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2 제 46 장 - 뒤치기 =========================================================================
“마나의 강제 안착이라…….”
“마지막으로 소환수에게 정령석 하나를 통째로 먹이신 것 같던데, 그 정도의 정령석이라면 소환수도 이미 큰 힘을 얻어서 승급을 바라보고 있을 겁니다. 아마 승급을 하게 되면 마나를 마스터의 단전에 붙잡아두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예요. 최소한 마나오션이 안 이루어져도 마나가 몸에 충분하게 있으면 육체강화가 극한으로 이루어지는 게 가능할 테니 결코 손해는 아닐 겁니다. 또한, 아무리 소환에 대한 재능이 없어도 소환수가 승급을 하게 되면 그 영향이 그대로 소환사에게 옵니다. 소환수와 소환사는 둘이자 하나인 존재이니까요.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결국 라펠의 말은 까망이를 통해서 한번 시도해보라는 조언이었다.
되도 좋고 안 되더라도 조금 더 육체의 강화를 이룰 수 있으니 손해 볼 일이 없다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한번 시도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의하실 점은 절대 한꺼번에 많은 양의 마나를 가지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이 감당할 정도의 미량으로 시작해도 마나가 일단 조금이라도 안착되면 마나오션을 만드는 것은 노력여하에 따라 금세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이게 성공하면 저도 상급 육체 강화계 능력자가 될 수 있습니까?”
“그건 아마 힘들 겁니다. 이건 소환계 능력자의 등급을 빠르게 상승시키려는 일종의 편법 같은 것이라서 E급에서 최대 D급 강화계 능력자가 가지는 육체 내구성까지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육체 내구성까지 만요? 그렇다는 얘기는 D급 강화계 능력자의 육체를 가져도 힘은 그에 걸맞게 낼 수 없다는 말이네요.”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겠지요. 물론 이것은 가설에 불과하니 실질적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가설은 가설일 뿐이다.
가설을 가설이 아닌 진실로 만들려면 그것을 확인하는 외에는 방법이 없다.
결국 자신이 직접 시험을 해봐야한다는 얘기다.
모험을 하지 않고는 결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소울은 왠지 까망이와 함께라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은 좋은 느낌을 받았다.
“오늘 이렇게 저를 위해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마스터를 위해 제가 리자드맨 주술사의 내단을 순화시켜서 흡수하는 법을 준비해놓았습니다. 제 기억창고에 들어오셔서…….”
소울은 라펠의 친절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이렇게 주고받는 것이 나중에 서로에게 얼굴 붉히지 않는 유익한 일이 되니, 서로 당당하게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으면 됐다.
라펠이 떠가고 나자 소울은 라펠의 기억창고로 가서 자신을 위해 준비해 놓은 ‘몬스터 주술사 내단 순화 및 흡수’와 ‘라펠소환진 이론’을 하급 영혼체험을 통해 배웠다.
또한, 타이로스의 기억창고에 들어가 ‘쉐도우 스텝 어드밴스’를 배웠고, 세이지의 기억창고에 들어가 ‘마나집적진 이론’을, 탄탈라스의 기억창고에 들어가 ‘소환수 강화이론’을 배웠다.
울프리나의 기억창고에서는 ‘문신강체술 기본’과 ‘박투술과 회피술’을 배우고, 옥사나의 기억창고에서는 ‘오크들의 습성연구’에 대해 배웠다.
이렇게 타이로스, 라펠, 탄탈라스, 세이지, 울프리나, 옥사나 6명의 기억창고에 차례로 들어가 하급 영혼체험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맞춤 체험을 하고나자 그는 먹지 않아도 이미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보람찬 시간을 보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그는 소울넷에서 접속해제를 외쳤다.
그의 얼굴에 작은 성취감이 비춰졌다.
* * * * *
화아악!
푸티나의 몸에서 주황색 빛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제 됐다. 푸티나! 너도 이제 D급 소환수가 된 거야.”
소울은 자신의 예상이 적중하자 크게 기뻐했다.
까망이에게 먹인 것이 정령석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고민 끝에 정령석 하나를 푸티나에게 먹이기로 결정했다.
라펠을 통해 정령석의 여러 가지 용도를 알게 된 그는 이미 D급 소환수가 된 까망이와 본과는 달리 아직 E급에서 벗어나지 못한 푸티나를 향해 전격적으로 정령석 하나를 투자한 것이다. 결국 투자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서서히 빛이 사라지자 소울의 눈앞에 거대한 불곰 한 마리가 떡 버티고 앉아 있었다.
몸길이 300cm, 어깨높이 160cm, 몸무게 350kg의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흑갈색의 멋진 털을 휘날리며 있는 푸티나는 양 귀와 네 발바닥 그리고 가슴의 번개 문양에 눈처럼 새하얀 털로 덮인 채 소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엄청난 포스에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야! 이, 이거 너무 큰 거 아니야?”
“낑! 낑낑!”
소울은 푸티나가 커져도 너무 커지자 순간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의 마음을 눈치 챈 푸티나는 무척 당혹스러워했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귀여움이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커져버리자 왠지 이제는 주인에게 사랑받기가 힘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푸티나는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두 주먹을 꾹 쥐고 힘을 꾹 줬다.
순간, 놀랍게도 주자 푸티나의 몸이 스르르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라? 줄어들었네? 푸티나에게 이런 재주가 있었구나.”
“낑!”
푸티나는 다시 자신의 허리밖에 안 되는 예전의 귀여운 새끼 곰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이런 모습을 소울이 제일 좋아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소울은 푸티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조용히 속삭였다.
“푸티나! 평상시에는 이렇게 하고 있다가 몬스터와 전투를 할 때는 원래대로 커져도 괜찮아. 오케이?”
“낑!”
푸티나는 소울이 자신을 인정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져서 그의 다리에 자신의 얼굴을 마구 비벼댔다.
잠시 푸티나와 놀아준 소울은 이제 돌리던 공장을 접고 파주로 이동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난 사흘 동안, 임진강을 타고 내려오는 리자드맨을 보는 족족 죽여대서 이미 리자드맨 가죽이 산더미만큼 쌓여 있었다.
이젠 리자드맨 얼굴만 봐도 저절로 토가 쏠렸다.
결정적으로 리자드맨 웨이브가 끝나간다는 것을 유정아를 통해 알게 되었다.
임진강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한 해군의 고속정을 보면서 자신이 운영하는 공장을 정리하고 떠날 때가 왔다는 것을 알게 된 소울은 즉시 유정아에게 전화를 걸어 이곳에 남겨 놓은 리자드맨 가죽과 언덕 남쪽 구덩이에 묻어 놓은 리자드맨 사체의 처리를 부탁했다.
유정아는 그동안 틸트로터 무인기 하나를 더 사서 총 3대로 리자드맨 가죽을 실어 열심히 실어 날랐다. 하지만 짐을 나르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훨씬 빨라 결국 미군의 수송용 헬기 2대를 빌려 전격적으로 투입하기로 했다.
30분도 되지 않아 쌍발 엔진, 탠덤 로터 형식의 중형 헬기인 CH-47 치누크 2대가 하늘에서 내려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리자드맨 가죽을 실어 가져갔다.
소울과 그의 소환수들이 주변을 깨끗이 청소해놓은 덕에 몬스터 한 마리 없는 터라 그들은 안심하고 작업을 끝내고 하늘을 날아갈 수 있었다.
소울은 하늘을 향해 가볍게 손을 한번 흔들고는 자신의 소환수들과 같이 숲속으로 들어갔다. 대기하고 있던 본과 스켈레톤 부대를 앞세운 그는 빠르게 북상(北上)해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뒤쪽으로 돌아갔다.
한편, 어느새 랩터들에게 밀려 통일공원까지 후퇴한 방어군은 결국 문산읍을 포기하고 동문천을 이용한 방어선을 새로 만들어 놓고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정면에 보이는 문산교와 문산1교를 통해 끝도 없이 밀려드는 랩터를 향해 중기관총들이 교차사격으로 미친 듯이 쏘아대고 있었지만 랩터들은 빠른 발을 이용해 이리저리 피하면서 다리를 건너왔다.
모든 중기관총을 전부 집중하면 좋을 것 같은데 겁도 없이 동문천을 마구 건너오는 랩터들을 견제해야하기 때문에 그것도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방어군의 얼굴에 초조함이 서리고 등에 식은땀이 흐를 때, 드디어 원소계 능력자들이 대거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거대한 불덩어리와 폭풍 같은 눈보라가 랩터 무리를 덮쳐왔다. 스파크가 번쩍거리는 강력한 전격의 구체들이 하늘을 날아 지져대기 시작했다.
쾅 콰콰쾅 콰콰쾅 쾅쾅!
휘이이이잉 휘이이이잉!
펑 파지지직 펑 파지지직!
두 개의 다리 위를 새까맣게 덮고 있던 랩터의 무리가 순식간에 몰살을 당하자 방어군과 능력자들은 한 목소리로 승리의 환호성을 질러댔다.
와아아아아아!
하지만 랩터의 공격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죽어버린 랩터들 뒤로 어느 사이에 엄청난 숫자의 거대한 랩터 무리가 두 개의 다리를 향해 접근해왔다.
휘이이이잉! 펑! 쾅 콰르르릉!
이번에는 아까와 양상이 좀 달라졌다.
포병이 랩터들이 모여드는 것을 완전히 노리고 소이탄을 발사했다.
거대한 화마가 솟구쳐 오르며 주변의 랩터들을 붉은 불의 혓바닥으로 모조리 삼켜버렸다.
대형 네이팜탄을 쓰면 더 넓은 지역에 더 엄청난 효과를 볼 것 같은데 아무래도 문산읍 자체를 초토화할 생각은 아니었는지 소이탄으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불이 꺼지자 또다시 랩터의 무리가 빠르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중기관총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총신이 벌게지도록 쏘아댔다.
랩터와의 전투는 그렇게 쳇바퀴 돌 듯 끊임없이 돌고 돌아갔다.
[멈춰!]
소울의 의지가 그의 소환수들에게 전달되자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그 자리에 석상처럼 멈춰 섰다.
[까망아! 저 앞으로 가봐! 분명히 뭔가 있는 것 같아.]
[규!]
[우리는 저리로 우회한다.]
소울이 지시를 내리자 푸티나가 앞장을 서서 옆으로 조심스럽게 우회했다.
폭음이 난무하고 화마가 무성한 파주시의 전장과는 달리 랩터들이 지나간 후방은 기이하리만큼 조용했다.
숲속 한쪽에 모여 있는 랩터들은 마치 회의라도 하는 듯 옹기종기 모여서 뭔가 얘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곳에 모인 랩터들은 하나 같이 일반 랩터와는 그 크기와 모양이 아주 많이 달랐다.
덩치가 두 배는 더 커 보이는 빅랩터, 험악한 얼굴에 얼굴이 크고 줄무늬가 있는 줄무늬 랩터, 날카로운 뿔이 세로로 나 있는 뿔 랩터 그리고 덩치가 3.5m 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랩터까지…….
‘다른 놈은 모르겠지만 저 3.5m짜리 대형 랩터는 분명히 랩터킹이다. 저놈을 잡을 수만 있다면 의외로 랩터 웨이브를 쉽게 종식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소울은 조심스럽게 살펴보다 전투헬멧의 동영상 기능을 켜서 기록을 하고는 능력자협회와 능력개발청 그리고 유정아에게 동시에 긴급전송을 시작했다.
그리고 랩터킹으로 추정되는 놈이 있는 장소를 표적 삼아 좌표를 찾기 시작했다.
전투헬멧에는 표적을 몇 초간 지속적으로 바라보면 ‘락 온(lock on)’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락 온’을 한 상태로 GPS와 연동을 하면 쉽게 해당 표적의 정확한 좌표를 찾을 수 있다.
좌표가 뜨자 그는 또다시 능력자협회와 능력개발청 그리고 유정아에게 바로 보내 버렸다. 그러자 유정아에게 바로 전화가 왔다.
-이거 뭐야?
“내가 보낸 좌표와 동영상 받았어?”
-응. 그래서 전화했잖아.
“아무래도 동영상에 나오는 이놈이 랩터의 우두머리 같아.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랩터킹 정도 되겠지.”
-랩터킹?
“능력자협회와 능력개발청에도 보내놓았는데 아무래도 정아가 힘을 좀 써줘야 할 것 같다. 국방부 쪽으로 말이야.”
-이거 자기가 보낸 거라고 얘기하고 육군에 정밀타격이라도 해달라고 떼를 쓰라는 거야?
“제대로 짚었네. 지금 내가 바로 그걸 원하는 거야. 순항미사일로 정밀타격하면 랩터킹이고 지랄이고 지들이 어떻게 버티겠어.”
-흐음, 그건 일단 한번 부딪쳐 봐야겠다. 그런데 어디에 있어? 숲속에 들어가 있어?
“핸드폰을 위치추적 되잖아? 그건 왜 물어봐?”
-신호가 약해서 자꾸 끊긴단 말이야. 혹시 모르니까 좀 멀리 떨어져 있어. 괜히 엄한 미사일에 맞아 죽지 말고.
“그래 알았다. 가능하면 빨리 처리해. 괜히 움직이면 골치 아프니까.”
-알았어.
소울은 전화를 끊자마자 주변을 살펴봤다.
가급적이면 나중에 도망가기 좋거나 방어하기 좋은 지형을 선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뒤쪽으로 낮은 언덕이 하나 보였다.
[모두 저 언덕으로 조용히 후퇴한다.]
그는 자신의 소환수를 데리고 언덕으로 조심스럽게 후퇴했다.
언덕 위에 바위 사이에 자리를 잡은 그는 대물저격총을 거치하고 생체실드 중화탄이 담긴 탄창으로 교환한 후 스코프로 랩터킹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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