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144화 (144/492)

00144  제 36 장  - 사랑은 창가에 흐르는 빗물 같아요.  =========================================================================

그저 담담하게 미소를 짓고 앉아 자신의 딸을 바라보고 그런 딸과 얘기를 오순도순 나누고 있는 소울을 쳐다볼 뿐이었다.

“엄마,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래라.”

“소울 씨! 잠시 실례해요.”

“네.”

정윤이는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스마트폰을 든 채 화장실이 있는 아래층으로 총총히 걸어 내려가는 유려한 정윤이의 자태에 소울은 절로 미소가 돌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신애라가 상체를 일으키며 소울을 쳐다봤다. 그런데 그녀의 눈빛이 마치 쥐를 노려보는 뱀같이 차가웠다.

“지금부터 내말 잘 들어!”

“네? 아! 네. 말씀하십시오.”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의자에 기댔던 상체를 앞으로 일으켜 세워 정자세를 하고 앉았다.

“난 자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소울은 얼굴이 급격히 벌겋게 달아올랐다.

“다시 말하지. 난 자네가 내 딸과 교제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가 아니야. 난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았어.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매일 피나 보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고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자네 같이 미래가 없는 사람에게 곱게 키운 내 딸을 줄 수가 없네.”

“아!”

소울은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차가운 얼음비수가 되어 자신의 가슴을 찌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니 실제로 그녀는 지금 자신의 극한 혐오의 감정을 담아 정나미가 뚝뚝 떨어지게 말을 해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보고 있었던 부드럽고, 우아하고, 교양이 넘치는 중년의 미부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극적인 반전의 모습이었다.

대한민국 아줌마들이 그렇게 싫어하며 욕을 해대던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들과 신애라의 모습이 겹쳐지며 지금 이 상황이 혹시 TV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세상에 어떻게 한순간에 사람이 이렇게 돌변할 수가 있지? 원래 좀 산다는 부자들은 다 이렇게 두 얼굴의 가면을 가지고 있는 건가?’

그가 충격 속에 빠져들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신애라의 독설은 점점 더 강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너를 만나기 전에, 난 이미 너와 너의 집안에 대해 뒷조사를 해봤어. 뭐? 아버지가 일찍 은퇴해서 전원주택을 사서 서울로 이사를 해? 지금 희망사항을 말하는 건가? 쫄딱 망해서 한 푼도 없이 강원도로 도망가서 두메산골에 처박혀 땅이나 파먹는 주제에 감히 어디서 누굴 넘보는 거야? 좋게 말할 때 여기서 그만둬! 이 이상 내 딸에게 접근한다면 그때는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녀의 말을 듣고 나자 소울은 자신이 상상하고 꿈꿔왔던 스위트홈의 꿈이 유리창 깨지듯 와장창 박살이 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은 너무 화가 나면 오히려 냉정해지기도 한다. 소울이 바로 그 부류였다.

너무 화가 나다 못해 꼭지가 돌아버릴 것 같자 오히려 그의 머릿속은 한 겨울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차갑고 냉정해져 한 줄기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휴우우우우! 정말 놀라운 분이시군요. 그럼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제가 가난해서 싫으신 겁니까? 아니면 제가 특별히 뭔가 잘못하거나 실수해서 미움을 산겁니까?”

“굳이 말하자면 둘 다라고 해야겠지. 집안, 학벌, 직업, 미래 등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과 환경이 내가 가장 싫어하고 경멸하는 것들뿐이야.”

“그 정도인줄은 몰랐네요. 그럼 이건 돌이킬 수 없는 조건과 환경이란 말입니까?”

“입 아프게 왜 한 소리를 두 번 하게 만들지. 넌 어떻게 해도 안 돼. 그러니 꿈도 꾸지마!”

신애라의 차가운 말에 소울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신애라와 자신은 상성이 좋지 않았다. 그녀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에게는 전부 상처로, 모욕으로 다가왔다.

“그럼 오늘 이렇게 만나자고 한 것도 저에 대해 알기위한 것이 아니라 윤이에게서 나를 떼어 놓으려고 나온 거군요?”

“당연하지. 그게 아니라면 내가 왜 너 같은 사람을 만나려고 굳이 시간을 내서 여기까지 나왔겠어?”

신애라는 마치 소울이 철천지원수나 되는 것처럼 극악의 감정을 담아 차갑게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자 혹시 이 여자에게 유전적인 어떤 정신병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소울은 신애라가 자신의 집안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몇 가지 일들을 굳이 바로 잡아 주려고 하지 않았다. 변명 자체를 하고 싶은 생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한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하는 큰일이라는 뜻이다.

세상에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서 잘 사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더 많다. 다만 그것이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결혼은 결혼하려는 당사자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라고도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당사자가 아무리 서로 사랑한다고 해도 가족과 집안문제로 인해 헤어지거나 이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반대를 해도 어느 정도라야 이해를 하고 극복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신애라 같이 극혐의 감정을 가지고 나온 사람과는 사실 어떤 얘기를 해도 무의미하다.

신애라는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었다. 건드리지 않아야 할 것을 마구 찔러댔다.

그의 뿌리와 역린까지 모두 함께 건드려서 씻을 수 없는 상처까지 줬다.

특히 그녀가 소울의 부모님을 거론한 것은 거의 도발에 가까웠다.

소울이 굳이 자신의 부모를 경멸하고 모욕하는 말을 저렇게 서슴없이 내뱉은 신애라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윤이와 꼭 결혼을 해야 할 이유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정윤이가 좋아도 이런 개 무시를 당하면서 까지 굳이 그녀를 쫓아다니며 결혼하자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정확하게 말해서 소울은 지금 정윤이를 쫓아다니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윤이가 소울을 보고 좋아해서 자신의 인생을 걸고 달려들고 있었다.

결국 소울은 빠르고 냉정하게 결론을 내렸다.

깨끗하게 마음을 비워버린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쪽이 원하는 데로 해주죠. 우리 다시는 서로 얼굴 안 봤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윤이에게 말 잘해서 저를 더 이상 귀찮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바랍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그는 끝까지 예의를 잊지 않고 정중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울이 가려고 하자 갑자기 신애라의 표정이 돌변했다.

“왜? 지금 나가게?”

“제가 이 자리에 더 앉아있어야 할 이유가 있나요? 우리에겐 아무 접점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지 말고 앉아.”

“지금 내게 명령을 하는 겁니까?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더 이상 제게 말 놓는 것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내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소울이 신애라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냉정하게 말을 하자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아무리 소울이 허접한 F급 소환계 능력자, 아니 이제 간신히 E급이 오른 능력자라고 해도 그동안 잡아 죽인 몬스터가 최소한 세 자리 숫자는 넘어갔다.

마음속에 분노가 일어나자 당연히 마음의 창이라는 눈에서도 살기가 터져 나왔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입을 차갑게 놀린다고 해봤자, 신애라는 몬스터 한 마리 죽여보지 못한 평범한 중년 아줌마에 불과했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분노한 소울의 살기 찬 눈빛을 받아낼 수 있겠는가?

신애라는 부르르 몸을 떨더니 역시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하고 싶은 말을 목구멍 밖으로 내뱉었다.

“제발 부탁이에요. 우리 애가 놀라지 않도록 조금만 있다가 나가도록 해요.”

“뭐라고요? 푸하하하하하!”

소울은 그녀의 뻔뻔한 말에 그만 빵 터져 버리고 말았다.

이건 적반하장에 염치가 없어도 이만저만 없는 짓이 아니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 큰 소리로 웃고 있는데, 계단을 올라오는 정윤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소울이 서서 크게 웃음을 터뜨리자 뭔가 하고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어왔다.

“소울 씨! 엄마! 무슨 얘긴데 그렇게 재밌어? 뭐야? 나도 같이 좀 같이 웃자. 응?”

정윤이는 자신의 어머니인 신애라의 옆자리로 가지 않고 소울의 옆으로 와서 앉았다. 그리고는 두 사람을 교대로 번갈아 쳐다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녀의 그 순진무구한 표정에 소울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바꾸고 잠시만 더 앉아있다 가기로 했다.

“별거 아니야. 그냥 어머니가 아주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셔서 웃었어.”

“어머니? 벌써 두 사람이 그렇게 친해진 거야?”

“응, 그렇게 됐어.”

소울은 강아지처럼 자신에게 바짝 몸을 붙어오는 정윤이를 보자 순간,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았다.

자신을 사랑해주고 있는 그녀에게 사실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잘못이 있다면 저 사이코, 개 또라이 같은 신애라에게 있지…….

그는 정윤이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슬쩍 신애라를 쳐다봤다.

그녀의 눈이 위로 휙 올라가는 것을 보자 화가 나는 것 같았다.

소울은 정윤이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해서 자신의 눈을 못 보게 만들면서 동시에 신애라를 차갑게 쏘아봤다.

그러자 소울이 쏘아낸 살기에 놀란 신애라는 흠칫 몸을 떨더니 고개를 푹 숙여 자신이 마시던 커피를 쳐다봤다.

“윤이 씨! 나 지금 급한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해. 어머니에게는 먼저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했어. 맞죠?”

“네, 마, 맞아요.”

“하하하, 갑자기 왜 또 존댓말을 쓰십니까?”

“맞네. 맞아.”

소울은 신애라를 차갑게 쏘아보다가 고개를 돌려서 정윤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급한 일이 생겼다면 혹시 나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건가요?”

“아니야. 그런 것 아니야. 그냥 일이 좀 생겼어. 나 그만 가서 일 좀 봐도 되지?”

“그럼요. 물론이죠. 미안해요. 일하는 도중에 불러내서…….”

“그런 거 아니라니까……. 윤이야! 그럼 나 먼저 가볼 테니까 조심히 잘 들어가?”

“네, 소울 씨도 일 잘 보세요.”

소울은 자신을 걱정하는 그녀의 맑은 눈을 보자 속에서 뭔가 울컥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마 소울과 신애라는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넌 사이였다.

이제 이 자리를 나가면 아마 다시는 정윤이를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나중에 그녀가 사실을 알고 얼마나 아파할까 생각해보니 벌써부터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어머니, 작별인사 정도는 해도 되겠죠?”

“그, 그러던지…….”

소울은 신애라를 보며 먼저 허락을 구했다.

그녀는 소울의 눈을 쳐다보는 것이 무서워서 얼른 보내고 싶은 마음에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대답을 듣자마자 곧바로 정윤이의 입술에 이별의 키스를 했다.

놀란 정윤이가 신애라를 보려고 고개를 돌리려고 하자 소울은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는 못 움직이게 만들었다. 대신 그녀를 자신의 품안에 넣고 꼭 안아주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신애라가 놀라서 두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게 보였다.

소울이 다시 싸늘하게 노려보자 얼른 빈 커피 잔을 들어 마시는 척을 했다.

정말 골 때리는 아줌마였다.

“윤이야! 그만 가볼게. 아디오스(Adiós)!”

“소울 씨! 잘 가요. 저녁에 연락할게요.”

소울은 그녀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정윤이와 신애라가 웃으며 뭐라고 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지만 소울은 지금 그런 말에 신경을 쓸 정도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시발,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구나.’

그는 갑자기 자격지심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고등학교 때, 좀 더 열심히 공부할 것을…….

부자인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이런 말을 듣지 않았을 것을…….

그냥 자신의 수준에 맞는 가난한 집안의 여자를 만나서 사귈 것을…….

자신이 조금만 더 일찍 각성해서 돈을 벌었다면 부모님을 욕하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됐을 것을…….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부정한 생각이 회오리처럼 그의 머릿속을 덮어갔다.

‘세경이이에 이어 윤이까지……. 벌써 두 번째네? 왜 나한테만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나한테 마(魔)가 꼈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혹시 고하라와 같이 있었다고 하늘이 벌을 내리시는 건가?’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는 능력자협회 서울지부로 돌아가려다 갑자기 차를 돌려 은곡마을의 집을 향해 달렸다.

도저히 그냥 허허 웃으면서 사람들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그는 결국 그 스트레스를 드라이브를 해서라도 풀기로 했다.

부아아아아아앙!

괜히 죄도 없는 액셀러레이터만 짓밟히고 자동차 엔진이 터져라 달려댔다.

하늘도 그의 마음을 아시는지 금세 검은 구름이 몰려들고 어두워지더니 빗방울을 뿌리기 시작했다.

사고의 위험이 있어 조금 속도를 줄이자 이내 자동차 유리창에 빗물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치 자신의 사랑이 창가에 흐르는 빗물처럼 허무하게 튀어 땅속으로 곤두박질치는 것만 같았다.

============================ 작품 후기 ============================

공지를 보니 제3회 노블레스 77 Festival이 오늘까지네요. 기념으로 한편 더 쏘아 올리니다.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호작, 추천, 응원의 댓글은 제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쿠폰, 후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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