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7 제 47 장 - 내단(內丹) =========================================================================
그가 먹은 랩터킹의 간의 양은 그리 많지도 않았다.
자신의 손바닥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더 적게 먹어도 효과가 유지될 가능성이 있었다.
일단 랩터킹의 간의 크기를 생각하면 최소한 10명 이상에게 팔수 있을 것 같았다.
쏴아아아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자 몸의 긴장이 풀리고 근육이 녹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샴푸와 린스로 머리를 감고 샤워 젤을 샤워 볼에 묻혀 온몸을 깨끗이 닦았다.
다시 쏟아지는 물로 몸을 헹구고 나자 마치 새로 태어난 느낌이 들었다.
새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나오자 테이블에 자신이 입을 새 속옷과 훈련복이 얌전히 놓여 있었다.
그 옆의 벽에는 새것처럼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전투슈트 세트가 걸려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정아가 예쁜 짓을 다하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새 속옷을 입고 훈련복을 걸쳤다.
2층의 뷔페식당으로 내려가 식사를 하려고 했기에 굳이 당장 전투슈트 세트를 입고 장비하지 않아도 됐다.
[푸티나, 밥 먹으러 가자.]
[낑!]
소울은 푸티나에게 손짓을 하며 어제 냉장고에 넣어놓은 랩터킹의 고기가 담긴 지퍼팩을 꺼냈다.
승강기를 타고 2층에서 내린 소울은 뷔페식당의 입구에서 능력자 등록증을 보여주고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자리를 잡고 앉자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여보세요?”
-자기야! 지금 어디야?
“나 2층 뷔페식당인데?”
-그래? 안 그래도 같이 아침 먹으려고 방으로 데리러 왔는데…….
“그래? 그럼 이리 내려와. 같이 밥 먹자.”
-알았어. 금방 날아서 내려갈게.
“날아서 오지 말고 승강기 타고 와!”
-호호호, 알았어. 날아갈게. 나 천사인 것 잘 알잖아.
“지랄!”
소울은 바로 통화종료 버튼을 눌러버렸다.
하긴 말만 안하고 있으면 유정아가 천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을 향해 걸어가자 침샘을 자극하는 온갖 향긋한 요리 냄새가 났다.
주방 앞에 선 그는 하얀 요리복과 각진 요리 모자를 쓴 젊은 청년에게 손짓을 했다.
“저, 주방장님 좀 불러주시겠어요?”
“네?”
주방 보조는 되어 보이는 청년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이내 소울이 누군지 알아봤는지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커다란 덩치에 나이가 지긋한 사내를 데리고 나왔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요리를 부탁드리고 싶어서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소울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하는 주방장에게 소울은 지퍼팩을 넘기면서 이 고기로 스테이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부탁할 때, 슬쩍 5만 원짜리 한 장을 팁 통에 넣어주는 센스를 잊지 않았다.
무리한 부탁은 아니었는지 주방장은 지퍼팩을 받아가지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침을 스테이크로 하는 것은 조금 과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능력자는 예외이다.
워낙에 힘을 많이 쓰는 직업이라 능력자들은 대부분 아침이라고 빵과 샐러드만 먹지 않는다.
그는 랩터킹 고기를 스테이크로 먹을 생각에 접시에 각종 샐러드와 과일만 가득 담아왔다. 푸티나가 먹을 연어 스테이크를 가져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푸티나는 다른 소환수와는 달리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할 줄 아는 에티켓을 가진 새끼 곰이었다. 아니 이제 성장을 했으니 레이디 베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푸티나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이른 바, 우아한 칼질을 해대며 연어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사냥도중 랩터킹 한 마리를 통째로 씹어 먹을 때와는 정말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여자는 모두 여우라더니, 불곰 암컷도 결국은 여우에 해당하는가 보구나!’
푸티나의 행동에 살짝 기가 막혀하던 소울은 유정아가 나타나자 곧 정신을 차렸다.
“벌써 시작한 거야?”
“응, 정아주려고 스테이크를 특별히 주문했으니까 샐러드만 가져오면 돼!”
“어머, 레이디가 어떻게 아침부터 고기를 먹어?”
“그럼 먹지 마. 내가 다 먹을게.”
소울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딱 잘라 말했다.
살짝 무안해진 유정아는 배시시 웃음을 흘리며 말을 슬쩍 바꿨다.
“자기의 성의를 봐서 조금만 먹어볼게.”
“됐거든!”
소울은 자신이 있었다.
랩터킹의 고기가 분명히 맛있을 거라는 데에 내기를 해도 좋을 정도로 말이다.
주방장이 직접 주방에서 카트를 끌고 나오더니 고기 굽는 냄새를 잔뜩 풍기는 랩터킹 스테이크를 소울이 앉아 있는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소울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하고 들어갔다.
그도 이제 소울이 국민적인 영웅이라는 것을 알고 이렇게 특별히 서비스를 해주는 것 같았다.
“어머, 역시 영웅은 어디를 가나 특별대우네?”
“내가 어제 너 특별대우 해줬잖아? 그럼 너도 영웅이겠네?”
“뭐야? 아침부터 부끄럽게?”
“얼굴은 전혀 부끄러운 표정이 아닌데?”
“나도 부끄러워할 줄 안다고……. 일단 이거 맛 좀 볼까?”
소울과 유정아는 랩터킹 스테이크가 식기 전에 칼질을 시작했다.
유정아가 고기를 작게 나이프로 썰어 포크로 집더니 입에 넣고 오물거리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으음?”
“왜? 레이디는 아침부터 고기 안 먹는다며? 이리 내. 내가 다 먹을게.”
“노!”
순간 유정아는 소울에게 나이프를 세우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고기를 목구멍에 쑥 넘기고는 환하게 웃었다.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스테이크는 처음 먹어본다. 이거 무슨 고기야?”
“그걸 꼭 내가 여기서 얘기해야해?”
“아니다. 그럴 필요 없어. 호호호! 나중에 나한테만 살짝 얘기해줘!”
유정아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랩터킹 스테이크 시식 삼매경에 빠져 들었다.
그녀의 접시에 담긴 스테이크는 그리 크지 않았다. 새하얀 접시에는 손바닥 반만 한 크기의 스테이크 한 점과 버섯, 아스파라거스가 하나씩 놓여 있을 뿐이었다.
아마 주방장은 레이디에게 커다란 고기 덩어리를 주는 것은 에티켓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소울의 접시에 담긴 스테이크의 덩어리가 무척 커보였다.
큼지막한 스테이크 덩어리가 몇 개나 가지런히 쌓여있었다.
그는 혹시 유정아에게 한 점이라도 빼앗길까봐 빠르게 고기를 잘라 포크로 집어 입속에 집어넣고 열심히 씹었다.
“좀 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하겠어.”
“걱정 붙들어 매. 체하면 소화제 먹으면 돼. 그리고 능력자는 쉽게 잘 안 체하거든.”
“나 그거 한 점만 더 썰어줘!”
“안 돼! 넌 네 거 다 먹었잖아. 난 내거 다 먹을 거야.”
“정말 치사하게 이럴거야?”
“응, 그럴 거야.”
유정아는 자신이 쓴 방법이 씨알도 안먹히자 바로 작전을 바꿨다.
“랩터킹 잡은 거 있잖아? 내가 소급적용 받아왔는데……. 100억 준다고 하더라.”
“그래? 정아야! 여기 있다. 많이 먹어라.”
“호호호! 고마워!”
랩터킹 스테이크가 아무리 맛이 있어도 100억을 받아온 유정아에게 고기 한 점 정도는 얼마든지 줄 수 있었다. 다만 그 고기 한 점이 손바닥 반만 해서 조금 아쉽기는 했다.
“그런데 언제 준데?”
“랩터킹 하나 더 잡으면 소급적용해서 같이 준다고했어.”
“그럼 더 못 잡으면 아예 못 받는단 말이야?”
“응.”
“고기 이리 다시 가져와!”
“어허, 왜 이러실까? 남자가 쪼잔 하게.”
“나 원래 졸라 쪼잔 해. 그거 아직 몰랐어?”
소울은 그녀의 접시로 포크를 가져갔다.
순간 유정아의 말에 몸을 딱 멈췄다.
“랩터킹 한 마리 어디 있는지 내가 소재파악 해놨는데…….”
“그래? 뭐하고 있니? 어서 빨리 먹어라. 많이 먹어. 미인은 고기를 좋아한다더라.”
유정아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접시 위의 랩터킹 스테이크를 칼로 작게 썰어 우아하게 포크로 집어먹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어?”
“무리들과 떨어질 때까지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아. 방법은 전과 동일해. 순항미사일 공격에 네이팜탄, 그리고 그 뒤에 포격을 하게 될 거야. 자기는 마지막에 마무리만 지으면 돼!”
“마무리가 제일 힘들거든. 목숨 걸어야 하는 것 몰라서 그래?”
“동영상 보니까 그리 어렵게 잡은 것 같진 않던데?”
“너 내 허락 없이 전투헬멧에서 칩을 뽑아 간 거야?”
“허락이라니? 우리 계약 벌써 잊었어?”
“휴우! 좋아. 하지만 너만 보도록 해. 그리고 앞으로는 내가 줄때까지 함부로 뽑아가지마. 한 번은 봐줘도 두 번은 용납 안한다.”
“콜! 알았으니까 인상 좀 풀어. 누가 보면 내가 바람이라도 핀 줄 알겠다.”
유정아는 소울이 인상을 팍 쓰자 그의 옆구리를 손으로 살살 쓸어주며 애교를 떨었다. 짧은 시간에 유정아의 태도가 많이 바뀐 것을 깨달은 소울은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자기 혹시 이번에 열리는 자선파티에 초청받았어?”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사실은 나도 거기에 참석하거든……. 명단을 보니까 이름이 있던데?”
“명단을 볼 정도로 정아가 거기 VIP야?”
“뭐 그런 셈이지. 내가 마음이 여려서 좀 많이 기부하거든.”
“그래?”
소울은 숨길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고하라의 아버지가 초청장을 보내줬더라고…….”
“고하라면? 아! 그 간호사? 아마 그녀의 부친이 미래백화점 부회장이었지?”
“알고 있었어?”
“뭐 대충…….”
“도대체 넌 모르는 게 뭐냐?”
“나? 나도 아는 것 빼면 다 몰라.”
“됐다. 휴우! 내가 너하고 이런 말장난이나 하고 있다니…….”
“호호호, 이거 왜 이래? 나하고 이렇게 웃고 떠들 수 있는 남자가 세상에 그리 흔한 줄 알아?”
유정아가 요염하게 그를 노려보자 소울은 괜히 심쿵해져서 슬쩍 눈을 피했다.
정말 더럽게 예쁘게 생겨가지고 사람 헷갈리게 하는데 뭐 있는 여자였다.
“그건 그렇고 나 부탁이 있어.”
“뭔데?”
“내 소환수들에게 무장을 시켜줬으면 해.”
“푸티나에게?”
“푸티나도 무장시켜야 하고…….”
“좋아. 자기에게 무기와 무장을 지원해주기로 약속했으니 얼마든지 해주지.”
“나중에 딴 말 하지 마.”
“알았어. 어디 내가 한입으로 두말 할 여자야?”
유정아의 호언장담에 소울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너도 한번 당해봐라. 맨날 날 이겨먹기만 하면 어떻게 하냐. 가끔은 너도 독박을 한번 써봐야지.’
소울은 시치미를 뚝 떼고 식사를 마쳤다.
식사가 끝난 소울과 유정아는 방으로 올라가 가볍게 몸을 푸는 운동을 한번 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그들은 지하 깊은 곳에 있는 제 7 연구동으로 바로 내려갔다.
위이이이잉!
무섭게 빠르게 내려가던 승강기는 너무나도 부드럽게 목적지에 딱 멈추더니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철저한 보안검색을 거친 그들은 제 7 연구동 안으로 들어갔다.
“각종 무기와 장비는 1 연구실에 있으니까 이리로 가자.”
“응.”
그는 유정아를 따라서 1 연구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유정아는 곧 소울이 소환한 본과 스켈레톤 부대를 보고는 입에 거품을 물며 쌍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이렇게 소환수가 많으면 많다고 말을 해줘야 할 것 아니야? 한두 마리도 아니고 스물이 넘는 놈을 나보고 어떻게 무장을 채우란 말이야? 내가 흙 파서 장사하는 장사꾼이야? 너 나를 그 정도 밖에 안 봤어? 이게 완전히 나를 아주 호구로 봤네? 그런 거야? 내가 지원해주는 무기와 장비가 하나에 얼마짜리인지 알고 이 따위 수작을 했어? 그 쥐 좆만 한 대가리로 생각해낸다는 게 겨우 이런 개수작이냐고…….”
그녀가 욕하는 모습을 본 소울은 희한하게도 웃음이 나오며 속이 후련해지기 시작했다.
아마 그녀의 쌍욕을 들으면서 미소를 짓는 놈은 이 세상 천지에 소울 하나 뿐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늘 당하다가 이렇게 한 방 먹이기 십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간 것처럼 속이 다 시원했다.
한참동안 열을 내던 유정아는 제풀에 지쳐 씩씩대다가 화가 조금 풀렸는지 이내 긴 한숨을 내쉬며 이성을 차렸다.
“자기가 이렇게 내 뒤통수를 후려 깔 줄은 몰랐네.”
“자세히 설명을 안 한 것은 미안하게 됐어.”
“그런데 무슨 소환수가 소환수를 소환해? 그것도 스물이나 되는 병사들을…….”
“그러게 말이야. 일단 이건 나와 너만 아는 비밀이니까 꼭 지켜주길 바란다.”
“당연히 그래야지. 나 입 무거운 여자야.”
“그래. 알고 있어.”
유정아는 잠시 본과 스켈레톤 부대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쾌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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