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199화 (199/492)

00199  제 50 장 - 광란(狂亂)  =========================================================================

얼마나 열심히 쏴댔는지 총열이 휘어지고 녹아버려 중기관총을 땅바닥에 던져버린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소울은 유정아를 통해 끊임없이 공급되는 보급품을 통해 언제나 기름칠을 잘해 놓은 새로운 중기관총을 들고 또다시 람보 흉내를 내고 돌아다녔다.

누구를 위한 분노인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랩터에 대한 분노인가?

혹시 과거에 찌질 했던 자신의 기억에 대한 분노일까?

아니면 사람을 잡아먹는 몬스터에 대한 본능적인 적개심일까?

소울은 그동안 자신의 가슴속에 쌓인 모든 분노를 이번 전투를 통해 다 풀어버리기라도 하듯 광분해서 군중산을 마구 싸돌아 다녔다.

그리고 소울이 지나간 자리는 비릿한 혈향과 랩터의 처절한 비명 그리고 음산한 죽음만이 가득 채워진 채, 군중산을 북망산(北邙山)으로 바꾸어가고 있었다.

밤새도록 이어진 랩터의 구슬픈 비명소리가 점점 줄어들어 갈 때, 어느덧 군중산의 동녘이 밝아오고 있었다.

무서운 죽음의 공포를 견디고 밝은 날을 선사받은 랩터들은 일제히 숨기고 있던 몸을 일으켜 북쪽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누가 뭐라고 얘기를 해도 멈추거나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저 빠르게 군중산에서 멀리 떨어지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랩터의 DNA에 소울에 대한 공포가 조용히 새겨지기 시작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랩터들이 절대 어두운 밤에는 아무리 밝은 가로등 아래라도 인간에게 접근을 하지 않는 기이한 특성이 생겨버린 것이 말이다.

이후, 군장산에는 더 이상 몬스터 무리가 자리를 잡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도 그런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다만 몬스터의 피로 산 전체를 씻어 내린 군장산만이 숨을 죽이며 한 명의 광기어린 인간의 지랄발광에 벌벌 떨어야만 했다.

* * * * *

더블 웨이브가 드디어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이제는 산발적으로 등장하는 리자드맨과 랩터 무리를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 그리고 국방부가 손을 잡고 길드와 파티를 만들어 보내거나 특수부대를 동원해서 토벌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 발버둥을 쳐도 단 한 명의, 폭발적인 인기를 가진 화제의 주인공에는 감히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는 바로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영웅이자 수호자가 된 소울이다.

국내의 매스컴을 비롯하여 해외의 유력 언론사들도 군장산에서 벌인 소울의 시원하고 통쾌한 전투모습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로 인해 소울의 주가는 정말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랩터킹을 두 마리나 잡았고, 군장산에는 랩터킹이 이끄는 거대한 무리 한 갈래를 홀로 나서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혔다. 살아남은 랩터들이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는 모습이 전 세계로 중계가 됐다.

그 어떤 능력자도 몬스터 무리를 도망치게 만든 적이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능력자인지 느낄 수 있었다.

일각에서는 이제 겨우 E급 소환계 능력자에게 너무 지나친 스포트라이트를 비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소울이 D급 소환계 능력자로 승급했다는 능력자협회 서울지부의 발표가 전해지자 이제는 그 누구도 감히 이런 엄청난 성장속도를 보이는 능력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토를 달지 못했다.

그들도 상위 능력자가 될 것이 분명한 소울과 척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제 시대의 아이콘이라는 이름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일명 ‘대세몰이’를  해가고 있었다.

위상이 수직으로 상승하자, 소울은 제일 먼저 능력자협회와 능력개발청에 본격적인 갑질을 시작했다.

능력자협회와 능력개발청으로부터 각각 받은 광고계약금 10억 원을 위약금조로 20억 원씩 물어주고 계약을 파기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 당장 능력자협회와 능력개발청에서 난리가 일어났다.

1시간도 못되어 두 단체의 전권을 위임받은 특사가 달려오고 온갖 미사여구로 그를 띄워주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소울은 광고 같은 것은 그냥 찍기 싫어졌다면서 위약금을 주고 끝내자고 말하고, 그들은 ‘위약금은 필요 없으니 그냥 얼마를 원하느냐?’, ‘제발 광고를 찍어만 달라.’며 애걸복걸했다.

그가 당당하게 나오면 나올수록 특사들의 태도는 더욱 공손해져갈 뿐이었다.

결국 그들은 소울을 얼레고 달래서 처음에 주기로 한 10억 보다 무려 20억을 더 보탠 30억에 광고계약을 새롭게 체결했다. 그것도 1년 단발 광고에 불과했다.

그러나 소울보다 더 크게 웃은 것은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였다.

그들은 소울의 폭발적인 인기와 대중의 깊은 관심을 단 돈 30억을 주고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로 접목시킬 수 있게 됐다며 만족했던 것이다.

천정부지로 솟구치는 그의 인기와 명성을 생각하면 오히려 싸게 먹힌 것이 아니냐는 것이 두 단체의 최종적인 판단이었다.

뭐 덕분에 그 자리에 앉아서 20억씩 총 40억을 더 땅겼으니 소울도 아주 손해 본 것은 아니었다.

소울은 과감하게 하루를 비워서 그들이 원하는 데로 광고를 찍어주기로 하고 깨끗이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와의 광고 건을 마무리 지었다.

다음은 액수가 좀 큰일이었다.

사전에 약속대로 랩터킹 한 마리를 더 잡자, 전에 잡았던 랩터킹 한 마리까지 소급 적용해서 200억 원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 건은 두 말할 것도 없이 곧바로 깔끔하게 입금이 들어왔다.

남아있던 랩터킹 두 마리를 거대 길드에서 능력자 다수를 동원하고 육군의 기갑부대까지 참여시킨 대규모 포위작전으로 간신히 잡아 죽인 후, 포상금을 사방으로 찢어서 나눠 갖은 것에 비교하면, 그가 포상금을 독식한 것이 얼마나 큰 몫을 챙겨간 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울의 갑질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소울의 고문변호사로 나선 정일용이 리자드맨 한 마리당 포상금 천만 원을 주기로 한 능력개발청 발(發) 능력자협회의 의뢰를 언급하고, 포상금으로 총 2,500억 원을 지급해달라고 요구를 하자 또다시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는 발칵 뒤집혀 버렸다.

아직까지도 리자드맨 포상금 의뢰가 종료되지 않았던 것을 발견한 능력개발청은 그 날로 비상대책위원회를 소집하고 대책회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소울의 2,500억 원 포상금 지급요청이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비상대책위원회는 물론이고 능력개발청은 당장 초상집 분위기로 변했다.

결국 능력개발청 청장 지동현과 인재교육팀장 백인천 과장이 총대를 메고 나서게 됐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능력자협회에서는 협회장 백두원과 서울지부 지부장 천명훈이 움직였다.

신사동에 있는 능력자협회 서울지부 건물 17층.

능력자협회의 호의로 소울은 이미 이곳 17층에 VIP 스위트룸을 하나 꿰어 차게 되었다. 하지만 17층에는 자신이 쓰고 있는 스위트룸 보다 훨씬 크고 호화로운 스위트룸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귀빈만이 묶어 간다는 로열 스위트룸은 같은 층을 쓰고 있는 소울의 눈에도 정말 대단하게 보였다.

서울에 있는 그 어떤 특급 호텔의 최고급 스위트룸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디자인과 인테리어를 가진 로열 스위트룸에 여섯 명의 사내가 모여 한 병에 몇 백만 원이나 하는 와인을 물처럼 마셔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원목을 통째로 깎아 만든 테이블 위에는 신선한 회와 캐비어, 푸아그라와 송로버섯 요리 그리고 각종 와인과 위스키가 마련되어 있다.

테이블을 중심으로 여섯 개의 푹신해 보이는 회장님 의자에 각각 개성이 돋보이는 사내들이 앉아 있었는데 보기에는 십년지기들이 모여서 친목을 다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아래에서 흐르는 기류는, 어떻게든 돈을 받아내려는 자와 손해를 보지 않고 대충 때워보려는 자의 기 싸움과 권모술수가 지뢰밭 같이 깔려있었다.

물론 자리한 사람들은 모두 그런 사실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어 오히려 어지간한 꼼수는 통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소울은 능력개발청 청장 지동현이 따라주는 와인을 넙죽넙죽 잘도 받아 마셨다.

한 병에 몇 백이나 된다고 하니 아까워서라도 다 마실 생각이다.

그의 옆에 앉아있는 정일용 변호사는 그와 달리, 자신이 가져온 생수 외에는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고 날카로운 칼날 마냥 예기를 숨기지 않고, 긴장도 늦추지 않았다.

“하하하, 이거 정일용 변호사께서도 한 잔 하세요. 괜히 분위기가 무거워집니다.”

“죄송합니다. 백인천 과장님, 저는 지금 근무 중이라서 술을 입에 댈 수 없습니다.”

딱 잘라 말하는 정일용의 말에 백인천 과장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가 다시 활짝 펴졌다. 대신 소울을 향해 몸을 돌리더니 그의 비워진 와인 잔에 포도주를 따라주며 헤픈 웃음을 흘렸다.

슬쩍 고개를 돌려서 능력자협회 회장 백두원과 서울지부 지부장 천명훈을 봤다. 아까 정일용이 반 협박에 가까운 책임론을 들이밀고 나온 것이 주효했는지 이제는 반쯤 포기를 하고 반쯤 발을 뺀 모습이었다.

물론 능력개발청 청장 지동현은 아마 이런 사실이 못내 섭섭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단체의 수장으로써 자칫하면 대형송사로 이어질지 모르는 일에 함부로 끼어들 수는 없었다. 백두원은 이제 그냥 옆에서 구경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자리에 앉아서 와인을 즐기면서 간간히 소울과 와인 잔이나 부딪쳐 댔다.

“벌써 이렇게 모여 얘기를 한지 1시간이나 지났습니다. 이제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하죠? 청장님.”

정일용 변호사가 드디어 능력개발청 지동현 청장을 상대로 칼을 뽑아들었다.

그의 말에 지동현은 ‘결국 올 것이 왔구나!’하는 표정으로 얼굴이 굳어졌다.

돌연 지동현은 소울의 손을 꼭 붙잡더니 대뜸 애원을 하기 시작했다.

“이소울 능력자, 아니죠. 이번에 ‘서머너즈’라는 이름으로 길드를 창설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젠 길드장이라고 불러야 어울리겠네요. 이 길드장, 나 한번만 살려주세요. 능력개발청에서 2,500억이란 거금을 어떻게 내겠습니까? 이번 리자드맨 퇴치 포상금은 원래 국방비와 정부의 대 몬스터 퇴치자금에서 지급하기로 한 겁니다.”

소울은 지동현의 엄살에 슬쩍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능력개발청의 1년 예산이 조 단위라고 들었는데 아니었습니까?”

“그거야 다 빚 좋은 개살구지요. 능력개발청에서 벌이는 사업이 어디 한두 가집니까? 그걸 전부 해결하려면 남아있는 예산으론 턱도 없어요.”

지동현의 말에 소울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지동현은 마치 죽었던 아들이 살아온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하하하! 역시 이 길드장은 제 말 뜻을 바로 이해했군요?”

“네, 정확히 이해했습니다. 능력개발청 뿐만이 아니라 정부를 상대로도 소송을 벌여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겠습니다.”

“네에? 아니 왜 그걸 그렇게 받아들이십니까? 이건 이 길드장과 우리 능력개발청 사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지동현의 말에 정일용 변호사가 끼어들었다.

“죄송합니다만, 이제 우리 더 이상 말장난은 그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능력개발청에서는 어떻게 하던지 이 일을 능력개발청 안에서 해결하려는 생각인가 본데 이미 본인 스스로도 인정하신 것처럼 능력개발청에서 포상금 지급을 할 수 없다면 우린 소송의 대상을 당연히 현 정부를 포함시키는 쪽으로 잡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걸 잘 아시면서 어린아이처럼 마구 떼를 쓰시면 어떻게 합니까? 이제 그만하시고 저희를 찾아오신 진짜 이유나 밝혀주시죠?”

“후우우! 어렵군요. 어려워요.”

정일용 변호사의 말에 지동현이 고개를 슬쩍 돌려 백인천 과장을 쳐다봤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지동현의 눈빛을 통해 지령을 하달 받은 백인천 과장이 바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그를 대신하여 능력개발청의 현재 사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쉬운 소리를 마구 지껄여댔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소울은 잠시 그의 말을 들어보더니 곧 고개를 돌려 정일용 변호사를 쳐다보며 미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일용이 그를 대신하여 나섰다.

정일용은 대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폭탄선언을 해버렸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으신 것으로 알고 저희는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다음에는 법정에서 뵙도록 하죠. 참 내일 아침에 기자회견을 준비했습니다. 오늘 여기서 대화한 내용도 아마 내일쯤이면 전 국민이 다 알게 될 겁니다.”

“허어, 이런 성격 급한 사람들을 봤나? 뭐가 그리 급하다고 이렇게 서두르십니까?”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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