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4 제 34 장 - 가고일의 공습 =========================================================================
“난 분명히 여러분에게 경고를 했습니다. 그러니 만약 대형사고가 일어나도 나를 원망하지 마세요.”
“으음.”
소울은 선장에게 얘기한 것이 아니라 선장 옆에 있는 부선장, 항해사, 기관사로 보이는 승무원들에게 말하고 몸을 돌렸다.
그 자신도 가고일이 수많은 불빛이 반짝이는 한강 이남의 빌딩들을 놓아두고 굳이 한강유람선을 쫓아온다고 100% 확신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그는 한 가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불안한 예감은 대부분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좀 냉정해 보이지만 소울은 더 이상 이 배안에서 일하는 승무원들에게 희망을 가지지 않았다.
이들과 자신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들이 승객인 자신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맞았다. 하지만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니 항해를 즉시 중단하고 바로 회항할 것 같지는 않았다.
“소울 씨!”
“하라 씨!”
소울이 배안으로 들어오자 고하라가 얼른 일어나 그를 불렀다.
사람들은 고하라가 구명조끼를 챙겨 입고 의자에 얌전히 앉아있는 모습을 굉장히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고하라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많은 사람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자신의 말을 믿고 따라주었기 때문이었다.
“저도 구명조끼를 챙겨 입어야겠네요.”
“여기 있어요.”
“어! 고마워요.”
고하라는 소울을 위해 구명조끼 하나를 미리 손에 들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그녀의 배려에 소울은 절로 마음이 푸근해졌다. 그는 그녀에게 가볍게 고개를 한번 숙이고는 빠르게 구명조끼를 입었다.
그때 옆 테이블의 젊은 부부가 소울을 쳐다보며 물었다.
“실례합니다만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음.”
소울은 잠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사실대로 알려주기로 했다.
“저는 능력자협회에 등록된 능력자입니다.”
“아! 네. 저도 옷을 보고 그런 줄 알고 있었습니다.”
젊은 부부 중 남자가 소울의 옷을 향해 손가락을 펼쳤다.
소울은 남자를 보며 구명조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제 생각에는 지금 당장 구명조끼를 입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재 강남필드에서 가고일이라고 불리는 비행 몬스터 떼가 서울을 향해 북상했다고 합니다. 가고일은 빛을 무척 싫어하기 때문에 한강유람선이 가지고 있는 이런 현란한 조명을 보면 적개심을 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 배의 조명이 가고일을 불러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네?”
“정말이에요?”
“그게 사실입니까?”
젊은 남편과 소울의 대화를 듣고 주변의 사람들이 일제히 소울에게 반문했다. 하지만 소울은 다른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건 젊은 부부만 보면서 말했다.
“선장에게도 이런 사실을 알리고 당장 조명을 끄고 회항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무시당했습니다. 저 역시 비행 몬스터들이 저희가 타고 있는 이 배를 100% 공격한다고 장담은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렇게 사방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있는데 나에게는 불행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말은 여기가지입니다. 이제 어떻게 할지 결정은 여러분이 하세요.”
소울은 말을 마치자 냉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이들의 대표도 아니고, 베이비시터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니 자기 생명은 각자 자기가 알아서 지켜야한다.
지금 이렇게 얘기해준 것만 해도 이미 오지랖이 넓어도 한참은 넓은 짓이었다.
[까망아, 이 배 꼭대기로 올라가서 가고일이 오는지 감시해줘!]
[규!]
까망이가 ‘규’ 라고 대답을 하고 그의 머리카락에서 허공으로 뛰어 오르는 순간, 소울은 까망이를 불러 야단을 칠까 생각했다.
그렇게 ‘네’라고 대답하라고 가르쳤는데 막상 밖에 나오자마자 또 ‘규’라고 대답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가 ‘네’라는 소리고 ‘규우’가 ‘아니오’라는 소리라는 정도는 이미 자신도 익히 알고 있었다. 굳이 그런 작은 일 가지고 까망이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좋지 않았다.
‘내가 까망이의 개성을 너무 무시하고 있는 건가? 말은 계속 가르쳐야 하겠지만 까망이를 내 멋대로 바꿔서 꾸미고 포장하는 짓은 그만둬야겠구나.’
소울은 그렇게 까망이를 이해해주기로 결정하고 하늘을 쳐다봤다.
새까만 하늘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배의 조명이 너무 밝아서 그런지 별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전투헬멧의 기능 중에 주변을 레이더처럼 스캔하는 탐색기능을 활성화시켰다. 그러자 그의 전투헬멧의 선바이저에 반경 25m 안의 생명체들이 녹색 점으로 표시되었다.
이미 경험을 통해 형체와 몸의 온도가 다른 몬스터는 붉은색 점으로 표시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00% 맞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 업그레이드가 되고 있어서 언젠가는 점점 오차가 줄어 100% 맞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반경 25m 는 비행 몬스터에게 순식간이다. 이건 배터리만 소모시키는 쓸데없는 짓이야.’
소울은 바로 탐색기능을 껐다. 대신 토마호크를 꺼내 오른손에 쥐었다.
그때 배 안은 소울의 말로 인해 구명조끼를 챙겨 입는 사람과 무시하는 사람들로 나뉘어져 있었다.
젊은 부부는 제일 먼저 소울과 고하라처럼 구명조끼를 걸쳤다. 그리고는 소울의 행동을 예의 주시했다.
[온다. 많이 온다.]
[까망아! 돌아와!]
소울은 까망이의 경고가 들리자 즉시 까망이를 자신의 왼손으로 소환했다.
그리고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몬스터가 날아오고 있습니다. 모두 탁자 밑으로 들어가 숨으세요.”
“네에?”
“정말입니까?”
“진짜에요?”
“또 뭔 소리야?”
소울은 그들의 말에 일일이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저 고하라를 한번 쳐다볼 뿐이었다. 고하라는 소울의 말을 듣는 즉시 탁자 밑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하라 씨는 내가 지켜 줄 테니까 안심하세요.”
“네, 저는 소울 씨 믿어요.”
그녀의 믿는다는 말에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마음 어딘가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나를 믿는다고? 나를?’
소울은 멍한 표정을 짓다가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위로 번쩍 치켜들었다. 무언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순간, 크게 소리쳤다.
“선장! 이 개새끼야! 내가 조명 끄라고 했잖아!”
캬아오오오 캬오오오오…….
하지만 소울의 외치는 소리는 유람선의 좌우 사방으로 떼거지로 몰려드는 수많은 검은 물체들이 내는 포효로 인해 묻혀버리고 말았다.
쿵 쿠쿵 쿵 쿠쿵…….
파파파파팍 파파파파팍…….
동시에 유람선의 여기저기에서 뭔가가 강하게 부딪쳐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가고일들이 유람선의 지붕을 순식간에 쥐어 뜯어버리고 지나가는 소리였다.
“꺄아아악!”
“아아악!”
공포영화를 보면 꼭 결정적인 순간에 악을 써대는 여자가 하나씩은 있다. 가만히 있으면 살수도 있을 텐데 왜 악을 바락바락 써대는 지 의문이다. 하지만 그게 공포에 먹혀버린 여자들의 전형적인 습성이다. 아니 어쩌면 DNA에 그렇게 새겨져 있는 지도 몰랐다.
여자들의 비명소리는 날카롭다. 마치 초음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당연히 가고일들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들의 주의를 끈 여자들은 순식간에 가고일들의 발톱에 낚아 채여 하늘로 올라갔다. 거기에다 아직까지도 탁자 밑으로 들어가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덤으로 잡혀가고 있었다.
후두둑 후두두두둑!
순식간에 가고일 떼에 뒤덮인 그녀들은 수천조각의 살 조각으로 잘려 배위와 강물 위로 비처럼 우박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허공으로 잡혀 올라간 사람들의 시체조각이 또 떨어져 내렸다.
“꺄……흡!”
소울은 자신의 아내가 소리를 지르려는 것을 급히 손으로 막은 젊은 남자를 보고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생명은 지금 막 그녀의 남편이 살린 것이다. 아마 평생을 감사하며 살아야할 것이다. 아님 말고…….
창가의 벽에 바짝 붙어서 가고일들의 움직임을 확인한 소울은 피와 살점으로 가득한 배안을 보고는 절로 인상을 썼다.
다행히 아까 자신의 말을 듣고 무시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테이블 밑으로 들어가 있어 가고일들의 주의를 끌지 않아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무시하고 앉아 와인을 마시던 사람들은 이미 몸이 산산조각으로 찢겨져 요단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참,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 같구나.’
소울은 허무한 인생이라는 생각과 함께 가고일에게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얼핏 봐도 수백 마리는 될 것 같은 가고일 떼를 향해 무기를 드는 미련한 짓은 할 수 없었다.
복수도 상황을 봐가면서 하는 것이다.
청산(靑山)이 남아 있는 한 땔감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분노를 누르고 적을 안심시켜야 한다. 굴욕을 참아야 언젠가는 크게 떨쳐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가고일 떼가 유람선의 지붕을 뜯어가고, 승객들을 잡아채가면서 밝게 빛나는 현란한 조명까지 뜯어갔다는 것이다.
정말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가고일 떼는 한강유람선을 뒤로하고 한강에 놓인 다리에 붙어 있는 밝은 조명들(반포대교 무지개 분수 같은)에 끌려 그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대로 조금만 지나면 가고일들의 주의를 더 이상 받지 않게 되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딜 가던지, 꼭 한 두 마리의 고춧가루 같은 놈의 새끼들은 어디에나 껴있기 마련이었다.
유람선의 선장 이도만은 가고일 떼들이 저 멀리 날아가자 간신히 공포에서 벗어나 부리나케 배를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날아갈 때 그냥 가고일 떼와 같이 가면 좋으련만, 뭐 주워 먹을 일 없나하고 늦장을 부리며 날아오던 가고일 편대가 유람선이 회항을 하려고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방향을 돌려 날아오고 있었다.
“야! 이 선장 꼴통 새끼야! 당장 안 멈춰! 가고일 아직 다 지나간 것 아니란 말이야. 당장 시동 꺼!”
소울이 고개를 앞쪽으로 돌려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듣고도 그의 말을 무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못 들었는지 유람선은 뱃머리를 돌려 여의도선착장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캬아오오오 캬오오오오…….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고음이 고막을 긁어대며 가고일 편대가 유람선 위에 내려앉았다.
박쥐의 날개에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몸을 가진 가고일은 날카롭게 빛나는 꼬리를 흔들며 배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제기랄!”
소울은 속으로 선장을 저주하며, 들고 있던 토마호크를 제일 가까이에 있는 가고일을 향해 기습적으로 집어 던졌다.
물리공격력과 마법공격력에 대한 상당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가고일의 몸체는 돌처럼 단단하다.
그는 토마호크를 던지면서도 가고일에게 어떠한 피해를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토마호크를 던진 것은 주의를 끌기위한 술수에 불과했다. 진짜 공격은 바로 까망이였기 때문이다.
휘익 퍽!
캬아아악!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으로 놀라웠다.
토마호크가 가고일 한 마리의 가슴을 그대로 뚫고 들어가 박혀버린 것이다.
가고일은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비록 가슴을 꿰뚫는 공격이었지만 그렇다고 당장 쓰러질 정도는 아닌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가고일은 토마호크의 공격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져 버렸다.
‘어? 이게 뭐지?’
소울은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속으로 이어지는 공격을 중단하지는 않았다.
그는 쓰러진 놈의 옆에 서 있는 또 한 마리의 가고일을 목표로 까망이를 힘차게 던졌다.
휙!
까망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자 곧 스스로의 힘을 더해 쏜살같이 빠른 속도로 가고일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이미 토마호크를 맞아 쓰러지는 동료의 비명소리를 듣고 잔뜩 경계를 하고 있었던 가고일은 놀라운 동체시력으로 까망이를 발견하고 날카로운 자신의 손톱을 뽑아내어 X자로 휘저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가고일의 손톱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대신 가고일의 몸속으로 뭔가가 깊이 파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푹!
순간적으로 까망이가 자신의 몸을 단창으로 변형시켜 가고일의 눈을 찌르고 뇌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가고일은 뇌와 심장에 마법회로가 있어서 그곳이 약점이라고 했다.
미국 능력자협회에서 나온 정보였는데 소울도 우연히 한번 본적이 있었다.
그래서 토마호크를 가슴으로 던지고, 까망이를 얼굴로 던졌는데 조금 조준이 빗나간 모양이었다.
하지만 까망이는 훌륭하게 주인의 실수를 만회했다.
빗나간 조준을 스스로 잡아내 궤도수정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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