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197화 (197/492)
  • 00197  제 50 장 - 광란(狂亂)  =========================================================================

    ‘아! 씨발, 이거 뭔가 잘못 건드린 것 같네. 판도라의 상자를 연 기분이야.’

    그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묘한 표정을 지으며 기뻐해야할지, 걱정해야할지 몰라 썩은 미소를 지어버렸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에서 고민을 해봐야 나오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지랄, 일단 못 먹어도 고다! 후유증이 생긴다면 그건 나중에 천천히 해결을 하면 되지. 설마 내가 이런 걸로 사이코패스(Psychopath)가 되진 않겠지.’

    묘한 상황에서, 묘한 능력을 개화시킨 소울은 자신의 새로운 능력과 수리검으로 변한 까망이를 앞세워 빠르게 방책 안에 난입해들어온 랩터들을 일망타진해 나갔다.

    그때, 이제 익숙해진 제 7 연구동 연구원의 음성이 전투헬멧의 헤드셋을 통해 들려왔다.

    -마스터, 탈출준비가 다 끝났는데요? 탈출 안하십니까?

    “45분이나 지났네요. 혹시 일부러 그런 겁니까?”

    -네, 아, 아닌데요?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때가 되면 탈출하도록 하죠.”

    -지금 바로 탈출하실 계획은 없으십니까?

    “내가 먼저 연락할 때까지 대기하세요. 그리고 만약, 다시 한 번 틸트로터 무인기의 연료가 떨어지는 사태가 생긴다면 그 책임을 물으러 제가 직접 뵙도록 하겠습니다.”

    -…….

    소울의 차가운 말에 더 이상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연구원의 거칠어진 숨소리가 헤드셋을 통해 가늘게 들려왔다. 통신모듈을 패시브로 바꾼 그는 고개를 돌렸다.

    틸트로터 무인기가 총 3대가 있다고 했으니 한 대씩 로테이션을 시키면서 연료를 보충하면 절대로 아까와 같은 사태는 일어날 수 없다. 자기 편하자고 한꺼번에 연료를 주입하는 무리수를 둬서 공백을 만든 실수를 일으킨 것이 분명했다.

    당장 탈출할 생각은 없었다. 새로운 능력을 개화하자 더 이상 랩터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정도에 결코 죽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탈출보다는 새로 개화한 능력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다. 당연히 여러 방면으로 테스트도 해보고 실험을 해봐야했다.

    본 방책을 둘러보니 여기저기에 랩터들에 의해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본방책을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본에게 수리할 곳을 알려줬다.

    본은 랩터 무리의 돌진을 막고 전투를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소울의 지시에 따라 본방책을 수리하고 그의 안전을 도모했다.

    ‘오! 뿔랩터다.’

    그때 반대편에서 랩터 두 마리와 뿔랩터 한 마리가 본방책에 구멍을 뚫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듯이 달려간 소울은 그의 머리 위에서 돌고 있는 수리검(까망)으로 랩터 두 마리의 대가리에 구멍을 뚫어줬다.

    퍽! 퍽!

    풀썩 털썩!

    당당한 모습으로 소울을 노려보던 뿔랩터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크게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뿔랩터를 직접 처리하기로 마음을 먹은 그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뿔랩터는 그가 익히 경험한대로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희귀 랩터였다.

    방금도 랩터 두 마리를 공격하자 즉시 치유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머리통이 뚫려 뇌가 박살나 죽은 랩터를 살릴 능력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은 듯 했다.

    “왜? 놀랐어? 능력발휘가 잘 안되지?”

    소울은 뿔랩터를 향해 접근하며 미소를 지었다. 뿔랩터에게 그의 미소는 절대 미소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뿔랩터는 D급 몬스터인데도 불구하고 치유의 능력을 제외하곤 일반 랩터보다 조금 더 강한 정도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소울과 1:1 대결을 펼치면 승부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뿔랩터는 지금 도망을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뿔랩터의 생각일 뿐이다.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는 셈이었다.

    휙 퍽!

    뿔랩터는 갑자기 머리가 팩 돌아가며 턱에서 쩌릿하게 전해져오는 통증에 놀라 비명조차 지르지도 못했다.

    소울이 대검의 손잡이 끝으로 뿔랩터의 턱을 빠르게 찍어 버렸던 것이다.

    뿔랩터는 뒤로 물러서려고 하다가 갑자기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곧이어 느껴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온몸의 뼈가 부서져 내리는 통증에 절로 입을 딱 벌렸다.

    그러나 뿔랩터는 입도 마음대로 벌리지 못했다.

    자신의 턱에서 둔중한 통증이 짜릿하게 퍼지며 골이 띵해졌기 때문이다.

    곧이어 온몸의 힘이 쭉 빨려나가는 느낌과 함께 결국 뿔랩터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쿵!

    소울은 뿔랩터가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바로 턱을 걷어차서 기절시켰다.

    내단에서 기운을 끌어내 두 손바닥을 가득히 채우자 뿔랩터의 머리와 심장으로 가져갔다.

    황갈색 랩터의 피부와는 달리 하얀 무늬가 선명한 뿔랩터의 피부는 매끄럽고 반질거렸다.

    두 손으로 뿔랩터의 피부의 감촉을 느끼고 있던 순간 그는 두 눈을 부릅떴다.

    “으헉!”

    마치 사정(射精)할 것 같은 강렬한 쾌감이 두 손바닥에서 시작하여 팔과 몸을 거쳐 내단이 있는 단전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후우! 이거 장난이 아니네. 이러다 정말 중독되겠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그는 뿔랩터에 대고 있는 두 손을 결코 거두지 않았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하늘에 떠 있는 틸트로터 무인기가 생각났다.

    ‘이런 것은 나만의 비밀로 간직하는 것이 좋겠다. 결코 다른 사람에게 알려져선 곤란해.’

    소울은 즉시 뿔랩터의 목과 다리 한 짝을 손으로 잡아 군장산 정상에 있는 나무 그늘 아래로 질질 끌고 갔다. 다행히 나뭇잎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서 그가 나무 그늘 아래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틸트로터 무인기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차분히 앉아서 본격적으로 생기를 흡수할 수 있게 됐다.

    F급, E급의 랩터와는 달리 D급의 뿔랩터는 정말 엄청나게 많고 순수한 생기를 아낌없이 내주고 있었다.

    치유의 능력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엄청난 양의 생기라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소울의 내단은 지금 대변혁을 겪고 있었다.

    엄청난 진동과 함께 급격히 자라기 시작한 성장으로 인해 빠르게 덩치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겨자씨만 했던 내단은 어느새 콩알만 한 크기로 변해버렸다.

    뿔랩터의 몸에서 주황색의 빛이 은은하게 터져 나오며 자가 회복을 시도해봤지만 오히려 그런 시도는 주황색의 치유의 빛까지 내단으로 흡수되어 폭발적으로 부피를 키워주는 효자노릇을 할 뿐이었다.

    까망이는 소울의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게 그를 중심으로 빠르게 원을 그리며 돌았다. 강력한 와류가 형성되어 랩터의 접근 자체를 막거나 실질적으로 무력을 행사하여 랩터의 몇 마리의 머리통에 구멍을 내주기도 했다.

    쩌억!

    그때, 뿔랩터의 머리뼈가 쩍 벌어지기 시작했다.

    눈을 뜨고 살펴보니, 생기가 쪽 빨린 뿔랩터의 피부와 몸이 어느새 푸석푸석해져있었다.

    이런 현상은 본이 몬스터의 심장을 흡수하고 나서 생기를 뽑아낸 후, 뼈만 남길 때의 그 과정과 매우 비슷했다.

    하지만 내단의 성능은 결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 술 더 떴다.

    뿔랩터의 뼈까지 몽땅 생기가 빨려 나가자 마치 모래처럼 푸석거리며 바스러졌던 것이다. 본이 이것을 봤다면 무척 아깝다며 난리를 쳤을지도 모른다.

    뿔랩터는 소울의 내단에 완벽하게 생기를 빨려 결국 흙으로 돌아갔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그도 소울에게 아낌없이 생기를 바치고 대자연으로 돌아간 것이다.

    소울은 그 끔찍한 모습에 자신이 개화시킨 새로운 능력에 대해 살짝 공포가 치밀어 올랐다.

    ‘이거 잘못하면 정말 큰일 나겠다. 너무 지독한 능력이라서 절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면 안 되겠다. 이건 소울넷으로 올라가는 것도 위험해!’

    그는 이 악마적인 재능의 개화를 결코 반길 수만은 없었다.

    극도의 경계심을 가지고 철저하게 정보를 차단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함부로 이 능력을 쓰지 않도록 조심하기로 했다.

    벌떡 몸을 일으켜 세운 그는 어느새 구슬만큼 커진 내단이 느껴졌다.

    단전에 자리한 내단에서 흘러넘치는 기운으로 인해 온몸에 힘이 불끈불끈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그는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얼마나 힘이 뻗치는지 온몸에 은은한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포화상태에 이른 생기로 인해 그의 오장육부와 혈관, 뼈와 근육이 조금씩 강화되며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아마 고통이 끝날 때쯤이면 E급 강화계 능력자의 육체에 버금가는 강한 신체를 소유하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봤다.

    1시간이 지났다.

    수백 아니 수천 마리의 랩터의 시체가 군장산 정상에 늘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랩터들의 공격은 끝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공격해도 무한 스태미나를 가지고 있는 본과 스켈레톤 부대의 방어선을 뚫을 수는 없었다.

    공격대상을 바꿔보려고 했지만, 지형상의 이점을 버릴 생각이 없는 본의 지휘로 인해 랩터들의 공격은 그저 단조롭고 반복되는 돌진 일변도의 공격으로 한정되었다. 랩터들도 점점 축차 소모되어 숫자가 줄어갈 뿐이었다.

    이제는 연구원도 굳이 탈출하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어디선가 방송국 헬기들이 군장산 정상에 나타나 뱅글뱅글 돌면서 소울의 모습을 찍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되자 소울은 더욱 신나게 랩터를 잡아 죽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까망이는 이제 새로운 스타일의 공격방식에 완전히 적응하여 굳이 소울이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원심력을 이용하여 랩터들을 효과적으로 추살했다.

    반경 20m 밖에 되지 않는 군장산 정상으로 침투한 랩터들은 소울의 사정거리 안에 알아서 기어들어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수리검으로 변한 까망이에게 더 이상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진 그는 대물저격총을 회수하여 탄창을 갈아 끼웠다. 하지만 지금 주(主)무기로 사용하려는 것은 역시 뽀대나는 대형권총이었다.

    멋있지 아니한가?

    서부의 총잡이처럼, 홍콩 느와르 영화의 주인공처럼, 쌍권총을 들고 랩터의 무리 사이로 뛰어들어 난사를 해대며 물리치는 대한민국의 영웅의 모습이 말이다.

    소울은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쏠린 국민적인 관심을 최대한 이용해먹을 궁리를 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그의 상상속의 오버액션으로 이어졌다.

    이미 수리검이 랩터의 급소를 뚫고 지나간 후, 랩터가 아직 쓰러지지 않은 틈을 절묘하게 포착해 달려든 소울은 팔꿈치로 랩터의 정수리를 찍어버리던가, 다리를 하늘 높이 들었다가 발뒤꿈치로 내려찍어 버리는 액션을 남발해댔다.

    바로 옆에서 보면 이게 쇼라는 것을 눈치 챌 수도 있겠지만 하늘 위에서 보면 그의 공격 한방에 랩터 한 마리가 픽픽 쓰러져 대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또한 그가 지금 쏘고 있는 대형권총은 이미 소음기가 제거되어 있어 커다란 총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오고 있었다.

    소울의 대형권총에서 불이 뿜어지고, 그의 팔다리가 한 번씩 움직일 때 마다, 랩터가 우수수 쓰러지는 모습은 더블 웨이브의 공포에 눌려있던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을 아주 시원하게 해주고 통쾌하게 뚫어줬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오버액션을 취할 때마다 멋모르는 철부지 어린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소울의 충성스런 빠가 되어갔다.

    앞으로 이들이 소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니, 소울이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이때는 그 파장을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소울은 오늘도 조금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대국민 사기극을 혼자 멋지게 연출해내고 있었다. 어디선가 광고계의 블루칩이라는 이름이 광고계의 황제주라고 바뀌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나 있을까?

    군장산 정상이 랩터의 피로 가득 물들고 있었다.

    * * * * *

    밤은 그의 편이다.

    달빛 하나 없는 군장산 정상은 평화를 되찾았다.

    짙은 어둠이 어머니의 자궁처럼 군장산 일대를 포근하게 감싸자 만물은 모두 거칠어진 숨을 죽이며 휴식의 시간을 만끽했다.

    야행성 몬스터가 아닌 랩터들은 해가 떨어져 어둠이 찾아오자 모두 군장산 중턱으로 이동했다. 아직 소울과 그의 소환수를 포기할 수는 없었는지, 나름 단단하게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그들이 포위망을 펼쳐 소울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소울이 일부러 포위망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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