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8 제 37 장 - 댄스의 귀재 =========================================================================
“너무해요. 내가 사주려고 했는데…….”
“누가 사면 어때? 즐겁게 밥만 잘 먹었으면 됐지.”
“그럼 내가 생각해놓았던 계획이 틀어진단 말이에요.”
“하하하, 이렇게 밖에서 처음 희라를 만났는데 오빠인 내가 얻어먹는 것도 좀 그렇잖아. 다음에 만나면 네가 사는 것으로 하고 오늘은 오빠가 낼게. 알았지?”
“알았어요. 그럼 꼭 다음에는 제가 사게 해주세요?”
“그래. 그렇게 하자.”
간신히 그녀를 달래고 푸티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자 클럽은 바로 옆 건물 지하1층에 있었다.
‘클럽 알헤나’라고 영문으로 크게 쓰여 있는 것을 보자 소울은 푸티나를 데리고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입구에 서 있던 정장의 덩치 큰 사내가 그에게 다가오더니 대뜸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오늘 능력자 특별할인 행사가 있습니다. 입장료는 물론이고 VIP룸까지 무료로 서비스 하겠습니다.”
소울은 자신에게 고개를 숙인 남자의 몸을 한번 슬쩍 훑어보고는 바로 주먹으로 먹고 사는 놈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배인이나 매니저 정도 되는 것 같았는데 소울이 입은 전투슈트를 보고는 봉이라는 생각이 들어 접근해온 것으로 보였다.
“우린 그냥 가볍게 놀다갈 마음뿐인데…….”
살짝 뒷말을 흐리자 덩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기왕 노실 거면 능력자답게 폼 나게 노셔야지요.”
“그래?”
소울은 자신을 살짝 도발하는 덩치의 말에 가소로운 생각이 들었다.
채희라를 쳐다보자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보자.”
“네, 형님.”
분명히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형님소리가 잘도 튀어나오는 것을 보니 이놈은 오랫동안 이 생활을 해온 이 방면의 전문가라는 느낌이 들었다.
뭐 그래봤자 돈 좀 쓰고 가면 그만이다. 이제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유흥업소에서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형님, 사장님, 누님 하는 소리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의례 다 그렇게 부르면서 손님들의 기분을 맞춰주는 상술일 뿐이다.
물론 저러다가도 술 처먹고 돈 안내고 진상부리면 진짜 얼굴에 칼자국 있고 부풀린 떡대 같은 놈들을 데리고 와서 온갖 10원짜리 욕과 상소리를 하며 세상의 쓴맛을 보게 만들기도 할 것이다.
쿵쾅 쿵쾅 쿵쾅 쿵쾅…….
계단을 타고 내려가자 클럽 알헤나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심장의 박동소리와 겹치며 절로 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손에 안고 있는 푸티나가 연신 혓바닥을 내밀며 헥헥 댔다. 아무래도 음악소리가 푸티나를 흥분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덩치의 안내로 클럽 알헤나에 들어서는 순간, 소울은 자신이 마치 신세계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손님이 몰리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클럽 안은 이미 헐벗은 미녀들의 광란의 춤으로 한창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옷을 입은 건지 벗은 건지 모를 야한 옷을 입은 여자들이 머리와 엉덩이를 격렬히 흔들어 대며 서로 몸을 비비듯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자 눈이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옆에서 채희라가 툭툭 치지 않았다면 소울은 아마 그 자리에 서서 계속 그렇게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덩치는 일단 두 사람을 클럽 안에 있는 유일한 VIP룸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생각보다 아담한 VIP룸 소파에 앉자 덩치가 그의 옆으로 바짝 붙어서 메뉴를 보여줬다.
“오빠,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응.”
채희라가 화장실을 가기위해 밖으로 나가자 소울의 옆에 앉은 덩치가 그에게 작게 속삭였다.
“형님, 촌스럽게 왜 도시락을 지참하고 오셨어요? 다음에는 그냥 조용히 혼자 오세요. 형님 같은 능력자는 굳이 부킹을 하네 마네 할 필요가 없습니다. 웬만하면 그냥 다 찹쌀떡처럼 착 붙어서 떨어지질 않아요.”
“그래?”
처음에는 도시락을 지참하고 왔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덩치가 말한 도시락이 희라를 가리키는 것쯤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VIP룸이라고 하면서 왜 이렇게 방이 작지?”
“형님, 저희 클럽 진짜 처음이시군요. 반대편 통로를 통해 크고 작은 룸과 노래방, 가라오케가 다 완비되어 있습니다. 원래 능력자 형님들은 그쪽으로 먼저 오셨다가 술 한 잔씩 걸치시고 이쪽으로 넘어 오십니다.”
“그렇구나. 너 이름 뭐냐? 그리고 이곳에서 하는 일이 뭐냐?”
“저는 로이킴입니다. 영업과장입니다.”
“영업과장의 이름이 그게 뭐야? 나한테 본명 가르쳐 주기 싫어서 그러는 거지?”
“아닙니다. 사실은 제 이름이 좀 특이해서 그렇습니다.”
“뭔데?”
“마기철입니다.”
“뭐? 마귀철?”
“휴우, 그거 보십시오. 바로 그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흐음, 미안하다.”
소울은 마기철이 왜 자신의 이름을 쓰지 않고 로이킴이라고 지었는지 알 것 같았다.
힘이 쪽 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마기철에게 바로 사과를 했다. 그러자 이미 이런 일을 한두 번 겪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지 금세 다시 웃으며 영업모드로 돌아섰다.
“형님, 일단 목부터 축이셔야 하는데……. 뭐로 가져다 드릴까요?”
“그래도 명색이 하나 밖에 없는 클럽 내의 VIP룸을 줬으니 살루트 21살짜리면 되겠지?”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그럼 그거하고 여자들이 좋아하는 안주 두세 개만 가지고와.”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다른 것은 필요 없으시겠죠?”
“다른 거 뭐?”
마기철은 문을 한번 슬쩍 쳐다보더니 소울에게만 보이게 몸을 돌려 새끼손가락을 폈다.
“이거 말입니다.”
“네 말대로 내가 오늘 도시락 지참했잖아. 그건 당연히 안 되지.”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어쩔 수 없죠. 다음에는 꼭 혼자 오세요. 제가 막 노는 애들 말고 정말 깔끔하게 잘 노는, 진짜 괜찮은 애들 붙여드릴게요.
“그, 그래.”
소울은 마기철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뭔가 자꾸 설득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저놈이 왜 자꾸 잔잔한 가슴에 돌을 던지지. 마기철이 괜히 마귀철로 불리는 것이 아니었구나. 저놈과 가까이 했다가는 분명히 타락하게 될 거야.’
사실 마기철의 주특기가 소울이 상상한 그런 쪽이었다.
얌전한 강아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마기철과 어울리면 순진하고 착한 청년들도 얼마 되지 않아 환락과 쾌락의 노예가 되어 돈과 영양가를 쪽 빨리게 된다는 루머가 나돌고 있었다.
클럽 사장이 괜히 그를 이런 잘나가는 클럽의 영업과장으로 앉혀놓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나중에 혼자와 볼까?’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치밀어 오는 생각에 놀라 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마기철, 아니 저 마귀 새끼의 말을 처음부터 듣는 것이 아니었다.
“오빠!”
“어? 희라야!”
소울은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하고서 한참이나 오지 않자 혹시 채희라가 변비에 걸렸나 하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옷을 클럽용으로 갈아입고 화장을 고치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때? 나 괜찮아?”
“응, 아주 좋아.”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
채희라는 어느새 하얀 티셔츠를 벗어버리고 안이 살짝 비치는 시스룩 민소매를 걸치고 있었다.
놀랍게도 반쯤 드러난 그녀의 가슴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풍만하고 실했다.
거기에다 클럽 맞춤형으로 화장까지 고치고 오자 그녀의 귀여운 얼굴이 어느새 섹시하고 그윽하게 완전히 분위기가 바뀌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채희라는 들어갈 곳은 확실히 들어가고 나올 곳은 확실히 나와 있어서, 날씬하고 긴 다리의 각선미와 어우러져 도저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마귀철, 아니 마기철이 노크를 하고 들어와 웨이터를 시켜 테이블 위에 술과 안주를 세팅하면서 힐끗거리는 것을 보면 확실히 채희라의 모습이 클럽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문을 닫으며 나가는 마기철이 씨익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우뚝 세우자 소울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사실은 괜히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 한잔 하자.”
“네. 새로운 만남을 위하여!”
“위하여!”
둘은 사이좋게 양주를 한잔씩 스트레이트로 마셨다.
잔을 비우자 채희라가 곧바로 술병을 잡더니 두 손으로 예쁘게 술을 따라주었다.
다시 한 번 건배를 외치고 스트레이트로 잔을 비웠다. 그러자 더 이상은 못 참겠는지 채희라가 그의 팔을 붙잡고 애교를 떨어댔다.
“오빠, 이제 우리 나가서 춤춰요.”
“그래. 나가자.”
소울은 자신의 팔을 잡아끄는 채희라를 따라 밖으로 나가려다 아까부터 계속 몸을 들썩대고 있는 푸티나를 보며 한마디 당부를 했다.
“푸티나, 밖으로 나가지 말고 이 방안에서 꼼짝 말고 있어야 돼?”
“끼잉!”
푸티나는 마구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무래도 밖으로 나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냥 데리고 가서 같이 춤춰요. 저 모습을 보면 아마 사람들이 다 좋아할 거예요.”
“그럴까?”
“네.”
소울은 채희라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푸티나를 댄스 플로어로 데리고 가기로 했다.
쿵쾅 쿵쾅…….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은 강렬한 베이스의 진동과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조명들이 사람의 정신을 쏙 빼놓고 있었다.
소울과 채희라 그리고 푸티나는 클럽의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신나는 비트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강남 클럽의 새로운 전설이 시작되었다.
“낑낑! 낑낑낑!”
푸티나는 강렬한 비트와 현란한 조명에 놀라 처음에는 어리벙벙한 채 서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적응을 했는지 몸을 뒤뚱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서로의 몸을 딱 붙이며 부비부비 춤을 추던 채희라는 마구 소리를 지르며 같이 몸을 흔들어 댔다.
하지만 채희라의 동작에 맞춰 몸만 살짝 흔들어대는 소울과는 달리 푸티나의 움직임은 헐벗은 미녀들의 광란의 춤을 보고 따라하면서 급격하게 진화하고 있었다.
마치 흑인들처럼 태어날 때부터 박자 감각과 리듬감을 타고나기라도 한 것처럼 푸티나의 움직임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빠르게 점점 춤의 체계와 틀이 잡혀가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
그러던 어느 순간, 클럽 알헤나가 마치 떠나갈 것 같은 함성에 휩싸였다.
푸티나의 두 귀와 가슴 그리고 네 개의 발바닥에서 형광색의 찬란한 광채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푸티나의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조명 같았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 환호성을 질러대며 좋아했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푸티나는 돌연 머릿속에 뭔가가 생각났는지 몸을 폴짝 뛰면서 재주를 한번 넘더니 이내 사람들의 환호에 맞춰 비보잉을 시작했다.
‘어 저건 비보잉 아냐? 이 녀석이 저런 것은 또 언제 배웠지?’
소울은 비보잉을 하는 푸티나를 보며 깜짝 놀랐다. 그리고 비보잉을 하는 푸티나를 보는 사람들은 더 놀라야했다.
푸티나는 처음부터 힘을 빼지 않았다.
가볍게 탑락, 풋워크, 프리징, 파워무브를 선보이며 클럽 알헤나의 분위기를 싹 쓸어 담았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완전히 자신에게 집중하자 본격적으로 고난이도 비보잉 기술을 아낌없이 펼치기 시작했다.
에어트랙, 체어트랙, 헤일로우, 헤드스핀, 엘보우스핀, 숄더스핀, 윈드밀헤드 스핀, 헬리콥터, 원핸드 프리즈, 뉴욕스타일로빈, 스핀로빈(옆머리로 도는 방식), 숄더프리즈스핀로빈…….
전문 비보잉 댄서들도 쉽게 하지 못하는 고난이도의 기술들을 푸티나는 조금도 어렵지 않게 쉽게 펼쳐내며 현란한 형광색 빛을 사방으로 발산했다.
“우와! 대박이다! 세상에 비보잉을 하는 새끼 곰이라니…….”
“댄스의 귀재다.”
“이거 동영상 찍어서 올리면 대박이겠다.”
“꺄아악! 너무 귀여워!”
“진짜 귀엽고 예쁘다.”
“저 형광색으로 빛나는 조명 좀 봐! 보기만 해도 신난다.”
…….
소울은 주변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순간, 머릿속으로 뭔가 빠르게 훅 하고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돌연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마기철에게 다가가 조용히 몇 가지 부탁을 했다.
그러자 마기철은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바로 듣고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울이 마기철에게 시킨 것은 성능이 좋은 디지털 동영상 카메라로 푸티나가 춤을 추는 모습을 찍어오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클럽 알헤나에서는 소울의 입맛에 맞는 고성능 디지털 카메라가 이미 천장과 벽에 몇 대나 매달려있었다.
섹시하게 춤을 추는 미녀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촬영해서 벽에 붙어 있는 대형 LED 모니터에 띄우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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