남도 덕천), 남쪽으로 12군단(황해북도 사리원)이 자리해 있고, 함흥에 7군단(함경남도 함흥)이 있지요. 현재 북한의 모든 군단은 서로 알게 모르게 우리 정부와 비밀협정을 맺은 상태이며 대한민국의 은밀한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왜 비밀협약 같은 것을 맺었습니까? 그냥 이번 기회에 통일을 하면 좋지 않습니까?”
“그거야 일반 사람들의 생각이지요. 기득권층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급격한 변화를 원하지 않고 있어요. 북한주민이 남한으로 내려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쓸데없는 예산낭비에다 통일비용까지 들어가면 대한민국의 국력이 소모될 것이고 강남의 집값과 땅값이 폭락되어 큰 손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소울은 백인천의 말을 듣자 괜히 속에서 열불이 터져 올랐다. 하지만 기왕 들어주기로 한 것, 일단 꾹 참고서 조금 더 그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평양의 서쪽, 남포특별시의 3군단과 함흥에 주둔하고 있는 7군단은 몬스터 웨이브 초반에 우리 정부에 발 빠르게 지원을 요청하여 현재는 대한민국과 완전히 밀착관계가 되었습니다. 물론 다른 군단도 각각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그동안 우리가 꾸준한 지원을 해서 영향력을 확대해 놓은 상태라 그들도 이제 우리 정부의 눈치를 볼 정도가 됐지요. 하지만 문제는 개성 필드가 레어화 되는 과정에서 황해북도 평산에 주둔한 2군단이 극심한 피해를 받아 거의 와해되기 일보 직전에 몰렸다는 겁니다. 더불어 개성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4군단, 5군단, 12군단도 몬스터로 인해 피해가 극심해서 제법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그래서요?”
“정부는 이런 북한의 어려움을 그냥 지켜볼 수가 없어서 결국 특단의 대책을 세우게 됐습니다.”
“특단의 대책이요?”
“바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대 길드와 7대 길드 그리고 7대 재벌길드와 함께 북한의 각 군단을 지원하기로 한 겁니다.”
“네에?”
소울은 그제야 이 사람들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려고 하는 지 알 것 같았다.
“지금 저희 저한테 북한에 있는 군단 하나를 맡아 지원하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건 지원을 맡는 길드에서는 아주 큰 기회가 될 것입니다. 군단에 대한 물적 지원은 정부와 저희 능력개발청에서 할 것이고 길드에서는 사실상 몬스터 사냥과 퇴치에만 전념하면 되거든요.”
“그렇게 해서 길드가 무엇을 얻게 되는데요?”
“각 군단이 실효 지배하는 지역에 대한 각종 이권과 개발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각 군단의 지도부와 의논해서 지방정부를 구성하고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아!”
소울과 정일용은 백인천의 말에 크게 놀랐다.
이건 지금 대형길드를 북한으로 보내 북한을 통치하라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또한 국가 안의 국가, 나라 안의 나라인 영지를 세우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처음에야 대형길드들을 통해 몬스터를 잡고 해당 지역의 군벌을 지원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군단 수뇌부가 아무리 무력을 쥐고 흔들어도 결국 대한민국의 지원을 뒤에 엎은 대형길드에 의해 점점 권력을 빼앗기게 될 것이 틀림없다.
이건 일종의 ‘트로이의 목마’ 작전인 셈이다.
사실 사람의 힘으로는 쉽게 당해낼 수 없는 능력자들로 구성된 대형길드야말로 이런 일에 적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일이 실제로 진행이 되면 아마 온갖 부정부패와 불법이 판을 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치안을 확보하고 개발이 진행되면 그 뒤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쌀과 군대를 끌고 올라와서 자연스럽게 영지를 흡수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쉽게 말해서 정부는 지금 북한이라는 계륵을 대형길드의 손에 넘겨서 손 안대고 코를 풀 생각을 하고 있었다.
“…….”
“…….”
잠시 회의실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 주제 자체가 무척이나 민감했기 때문에 어쩌면 이런 모습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었다.
소울과 정일용도 깊이 생각에 잠겼다가 머릿속에서 대충 정리를 마치고 고개를 들었다.
“2군단을 맡아서 지원해주십시오.”
“2군단을 말입니까? 개성일대가 레어화 되는 과정으로 인해 붕괴 직전인 군단을 우리가 맡아서 어떻게 도우라는 겁니까?”
“정부에서 적극 지원을 할 예정이니 사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곤란하다면 4군단이나 5군단 아니면 12군단이라도 괜찮습니다.”
소울과 정일용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동시에 미미하게 가로를 젓자 소울이 입을 열었다.
“일단 제가 먼저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현재 3대 길드, 7대 길드 그리고 7대 재벌 길드는 어느 군단을 맡기로 했습니까?”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럼 전혀 신청을 안했다는 말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이미 신청서는 제출했습니다.”
“그들이 어느 군단을 맡아서 돕기로 신청했습니까?”
“…….”
소울은 백인천 과장의 눈동자가 자신의 007가방을 향해 빠르게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간파했다.
그는 곧바로 손을 뻗어 백인천 과장의 가방을 잡아 자신의 앞으로 당겼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몇 장의 서류를 꺼내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어?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 여기 있군요.”
마치 서류가방이 자신의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에 깜빡 속아 자신의 가방을 빼앗겼다가 도로 찾은 백인천 과장이 소울의 손에 들린 서류를 확인하자 얼굴이 하얗게 변해갔다.
“정 변, 이것 좀 보세요. 다들 제1 희망지로 남포특별시에 있는 3군단과 함흥에 주둔한 7군단을 선택했네요.”
“아마 그 두 군데가 제일 꿀을 빨기 좋은 곳이었나 봅니다.”
“제2 희망지로는 대부분 평안남도 덕천의 11군단과 강원도 회양군의 1군단을 써냈어요.”
“제3 희망지에 압록강과 두만강을 끼고 있는 8군단, 10군단, 9군단을 써냈는데 그나마도 거의 없네요.”
“우리보고 맡으라는 2군단이나 4군단, 5군단, 12군단에는 단 한 개의 길드도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역시 전혀 찾아볼 수가 없군요. 이 말은 결국 생색은 있는 대로 내면서 실제로는 그 어떤 길드도 맡으려고 하지 않는 골칫덩이를 우리한테 떠넘기려는 속셈이네요.”
“그것도 줘야하는 포상금 2,500억 원을 주지도 않고 이걸로 어떻게 때워보려 속임수를 썼군요. 이게 과연 우리가 받을 포상금과 비교가 되기나 합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린 그냥 능력개발청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소송에 들어가기 전에 지금까지 잡은 리자드맨의 숫자를 더욱 확실하게 조사해봐야겠습니다. 적당히 해봐야 호구로 알고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겠네요. 아마 제대로 조사를 하게 되면 오천 마리쯤은 더 잡았다고 나올 겁니다.”
“그럼 포상금이 3,000억은 되겠군요.”
소울과 정일용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에 백인천은 얼굴이 하얗다 못해 이제는 아예 파랗게 질려버렸다.
지동현 청장은 백인천이 꼼수를 쓰다 결국 자멸하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죄송합니다. 백인천 과장이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요. 성공하면 넘어가고 실패하면 모든 실수를 백인천 과장에게 넘기며 이렇게 나서려는 것이 처음의 계획이셨을 테니 말입니다.”
정일용의 목소리에 날이 단단히 선 게 회의실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뻔히 눈에 보이는 개수작에 결국 분개하고 만 것이다.
만약 소울이 백인천 과장의 가방에서 각 길드의 신청 상황을 요약한 서류를 찾지 못했다면 일이 어떻게 돌아갔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소울과 정일용은 지동현과 백인천이 괘씸했다.
“너무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일단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생각하시는 것처럼 정부의 계획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정부에서도, 능력개발청에서도 현재 평양과 개성 필드에서 빠져나간 몬스터들이 빠르게 북한 전역으로 흩어지고 있는 현상을 장기적인 관점으로 볼 때 아주 위험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대형길드로부터 신청을 받아 각 군단을 지원하게 하고, 신청자가 없는 군단에는 좀 더 많은 혜택과 지원을 책정해 신청자를 확보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걸 지금 저보고 믿으라는 말씀이십니까?”
“사실이니까요.”
소울의 말에 지동현 청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대답했다.
“잠깐만요. 지금 저희들은 북한에 있는 군단을 맡아 돕기 위해 여기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얘기의 핵심을 자꾸 다른 곳으로 가져가지 마세요.”
“저희가 그런 거액의 포상금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이것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건 아니지요. 일단 저한테 포상금을 주겠다는 겁니까? 말겠다는 겁니까? 그것부터 대답해주세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포상금 보다 이번 프로젝트에 각종 이권과 혜택을 충분히 챙겨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은 그 반대입니다. 포상금과 북한 군단의 지원문제는 전혀 별개의 일입니다. 먼저 포상금을 최대한으로 책정해주세요.”
소울이 일단 한 발짝 물러서는 것처럼 보이자 지동현 청장은 일단 그의 미끼를 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액수를 먼저 얘기하지는 않았다.
“도대체 얼마를 원하십니까?”
“당연히 전액을 원하지요. 얼마를 줄 수 있습니까?”
“300억을 드리겠습니다.”
“일어나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소울은 지동현의 말에 더 이상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정일용도 같이 일어났다.
============================ 작품 후기 ============================
헉! 벌써 200회가 됐네요. 여러분의 애정과 관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유쾌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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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15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