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7 제 37 장 - 댄스의 귀재 =========================================================================
푸티나는 스마트폰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르지만 까망이에게는 이미 가르쳐줬기 때문에 같이 교육방송을 틀어서 보게 될 것이다.
주인은 놀아도 소환수는 열심히 공부해야한다. 이것이 소울의 확고부동한 신념이었다.
푸티나의 모습이 테이블 밑으로 사라지자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탄성이 들려왔다.
동시에 조금씩 소울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사라져갔다.
그제야 소울은 여자들이 자신을 본 것이 아니라 푸티나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 무안한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스테이크 하우스의 웨이트리스가 다가와 어색한 표정을 감출 수 있었다.
“주문하시겠어요?”
“네, 주문할게요. 저는 뉴욕 스테이크로 주세요. 미디움 레어로 해주세요.”
스테이크 전문점에서 시킬 것이 뭐가 있겠는가?
소울은 당연히 뉴욕 스테이크를 시켰다. 그러자 이미 뭘 먹을까 오면서 생각을 해뒀는지 채희라도 바로 주문을 했다.
“전 페퍼 스테이크로 주세요. 미디움으로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음료수는 뭐로 드릴까요?”
채희라는 소울을 쳐다보며 물었다.
“오빠, 간단하게 와인 한 잔 하실래요?”
“스테이크에는 역시 레드 와인이지. 그래. 한 병 시켜서 나눠 마시자.”
“호호호, 저하고 생각이 같네요. 혹시 좋아하는 와인 있어요?”
“가볍게 멜럿으로 하자.”
“멜럿으로 한 병 가져다줘요.”
소울은 와인에 대해서 잘 모른다. 하지만 예전에 와인 초보자가 적당히 즐기기 괜찮은 와인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서 본 포도주의 이름을 기억해내 부드럽게 주문을 마칠 수가 있었다.
웨이트리스가 주문을 받고 돌아가자 소울은 채희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강남 세븐 병원의 날씬이 간호사 채희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밝고 활기찬 예쁜 여동생 같은 분위기의 미녀가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병원에서 볼 때와는 분위기가 참 많이 다르네?”
“그래요? 그거 칭찬이죠?”
“물론이지.”
“헤헤, 사실 병원에서 일하는 것이 만만치가 않거든요. 그래서 자주 웃을수가 없었어요.”
그녀의 한마디 말에 병원생활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예요?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장례식까지 치르게 하고…….”
“휴우! 그게 말이지…….”
소울은 어쩔 수 없이 정윤이와 고하라에게 설명했던 것을 또다시 채희라에게 설명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중간에 포도주가 나와 포도주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한 그들은, 강남 세븐 병원에서 일어났던 일과 소울의 모험담을 안주 삼아 벌써 한 병을 뚝딱 해치웠다.
“술 잘 마시네?”
“제가 술이 좀 잘 받는 편이에요.”
“그렇구나. 그럼 한 병 더 할까?”
“좋아요.”
포도주 한 병을 더 시키자 주문했던 뉴욕 스테이크와 페퍼 스테이크가 같이 나왔다.
두 사람은 스테이크 전문점인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자랑하는 스테이크의 풍미와 맛을 한껏 즐기며 즐거운 저녁 식사를 했다.
역시 스테이크에는 적포도주가 곁들어야 제 맛이라는 소리가 틀리지 않았다.
감미로운 선율과 차분한 조명, 맛있는 식사와 포도주 잔의 부딪침, 아름다운 미녀와 함께하는 즐거운 대화…….
소울은 밝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채희라와 함께 디너를 즐기다보니 어느새 자신의 마음속에 진 응어리가 실이 풀어지듯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채희라는 날씬한 동양미녀의 체형과는 달리 성격은 굉장히 활달하고 에너지가 넘쳤다. 거기에다 무척 긍정적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얼굴은 정윤이만 못했고, 몸매는 고하라만 못했지만 채희라는 그녀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동양적인 부드러운 선이 살아있는 미녀였다.
물론 그렇다고 얼굴이 못생겼다거나 몸매가 아주 크게 떨어진다는 것은 아니었다.
충분히 예쁘고 충분히 멋진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다 채희라는 그녀 특유의 활기와 귀여운 애교를 가지고 있었다.
낙천적인 성격은 아마 부모님을 닮은 것 같은데, 필살기 같이 쏟아져 나오는 저 귀여운 애교와 사랑스런 표정은 누구에게 배웠는지 알 수 없었다.
‘결혼은 희라 같은 여자와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굉장히 밝고 긍정적이잖아. 거기에다 얼굴이나 몸매도 그리 빠지지도 않고, 무엇보다 나보다 어리네.’
그렇다. 얼굴이나 몸매는 다 현대과학으로 커버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이만큼은 그 어떤 것으로도 이길 수 없었다.
소울은 정윤이나 고하라와는 달리 자신을 꼬박꼬박 오빠라고 부르며 애교를 떠는 채희라를 보며 그녀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어떻게 보면 채희라는 민세경과 가까웠다. 아니 그녀를 자꾸 생각나게 하는 캐릭터였다.
식사를 다 하고 커피와 조각케이크로 디저트까지 먹고 나자 소울은 시계를 봤다.
이제 막 9시를 넘기고 있었다.
그때 채희라가 자신의 상체를 앞으로 쭉 내밀면서 소곤거렸다.
“오빠, 술도 한잔 걸쳤는데 우리 클럽이나 갈까요?”
“클럽?”
“네, 클럽이요. 가까운 곳에 강남에서 알아주는 클럽이 있어요. 우리 거기 가서 춤추고 놀아요. 네?”
“지금 같은 때에 클럽 문을 열고 영업을 한단 말이야?”
“클럽에서 영업 못할게 뭐가 있어요? 요새 같이 몬스터가 나오는 불안한 시기야말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고 클럽에 오는 사람이 더 많아요.”
“그래?”
그는 어제 저녁 서울 일대를 가고일 전단이 휩쓸고 지나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유흥가는 강한 네온사인 광고판으로 인해 가고일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하루 만에 벌써 정상적으로 클럽이 영업을 재개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하긴 몬스터가 무슨 상관이야.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술 마실 놈은 술 마시고 클럽에서 춤출 놈은 춤을 추겠지. 어디 세상에 스피노자처럼 사과나무 심는 놈들만 있겠어?’
그렇게 생각하자 정말 클럽에 못갈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오빠, 요즘 클럽에 가면 오빠 같은 능력자들이 바글바글해요. 요새 젊은 여자들에게 결혼하고 싶은 신랑감 1순위가 능력자인 것 알고 계시죠?”
“정말이야?”
“몰랐어요? 몰랐나보네……. 사실 능력자들이 돈 잘 벌잖아요. 거기에다 건강하고 힘까지 좋아서 인기 만점이래요.”
“하지만 능력자들의 사망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던데……. 그래도 인기가 있단 말이야?”
“호호호, 그러니까 더 인기가 있죠. 능력자들은 의무적으로 능력자협회에서 선정한 생명보험 가운데 하나를 들어야 하잖아요. 그것도 일반 생명보험이 아닌 사망보험금이 최소 10억은 넘는 것들로요.”
“아! 그러니까 죽어도 사망보험금을 탈 수 있으니 그것도 나름 인기 있는 이유가 된다는 말이구나?”
“네, 조금 슬프고 불편한 진실이긴 하지만, 맞아요!”
채희라는 소울의 반응이 무척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하지만 소울은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썩소를 날릴 수밖에 없었다.
‘재주는 능력자가 부리고, 살건 죽건 재미를 보는 것은 능력자의 애인이나 아내가 되는 건가? 역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어.’
소울의 표정이 떫은 감을 씹는 표정으로 변하자 채희라는 그만 참지 못하고 온몸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오빠 얼굴이 너무 재미있어요. 설마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정말 그런 마음만 가지고 능력자를 좋아하겠어요. 저만해도 그래요. 제가 오빠를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가 뭐 같아요? 돈, 능력, 힘?”
“…….”
“아니에요. 전 오빠가 강남 세븐 병원에서 용감하게 고블린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 반한 거예요. 전 그때 그 모습을 지금까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요.”
“아!”
그제야 소울의 얼굴이 좀 풀렸다.
기회를 잡았을 때 몰아치라고 채희라는 소울의 표정을 확인하자 아예 대놓고 노골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
“전 그때, 오빠라면 절 끝까지 지켜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부터 오빠 생각만 하면 불안했던 마음이 평안해지는 그런 기분을 느꼈죠. 지금도 그래요. 어제 몬스터들이 그 난리를 쳤는데 오빠 옆에 있으니까 아무런 걱정도, 두려움도 생기지 않아요.”
“너 그거 어째 고백처럼 들린다?”
“고백 맞아요. 나 오빠 좋아해요. 그동안 많이 생각했어요. 그리고 오빠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여기 나온 거예요.”
채희라는 정말 용감했다. 그리고 당당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또 그렇게 나쁘게 보이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용감해서 멋있었다.
“그거 너무 빠른 것 아니니?”
“빠르긴요? 저 오빠보다 딱 1살 적게 먹은 거 아시죠? 제 나이의 여자들이 정말 어리기만 하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아니지.”
“그럼 혹시 결혼하기로 약속한 여자라도 있어요?”
“아, 아직 없어.”
“그럼 됐네요.”
“되긴 뭐가 돼?”
소울은 당황해서 살짝 얼굴을 붉혔다.
채희라는 미소를 지으며 그런 소울을 지그시 쳐다봤다.
그런데 묘한 것이 저런 채희라의 모습이 이상하게 섹시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채희라도 여자였다.
여동생이 아니라 진짜 여자 말이다.
한참을 그렇게 자신을 쳐다보던 채희라가 결국 살짝 눈을 내리깔더니 한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는 제가 그렇게 싫어요?”
“아냐. 싫어하다니? 내가 왜 희라를 싫어해?”
“그럼 제 가정형편이 마음에 안 드세요?”
“가정형편? 난 희라의 가정형편이 어떤지도 모르는데 마음에 들고 말고가 어디 있어?”
소울은 그녀의 말에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아무래도 채희라는 자신의 가정형편이 어려운 것에 대해 큰 자격지심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왜 자꾸 저를 밀어내려고 해요? 내가 싫은 것도 아니라면서, 결혼할 사람도 없다면서요. 혹시 우리 집이 부자가 아니라서 그래요?”
“희라야, 진정해라. 그리고 정말 이것만은 믿어줘. 난 정말 너희 가정형편이나 그런 것 전혀 몰라. 그리고 여자를 만나면서 집에 돈이 있는지 살피면서 만나는 그런 사람 아니다.”
“정말이죠?”
“그래. 정말이야.”
채희라는 소울의 말에 조금은 위로가 됐는지 살짝 고개를 치켜들었다.
소울은 자신이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괜히 미안해졌다.
“전 오빠가 능력자가 되기 전에 만났잖아요. 아무런 학벌도, 능력도 없을 때부터 오빠를 좋아했다고요. 오빠도 나를 바라볼 때 호감이 아주 많았던 것 같은데 제가 잘못 본 거예요?”
“하하하, 호감? 당연히 있지. 희라 같이 예쁜 미녀에게 호감 없는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 없다면 그건 게이나 고자겠지.”
“네에? 호호호! 그건 맞아요.”
채희라가 그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처음의 얼굴로 서서히 바뀌어져 가고 있었다.
밝게 웃는 모습을 보자 아까처럼 그녀가 마냥 밝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은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괜히 그녀를 감싸주고,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F급 소환계 능력자라고 했죠? 사실 그거 능력자 중에서도 아주 최악이라면서요?”
“그, 그렇지. 뭐…….”
“호호호, 괜찮아요. 제가 있잖아요. 제가 간호사 일해서 먹여 살릴 테니까, 오빠 기죽지 말아요. 그래도 저렇게 귀여운 소환수가 있으니 어디 가서 곰돌이 쇼라도 하면 먹고 사는 것은 문제없겠네요.”
“곰돌이 쇼?”
소울은 채희라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티나를 데리고 곰돌이 쇼를 하라니…….
능력자에 대해 좀 조사를 한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소환수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전혀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자신의 형편이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말을 채희라에게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눈을 보고, 말을 들어보면 정말 자신이 제일 별 볼일 없을 때, 진심으로 좋아한 티가 났다. 그녀의 진심이 전해지자 소울은 당연히 채희라가 더욱 좋게 보였다.
결정적으로 간호사 일을 해서 먹여 살릴 테니 기죽지 말라는 말에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하하하, 내가 정말 능력자로 성공 못하면 너 그 말 꼭 지켜야 된다?”
“헤헤헤, 당근이죠. 앞으로 오빠는 저만 믿으세요.”
그녀가 다시 애교모드로 돌아갔다.
소울은 사랑스런 채희라로 인해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그래서 그녀와 같이 클럽으로 한번 가보기로 했다.
“희라야! 가자. 그 클럽이란 곳으로…….”
“잘 생각했어요.”
채희라는 소울과 같이 놀러간다는 생각에 마냥 즐거워했다.
소울은 얼른 계산대로 가서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먹은 저녁식사 값을 카드로 계산했다.
채희라가 자신이 내야한다고 난리를 쳤지만 소울은 이제 그녀의 가정형편과 주머니 사정을 눈치 챈 상태라 비싼 저녁식사로 그녀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기어코 자신이 계산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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