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127화 (127/492)
  • 00127  제 32 장 - 내가 제일 잘 나가!  =========================================================================

    털썩!

    당연히 마주보고 앉을 거라는 예상을 깨고 정윤이는 소울의 옆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았다.

    그 모습이 마치 이제 내 옆에서 어디로도 도망 못 간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듯 했다.

    “소울 씨, 우리 술 마셔요.”

    “술이요?”

    “네.”

    “뭐 그러죠.”

    여자가 술을 마시고 싶다는데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조선시대에나 가능한 일이다. 아마 이런 일이 다른 테이블에서 벌어졌다면 늑대 같은 남자들이 얼씨구나 하며 춤을 췄을 것이다.

    하지만 소울은 은근히 정윤이가 걱정됐다. 다행히 주문을 하는 것을 보니 위스키나 보드카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맥주에 나초와 버팔로윙 이라서 그나마 안심이 됐다.

    테이블에 커다란 생맥주 피처가 도착하자 정윤이는 두 손으로 피처를 들어 손수 그의 잔에 가득 따라주었다. 살짝 서리가 낀 맥주잔에 차가운 생맥주가 채워지자 그 보기만 해도 절로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정윤이는 자신의 잔에도 스스로 생맹주를 채우더니 미소를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소울 씨, 우리 건배해요.”

    “좋아요. 무엇을 위한 건배할까요?”

    “죽음에서 살아난 사나이를 위하여!”

    “네?”

    “어서 빨리 좀 해봐요.”

    “그건 아닌 것 같네요. 차라리 행복을 위하여! 가 좋겠어요.”

    “그럼, 우리의 사랑을 위하여!”

    “에?”

    정윤이는 소울의 대답도 듣지 않고 혼자 잔을 들어 벌컥벌컥 마셔댔다. 소울도 그녀의 터프한 모습에 할 수 없이 잔을 들어 입에 가져갔다.

    하지만 막상 차가운 맥주가 입에 들어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 식도를 따라 내려가자 더 이상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만큼 속이 시원했던 것이다.

    “카아! 시원하다.”

    “아하, 정말 시원하네요.”

    누가 그랬다. 국산 생맥주는 맛보다는 그냥 차가운 맛으로 먹는 거라고…….

    100% 동의는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반박할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사람들이 왜 국산 맥주나 국산 자동차를 욕하는 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마치 생맥주가 따듯해지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또다시 두 번째 잔을 생맥주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차가운 잔을 허공으로 높이 치켜들었다.

    “위하여!”

    “위하여!”

    이번에는 좀 무난한 건배를 할 수 있었다.

    나초가 나오고 버팔로윙이 나왔다. 생맥주 맛에 비하면 탁월한 맛을 지닌 안주는 왜 그녀가 여기로 오자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정윤이는 마치 소울의 여자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한시도 그의 옆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손을 대신해 나초와 버팔로윙을 열심히 먹여줬다.

    나초에 치즈를 잔뜩 묻혀 자신이 한입 물고 그대로 가져와 반대쪽을 소울에게 주는 장난도 서슴지 않았다. 버팔로윙을 한입 베어 먹고 소울에게 반대쪽을 베어 먹게 하거나 그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냅킨으로 닦아주고 그의 한쪽 손을 자신의 가슴 위에 올리게 하는 일도 거침없었다.

    ‘뭐지? 이거 뭔가 아주 작정을 단단히 하고 온 것 같잖아? 아니 오늘 아예 사고를 치기로 결심이라도 했나?’

    소울도 그녀가 여러 번에 걸쳐서 보내는 이 신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아니 예전에는 이쪽 방면으로 좀 둔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동안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제법 깊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재즈 음악이 흐르고,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카페의 분위기 위에 간접조명이 비추자 그들이 앉아 있는 장소가 별세계처럼 느껴졌다.

    맛있는 나초와 버팔로윙으로 배를 살짝 채우고, 시원한 생맥주로 입가심을 하며 보고 싶었던 사람의 품에 기대어 정겨운 얘기를 나누자 세상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뜨거운 피를 가지고 있는 젊은 청춘남녀가 서로의 몸을 바짝 붙이고 앉아 스킨십을 하는데 불이 붙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웃고 속삭이던 소울과 정윤이는 언제부터인가 서로를 뜨거운 열망이 가득한 눈으로 마주보고 있었다.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눈 맞춤이 더 의미가 있는 법이다.

    때로는 천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키스가 절실한 법이다.

    때로는 만 마디 말보다 한 번의 뜨거운 사랑이 서로에게 더 크고 무겁게 작용하는 법이다.

    둘은 누가 뭐라고 할 사이도 없이 서로의 입술을 찾아 입맞춤을 나눴다.

    부드러운 입술이 서로의 것에 의해 짓눌리어 가고 단단한 하얀 성이 서로를 향해 거침없이 문을 열렸다.

    진한 열정의 타액이 섞인 설육이 서로를 영사(靈蛇)처럼 감싸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손 하나가 그녀의 박스 티 아래가 마치 제집인양 기어들어가 그녀의 탐스러운 수밀도를 일그러뜨렸고, 다른 손 하나는 잘 익은 사과 같은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두 손도 이에 질세라 그의 티셔츠 아래로 들어가 탄탄한 가슴근육과 등근육을 매만졌다.

    거침없는 서로의 행동으로 인해 순식간에 불이 활활 타오른 그들은 한참동안 서로를 탐닉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아무리 키스를 하고 서로의 몸을 만져 봐도 한번 불이 뜨겁게 붙어 버린 몸은 식을 줄 몰랐다. 결국 두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할 필요도 없이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윤이는 자신의 카드를 꺼내 빠르게 계산을 하더니 그의 손을 잡고 카페 밖으로 걸어 나갔다.

    골목을 두 개 지나가자 대로에 커다란 건물이 하나 나타났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한번 마주친 후,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는 당당하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커다란 건물의 정문 위에는 금빛 찬란하게 빛나는 서체로 강남호텔이라고 쓰여 있었다.

    * * * * *

    신사동에 위치한 능력자협회 서울지부 건물의 지하 깊은 곳에는 서울지부의 직원들도 잘 모르는 비밀스런 연구시설이 존재한다.

    대한민국 능력자협회 회장과 고위 간부 몇 명, 그리고 해당 연구진들만이 알고 있는 이곳 연구시설의 보안은 그 어떤 국가의 중요 연구시설보다 철저했다.

    지하실의 통제구역에서 철저한 보안검색을 거친 후, 특수한 승강기를 타고 직선으로 수십 미터 아래로 내려온 유정아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아련하게 느껴지는 강한 수컷의 냄새에 절로 심장이 떨려왔다. 자신의 마음을 설레게 한 주인공을 생각하자 그녀는 괜히 두 다리가 살짝 꼬여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유정아는 살짝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 버렸다.

    전투슈트를 입고 각종 무기로 중무장한 경비병들 사이를 걸어 안으로 들어가자 보기만 해도 단단하게 느껴지는 두꺼운 특수합금으로 만들어진 연구동이 보였다.

    그녀는 한쪽 벽으로 다가가 보안감지기에 자신의 눈을 대고 말을 했다. 그리고 동그랗게 뚫려있는 구멍에 손을 집어넣고는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유정아 박사에요. 문을 열어주세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육중한 특수합금의 문이 좌우로 스르르 밀려났다.

    수백 번도 더 온 곳이라 그녀에게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무척 익숙했다.

    보안감지기는 홍채, 지문, 목소리, 비밀번호 이 4가지가 동시에 맞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다. 또한 안에서 경비병이 직접 출입이 가능한 연구원인지 확인까지 한다.

    보안검색만 따지면 가히 철옹성을 방불케 했다.

    연구동은 그녀가 알기로 10개가 넘었다. 하지만 유정아가 책임지고 관리하는 곳은 제 7 연구동 단 한 곳에 불과했다.

    7 연구동 안에는 크게 4개의 연구실로 나눠져 있었는데 유정아는 이번에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한 4번째 연구실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하이, 유 박사님!”

    “어서 오세요.”

    “오셨어요. 박사님?”

    유정아가 4 연구실로 들어가자 안에서 실험을 준비하고 있던 남녀 연구원들이 모두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특이한 것은 연구원들이 하나같이 젊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그들은 유학생활을 오래했는지 다들 말하는데 발음이 살짝 꼬여 있었다.

    짝짝!

    “다들 주목하세요. 지금부터 바로 실험에 들어가겠습니다.”

    “네.”

    유정아가 손뼉을 치며 말하자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던 연구원들의 행동이 방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신속하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은 자신감으로 차 있었고 표정은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유정아는 미국과 유럽의 연구소에서 자신이 직접 스카우트해서 데리고 온 연구원들을 하나씩 바라보며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꼈다.

    다들 사회생활에는 젬병이지만 실력 하나는 최고인 이들이었다.

    진흙 속에 묻혀있는 보석들을 찾아낸 유정아는 7 연구동에서 진행하는 자신의 모든 프로젝트가 성공하여 이들과 함께 화려한 비상을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시작할까요?”

    “응. 바로 시작하자.”

    “네. 실험체를 올리도록 해요.”

    “네, 팀장님.”

    유정아는 자신의 심복 중 하나인 4 연구실 팀장 엘리사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엘리사는 연구원 한명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연구원은 한쪽 벽에 있는 손잡이를 잡아 올렸다.

    위이이이이잉!

    넓고 커다란 연구실 중앙의 바닥이 갈라지며 아래에서 특수합금으로 된 커다랗고 육중한 원형의 벽이 올라왔다.

    원형 벽에는 웨어울프 한 마리가 목과 팔다리에 수갑과 족쇄를 찬 채 몸부림을 쳐대고 있었다.

    머리와 몸체 여기저기를 원형의 벽에 고정시켜 놓은 은빛으로 빛나는 구속구가 천정에서 내려오는 조명으로 인해 반짝이자 묘하게 그녀의 마음을 흥분시켰다.

    “주둥이를 풀어줘!”

    “네.”

    유정아는 명령을 내리면서 웨어울프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잘생긴 남자 연구원 둘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웨어울프의 입을 단단히 조여 놓은 구속구를 풀고는 잽싸게 뒤로 물러났다.

    크와앙!

    웨어울프는 입을 조인 구속구가 풀리자마자 4 연구실이 떠나가도록 커다란 소리를 질러댔다.

    “어머, 정말 건강한 놈을 생포해왔네.”

    “그러네요. 목소리를 들어보니 정말 우리의 실험에 딱 맞는 녀석이네요.”

    비스크는 자신을 묶어 놓은 것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는데 그걸 듣고 오히려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여자를 보자 문뜩 등에서 서늘한 기운이 흘러갔다.

    “너희들은 뭐냐? 이곳은 어디냐? 나를 왜 이곳에 데리고 왔어? 날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우리말도 아주 잘 하네요. 대박!”

    엘리사가 그의 말에 기쁘다는 듯 엄지를 치켜들자 비스크는 이곳에 있는 인간들이 뭔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인간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주인님에게 데려다 줘! 할 말이 있다.”

    “주인님, 누구? 너를 데리고 온 사람?”

    “그렇다.”

    유정아는 비스크가 말하고 있는 주인이 소울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하지만 유정아는 비스크의 말에 속지 않았다. 이미 비스크의 성향과 그동안 이 웨어울프에게 어떤 일을 당했는지 소울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웨어울프는 피의 맹세를 해야만 주인을 섬길 수 있다고 하던데, 너 네 주인이란 사람한테 피의 맹세 했어?”

    “으음.”

    비스크는 정곡을 찔리자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이내 빠르게 잔머리를 굴렸다.

    “그동안 바빠서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피의 맹세를 할 것이다.”

    “그래? 알았어. 그럼 빠르게 실험을 끝내고 너를 네 주인 될 사람에게 데리고 갈게. 그때 가서 피의 맹세 많이 해라.”

    “실험은 무슨 실험? 당장 나를 데리고 가라.”

    “그건 안 돼. 그리고 너 그렇게 막 억지를 부리면 너만 힘들어져. 네가 실험에 협조를 잘해야 너를 네 주인에게 데리고 가는 시간이 단축되는 거야.”

    “정말이냐?”

    “정말이야. 내가 너한테 왜 거짓말을 하겠어.”

    유정아의 말에 비스크는 불안한 예감을 지우지 못하면서도 희망의 작은 불씨를 놓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희망을 붙잡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런데 여긴 어디지?”

    “그건 알려줄 수 없어.”

    “날 어떻게 하려는 거지?”

    “몇 가지 실험을 할 거야. 그리고 네 몸의 일부 조직도 시료로 제공받아야 돼.”

    “그게 무슨 말이지?”

    유정아는 비스크에게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바짝 다가갔다. 그리고는 비스크의 사타구니를 살짝 쓰다듬었다.

    묘한 느낌에 비스크는 갑자기 신체의 일부분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비스크는 자신이 웨어울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직립보행을 하는 웨어울프지만 가끔은 인간의 몸으로 변해서 여자들과 잠자리를 즐기기도 했다.

    그래서 인간의 미적인 기준도 잘 알았다.

    비스크가 보기에 자신에게 말을 거는, 아니 지금 자신의 사타구니 사이를 자꾸 쓰다듬는 이 여자는 인간의 미적기준으로 봤을 때 최상위의 미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묘한 눈빛으로 자신에게 달착지근한 향기를 풍겨대며 자극을 하자 비스크는 주체하지 못할 만큼 큰 욕망을 느꼈다.

    하지만 이 여자는 단순한 미녀가 아니다. 이곳의 책임자가 분명했다.

    탈출을 하려면 어떻게 하던지 그녀에게 잘 보여서 방심을 유도해야 했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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