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6 제 49 장 - 개화(開花), 그 악마적 재능 =========================================================================
[까망아, 가자.]
[규!]
소울은 이제 수리검으로 변한 까망이에게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까망이는 그의 믿음을 결코 저버리지 않았다.
그의 몸을 이빨로 물어뜯으려고 달려든 랩터 세 마리가 단숨에 머리통에 구멍이 뚫리며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피잉 핑 핑 핑…….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었다. 이제는 도저히 눈으로는 쫓을 수 없는 무서운 속도였다.
소울이 그냥 가만히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빠르게 그의 몸을 돌고 있는 수리검으로 인해 그의 몸 주위로 기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소울은 이제 오히려 본방책 안으로 기어들어온 랩터들을 향해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핑! 퍽!
쿠웨에엑!
랩터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든 수리검은 위험을 감지하고 잽싸게 고개를 숙인 랩터의 목 대신 등을 뚫어 버렸다. 고통스런 비명소리가 날카롭게 울려퍼졌다.
그는 총알처럼 빠르게 튀어나가 랩터의 아래턱을 발로 사정없이 걷어차 버렸다.
빡! 빠각!
풀썩!
랩터의 턱이 폭발하듯 위로 튀어 올라 이제 막 터지기 시작한 팝콘처럼 하얀 이빨을 입 밖으로 쏟아냈다.
뇌에 충격을 받은 랩터가 기절하면서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소울은 랩터의 옆에 앉아 왼손으로 목을 누르고 대가리를 주먹으로 강하게 후려갈겼다.
퍽퍽퍽퍽!
얼마나 머리통이 단단한 놈인지 소울은 자신의 주먹에서 올라오는 은은한 통증에 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였다.
랩터의 목을 누르고 있는 왼손을 통해 뭔가 몸 안으로 쭉 빨려드는 느낌이 들더니 내단이 크게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가만히 살펴보자 왼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오른손 주먹으로도 뭔가가 빨려들어 오는 것을 느꼈다. 주먹에 일던 통증이 일시에 사라지고 시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뭐지?’
소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다시 한 번 랩터의 몸에 손을 가져다댔다.
“헉!”
이번에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랩터의 몸에서 빨린 기운이 팔을 타고 몸으로 들어오더니 내단 속으로 쑥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 과정에서 소울은 손에서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미세하게나마 체력이 회복되는 효과가 느껴지기도 했다.
‘랩터의 몸에서 뭔가 기운을 빨아들인 것 같기도 한데……. 내단이 진동을 하면서 조금 자란 것 같기도 하고.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설마 나에게 랩터의 기운을, 아니 생기(生氣)를 흡수하는 능력이라도 생긴 건가?’
그렇게 생각을 하자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실을 인지하자 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규우!]
그때, 갑자기 까망이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소울은 뭔가 뒤쪽에서 섬뜩한 기운이 다가오는 것을 느껴졌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급히 몸을 땅바닥을 향해 굴려 그 자리를 피하자 랩터 두 마리가 자신이 서있던 자리를 향해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고 들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순간적으로 살기가 크게 치밀어 올랐다.
그는 손을 들어 두 마리의 랩터를 가리키며 차갑게 명령했다.
[까망아, 다 죽여!]
[규!]
까망이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신의 주인을 공격했던 랩터 두 마리의 머리통을 향해 회전궤도를 바꾸며 더욱 빠르게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퍼퍽!
풀썩 풀썩!
단숨에 머리가 꿰뚫렸다.
랩터 두 마리가 쓰러지는 것을 본 소울은 기분이 싸해지는 것을 느끼며 일단 자신에게 일어난 현상에 대한 판단을 뒤로 미루기로 결정했다.
하마터면 랩터의 아가리에 속에 들어가 잘근잘근 씹혀 먹힐 뻔 했다는 사실이 그에게 큰 경각심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일단 무기가 될 만한 것이 없는지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지점에 아까 랩터를 향해 뿌렸던 대검이 있는 것이 보였다.
또다시 랩터 몇 마리가 난입해 들어와 그에게 공격을 해오는 것을 보며 쉐도우 스텝을 이용해서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뒤를 물러서다가 몸을 숙여 랩터의 사체에서 대검을 잡아 뽑았다.
손에 차가운 대검이 잡히자 근원을 알 수 없는 자신감이 고양되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랩터에 대한 강한 분노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이 썩을 놈의 닭대가리 새끼들,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
이미 그이 마음속에는 탈출을 위해 오고 있는 틸트로터 무인기에 대한 생각은 사라져 버렸다. 대신 시퍼런 살기가 그의 눈에서 줄기줄기 흘러나오고 살심만이 가득해졌다.
그렇다고 미련하게 무조건 랩터를 향해 달려들지는 않았다. 일단 쉐도우 스텝을 이용한 유투술을 펼치며 랩터들을 하나씩 유인해서 처리했다.
본방책에 구멍을 뚫고 들어온 랩터들이 모두 소울을 향해 쫓아오기 시작했지만 그는 쉽게 잡혀주지 않았다.
그리 크지 않은 본방책 안의 공간이었지만, 랩터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기에는 충분한 공간이기도 했다.
수리검으로 변한 까망이가 한 바퀴씩 회전을 할 때마다 랩터 한 마리의 머리를 뚫어 버리는 원샷원킬(one shot one kill), 아니 원서클원킬(one circle one kill)을 하는 통에 본방책 안의 랩터의 무리는 빠르게 그 숫자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소울이 그저 도망만 다닌 것은 아니다.
대검을 들고 있다가 기회가 생기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랩터의 급소를 찔러댔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자 그는 일명 손맛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확실히 대검으로 랩터의 목이나 심장을 뚫어 버리는 것은 손맛이 좋았다.
재미있는 것은 그토록 근접전투를 싫어하고 회피하던 소울이, 이제는 오히려 근접박투를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랩터와 치열하게 드잡이 질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 이것 봐라? 직접 접촉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무기를 통해서도 생기를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잖아?’
무척 신기한 일이었다. 적이라고 규정한 대상과 접촉하게 되면 생기를 흡수할 수 있고, 생기가 흡수되면 쾌감을 느낀다. 생기가 내단으로 들어가면 진동이 일어나고 그 반동으로 조금씩 성장을 한다.
소울이 더 이상 랩터와의 근접전투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확신을 할 수 없었지만 전투가 거듭되자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지금 새로운 능력을 개화했다는 것을 말이다.
쐐액 쐐액 쐑 쐑 쐑…….
수리검으로 변한 까망이가 소울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회전수를 급격히 올리고 있었다. 속도가 빨라지자 그에 비례하여 죽어나가는 랩터의 숫자도 빠르게 늘어났다.
무엇보다 이제 어떻게 해야 랩터를 더 쉽고, 더 빠르게 잡아 죽일 수 있는지 감을 잡은 상태였다.
랩터의 무리는 눈앞에서 동료가 죽어나가는 데도 겁없이 다가왔다.
포위망을 구축하며 다가오는 랩터들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번뜩이는 생각이 있었다.
그는 내단에서 생기를 뽑아 일단 손으로 보냈다.
일반적으로 오러, 마나 등 어떤 기운을 의지에 따라 움직이려면 정말 많은 노력과 시간을 기울여야 한다.
소울도 소환력과 주술력 또는 스피릿 파워를 움직이는 것에 적지 않은 집중력을 투자해야했다.
상태가 안 좋은 날은 정말 땀을 뻘뻘 흘려야 할 정도로 집중력을 쏟아 부어야 간신히 될까 말까했다.
그런데 이 내단의 기운은 마치 원래부터 자신의 신체의 일부라도 되는 양 너무나도 간단하고 쉽게 움직였다.
그는 손바닥에 아른거리는 생기를 얇은 실처럼 늘려서 꼬아봤다.
‘되는 구나!’
그러자 자신의 의지에 따라 생기는 빠르게 서로 꼬여 들더니 곧 끈처럼 만들어졌다.
그는 이 생기의 끈을 까망이에게 민다는 생각으로 쭉 뻗어보았다.
그러자 생기의 끈은 자신의 몸을 중심으로 빠르게 돌고 있는 까망이에게 정확하게 날아가 꽂혔다.
웅!
순간 소울의 단전에 있는 내단에서 강한 진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곧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마치 자신과 까망이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단과 까망이가 연결이라도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이걸 뭐라고 부르지? 생기(生氣) 영사(靈絲)라고 부를까?’
내단에서 뻗어나간 생기는 팔을 따라 손으로 올라가 생기 영사로 변해 까망이와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었다.
그렇다고 무슨 엄청난 능력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제까지와는 달리, 까망이가 마치 자신의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이것은 소환사와 소환수가 한 몸처럼 느껴지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일체감이었다.
생기 영사로 연결된 것은 마치 소울의 팔이 길게 늘어나 까망이에게 붙어 버린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작은 변화지만 결코 그 여파까지 작지는 않았다.
소울은 생기 영사의 효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머릿속의 전구에 불이 마구 들어오는 것처럼 아이디어가 팍팍 떠올랐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 중 가장 핵심은 역시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감각이었다.
쿠하앙!
랩터 세 마리가 그의 전방 10, 13, 2시 방향에서 달려왔다.
그는 허공으로 뛰어 오르며 손을 아래로 내려 가볍게 옆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랩터 세 마리의 머리통에 차례로 구멍이 뚫리더니 땅바닥에 처박혀 나동그라졌다.
허공에서 몸을 180도 튼 그는 뒤쪽에서 달려드는 랩터를 보며 다시 손을 뒤집었다.
그러자 수리검이 땅바닥을 쓸 듯 돌면서 먼지를 훅하니 불어 일으켰다.
바닥에 내려선 그는 다시 한 번 몸을 회전시키며 손을 쭉 뻗었다.
그러자 회전운동을 하던 수리검이 즉시 방향을 바꿔 직선으로 쭉 뻗어갔다.
팽!
퍽!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수리검이 랩터의 목을 단번에 뚫어버리고 계속 뻗어 나갔다.
고개를 돌리자 이번에는 랩터 네 마리가 뒤에서 일렬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소울은 허공으로 살짝 점프를 하면서 몸을 뒤집었다.
그의 머리가 땅을 향해 다리가 하늘을 향해 일직선이 되자 그는 손을 마치 잡아채듯 당기며 달려오는 랩터 네 마리를 향했다.
빠르게 날아가던 수리검이 소울의 동작에 따라 정반대로 방향을 바꿔 돌아왔다.
이미 뚫린 랩터의 목을 다시 한 번 뚫고 나오자 랩터의 목이 똑 분질러졌다.
허공에 피가 비산되며 피보라가 일었다.
쐐액!
하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고 수리검의 움직임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였다.
수리검은 소울의 머리 아래를 맹렬히 스쳐 지나가며 일렬로 달려오는 랩터, 네 마리 중 선두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놈의 목구멍을 뚫고 지나갔다.
랩터 아가리로 들어간 수리검은 목구멍을 뚫고 들어가 뒷목의 뼈를 끊어 버리고 밖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는 선두의 뒤를 바짝 쫓아오던 두 번째 랩터의 목을 뚫고 들어갔다.
두 번째 랩터의 목을 꿰뚫은 수리검은 그렇게 세 번째, 네 번째 랩터의 목까지 모조리 뚫어버리고 나서야 시원한 바람 속을 질주할 수 있었다.
쿵 우당탕 쿵탕!
데굴데굴 데구루루루…….
랩터 네 마리를 한방에 꼬치 꿰듯 수리검으로 뚫어 버리자 달려오던 랩터들이 일제히 땅바닥에 쓰러져 큰 소음을 내고는 서로의 몸이 얽히고설키며 데굴데굴 굴러갔다.
척! 탁!
손바닥으로 땅바닥을 짚은 소울이 허리를 접어 두 다리를 땅바닥에 대고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돌리자 또 랩터 한 마리가 그에게 돌진을 해오고 있었다.
소울은 허공으로 손을 한 바퀴 크게 휘저었다.
수리검이 곧바로 그의 의지에 따라 돌아오더니 그의 머리 위에서 다시 아까처럼 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생기 영사를 풀어버린 소울은 돌진해오는 랩터를 마주보며 빠르게 뒷걸음질을 시작했다.
입을 크게 벌리며 랩터가 달려들자 그는 빠르게 백스텝을 밟으며 뒤로 물러섰다.
내단에서 생기를 뽑아 손바닥에 밀어 넣자 대검을 타고 빠르게 뻗어가는 생기 영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검을 잡은 손을 앞으로 내밀고, 대검의 끝을 랩터의 코에 살짝 가져다 대자 랩터는 갑자기 세상이 크게 흔들리는 느낌에 몸을 휘청거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대검이 랩터의 목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불로 지진 것 같은 고통에 놀라 급히 반격을 하려고 아가리를 벌리고, 발톱을 휘두르려했는데 이상하게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가며 세상이 핑하고 옆으로 돌았다.
쿵!
그렇게 랩터는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는 것을 끝으로 생을 마쳤다.
소울은 아까보다 훨씬 강력한 생기의 유입과 그에 비례한 쾌감으로 인해 몸을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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