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0 제 48 장 -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 =========================================================================
유정아는 사실 소울이 가지고 있는 소환의 비밀을 알고 싶어서 30억을 기부하고 고문의 자리를 받았다.
하지만 솔직히 자신이 길드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안 그래도 연구할 과제가 넘쳤고, 벌여야 할 사업이 첩첩산중처럼 쌓여있는 유정아다.
거기에다 소울이 만들고 있는 소환길드의 일까지 더하게 된다면 그녀는 아마 잠잘 시간도 없이 24시간을 로봇처럼 살아야 할 것이다.
“지금 내가 조금 바빠서 소환길드의 고문을 맡기에는 좀 곤란해. 자기가 나 조금만 봐주면 안 될까? 대시 나중에 시간 나면 적극적으로 밀어줄게.”
“뭐 꼭 그렇게 부탁을 한다면야 할 수 없지. 그래도 소환길드의 이름 하나 정도는 만들어 와!”
“소환길드 이름은 미리 내가 생각해뒀어.”
“뭔데?
“서머너즈(Summoner’s), 소울마스터즈(Soul Master’s), 소울네티즈(Soulnetiz), 얼티마즈(Ultima’s)…….”
유정아가 말하는 길드 이름을 듣고 보니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 하나 같이 마음에 들었다. 오히려 너무 마음에 들어 뭐로 이름을 정해야 할지 조금 난간해졌다.
“정일용 변호사와 국정현 사무총장에게 연락해서 의견을 물어보도록 하자. 제일 많은 점수를 받는 길드 이름을 우리 소환길드의 이름으로 등록하자. 오케이?”
“응, 지금 당장 문자를 보내서 물어보도록 할게.”
뭐가 그리도 급한지 그녀는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눈부신 속도로 문자를 쳐 나갔다.
저렇게 가는 손가락이 스마트폰을 쳐대다가 혹시 똑 부러지지나 않을까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들었다.
뭔가에 몰두하면 주변의 것을 모두 잊어버리는 집중력의 여왕의 모습을 감상하던 소울은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 안에 딱 잡히는 스마트폰이 잡히자 주머니에서 꺼내 정일용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마스터이십니까?
“네, 접니다.”
-지금 혹시 능력자협회 서울지부 건물에 계십니까?
“네, 17층에 있는데요?”
-그럼 제가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마스터와 의논을 해봐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음, 혹시 국정현 사무총장과 같이 있나요?”
-네, 지금 옆에 같이 있습니다.
“그럼 제가 내려가는 것이 좋겠네요. 이번에 새로 오픈한 사무실이 몇 층이죠?”
-3층으로 오시면 됩니다.
“그럼 지금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네,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자 그녀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자 손가락으로 등을 쿡쿡 찌르는 것이 느껴졌다.
“왜?”
“그냥 나도 같이 내려갈까?”
“바쁘다고 안 했어?”
“아니, 그냥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해져서.”
“너 할일이 그렇게 없냐? 나라발전과 민족중흥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야 할 것 아니야? 혹시 너 다른 사람들 몰래 땡땡이치고 있는 것은 아니지?”
“내가 누구 눈치 볼 군번이야? 사실은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죽을 것 같아서 그래.”
“알아서 해라. 난 모르겠다.”
“그럼 같이 내려가도 되지?”
“정아에게 숨길만한 비밀은 없는 것으로 아는데…….”
“그럼 잘됐네. 내가 같이 따라가 줄게.”
그녀는 끝까지 자신이 심심하거나 땡땡이를 치고 있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말만 들어보면 소울을 위해서 어려운 발걸음을 행차하시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도 자신의 팔에 팔짱을 끼며 찰싹 달라붙으니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괜히 투정 비슷하게 한번 튕겨 보고는 싶었다.
“설마 이렇게 팔짱을 끼고 백주대낮에 사람들이 넘쳐대는 저 밖으로 나가자는 것은 아니지?”
“뭐 어때?”
“우와! 우리 정아가 많이 변했네? 겁 대가리도 많이 상실하셨고?”
역시 말만 그렇게 했지 그녀가 이렇게 착 달라붙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VIP 스위트룸을 나가자마자 곧 떨어져 나가는 그녀를 보며 은근히 하는 짓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17층에 VIP 스위트룸 하나 빌려놓는다고 하지 않았어?”
“아참, 내가 깜빡하고 말을 안했네? 바로 옆방이야. 전에도 썼으니까 굳이 설명은 필요 없겠지? 능력자 등록증으로 문을 열수 있으니까 지금부터 사용하면 될 거야.”
“고마워. 수고했어.”
“천만에. 그런데 VIP 스위트룸을 쓸 시간이 과연 있을까 모르겠네? 조만간 랩터킹 잡으러 출동해야 할 것 같고.”
“그렇다고 내가 계속 정아가 지내는 저 방에 있을 수는 없잖아?”
“하긴 지금 기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다니고 있을 때니까 조심하는 것도 좋겠지.”
두 사람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서 승강기를 타고 3층으로 내려갔다.
“설마, 여기가 거기야?”
“맞네. 제이 로펌이라고 쓰여 있잖아?”
“제이 로펌? 그세 이름 바꿨어?”
“소울 메탈과 소환길드의 고문변호사 계약을 할 때 이미 바꾼 것 같아. 아무래도 우리 일이 커지니까 로펌을 확장해서 개편한 거겠지. 우리에게 나쁜 일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능력자협회 서울지부 3층의 거의 절반을 쓰는 ‘제이 로펌’은 정일용 변호사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과감하게 투자해서 확장 & 개편을 한 로펌이었다.
그가 이렇게 적극적인 투자와 공격적인 확장을 한 이유는 당연히 소울 메탈과 소환 길드와의 장기 계약으로 인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정일용 변호사를 키워주고 있는 것은 사실 소울과 유정아란 말이 된다.
“어서 오십시오.”
“아! 네.”
소울이 제이 로펌 안으로 들어오자 안내 데스크에 있는 단정한 외모의 젊은 미녀가 벌떡 일어나 깊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이미 단단히 교육을 받았는지 곧바로 안내 데스크를 박차고나와 소울과 유정아를 사무실 안쪽으로 안내했다.
“대표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고마워요.”
“네.”
타이트한 갈색 정장을 입은 미녀가 엉덩이를 흔들면서 앞장을 서서 걸어가자 소울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자신의 옆에 누가 있는지를 깨달은 그는 수컷의 본능을 억제하고 고개를 돌려 무심한 척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깨끗하게 잘 꾸몄네.”
“인테리어가 썩 괜찮네.”
두 사람은 괜히 남의 사무실 인테리어를 평가하며 복도를 걸어갔다.
탈칵!
“여깁니다.”
“고마워요.”
문까지 친절하게 열어준 미녀가 그에게 대놓고 눈웃음을 살살치며 바라보자 소울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유정아는 그런 그녀를 힐끗 한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치켜들고 도도하게 그의 뒤를 따랐다.
“마스터, 어서 오십시오.”
“마스터,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정 변, 국정현 아저씨도 안녕하세요?”
“모두 반가워요.”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잘 꾸며져 있는 사무실로 들어간 소울과 유정아는 정일용과 국정현을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마스터, 여기는 공적인 자리이니 사무총장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국정현은 휠체어에 앉아 은근한 카리스마를 풍기며 호쾌한 기운을 발하고 있었다.
“유정아 박사님도 같이 오셨군요. 잘 오셨습니다.”
“반가워요.”
“마스터, 이쪽으로 앉으세요. 유정아 박사님도 옆에 같이 앉으시죠.”
“네, 고마워요.”
오크 향이 물씬 나는 커다란 원목 책상과 테이블, 사장님들이 앉을 것 같은 편안한 의자들이 줄줄이 놓인 정일용의 사무실은 변해버린 그의 위상을 대변하듯 크고 웅장했다. 은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니 자신감도 가득한 것이 보기가 좋았다.
“차는 뭐로 하시겠습니까?”
“연한 커피를 마셨으면 좋겠습니다만.”
“저도 같은 것으로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잠시 만요.”
정일용은 즉시 옆방에 있는 자신의 비서에게 연한 커피를 내려서 가져오라고 시켰다.
“국정현 사무총장과의 고용계약은 체결된 것 맞죠?”
“그렇습니다. 고용계약서와 비밀유지계약서 등 필요한 모든 서류에 서명하셨습니다.”
“잘됐군요. 이제 국정현 사무총장은 제 사람이 되셨군요.”
“하하하, 저는 마스터와의 첫 만남에서 이미 이런 깊은 인연을 예감했습니다.”
“그래요? 하하하! 확실히 국 사무총장과의 인연이 보통은 넘죠.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천만에요. 제가 오히려 잘 부탁드려야지요.”
그렇게 소울과 국정현은 서로의 손을 잡고 정일용과 유정아 앞에서 우의를 다졌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정일용 변호사의 비서였다.
오관이 반듯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가지고 있는 비서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조심스럽게 테이블 한쪽에 쟁반을 내려놓고 커피포트를 들었다.
고풍스런 찻잔에 연한 커피를 따라 한 사람씩 앞에 내려놓자 커피 향이 그윽하게 퍼지며 코를 자극했다.
“향이 좋네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커피 중 하나인 하와이 코나 커피입니다.”
코나 커피는 하와이 코나(Kona)섬에서 재배한 커피 품종으로 뒷맛이 깔끔하고 적당한 신맛에 꽃 향과 과일향이 은은하게 베여있는 특징이 있다.
네 사람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코나 커피의 향을 음미하며 맛을 즐겼다.
비서가 쟁반을 들고 다시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가자 정일용이 조용히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
방문을 잠그고 블라인드를 치더니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은색 공을 잡아 이리저리 뭔가를 조작하고는 다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정일용은 은색 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도청방지장치입니다. 모두 준비되셨으면 바로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네, 시작하세요.”
소울이 유정아와 국정현의 얼굴을 한 번씩 쳐다보고는 마지막으로 정일용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이이이잉!
정일용도 같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주머니에서 리모컨을 꺼내 테이블 뒤쪽의 벽을 향해 눌렀다. 바로 벽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안에서 초대형 LED 벽걸이 모니터가 켜졌다.
모니터 안에는 어디서 많이 보던 지도가 하나 떠올랐다.
“저건 강남구 세곡동 지도네요?”
“그렇습니다. 저희가 은밀하게 진행해온 강남구 세곡동 부동산 투자는 저기 보이시는 데로 세곡동 사거리를 중심으로 집중 투자되었습니다.”
정일용은 초대형 LED 모니터 옆으로 가서 손으로 일일이 가리키며 자세하게 부동산 투자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부동산 투자에 들어간 자금은 총 1,070억 원에 달했다.
소울이 번 돈 70억과 그의 소울 메탈 지분 일부를 담보로 하고 유정아에게 빌린 돈 500억 그리고 유정아가 소울의 이름으로 투자한 500억을 합친 돈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소울이 모르는 투자금이 더 들어갔는지 총 투자금을 나타내는 숫자는 이미 두 배 가까이 늘어나 있었다.
“투자금이 2,070억으로 늘었네요? 무려 1,000억이나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것은 소울 메탈에서 은행융자를 얻은 돈을 투자한 것입니다.”
“소울 메탈에서 은행융자를 받았단 말입니까? 어느 은행에서요?”
“그 부분은 저보다 유정아 박사님이 더 잘 아실 겁니다.”
소울이 고개를 돌려 유정아를 보자 그녀는 한 마디로 간단히 정리했다.
“미국 은행에서 융자 받은 돈입니다. 생체실드 중화탄을 대한민국 국방부를 제외하고 제일 먼저 납품해주기로 계약했거든요.”
“1,000억이 그에 대한 대가라는 말인가요??”
“네, 미국 백악관과 연방정부, 국방부의 의지가 섞여 있는 보이지 않는 족쇄라고 봐야지요. 하지만 너무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사실 이런 돈은 눈 먼 돈이나 마찬가지라서 오히려 안 받아주면 나중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서 필요한데 잘 써주면 뒤탈이 없습니다.”
“혹시 이 돈으로 인해 소울 메탈이 미국 정부로 넘어가거나 하지는 않겠지요?”
“당연히 그런 위험도 존재합니다. 다만 계약을 할 때 10년 거치 후 20년 상환이라는 특혜에 가까운 혜택을 받았으니 앞으로 10년 동안은 문제가 없습니다. 금리도 고정으로 1%에 불과하니 뭐 거저먹었다고 봐야지요. 회사가 망하면 안 갚아도 되고 잘되면 그때 가서 천천히 갚으면 됩니다.”
유정아의 말을 듣고 보니 이건 안 받는 게 병신이었다. 가만히 살펴보면 예전에 정부에서 외자를 들여와 재벌기업에 거의 무이자에 가까운 금리로 돈을 퍼줬을 때 재벌들이 느낀 감정과 비슷할 것 같았다. 아마 그때도 눈먼 돈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하긴 지금도 정부의 돈은 눈먼 돈이라고 생각하는 재벌과 국해(國害)의원, 공사(公祉)와 지자체가 수두룩하다는 것은 알만한 놈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관피아, 기레기, 원전마피아 등 갑자기 머릿속에 연관 단어들이 떠오르기 시작하자 소울은 괜히 혈압이 올라가는 것 같아 급히 고개를 흔들어 털어버렸다. 답이 안 나오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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