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5 제 37 장 - 댄스의 귀재 =========================================================================
끼이익!
집에 도착한 그는 현관 문 앞에 차를 주차해두고 집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밖에는 비가 쏟아져 내리고, 집안에는 사람 한 명 없이 텅 비어 있는 꼴을 보자 또다시 허전하고 슬픈 생각이 마음을 뒤흔들어대기 시작했다.
‘휴우! 잘못 왔네. 차라리 강남필드로 갈 것을…….’
생각해보니 자신의 집에서 강남필드는 바로 지척에 있었다.
왼쪽으로 가면 남문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동문이 나온다.
그는 다시 밖으로 나와 동문을 향해 차를 몰았다.
자신이 새로 산 단독주택이 있는 강남구 세곡동의 북쪽으로 자곡동이 있다. 강남필드의 동문은 바로 이 자곡동에 있는 대 몬스터 방벽의 관문 중의 하나였다.
은곡마을에 있는 집에서 자곡동에 있는 강남필드 동문까지 정확하게 8분 만에 주파한 그는 차를 대 몬스터 장벽 동문 주차장에 주차했다.
그리고 트렁크를 열어 숏소드와 토마호크도 장비하고 대물저격총과 전투배낭을 꺼내들었다.
대 몬스터 장벽 동문 출입구에 도착한 그는 자신의 능력자 등록증을 보여주고 아무런 말없이 곧바로 강남필드 안으로 들어갔다.
차원의 균열에서 나오는 마나가 그를 반기기라도 하듯 숨을 쉬는 순간 안과 밖의 공기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심지어 이곳은 아예 비조차 내리지 않았다.
“후우우우우!”
길게 숨을 쉬며 호흡을 조절하자 청량한 기운이 자신의 폐부 속 깊이까지 녹아들어오는 것 같았다.
기분이 나아지고 조금씩 고조됐던 감정이 진정되었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여기서 개지랄을 떨었다간 한방에 훅 가는 수가 있다. 여긴 강남필드야. 아니 차원의 균열의 끝이다. 이곳은 화풀이나 할 곳이 아니다.’
막상 강남필드 안으로 들어오자 그는 정신이 번쩍 났다.
차가운 이성이 돌아오고 냉철한 포식자의 본능이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시발 년, 능력자를 아예 좆으로 아네? 그래 어디 한번 두고 보자. 내가 반드시 능력자로 성공해서 재벌 소리 들을 테니까…….’
소울은 신애라가 생각나자 이를 악물고 눈에 살기를 뿌려대며 걸어갔다.
대 몬스터 장벽을 따라 북상하다가 언덕이 나오자 그는 소리 없이 숲속으로 스며들었다.
[까망이는 내 머리 위에서 주변을 감시해!]
[규!]
[가만, 푸티나도 이렇게 대화가 가능한가?]
[규!]
[그래? 그럼 푸티나! 너도 나와라!]
[낑!]
역시 소환수라서 그런지 자신과 마음으로 대화가 가능했다.
푸티나는 그의 주머니에서 잠을 자다가 나왔는지 땅바닥에 서서 크게 하품을 한번 하더니 또다시 전처럼 두 주먹을 꼭 쥐고 온몸을 바르르 떨어댔다.
“후후후!”
소울은 아무리 봐도 서서 똥 사는 것 같은 저 모습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푸티나의 전신이 물처럼 떨리더니 이내 자신의 허리까지 몸이 쑥쑥 커졌다.
[푸티나는 정면으로 걸아가라.]
[낑!]
소울은 푸티나를 앞으로 보내고 나서야 전투헬멧의 탐색기능을 활성화해서 반경 25m 이내의 생명체를 살펴봤다.
‘이쪽으로 가면 내가 차원의 균열에서 탈출할 때 갔던 그 길이 나온다. 오늘은 조금만 들어가서 살펴보고 바로 나오도록 하자.’
일단 조심스럽게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주변의 풀과 나무를 살펴봤다.
숲의 식생을 충분히 살핀 그는 이내 뭔가를 찾았는지 한 방향으로 목표를 정하고 계속 걸어갔다. 이내 어깨 높이로 자라있는 울창한 수풀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풀 냄새와 나무 냄새가 강하게 나는 것들을 숏소드로 잘라서 모으기 시작했다.
반은 돌로 찧어서 즙을 내서 몸에 바르고, 나머지 반은 그 자체로 전투헬멧과 전투슈트에 붙여 위장을 했다.
땅에 떨어진 풀 조각을 허공으로 날려 풍향을 확인한 그는 바람을 안고 조심스럽게 숲속으로 전진 했다.
스스슥 스스슥…….
마치 뱀이 수풀을 스치며 지나가듯 소울은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나아갔다.
강남필드 동문을 넘어서는 순간,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정윤이와 신애라가 사라졌다.
자신이 화가 났었다는 사실까지 잃어버린 채 긴장한 상태를 유지했다.
소울의 행동 때문일까?
푸티나도 금방 소울처럼 진지하게 주변을 살펴보며 앞으로 걸어갔다.
원래 정령곰인지, 곰이 정령이 된 것인지 모르지만, 근본이 곰과 관련이 있어서 그런지 푸티나는 소울보다 훨씬 숲이 편하고 익숙했다.
어떻게 보면 숲은 푸티나에게 안방이나 마찬가지였다.
숲속의 소리는 물론이고 냄새와 진동까지 느끼는 푸티나는 소울처럼 굳이 전투헬멧의 탐색기능이 없어도 꽤나 멀리까지 생명체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었다.
[푸티나 2시 방향으로 가자.]
[끼잉.]
[뭐?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흐음, 그럼 약간 오른쪽으로 가자.]
[낑!]
아직 시계방향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하긴 소환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 정도로 움직여주는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계속 기억을 되살려 걸어가자 앞쪽에 커다란 공터가 나오면서 그 뒤쪽으로 실개천이 하나 보였다.
그는 잠시 기다렸다가 푸티나만 일단 앞으로 보내보기로 했다.
[푸티나, 저 개천으로 가서 주변을 살펴봐!]
[낑!]
[까망이는 주변 경계 잘하고…….]
[규!]
푸티나가 앞으로 달려가자 까망이가 그의 머리에서 10m 쯤 위로 올라가더니 반경 20m의 커다란 원을 그리며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반경 20m 면 직경으로 40m 가 된다.
이 정도 거리만 제대로 경계를 해도 소울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몬스터의 기습은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다 소울은 자체적으로 전투헬멧의 탐색 기능까지 활성화시켜 놓고 있었다.
그때였다.
[끼잉 낑 끼잉!]
갑자기 푸티나가 뭔가에 겁을 먹고 주춤거리는 것을 느꼈다.
소울은 얼른 자세를 낮추고 대물저격총을 앞으로 쭉 뻗은 후, 피카티니 레일 위에 달아놓은 스코프를 봤다.
전방 50m 앞의 실개천 가에 녹색의 커다란 몬스터가 물을 마시고 있었는데, 지금 그 앞에 푸티나가 일어서서 으르렁대고 있었다.
‘저 몬스터는 뭔데 저렇게 덩치가 크지? 혹시 트롤인가?’
스코프를 통해 살펴보니 확실히 트롤이 맞는 것 같았다.
[푸티나, 굳이 싸울 필요 없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견제만 해라.]
[낑!]
소울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봤다.
3m 앞에 자신이 원하는 적당한 높이의 바위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는 바로 그리로 달려가 삼각대를 세우고 대물저격총을 거치했다. 그리고 사격자세를 취했다.
트롤은 푸티나의 몸집을 보더니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마시던 물을 계속 마셨다. 저렇게 무시를 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물을 다 마시고 난 후, 간식거리로 잡아먹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이던 잠시만 그대로 있어라.’
소울은 스코프의 십자선을 정확하게 트롤의 관자노리에 가져다 놓았다.
숨을 가볍게 들이쉬었다가 내뱉으며 어느 순간, 숨을 쉬는 것을 딱 멈췄다.
그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방아쇠를 당겼다.
퉁!
총구에서 불이 번쩍하며 총알이 발사되는 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전용소음기를 거쳐 소음이 줄어들긴 했지만 노리쇠의 공이 치는 둔중한 소리와 합쳐지니 그것도 제법 큰 소리였다.
12.7mm 구경의 대구경 총알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 트롤의 옆머리에 부딪쳤다.
트롤의 머리가 옆으로 확 꺾이면서 목이 부러져 나갔다.
하지만 총알이 머리뼈에 부딪치는 순간 붉은 빛 같은 것이 터져 나와 총알을 튕겨내는 것이 보였다.
‘제기랄 머리를 맞는 각도가 비스듬하고 생체실드가 제때 발현되어 관통을 하지 못했구나.’
소울은 즉시 제 2 탄을 준비했다.
목이 부러진 트롤이 옆으로 쓰러질듯 휘청거렸지만 곧 중심을 잡더니 몸을 바로 세웠다.
트롤의 부러진 목이 기이한 각도로 꺾여 돌아오고 저절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과연 재생의 아이콘, 트롤다운 모습이었다.
트롤은 고개를 돌려 숲속에 숨어 있는 소울의 눈을 정확하게 노려봤다.
소울은 스코프를 통해 보는 트롤의 살기 찬 시선에 순간 몸이 꽁꽁 얼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 푸티나가 용감하게 트롤에게 달려가더니 트롤의 몸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동시에 소울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퉁!
또다시 대물저격총의 총구에서 불이 번쩍거리며 총알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파악!
트롤의 이마 한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려버렸다.
거대한 트롤의 몸이 허깨비처럼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쿵!
‘어? 어떻게 된 거지? 트롤의 이마 한가운데를 정확하게 뚫었다.’
소울은 대물저격총을 쏴서 트롤을 죽인 사람이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크게 놀랐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달려왔다. 트롤이 정말 죽었는지 확인을 해야 했던 것이다.
가까이 와서 보니 트롤의 이마 한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푸티나가 트롤의 가슴 위로 걸어 올라가더니 마치 킹콩처럼 제 가슴을 치며 고함을 질러댔다.
카앙 카앙!
허리밖에 안 오는 놈이 그렇게 소리를 질러댄다고 다른 몬스터들이 겁을 집어먹을 것 같지도 않은데도 불구하고, 푸티나는 쉬지도 않고 계속 자신의 가슴을 치며 턱을 높이 세우고 주변을 아래로 깔아 내리듯 쳐다봤다.
그 모습을 누가 보면, 정말 푸티나가 트롤을 잡았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설마, 진짜 푸티나가 잡은 건가?’
푸티나의 당당한 모습에 소울도 잠시 헷갈렸다.
트롤의 대가리를 발로 밟아 옆으로 굴리자 뒤통수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보였다. 확실히 트롤을 죽인 것은 소울이 쏜 대물저격총의 총알이었다.
‘그런데 왜 생체실드가 발현되지 않았지?’
생체실드가 아까처럼 발현되었더라면 이번 저격에 트롤이 타격을 받았을지언정 한방에 머리통이 날아가 즉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생체실드가 발현되지 않은 이유는 자신이 대물저격총을 쏘기 직전, 푸티나가 저 형광색으로 빛나는 앞발로 트롤을 한 대 후려친 것과 관계가 있지 않나 싶었다.
만약 자신이 생각한 이 가설이 맞는다면 이건 정말 대박이었다.
“아참,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땅바닥이 트롤의 피로 서서히 물들어가자 소울은 지금 자신이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까망이는 트롤의 마석을 뽑아서 가져와!]
[규!]
[그리고 트롤의 피도 필요하니까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모조리 수거해. 할 수 있지?]
[규!]
정말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까망이는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까망이는 일단 트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트롤의 눈알만한 붉은 색 마석을 꺼내와 소울의 발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트롤의 심장으로 스며들어갔다. 신기하게도 까망이가 트롤의 심장으로 스며든 순간, 트롤의 몸에서 핏기가 쫙 빠지고 몸이 살짝 쭈그러들었다.
‘오오오! 역시 까망이구나. 붉은 색 마석이면 C급 마석 아닌가? C급 마석이 얼마였지? 최소한 10억은 넘었던 것 같은데……. 그럼 뭐야? 나 지금 C급 몬스터인 트롤 잡아서 10억을 번거야?’
소울은 황홀하게 붉게 빛나는 마석을 손가락으로 집어 들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트롤의 사체를 쳐다봤다. 그의 눈에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부 돈으로 보였다.
트롤은 정말 버릴 것이 별로 없는 몬스터였다.
물론 트롤의 피가 가장 비싸고 유용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트롤의 가죽이나 뼈 등 트롤 사체 자체가 싸다는 말은 절대 아니었다.
‘이걸 어떻게 처리하지. 잘라갈 수도 없고……. 그냥 통째로 들고 갈까?’
도축을 해서 필요한 부분만 골라 가져가면 참 좋겠지만 소울은 도축을 할 줄 몰랐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였다.
그냥 통째로 들고 가는 것이다.
전투배낭에서 몬스터 사체 보관용 대형 시체가방을 하나 꺼냈다.
잘 접혀져 있는 시체가방은 튼튼한 강화 비닐로 만들어져 쉽게 끊어지거나 터지지 않는 능력자들의 필수품이었다.
소울은 바닥에 몬스터 사체 보관용 대형 시체가방을 활짝 펴고 푸티나를 불러 트롤의 시체를 들어 안으로 집어넣었다.
푸티나는 자신의 몸보다 몇 십 배는 더 큰 트롤의 몸을 들면서도 조금도 힘들어하지 않았다.
크기는 소울의 허리 밖에 안 오는 녀석이 힘은 장사였다.
그는 지퍼를 위로 끝까지 끌어올리고 한쪽의 손잡이를 잡았다.
[푸티나! 네가 반대쪽 잡고 들어라. 이제부터 이걸 들고 집까지 돌아가는 거야.]
[낑!]
운 좋게도 강남필드 동문에서 안쪽으로 그리 많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트롤 한 마리를 쉽게 잡을 수 있었다.
트롤의 사체가 좀 무겁기는 하지만 푸티나가 끝까지 같이 들어준다면 대 몬스터 장벽 동문까지 가져가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선호작, 추천, 응원의 댓글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