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6 제 44 장 - 공포의 랩터 웨이브 =========================================================================
소울은 조용히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조용히 본룸으로 들어갔다.
본을 불러 토굴 입구를 폐쇄하도록 지시했다.
이제 그들을 이쪽으로 불러들인 원인을 제거했으니 아마 멧돼지와 다이어울프를 뜯어 먹고 나면 다시 가던 길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기대하며 본이 만들어 준 침대에 누워 느긋하게 잠을 청했다.
본은 스켈레톤 부대를 벙커에서 본룸 통로로 퇴각시키고 토굴의 입구에 뼈를 토해내어 순식간에 막아버렸다.
물론 소울이 숨을 쉬는데 곤란함이 없도록 토굴 위쪽은 적당히 구멍을 뚫어 놓는 센스를 잊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위기가 지나갈 줄 알았다.
아니 거의 소울의 예상대로 진행되었다.
멧돼지가 랩터들의 발톱에 산산조각으로 찢겨 그들의 뱃속으로 들어가고 다이어울프 세 마리 역시 순식간에 뼈만 남길 때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소울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냄새였다.
리자드맨들이 사체냄새는 마치 생선이 썩는 것 같은 지독한 냄새를 풍긴다. 그리고 리자드맨들의 피는 유난히 향이 진하다. 그래서 멀리서도 리자드맨들이 동족이 죽은 것을 금방 알아채는 것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바람이 불지 않더니 랩터들이 돌아가려고 하는 순간 바람이 북풍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진한 리자드맨의 피 냄새가 흘러가 랩터 몇 마리의 주의를 끌었다.
쿠힝 쿠힝 쿠힝…….
아무것도 안 먹는 게 배고플까? 아니면 조금 먹다가 만 게 더 배고플까?
정답은 후자였다.
워낙에 많은 랩터 무리로 인해 그들은 지금 무척 배가 고팠다.
그래서 십여 마리의 랩터들은 리자드맨의 피 냄새에 반응해서 언덕을 향해 달려왔다.
대다수의 랩터들은 다시 동쪽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었지만 주변에 흩어져서 먹을 것이 없나 뒤지고 다니는 놈들의 숫자도 꽤 적지 않았다.
소울은 생수를 한 모금 마시고는 조용히 누워 있었다.
푸티나도 한쪽 구석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당연히 본과 스켈레톤들은 미동도 없이 석상처럼 그렇게 딱 굳은 채 서 있었다.
오직 까망이만 벙커 밖으로 나가서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사방이 조용하자 슬슬 졸음이 왔다.
아침 먹고 열심히 리자드맨을 잡아서 그런지 좀 피곤한 것 같기도 했다.
랩터들을 보내고 나서 점심을 뭐를 먹을까 생각하던 그는 깜빡 잠이 들 뻔했다.
하지만 곧 랩터들이 내는 소리가 본룸 입구에 들리자 그는 번쩍 눈을 떴다.
쿠힝 쿠힝 쿠힝…….
어느새 랩터들이 언덕 위로 올라와서 본벙커를 이빨로 씹어 구멍을 내고는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비록 몇 마리 되지는 않았지만 벙커 안을 기웃거리던 그들은 곧 본룸의 존재를 알게 됐고 소울의 냄새까지 맡았다.
인간에게는 인간들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냄새가 난다.
아마 몬스터들에게는 이런 냄새가 달착지근하고 향긋하게 느껴지는지도 몰랐다.
그들은 뼈로 꽉 막혀있는 본룸에 코를 대고 킁킁 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뭔가 확신이 났는지 한 마리가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쿠히잉 쿠히이이이잉…….
그러자 주변에 있던 랩터들이 일제히 언덕 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빠각 빠각…….
와드득 와드득…….
날카로운 발톱과 튼튼한 이빨을 가지고 있는 랩터는 본벙커 양쪽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버리더니 이내 본룸 입구로 몰려와 발톱으로 마구 긁어대기 시작했다.
리자드맨들과는 달리 랩터의 발톱과 이빨은 본이 만들어 놓은 뼈와 상극이라도 되는지 생각보다 너무나 쉽게 구멍이 숭숭 뚫리고 있었다.
물론 본이 그들이 하는 짓을 가만히 내버려둬서 그런 것이긴 하지만 확실히 리자드맨들이 본벙커를 공격할 때와는 다른 양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쿠히잉 쿠히이이이잉…….
이번에는 랩터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동료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자 수백 마리의 랩터떼가 달려와 언덕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본룸 입구 뿐만아니라 그 위로 올라가서 아예 발톱으로 마구 파헤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본룸 천장이 다 드러나겠는데?’
소울은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을 했다.
아무래도 이놈들과 한판 거하게 싸워야 할 것 같았다.
[까망이는 본룸 위쪽으로 올라간 랩터들을 처리해!]
[규!]
[본! 랩터들을 모두 쓸어버려!]
[깍!]
[푸티나도 가서 도와!]
[낑!]
소울은 결국 칼을 뽑아 들었다. 아니 대물저격총을 들었다.
그가 싸울 의지를 분명히 하자 곧바로 본이 움직였다.
본이 크게 숨을 들이키더니 입을 커다랗게 만들고는 힘차게 내뿜었다.
까드득 까드드득 까라라라라라라…….
그러자 그의 입에서 어마어마한 뼈들이 쏟아져 나오며 동굴 입구를 막고 있는 뼈들까지 몽땅 한꺼번에 밀어버렸다.
쿠히이잉 쿠히이잉…….
갑작스런 변화에 놀란 랩터들이 몸을 피하려다 넘어지거나 뼈에 맞아 쓰러지는 둥 잠시 벙커 안에 큰 소란이 있었다.
하지만 본룸 입구까지 당당히 걸어 나온 본이 두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리자 방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까드드득!”
그의 입에서 뼈들이 마구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자 랩터들이 몰려와 부셔놓은 본벙커가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듯 일제히 위로 솟구치더니 날카로운 가시를 만들어 랩터들의 몸을 관통해버렸다.
까드득 까드드득…….
푹 푸욱 푹 퍽…….
쿠히익 쿠히익 쿠히익…….
순식간에 십여 마리의 랩터가 날카로운 뼈에 관통당하며 공중으로 들리자 본벙커가 금세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됐다.
아니 본래의 매끈하고 납작한 반구체형 본벙커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 듯 이제는 날카로운 뼈창이 고슴도치처럼 사방으로 튀어나온 모습이었다.
본이 벙커의 중심에 서서 지휘를 시작하자 스켈레톤 창병과 궁병, 스켈레톤 바이킹들이 일제히 벙커로 나와 뼈창을 이용해 랩터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스켈레톤 메이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마법지팡이를 허공으로 들어 올리더니 뭐라고 중얼거리자 녹색의 연기가 뿜어져 나와 주변으로 낮게 퍼져 나갔다.
녹색의 연기에 닿거나 마신 랩터들은 순간 휘청거리며 비틀거렸고 특히 상처를 입은 랩터들은 바로 중독되어 쓰러져 버렸다.
소울은 대물저격총을 들고 본룸 입구로 나와 전투를 지켜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생각보다 자신의 소환수들은 훨씬 훌륭하게 싸워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룸 위쪽에서 설치던 랩터들은 어느새 까망이의 기습으로 인해 언덕에서 미끄러지던가, 치명상을 입고 북쪽 낭떠러지로 떨어져 내렸다.
업그레이드 된 본벙커는 처음보다는 확실히 더 단단해지고 더 위협적으로 변해있었다.
본과 스켈레톤 부대가 열심히 뼈창으로 랩터를 찔러대자 랩터들은 그것을 피하느라 몸을 움직이다 오히려 본벙커에서 튀어나온 뼈창에 찔러 죽임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가끔 몰래 본벙커 한쪽을 이빨로 갉아서 뚫고 들어오려는 놈들이 있었지만 그런 놈들은 푸티나의 분노의 전격에 당해 온몸이 통닭처럼 구이를 당해 쓰러져야했다.
‘어? 냄새 죽이는데……. 혹시 랩터는 통닭처럼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 한번 실험을 해봐야겠다.’
위급한 상황에도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줄지 않은 소울이었다.
전체적인 전황은 급격히 안정적으로 변했다.
하지만 문제는 랩터가 너무 많다는데 있었다.
수십 마리 정도는 얼마든지 감당이 되지만 백여 마리가 한꺼번에 본벙커로 올라오자 그 자체의 무게만으로도 당장 무너지려했기 때문이었다.
본은 그 모습을 보더니 즉시 소울을 데리고 본룸으로 들어갔다.
푸티나가 눈치 빠르게 따라 들어왔고 곧이어 스켈레톤 부대가 들어왔다.
까드득 와르르르 쿵 쿠르릉 쿵!
순간 무게를 견디지 못한 본 벙커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본룸이 지진이 난 듯 흔들렸다.
하지만 본은 본룸 입구에서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더니 두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까릉 까릉 까릉…….”
쾅 콰쾅 콰콰쾅 쾅쾅쾅…….
그때였다.
본이 짧게 소리를 지르는 순간 무너진 본벙커의 잔해가 마치 수류탄처럼 일제히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파편이 벙커 안에 있던 랩터를 덮치자 곧 랩터들이 무더기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폭발은 멈추지 않았다.
죽은 랩터까지 본의 소리에 맞춰 산산조각으로 터져 나갔던 것이다.
그로 인해 언덕 위로 올라왔던 랩터들은 순식간에 전멸을 당해버렸다.
털썩!
순간 소울은 머리가 핑 도는 느낌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덩방아를 찧었다.
[본, 그만해.]
[깍!]
소울은 본이 뼈와 시체를 터뜨리는 ‘본 익스플로전’과 ‘콥스 익스플로전’ 스킬이 자신의 스피릿 파워를 마구 끌어다 썼다는 것을 저절로 깨달았다.
그는 지금 심한 허탈감과 어지럼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본, 앞으로 그거 함부로 쓰지 마. 내가 감당이 안 된다.]
[깍!]
본은 그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푸티나가 즉시 소울의 몸을 번쩍 들어 본룸으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혔다.
소울은 뼈로 만들어진 침대에 누워서 필사적으로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생전 처음 당해보는 스피릿 파워의 고갈은 그로써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본은 즉시 본룸의 입구와 통로를 뼈로 막아버리고 본벙커를 복구시켰다.
스켈레톤들은 주변을 돌아다니며 아직 살아있는 랩터들의 명줄을 끊어버리고 다시 전투 준비를 했다.
몇 분 되지도 않아 본벙커가 완전하게 회복되고 전투 준비가 끝나자 하지만 그에 맞춰 수십 마리의 랩터들이 또다시 언덕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스켈레톤 메이지는 즉시 버프마법을 써서 본과 동료 스켈레톤을 강화했다.
본과 그의 동료 스켈레톤들은 덕분에 아까보다 훨씬 강력한 공격을 할 수 있었다.
스켈레톤 메이지는 본벙커의 동쪽과 서쪽의 언덕길을 주목했다. 랩터들이 이곳으로 계속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지팡이를 번쩍 들은 스켈레톤 메이지는 즉시 양쪽의 언덕길을 마법으로 얼려서 미끄럽게 만들어 버렸다.
언덕 위를 올라오려는 랩터 몇 마리가 주르륵 미끄러지더니 마치 볼링공처럼 동료 랩터들 수십 마리를 쓰러뜨렸다.
이것만으로도 본과 스켈레톤 부대는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누워서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는 소울부터 그 사실을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아이유, 어지러워라! 세상이 다 핑핑 도네. 본은 왜 시키지도 않은 큰 기술을 마구 써 대가지고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 거야. 하지만 그렇게 안했으면 아마 큰 위험에 처했겠지……. 하긴 대단하긴 했어. 멋지기도 하고……. 휴우! 여기까지가 내 능력의 한계인가 보구나. 이렇게 랩터들에게 당해서 죽게 되는 건가? 이 정도면 E급 소환계 능력자로 꽤 센 편인데, 역시 다구리에는 장사가 없구나.’
소울은 눈을 감은 채로 빨리 자신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자신의 허접한 능력을 생각하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동안 승승장구하는 바람에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자만했는데 랩터 떼를 만나고 나자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갔다.
‘어떻게 해야 빨리 회복할 수 있지? 이게 정말 내가 가진 스피릿 파워의 한계인가? 처음 F급 소환계 능력자에서 E급으로 승급했으니 D급으로 승급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스피릿 파워를 더 키울 수 있지? 가만 스피릿 파워를 키운다고? 그렇구나. 나한테 그 방법이 있었구나.’
소울은 번쩍 눈을 뜨더니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았다.
핑 도는 느낌에 그만 쓰러질 뻔 했지만 악착같이 몸의 중심을 잡고 벽에 몸을 기댔다.
[까망아!]
[규!]
소울이 까망이를 부르자 밖에서 열심히 분노의 칼질을 하며 랩터를 기습하고 있던 까망이가 즉시 소울의 앞으로 날아왔다.
[까망아, 지난번에 내가 너한테 리자드맨 주술사에게 가서 주술사 지팡이 가져오라고 했었지?]
[규!]
[그거 한번 꺼내봐!]
[규!]
소울은 리자드맨 주술사의 지팡이 2개를 그의 앞에 꺼내 놓았다.
무슨 나무인지 모르지만 상당한 영기가 서린 나무지팡이였다.
그는 요리조리 살펴보다가 손잡이 부분에서 뭔가를 발견하고는 양손으로 잡아 옆으로 비틀어 뽑았다.
탈칵!
“아!”
역시 예상했던 대로 손잡이가 분리 되더니 안에서 뭔가 떨어져 내렸다.
손가락으로 집어 들어보니 녹색의 작은 돌멩이였다.
[규! 규규!]
까망이가 그 돌을 보자 갑자기 크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응? 너 이게 뭐지 알아?]
[규! 맛있는 거다.]
소울은 고개를 한번 갸웃하고는 혀에 대고 맛을 봤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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