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6 제 39 장 - 위상변화 =========================================================================
“혹시 능력개발청 공격대에 들이시려는 겁니까?”
“아니요. 그건 너무 성급합니다. 잘 아시잖아요? 능력자 대부분이 뭔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군요.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 스타를, 아니 슈퍼스타를 만들어야지요. 그리고 그 슈퍼스타가 능력개발청을 대표하는 성공적인 아이콘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이소울 능력자를 잡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반드시 성공하도록 하겠습니다.”
“백 과장만 믿겠습니다.”
백인천 과장은 청장을 직접 찾아온 모험을 감행한 것이 성공하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간만에 발동한 촉이 이번에 그에게 대박의 기회를 준 것이다.
거기에다 청장의 말은 조심스럽게 접근하라는 것이었다.
당장 바라는 것 없이 주는 것만 하는 일은 누구나 잘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러니 일단 빚을 지워놓고 나중에 가벼운 부탁을 하면 그는 반드시 들어주게 될 것이다.
백인천 과장이 지동현 청장의 특명을 받고 서둘러 밖으로 나가자 백두원이 바로 들어왔다.
“제가 좀 늦었지요?”
“아닙니다. 나도 잠시 급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럼 다시 얘기를 시작해볼까요?”
“네, 그렇게 하죠.”
두 사람은 동상이몽(同床異夢)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마음속에 각자가 생각하는 히든카드를 만들어 놓아서 그런지 여유를 가지고 대화를 나눴다. 덕분에 두 사람의 대화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어 양측이 긴밀하게 협조를 한다는 비밀동맹을 맺게 됐다.
이제 능력자협회와 능력개발청은 서로 보이지 않는 지원을 통해 본격적인 파워게임(권력 다툼)을 시작할 수 있게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
서로 믿음의 굳센 악수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두 사람의 마음속엔 서로 다른 생각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이 떠올린 생각의 끝엔 똑같은 얼굴이 떠올랐다.
서로가 승리의 V자를 그릴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 중 과연 누가 최후에 웃을 수 있을지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 * * * *
고블린은 일반적으로 몬스터 중 최약체로 평가받는다.
최하급 소형 몬스터답게 고블린의 체형은 초등학생을 능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는 호전성과 마비독침은 방심한 E급 능력자라도 한방에 훅 보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능력자 테스트를 통과한 초보 능력자들이 가장 많이 사냥하는 몬스터가 고블린이고 또 가장 많이 죽임을 당하는 몬스터 또한 고블린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사실을 가장 잘 뒷받침해준다.
물론 어느 정도 몬스터 사냥을 경험한 능력자들에게 고블린은 그저 칼질 몇 번 해대면 끝나는 시시한 사냥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고블린은 마비독침만 조심하면 사냥하기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에 능력자라면 누구나 사냥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대 몬스터 방어벽 남문은 이런 고블린을 사냥하려는 파티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무슨 파티가 이렇게 많지? 수도권의 능력자들이 전부 이리 모였나?’
가볍게 소환수의 능력을 알아보고 자신의 전투력을 테스트 하려던 소울은 지금 입이 십리만큼 튀어나와 있었다.
고블린을 좀 잡으려고 하면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과 축구공만한 불덩어리 때문에 꼼짝없이 자리를 이동해야했기 때문이다.
‘안되겠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겠다.’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본 파티만 해도 대략 수십 개는 되어 보였다.
파티를 맺고 사냥을 하면 안전하기도 하고 사냥효율도 좋아진다는 이점 때문에 요즘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에서는 능력자들끼리 적극적으로 파티를 만들어 몬스터 사냥을 할 것을 강력히 권유하고 있었다. 소울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많아도 너무 많았다.
‘하긴 고블린을 잡는데 파티까지 맺고 잡는 것도 어떻게 보면 반칙이지. 성인 남자가 무장만 잘해도 고블린 사냥이 가능하니까…….’
이렇게 발에 채이도록 많은 능력자 파티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인 소울은 할 수 없이 고블린 사냥을 포기하고 더욱 깊은 숲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곳을 넘어가면 능력자들이 말하는 오크 밭이 나온다. 고블린이 안되면 오크나 잡지 뭐…….’
소울은 그렇게 마음을 가볍게 하며 안쪽으로 걸어갔다.
매일 수십 개의 능력자 파티가 고블린을 잡는데도 끊임없이 고블린이 나타나는 것은 아마 고블린의 강력한 번식력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고블린을 찜 쪄 먹을 정도로 더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하는 몬스터가 이곳에 존재했다. 바로 오크였다.
오크 밭이야말로 F급, E급 능력자 파티의 마르지 않는 돈줄이자 능력자의 등급을 확연히 알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도 했다.
오크 밭이라고 이름 지어진 넓은 잡목지대가 나타나자 소울은 나무 위로 올라가 주변을 살펴봤다.
역시 사방에서 오크들을 사냥하는 능력자 파티가 하나 둘이 아니었다.
소울은 360도로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면밀히 살펴본 후 12시 방향을 쳐다보며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만이 유일하게 능력자 파티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쪽으로 더 들어가면 어떤 몬스터 영역이지? 설마 오크 백인대가 나오는 것은 아니겠지?’
소울은 오크 백인대를 생각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냥 오크 100마리를 죽이라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겠지만 오크 백인대를 상대하라고 하면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었다. 그 만큼 잘 무장되고 훈련된 오크 백인대는 무서운 상대였기 때문이다.
10분 쯤 북상하자 우려와는 달리 오크들만 계속 모습을 보였다.
몇 번 몸을 숨겼던 소울은 그제야 이곳에 커다란 위험이 없다고 판단하고 본격적으로 몬스터 사냥, 아니 오크 사냥을 시작했다.
물론 제일 큰 목적은 본의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소울은 일단 3m 높이의 잡목 위로 올라갔다.
대물저격총에 일반 탄창을 장전하고 자리를 잡자 곧바로 푸티나를 앞으로 내보냈다.
[푸티나, 오크들을 유인해 오도록 해!]
[낑!]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푸티나는 주변을 한번 쓱 훑어보더니 어디론가 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까망이는 위쪽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다른 몬스터나 파티가 접근해오면 내게 알려줘!]
[규!]
까망이가 그의 말에 즉시 허공으로 몸을 떠올리더니 원을 그리며 주변을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그는 전투헬멧의 탐색기능을 활성화하고 다시 한 번 무장을 확인했다.
꾸엑!
어디선가 흥분한 돼지 고함치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푸티나가 오크 한 마리를 풀링 해오는 것이 보였다.
[푸티나, 내가 있는 나무 아래로 데리고 와! 아직 죽이면 안 돼!]
[낑!]
푸티나는 소울의 말을 찰떡 같이 알아먹고 곧바로 그가 있는 나무 아래로 와서 나무를 사이에 두고 뱅글뱅글 돌았다.
그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짓고는 어깨에 걸어 놓은 본을 잡아 오크를 향해 던졌다.
휙! 툭!
본은 정확하게 오크의 몸에 맞았다.
[본, 오크를 죽여!]
[까각!]
하지만 본은 뭔가 아니라는 의사표시만 하고 오크의 발아래에 떨어져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이게 아닌가?’
소울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본에 맞은 오크가 고개를 들더니 소울을 발견하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울은 할 수 없다는 듯 훌쩍 뛰어 내리더니 바로 달려들어 오크의 무릎을 로우킥으로 후려갈겼다.
빡!
꾸웨에엑!
무릎 뼈에 금이 간 오크가 죽는다고 소리를 치며 옆으로 쓰러졌다.
오크 세계에 오페라가 있다면 정말 테너로 대성할 만한 좋은 목청을 가지고 있었다.
“하아! 이 오크새끼 더럽게 시끄럽네.”
소울은 오크가 하도 시끄럽게 비명을 질러대자 짜증이 났다. 그러자 푸티나가 즉시 오크에게 달려들더니 앞발바닥으로 오크의 턱을 후려갈겼다.
퍽! 호도도도…….
놀랍게도 한방에 오크의 고개가 옆으로 확 꺾이더니 허공에다 옥수수를 한꺼번에 뿌려댔다.
쿠웨에에엑!
하지만 오크의 비명소리는 멈춰지지 않고 더욱 커졌다.
소울은 이 목청만 큰 오크 놈을 가만 놔두면 주위에 있는 오크들이 떼로 몰려오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죽여 버리기로 했다.
[푸티나, 죽여!]
[낑!]
푸티나는 그를 쳐다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바로 달려들어 오크의 목을 날카로운 앞발로 잡아 뜯어버렸다.
뿌다닥!
묘한 소리가 울리며 단번에 목의 3분의 2가 날아간 오크는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허공에 몇 번 손을 휘젓다가 그대로 픽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소울은 차가운 눈빛으로 오크의 시체를 쳐다보다가 전투헬멧의 선바이저를 통해 사방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붉은 색 점들을 발견했다.
“아이! 시발, 이 개 같은 오크 새끼!”
그는 오늘 정말 조용히 오크 사냥을 하려고 했다.
목적이 오크 사냥이 아니라 본의 능력을 알아보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끄럽게 울어대다 뒤진 오크새끼 때문에 주변의 오크들이 몰려오자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알고 화가 치밀었다. 그는 죽은 오크사체의 배를 발로 사정없이 걷어찼다.
퍽!
죽은 오크사체가 크게 들썩였다. 하지만 이미 죽어버린 놈을 발로 찬다고 이미 틀어진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다.
그는 재빨리 잡목 위로 올라갔다. 아까보다 조금 더 높이 올라간 그는 푸티나에게 명령했다.
[푸티나, 다가오는 오크들 전부 잡아 죽여. 포위되는 것 조심하고…….]
[낑! 낑낑!]
푸티나는 자신 있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몇 번 쿵쿵 치더니 두 귀와 앞가슴 그리고 네 개의 발바닥에 불을 켰다.
‘이제 보니 저거 딱 형광등이네. 아주 색깔 좋은 형광등이야. 동굴 같은데 데리고 들어가면 조명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어.’
푸티나를 보다 의외의 효용성을 발견한 소울이었다.
[까망아, 너도 푸티나를 도와서 오크들을 처리해!]
[규!]
까망이가 그의 말에 즉시 바닥으로 떨어져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소울은 대물저격총을 뒤로 돌려 등에 매고 데저트이글 대형권총 하나를 꺼내 손에 쥐었다.
생체실드 중화탄이 들어있는 탄창을 빼고 일반 대구경 탄이 들어있는 일반 탄창을 낀 그는 가만히 오크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제일 처음 달려든 오크는 11시 방향의 세 마리였다.
꾸에엑 꿰에엑 쿠에엑…….
뭐가 그렇게 화가 나는지 오크들은 몽둥이를 마구 휘두르며 달려왔다.
그러다 푸티나를 보고는 자신들의 허리밖에 오지 않는 것을 보고 오히려 가소롭다는 듯 달려오는 속도를 줄이며 비웃는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푸티나가 번개처럼 달려가 그들을 덮쳤다.
도도도도도! 휘익!
퍽 퍼퍼퍽 퍽퍽!
꾸웨에엑 꿰에에엑 쿠웨에엑!
세 마디의 비명이 숲속에 울려 퍼지자 곧 세 마리의 오크들이 바닥에 쓰러져 땅을 박박 긁어댔다.
그리고는 순간 움찔하더니 그대로 숨을 멈추고 축 늘어졌다.
땅바닥에서 대기하고 있던 까망이가 단창으로 변해 머리통과 심장을 단박에 꿰뚫어 버린 것이다.
‘오오, 나이스 콤비!’
소울은 그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번에는 5시 방향에서 세 마리의 오크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8시 방향에서 다섯 마리의 오크가 몰려왔다.
총 여덟 마리의 오크가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E급 소환계 능력자였기 때문이다.
고블린과 오크 정도는 수십 마리가 와도 두렵지 않았다. 물론 무장도 제대로 하지 않은 몽둥이나 막대기를 든 오크 말이다.
소울은 가볍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문신강체!”
그러자 그의 양쪽 어깨와 허벅지에 새겨진 문신들이 빛을 내며 강력한 힘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문신강체술이 펼쳐진 것이다.
소울은 비스크의 문신을 자신의 몸에 새기면서 이미 F급 강화계 능력자에 버금가는 육체적인 능력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이렇게 문신강체술을 펼치면 거의 E급 강화계 능력자의 육체에 가까운 능력을 낼 수 있었다.
‘좋군.’
그는 약동하는 힘이 문신에서 계속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고 그가 직접 오크를 때려잡을 생각으로 문신강체술을 펼친 것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 그가 원하는 것은 E급 강화계 능력자의 동체시력일 뿐이었다.
꾸에엑 꾸해애 꿰에엑 쿠에엑…….
쫘악 쫙 촤아악 철썩…….
일단 오크들의 공세에 정면으로 부딪친 것은 작은 거인 푸티나였다.
푸티나가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오크들의 싸대기를 사정없이 갈기고 다니자 오크들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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