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129화 (129/492)
  • 00129  제 33 장 - 두 번째 소환수  =========================================================================

    차원의 균열에서 귀환한 뒤 처음으로 소울넷에 접속됐다.

    소울은 영혼체험 인터페이스를 열고 자신에게 온 메시지가 있는 지 확인했다.

    타이로스, 라펠, 탄탈라스, 세이지, 울프리나, 옥사나 이렇게 6명이 꾸준히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었는데 전혀 모르는 자들이 보낸 메시지도 상당했다.

    그들이 보낸 메시지는 하나같이, 천편일률(千篇一律)적으로 똑 같았다.

    영혼체험을 계속할 수 있게 막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부탁을 해오면서 소울넷 포인트 100p씩을 보낸 기존의 6명처럼, 자신에게 소울넷 포인트를 선물로 보낸 자는 하나도 없었다.

    “자식들, 매너가 없네. 오고가는 포인트 속에 싹트는 우정이라는 것을 정말 모르나?”

    소울은 아무런 대가없이 거저먹으려고 하는 놈들의 메시지를 한번 쓱 훑어보고는 한꺼번에 삭제했다.

    라펠이 접속했는지 확인했다. 라펠은 접속해있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나중에 접속하게 되면 얘기를 나누자는 답장은 와 있었다.

    소울넷 포인트를 확인해보니 어느새 2000p를 가볍게 넘어갔다. 생각해보니 정말 무서운 속도로 쌓이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소울넷 포인트 부자 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소울넷 등급을 빨리 하급으로 올려야 하는데……. 하급 영혼체험을 많이 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네.’

    그는 자신의 기억창고로 들어가 공개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모조리 모자이크와 음소거 처리를 하고 오늘까지의 기억을 타이로스, 라펠, 탄탈라스, 세이지, 울프리나, 옥사나 6명에게만 일단 개방했다.

    자신에게 소울넷 포인트를 선물한 6명을 골드 멤버로 생각하고 우선적으로 영혼체험을 이어가도록 한 것이다.

    물론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도움을 줄 울프리나와 옥사나는 그중에서도 플래티넘 멤버로 생각해서 골드 멤버들과 또 다른 차별과 혜택을 줄 생각이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은 모두 울프리나와 옥사나가 앞으로 자신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오늘은 어떤 영혼체험을 하지?’

    소울은 영혼체험 인터페이스의 검색창에 어떤 검색어를 넣을까 고민하다가 돌연 테이머(조련사)란 단어가 생각났다.

    ‘테이머의 인생을 한번 체험해볼까?’

    그는 즉시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를 검색어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관련된 자들의 리스트가 주르륵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테이머가 꽤 많았다.

    그는 리스트를 찬찬히 살펴보다 데카론 행성의 테이머인 ‘맘보’를 선택했다.

    맘보는 최하급 테이머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비스트 서머너 마스터까지 올라간 입지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일단 맘보의 전반적인 인생을 훑어보려는 생각에 상점에서 1p를 주고 최하급 영혼체험을 구매했다.

    테이머라는 전혀 새로운 직업을 가진 맘보의 삶을 경험해본다는 생각에 소울은 기대와 흥분을 가지고 영혼체험을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이 컸다.

    물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다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울이 실망한 것은 맘보가 한심하거나 그의 인생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소울이 실망한 이유는 맘보의 인생이 너무나도 지루했기 때문이다.

    테이머인 아버지로 인해 자연스럽게 테이머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맘보는 어릴 적부터 매일, 한결같이 동물들을 보살피는 일을 반복했다.

    거의 무한반복으로 느껴질 만큼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레벨을 올리고 능력을 올린 그는 결국 비스트 서머너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끝내 비스트 서머너 마스터가 됐다.

    이 모든 과정이 너무나 무난하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좋게 보면 무난한 인생이고, 나쁘게 말하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맘보의 인생을 통해서도 소울은 한 가지 귀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바로 맘보의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애정을 가지고 돌봐준 동물들은 누구도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명을 바쳐 그에게 충성을 다했다.

    그의 이런 마음은 나중에 비스트 서머너가 되고 또 비스트 서머너 마스터가 되고 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최하급 테이머인 그가 무려 비스트 서머너 마스터의 자리에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선천적으로 비스트 서머너 마스터의 자질이 대단해서가 아니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동물을 사랑하고, 가족같이 대하며 정성을 쏟아 부은 결과였다.

    그가 테이밍 한 동물이나 소환수는 다른 테이머가 테이밍 한 것들보다 무척 성장이 빨랐다. 그로 인해 성장한 동물과 소환수로부터 테이머의 능력을 더욱 크게 증폭시킬 수 있는 힘을 되돌려 받을 수가 있었다.

    이런 사이클이 몇 번이고 반복되자 나중에는 도저히 다른 테이머들이 그를 따라 잡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선순환의 구조가 만들어졌다.

    맘보는 뛰어난 테이머이자 비스트 서머너 마스터로써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았다.

    최하급 영혼체험을 통해 맘보의 인생을 살펴보고 나자 역시 딱 소울넷 포인트 1p의 값어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에게 미친 영향은 절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 영향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제 나도 명색이 E급 소환계 능력자인데 언제까지 까망이의 존재를 비밀로 숨겨야하지? 그리고 굳이 까망이의 존재를 드러내야만 하나? 차라리 이번 기회에 나도 소환수를 새로 하나 소환해서 공식적으로 소환수를 가지고 있는 소환사가 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까망이를 드러내지 않고도 얼마든지 소환계 특이 능력자 행세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소환수를 소환해내는 것이다.

    ‘기왕 소환할 거라면 F급 소환수보다 E급 소환수가 좋겠지? 소망이가 소환마법진이 새겨진 은판을 만들어 보내면 E급 소환수 하나를 소환해보기로 하자.’

    그는 그렇게 다짐을 하고 소울넷 접속을 해제했다.

    시야가 까맣게 변하며 그의 정신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 * * * *

    남자와 여자는 사랑의 행위를 나눈다.

    그런데 종종 여자를 음식에 비유하기도 한다.

    특히 사랑을 나누고 나서는 ‘먹었다’는 식으로 남자들은 표현한다.

    여자들은 그런 표현을 저속하다고 싫어하지만 남자들, 특히 친구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하게 쓰이는 것 같다.

    하지만 과연 그 표현이 맞는 표현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생물학적인 관점을 봤을 때 ‘먹혔다’가 오히려 더 정답에 가깝기 때문이다.

    ‘먹었다’는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고 ‘먹혔다’는 생물학적 관심에서 나온 말이다.

    뭐 그게 아니라고 굳이 우기겠다면 딱히 반박할 말이 없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왜?

    그것은 남녀사이의 사랑의 행위가 먹고 먹히고의 문제가 아니라 만족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맛있다.’

    차라리 남자나 여자나 이 표현을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글은 ‘아’ 다르고 ‘어’가 다르다.

    한바탕 뜨거운 사랑의 행위가 끝나고 나서 상대방에게서 이런 말이 나온다면 아마 절로 미소가 나고 큰 만족감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정윤이는 확실히 맛있었다.

    얼굴, 몸매, 촉감, 속궁합, 침대매너, 정신적인 교류 등 모든 면에서 소울은 그녀와의 뜨거운 시간이 좋았다.

    그것은 정윤이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지칠 줄 모르는 정력과 훌륭한 침대매너 그리고 아껴주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섬세한 터치는 정윤이에게 후회란 놈을 모르게 만들어 버렸다.

    “맛있었어!”

    “나도…….”

    잠에서 깨어난 그들은 가볍게 포옹을 했다.

    물컹!

    부드럽고 따뜻한 여체와 탄력 있는 가슴의 느낌은 언제나 남자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는 고향이 된다.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소울은 그녀의 두 가슴 사이 골짜기에 얼굴을 묻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흐읍!”

    “아이 간지러워! 소울씨, 뭐하는 거예요?”

    “자기 냄새 맡고 있잖아.”

    정윤이는 그에게 벗어나기 위해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진짜 간지러워서 저렇게 앙탈을 하는 것일까?

    그건 알 수 없다.

    바닷가에서 ‘나 잡아봐라’ 하고 여자가 도망가면 더럽게 안 잡히는 것처럼 아마 그런 짓이 하고 싶은 맥락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물론 진실은 오직 두 사람만이 알겠지…….

    청춘남녀는 힘이 좋다. 회복도 빠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뜨겁다.

    소울은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는 정윤이의 손을 잡고 욕실로 들어갔다.

    살짝 싫다고 앙탈을 부렸지만 결국 같이 샤워를 했다. 또한, 양치질도 같이 했다.

    몸의 물기를 서로 닦아주고 나서 침대로 돌아오자 두 사람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또 한 번 뜨겁게 서로의 몸을 불태웠다.

    밤새 그렇게 서로의 몸을 탐닉했는데도 모자랐던 것일까?

    뜨거운 춘풍이 지나가자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다시 한 번 꼭 끌어안았다.

    “맛있었어.”

    “후후후, 나도……. 자긴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아.”

    역시 표현이 맛깔스러웠다. 배가 고픈 건가?

    두 사람은 언제부턴가 서로 말을 편하게 놓고 있었다.

    하루 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처럼 이렇게 홀딱 벗고 사랑을 나누자 자연스럽게 서로가 편해진 모양이다.

    뭐 이런 것이 불타는 침대의 위대함이 아니겠는가?

    인간은 옷을 입은 만큼 가면을 쓴다고 한다. 그렇다면 옷을 벗는 만큼 솔직해진단 말인가? 그럼 솔직한 대화를 하려면 우리 인간들은 모두 옷을 벗고 목욕탕에서 말을 해야 한다. 철학은 이래서 어렵고 피곤하다. 깊이가 없으면 그냥 말의 유희로 느껴질 뿐이다.

    “오늘 뭐해?”

    소울은 정윤이의 질문에 하던 생각을 중단해야했다.

    “바쁘게 돌아다녀야 할 것 같아. 좀 들릴 곳도 있고, 만날 사람도 있고…….”

    그녀의 질문에 굳이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자세하게 말할 수 없었다.

    전원주택 계약하러 간다는 소리를 하기도 좀 뭐했고, 저녁에 몸짱 간호사 고하라 만나서 같이 밥 먹는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니 적당히 얼버무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윤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그녀가 원한 정답은 강남 세븐 병원으로 다시 출근하기 전까지, 매일 만나자는 것이었다.

    조금 자존심이 상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안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정윤이는 용기를 내서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시 물어봤다.

    “그럼 내일은?”

    그제야 소울은 그녀가 뭘 원하는 지 알아챘다. 하지만 내일 저녁은 날씬이 간호사 채희라와 만나서 저녁 먹기로 했다는 말을 역시 할 수 없었다.

    “내일까지는 좀 바쁘고, 모레 저녁에는 괜찮을 것 같아.”

    “아! 그래?”

    정윤이는 살짝 삐졌다. 모레 종일도 아니고 저녁이라니…….

    그녀는 소울이 자신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소울은 이런 정윤이의 마음을 조금은 눈치 챘는지 가만히 그녀의 몸을 안아주고는 매끄러운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일 오후까지는 이미 선약이 잡혀 있어서 어쩔 수 없어. 만약 내가 이럴 줄 알았었더라면 아마 모든 시간을 윤이를 위해 비워 놓았을 거야.”

    “누가 자기에게 뭐라고 그랬어?”

    “그냥 내 마음이 그렇다고…….”

    소울은 그녀의 목소리의 톤이 조금 내려간 것을 보고는 벌써 마음이 풀렸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그리고는 그녀의 귀에 바람을 살살 넣으면서 속삭였다.

    “모레 저녁은 내가 근사하게 쏠게. 예쁘게 하고 나와!”

    “응, 알았어.”

    정윤이의 얼굴이 미소와 함께 화사하게 피어났다.

    소울은 그녀의 이 미소가 좋았다.

    그동안 여자들로 인해 받은 상처가 한 방에 다 치유되는 것만 같았다.

    신사동 사거리의 맛집에서 아침으로 설렁탕을 한 그릇씩 비운 그들은 내일 모레 저녁에 만나기로 하고 각자 택시를 탔다.

    “어서 오세요!”

    “세곡동 은곡마을로 가주세요.”

    “네.”

    약간 늦은 아침이라서 그런지 차는 전혀 막히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덕분에 은곡마을에 있는 만수 부동산까지 가는데 택시비를 좀 줄일 수 있었다.

    택시가 도착하자 마음씨 좋게 생긴 50대 아저씨가 밖으로 나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울이 택시비를 계산하고 내리자 그가 다가섰다.

    “아침에 오신다고 전화주신 손님이시죠?”

    “네, 접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만수 부동산의 사장 장만수입니다.”

    “네, 이소울입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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