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2 제 36 장 - 사랑은 창가에 흐르는 빗물 같아요. =========================================================================
“뭔데 그래? 말해봐!”
-저 사실은 우리 엄마가 소울 씨를 보고 싶어 해요.
“뭐? 나를?”
-네, 제가 얘기를 했거든요.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요.
“아! 그렇구나.”
소울은 정윤이가 집에 자신을 사귀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는 말에 기분이 좋기도 하고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괜찮죠? 제가 허락도 없이 먼저 이렇게 얘기해서요?
“괜찮아. 그런데 지금은 좀 그렇고 오후에 보면 안 될까?”
-오후요? 몇 시쯤이요?
“한 두 시간 정도 뒤에 봤으면 좋겠는데……. 지금 중요한 일을 하고 있거든.”
-아! 전 괜찮아요. 그럼 일 끝나고 반포로 올 수 있어요?
“반포? 그래. 나도 마침 근처에 있으니까 일 끝내고 바로 갈게.”
-네, 기다릴게요. 그리고 고마워요.
“천만에, 그럼 나중에 전화할게.”
소울은 기분 좋게 전화를 끊었다. 생각보다 일이 무척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벌써 정윤이의 어머니를 보게 되다니…….
그럼 다음은 상견례를 하게 되는 건가?
고하라의 얼굴이 살짝 떠올라 안타까웠지만 이게 순리인 것 같아서 못내 아쉬운 마음을 접고 정윤이와 그녀의 어머니를 만나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니 교통정리가 저절로 되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자, 이제 전투에 집중하자. 지금은 몬스터를 잡으러 가야한다. 정신 바짝 차리도록 하자.’
그는 스스로 긴장감을 고양시키며 몸을 움직였다.
12.7mm 총알이 꽉 찬 탄창으로 채워진 전투배낭을 매고 전용소음기가 장착된 대물저격총을 들고 걸어가는 소울을 보며 주변의 능력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놀리거나 비난의 목소리가 아니라 노골적으로 부럽다는 투정에 가까웠다.
“히야! 저게 뭐야? 대물저격총 아니야?”
“그러게…….”
“누구는 돈 많아서 좋겠다. 저런 것도 사가지고 다니고…….”
“억울하면 너도 술 좀 그만 처먹고 돈 모아서 사면되잖아?”
“쓰벌! 그걸 누가 몰라서 그래? 돈이 안모이니까 못사는 거잖아?”
“하여튼 더럽게 부럽네.”
소울은 들려오는 능력자들의 한숨 소리를 한쪽 귀로 흘려보내며 신반포로와 반포대로가 교차하는 사거리에서 신반포 중학교 방면 입구 쪽에서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안을 감시하고 있던 능력자 하나가 그를 쳐다보더니 자동으로 그가 들고 있는 대물저격총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피식 웃음을 흘리니 부럽다는 표정을 하며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계단을 타고 내려와 보니 생각대로 강남터미널 지하도 상가는 한치 앞도 볼 수 없이 어두웠다.
하지만 그는 야간투시경 역할을 하는 전투헬멧이 자동으로 시야를 보조해줘서 안을 살펴보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얼씨구? 이놈들이 띄엄띄엄 보초를 세워놓고 있었네?’
소울은 일단 전투헬멧의 영상녹화를 켜고, 탐색기능을 활성화했다. 그러자 반경 25m 안의 생명체의 움직임이 훤히 보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자고 있는 가고일에게서는 생명체의 반응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계단에서 살금살금 안으로 걸어 들어가 왼쪽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의 바로 앞에 대형 화분이 몇 개 놓여 있었고, 얼핏 봐서는 그를 쉽게 찾을 수 없는 교묘한 위치라 이 자리가 마음에 들었다.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자. 그냥 가볍게 무기 성능을 테스트 해보는 정도로 간다.’
마음속으로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워놓은 그는 바닥에 누워 대물저격총의 삼각대를 펼쳤다.
[까망아 내 머리 위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알아서 처리해줘?]
[규!]
소울은 까망이에게 뒤를 맡기고 자신의 주머니에서 푸티나를 꺼냈다.
“푸티나, 몸을 크게 키울 수 있지?”
“낑!”
“좋아. 그런데 네 몸에서 발광하는 그 빛은 잠시 감추면 안 될까?”
“낑낑!”
푸티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낑낑 댔다. 소울은 그의 말에서 긍정의 뉘앙스를 찾아내고는 커다란 화분 뒤에 세워 놓았다.
“몸집을 키워도 돼. 그리고 정면에서 가고일이 난입하면 막아줘야 해?”
“낑!”
푸티나는 기분 좋게 대답을 하더니, 곧 두 눈을 감고 두 주먹을 꼭 쥔 채 바르르 몸을 떨어댔다.
옆에서 보니 마치 서서 똥을 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곧 그의 생각을 무참히 뭉개버린 기현상이 눈에 들어왔다.
푸티나의 몸이 마치 물이 떨리는 것처럼 한꺼번에 떨리더니 갑자기 쑥쑥 키가 자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딱 자신의 허리에 닿을 정도의 크기가 되자 푸티나는 눈을 뜨고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웃음을 지었다.
귀엽기도 하고 송곳니를 보면 좀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푸티나는 자신의 소중한 소환수인 것만은 변함이 없었다.
소울은 이제 마음 편하게 대물저격총의 스코프를 쳐다볼 수 있었다.
곧 전투헬멧의 저격모드 지원시스템이 작동하며 그에게 대상과의 거리와 풍향을 알려줬다. 지하도 안이라 당연히 풍향계는 0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람도 불지 않는 지하도니 그냥 직선으로 쏘면 되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스코프에 나타난 십자선상에 가고일 한 마리의 머리통을 집어넣다. 25미터도 되지 않는 곳이라 이건 못 맞추는 것이 더 어려울 것 같았다.
“후우우우……. 흡!”
길게 숨을 내쉬었다가 숨을 다시 들이쉬는 순간, 호흡을 2~3초간 멈추고 대상을 정확하게 노려봤다.
그리고 가볍게 방아쇠를 당겼다.
퉁!
강한 반동이 느껴지며 총구에서 불이 번쩍거렸다.
생각보다 노리쇠의 공이 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하지만 전용소음기로 인해 확실히 총소리는 작게 들렸다.
하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목표로 삼은 가고일의 머리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나이스 헤드 샷!’
소울은 다른 가고일이 눈치를 채기 전에 바로 다음 목표로 생각해놓은 50m 밖의 가고일의 가슴을 향해 제 2탄을 발사했다.
퉁!
다시 한 번 둔중한 소음이 지하도를 울리며 가고일 한 마리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버렸다.
‘나이스 샷!’
또다시 속으로 스스로를 칭찬한 소울은 단 두 발에 불과하지만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그리고는 이제 느긋한 마음으로 스코프에 들어오는 가고일의 머리와 가슴을 차례로 박살내기 시작했다.
퉁 퉁 퉁 퉁 퉁…….
계속 이어지는 소울의 저격에 가고일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하나씩 머리가 터지거나 가슴에 구멍이 뚫리며 쓰러져갔다.
때로는 두 마리나 세 마리가 동시에 쓰러지기도 해서 일타쌍피, 일타삼피가 되기도 했다.
가고일은 생각보다 소리에 예민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이거 정말 쉽네. 그런데 왜 이렇게 쉬운 가고일 토벌을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거지?’
소울은 탄창을 갈면서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고일의 대가리가 하나씩 스코프에 보이는 족족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몇 마리가 몰려있을 때는 한꺼번에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리기도 했다.
마법생물이라는 얘기를 얼핏 들었는데, 정말 그래서 그런지 이런 저격에는 속수무책인 가고일이었다.
‘좋은 정보를 알게 됐구나. 이걸 나 혼자 알고 가기는 좀 그렇고……. 역시 유정아에게 넘겨야겠지?’
그는 유정아에게 이 정보를 넘겨서 알아서 이득을 챙겨주기로 했다.
계산이 확실한 여자니 가는 게 있으면 분명히 오는 것도 있을 것이다.
‘젠장, 벌써 탄창을 다 비웠네. 오늘은 그만해야겠다.’
올 때는 꽉 채워서 왔는데 벌써 탄창을 다 비워버렸다. 탄창에 총알을 채우는 것이 조금 귀찮기도 하고, 원하는 만큼 충분히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소울은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저게 뭐지?’
그는 자신이 있던 지하도의 왼쪽 편 말고, 오른쪽 편 끝에서 뭔가 날개 같은 것을 발견했다.
호기심이 생긴 소울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 살짝 머리를 빼고 쳐다봤다.
‘으헥! 이게 다 몇 마리야? 옆의 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많구나. 어쩐지 숫자가 좀 적다 싶었더니만…….’
그제야 가고일 토벌을 쉽게 하지 못하고 있는 사정을 이해가 갔다.
이쪽 통로에는 천장에 거꾸로 매달리거나 좌우로 빽빽하게 가고일이 달라붙어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한다. 도망칠까? 아니야. 차라리 이렇게 빽빽하게 뭉쳐 있으니 저격하기에는 더없이 좋을 거야.’
저렇게 많이 뭉쳐 있는 모습을 보니 대물저격총 한 방에 서너 마리씩은 충분히 잡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소울은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했다.
[까망아, 너 저놈들 대가리 다 뚫어 버릴 수 있겠어?]
[규!]
역시 긍정의 아이콘, 까망이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강하게 내비쳤다.
‘에라 모르겠다. 까망이를 한 번 믿어보자. 만약에 힘들며 바로 도망가자. 설마 대낮에 햇빛 한가운데로 튀어나오지는 않겠지.’
소울은 일단 자리에 앉아 대물저격총 총알을 꺼내 비워진 탄창을 모두 채웠다.
탄창이 채워지자 대물저격총을 몸 뒤쪽으로 넘겨서 메고 토마호크를 꺼내 왼손에 쥐었다.
까망이를 오른손으로 잡고 천천히 그리고 길게 심호흡을 했다.
[까망아! 저 안에 있는 모든 가고일들을 모조리 뚫어 버려라!]
[규! 규규!]
소울은 자신의 오른손에 잡혀 있는 까망이에게 집중해서 자신의 스피릿파워를 있는 대로 퍼붓기 시작했다.
느낌상으로 반 이상을 퍼부은 것 같자 왠지 모르게 골이 띵하고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한꺼번에 너무 많이 쏟아 부어서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덕분에 소울의 눈에만 보이는 까망이는 지금 노란 광채에 휩싸여 찬란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날아라! 까망이!]
휘익!
소울이 힘차게 까망이를 던졌다.
그리고 이때부터 까망이의 300:1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퍽 퍼퍼퍼퍼퍽 퍽 퍼퍼퍼퍼퍽…….
반경 20m까지는 까망이가 날카로운 단창으로 변해서 아주 순조롭게 가고일의 대가리를 계속 뚫어 버리며 지나갔다.
하지만 30m 가 더 넘어가자 소울은 까망이가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때부터 까망이 스스로 움직이며 계속 가고일의 대가리를 뚫고 지나가고 있었다.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무거운 돌조각 같은 가고일의 몸으로 인해 소음이 들리건만 가고일들은 웬일인지 전혀 동료의 죽음에 대해 모르는 척 침묵하며 자고 있었다.
참 희한한 일이라고 생각한 그는 까망이를 자신의 손바닥으로 불러들여 다시 한 번 세차게 던졌다.
휘익!
퍽 퍼퍼퍼퍼퍽 퍽 퍼퍼퍼퍼퍽…….
이번에도 서로의 몸에 바짝 달라붙어 있던 가고일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벌써 수십 마리의 가고일이 그 짧은 시간에 바닥에 쓰레기처럼 처박혔다.
‘설마 돌 떨어지는 소리에는 반응을 안 하는 건가? 하긴 그게 무슨 상관이야. 가고일을 많이 잡아 죽이기만 하면 되지.’
소울은 몇 번이나 까망이를 소환하고 다시 던지는 일을 반복하며 가고일을 몰살시키고 있었다.
여기서 소울은 큰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몬스터의 약점을 공략하면 의외로 쉽게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한참 신나게 가고일을 잡고 있을 때, 저 안쪽에서 가고일 한 마리가 이쪽을 향해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른쪽 통로가 아닌 왼쪽의 통로였다.
[시간이 없구나. 까망아, 빨리 나머지 놈들을 처리하고 튀자.]
[규!]
소울은 힘차게 까망이를 던지고 받기를 빠르게 반복했다.
하지만 반경 25m 안으로 가고일이 들어선 순간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괴성이 지하도 상가에 넓게 울려 퍼졌다.
캬아아아아오오오오오!
괴성을 들었는지 소울의 앞에 보이는 수십 마리의 가고일의 눈이 일제히 떠지며 고개가 돌아갔다.
자신을 쳐다보는 수십 개의 시선에 소울은 순간 심장이 덜컥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푸티나, 앞으로 나와!”
“낑!”
푸티나가 기다렸다는 듯 용감하게 앞으로 달려 나왔다.
[까망아!]
[규!]
까망이의 몸이 순식간에 그의 오른손에 나타났다.
소울은 힘차게 남은 가고일을 향해 까망이를 집어 던졌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강하게 외쳤다.
[돌아라! 소용돌이처럼 돌아서 모조리 쓰러뜨려라!]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소울은 돌풍을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강하게 염원했다.
그러자 이제까지 직선이나 곡선 하나밖에 그리지 못했던 까망이의 움직임이 급변했다.
마치 스프링처럼 빙글빙글 끝없는 원을 그리며 날아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퍽 퍼퍼퍽 퍽 퍼퍼퍽 퍽 퍼퍼퍽…….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제 겨우 몸을 일으키려는 가고일들이 까망이의 공격으로 인해 순식간에 박살이 나서 우수수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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