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5 제 32 장 - 내가 제일 잘 나가! =========================================================================
그는 처음 본 전화번호를 보고 받을까말까 생각하다가 그냥 받기로 하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소울 씨 핸드폰 맞나요?
“네, 맞는데요.”
-안녕하세요? 저 고하라에요.
“네?”
-저 강남 세븐 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고하라라고요. 기억하시겠어요?
“아! 몸짱 간호사!”
-네? 뭐라고요?
소울은 순간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얼른 사과부터 했다.
“아이고, 이거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실수를 했네요.”
-호호호, 그 말이 사실이었군요. 환자들이 저를 보고 몸짱 간호사라고 한다는 말이 있다고들 하던데…….
“워낙 몸매가 예쁘셔서 다들 그렇게 부르더라고요. 미안해요.”
-미안할 것 까지는 없어요. 그런데 몸짱 간호사라는 말은 결국 제 몸매만 예쁘다는 말 아니에요?
“네? 아, 아닙니다. 얼굴도 아주 예쁘십니다.”
-호호호, 이거 엎드려 절 받기네요.
여자들의 미에 대한 집착은 남자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것은 예쁘면 예쁠수록 더 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다.
얘기가 묘하게 돌아가려고 하자 소울은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 됐다. 그래서 얼른 화제를 바꿨다.
“참, 그런데 어쩐 일로 전화하셨어요?”
-궁금해서 전화했어요. 사실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저 굉장히 많이 울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한성신문 나수연 기자님께서 소울 씨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아, 그러셨구나.”
-전화해달라고 박은영 간호사에게 신신당부를 했었는데 왜 제게 전화 안 해주셨어요?
“제가 그때 좀 급한 일들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그랬군요. 전 또 저를 만나기 싫어하시는 줄 알고…….
“제가요? 제가 왜 고하라 씨를 만나길 싫어하겠어요? 그건 절대 아닙니다.”
소울은 그녀의 말에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자 고하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시 말을 시작했다.
-병원에서 소울 씨한테 참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제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진데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대접해드리지 못했던 게 그동안 많이 후회가 됐어요.
“생명의 은인이라니요?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저도 그냥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친 거예요. 누가 누구를 구해주고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그건 아니죠. 저만 옆에서 지켜본 것도 아니고, 모든 간호사와 환자들이 다 아는 사실인데요?
“하하하, 이거 참 쑥스럽네요.”
-저……. 괜찮으시면 제게 시간 좀 내주세요. 제가 식사 대접을 해드리고 싶어요. 꼭 부탁드립니다.
“아이유, 이것 참 곤란하네요.”
-혹시 제가 너무 부담스럽게 해드렸나요? 그렇다면 정말 죄송해요.
“아, 아닙니다. 그런 거 아니에요.”
-휴, 그럼 다행이에요. 전 괜히 소울 씨를 불편하게 해드린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했네요.
잠시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됐다.
몸짱 간호사 고하라는 강남 세븐 병원에 있을 때부터 자신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여자다. 이런 미녀가 자신과 만나고 싶다고 저렇게 부탁을 하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민세경, 유정아, 정윤이의 얼굴이 그의 뇌리를 차례로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아직 자신에게 여자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밥 한 끼 사주겠다는데 굳이 거절하는 것도 모양 빠지는 일이라 결국 그녀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정말요?
“네, 그럼 내일 저녁에 뵙는 것은 어떨까요?”
-전 좋아요.
“그럼 내일 보도록 해요.”
-예, 그런데 만날 장소를 제가 정해면 안 될까요?
“뭐 원하시면 그렇게 하세요.”
-감사합니다. 제가 근사한 곳 알아보고 문자 드릴게요. 소울 씨! 무사히 돌아오셔서 정말 고마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네, 고하라 씨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전화를 끊고 나자 그는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E급 능력자가 되어 기분 좋은 날, 날개를 달아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의 기분에 날개를 달아주려고 하는 사람은 고하라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엔 또 누구지?”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시 처음 보는 전화번호였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이소울 씨 맞죠?
“네, 맞는데요?”
-어머, 어떻게 해. 오빠! 살아계셨군요?
“저 누구세요?”
-에고, 내 정신 좀 봐! 저 희라에요. 채희라!
소울은 순간 ‘날씬이 간호사 채희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다시 삼켰다. 실수는 한번으로 족했다. 또다시 아까와 같은 실수는 사양이었다.
그는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강남 세븐 병원의 채희라 간호사님이세요?”
-어머나, 제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군요? 이거 감동이에요.
채희라는 소울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주자 크게 흥분했다.
그녀의 반응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오늘 이거 무슨 계 타는 날인가? 아니면 혹시 모두 짜고 함께 장난 전화라도 하는 건가?’
소울은 고하라에 이어 채희라까지 전화가 오자 왠지 가슴이 뿌듯해졌다. 자신감이 절로 200%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제게 전화를 다 주시고?”
-어쩐 일이라니요? 우리가 뭐 전화도 못하는 그런 사이인가요? 안 그래요?
“그, 그렇죠.”
-사실 오빠한테 진작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본의 아니게 제가 조금 늦었어요. 집에 일이 좀 있었거든요.
“그러셨구나.”
-하지만 이제 모두 잘 해결됐어요. 그래서 오빠 만나서 고맙다는 말도 전하고 제가 맛있는 것도 사드리려고 전화했어요.
채희라는 연신 소울을 오빠라고 부르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병원에서 봤던 이미지와는 달리 채희라는 그에게 무척 귀엽고 붙임성 있게 굴었다.
소울은 절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그녀와의 전화통화를 즐겼다. 한참동안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그녀는 결국 다시 만나자는 얘기로 돌아갔다.
-오빠, 언제 시간 되세요? 제가 무조건 시간 비워놓을게요. 네?
“내일모레 저녁이면 괜찮을 것 같은데……. 어때요?”
-당연히 좋죠. 그런데 왜 자꾸 저에게 존댓말 쓰고 그러세요. 거리감 느껴지게? 제가 오빠라고 불렀으니 당연히 희라야! 하고 부르셔야죠.
“정말 내가 그래도 될까?”
-당연하죠. 오빤데…….
“알았어. 그럼 앞으로는 편하게 이름을 부르도록 할게.”
-네, 계속 그렇게 불러주세요. 앞으로도 쭈욱 이에요!
“하하하!”
소울은 끝내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정말 채희라는 귀엽고 매력 있는 여자였다. 전화로 통화를 하는 게 이 정도인데 만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절로 기대가 생기게 하는 여자이기도 했다.
-내일모레 저녁에 만날 곳은 제가 정하도록 할게요. 괜찮죠?
“응, 괜찮아. 저년 6시 이후면 언제든지 좋아.”
-그럼 6시에 보도록 해요. 만날 장소는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그래. 그렇게 하자.”
-오빠가 살아있으니까 너무 좋다. 내가 모레 아주 맛있는 것 많이 사드릴게요. 그리고 재미있게 해드릴 테니까 기대하세요.
“절로 기대가 된다. 나 기대 많이 하고 나갈 테니까 실망시키지 마!”
-호호호, 너무 즐겁다고 배꼽 빠지실 지도 몰라요.
“하하하!”
소울은 또다시 크게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정말 이렇게 웃어 본 것은 오랜만인 것 같았다.
‘이거 덕분에 선택의 폭이 확 넓어졌는데? 정윤이, 고하라, 채희라! 세상에 내가 강남 세븐 병원의 3대 여신을 놓고 고민을 하게 될 날이 오다니…….’
그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셋 중에 한 명과 잘돼서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보면 소박한 꿈이라고 놀릴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의 심정이 딱 그랬다.
띵!
승강기의 문이 열리자 2층 뷔페식당에서 나는 맛있는 요리 냄새가 그의 코로 밀려들어왔다.
그는 단정한 차림의 뷔페식당 안내 여직원에게 다가가 자신의 이름으로 예약된 특실을 확인했다.
“이소울 능력자의 가족 분들과 손님 두 분은 지금 들국화 룸에 계십니다. 똑바로 걸어가셔서 왼쪽으로 가시면 찾으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빠르게 걸어가서 들국화 룸으로 찾았다. 문을 열자 벌써부터 온갖 요리가 가득 담긴 접시들을 테이블 위에 한아름 가져다 놓고 먹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오빠!”
“형!”
“소울아!”
“소울 씨!”
그를 부르는 호칭은 모두 달랐지만 다들 반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소울은 잠시 그들과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밖으로 나와 접시에 먹고 싶었던 요리들을 가득 담기 시작했다.
두 개의 접시를 가득 채운 그가 들국화 룸으로 들어오자 안은 이미 나수연과 소현이의 독무대가 된 상태였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둘이 교대로 치는 멘트에 다들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나수연의 직장생활과 상사 뒷담화 그리고 소현이의 학교생활과 교수 뒷담화가 묘하게 합쳐지자 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었다.
소울은 어머니 김혜진의 옆에 앉아 열심히 먹으면서 그들의 얘기를 듣고 같이 박수를 치며 웃어댔다.
신이 난 나수연과 소현이는 끝도 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으며 즐거운 식사분위기를 만드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적당히 배부르게 먹고 나자 나수연이 소울에게 눈짓을 했다. 소울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옆자리로 이동해 앉았다.
“소울 씨 부모님께서는 식사 끝나고 강원도 집으로 바로 내려가신 다네요.”
“그래요? 그럼 이번에도 헬기로 모셔다 드리는 겁니까?”
“물론이죠. 시작과 끝을 똑같이 잘하는 것이 제 좌우명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 좀 부탁합니다.”
나수연의 말에 소울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부모님을 위해서라면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절을 할 수도 있는 소울이었다.
“감사야 제가 더 감사해야죠. 그리고 앞으로 유명인사가 되실 테니 저도 잘 좀 부탁합니다.”
나수연은 손사래를 치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일순 정색을 하곤 얼굴을 그에게 들이밀었다.
“유튜비에 동영상 올린다면서요? 어떤 걸 올릴 거예요?”
“지금 보여드려요?”
“네.”
“노트북 있으면 좀 꺼내 보세요.”
“네.”
소울은 나수연의 노트북에 메모리칩을 꺼내 끼우더니 대 몬스터 장벽에서 오크군단과 싸우는 모습에서부터 하피에게 납치되었다가 떨어져 오크 백인대와 싸우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이거 혹시 능력자 전용으로 나오는 전투헬멧을 통해 녹화된 것 아니에요?”
“맞습니다.”
“화질이 장난 아니네요. 생각보다 전투헬멧에 들어간 기술이 더 대단했군요. 좋은 정보를 얻었네요.”
“지금 그 얘기 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아! 죄송합니다.”
나수연은 소울의 말에 즉시 사과를 하고 전문가의 시점에서 말했다.
“이거 둘로 쪼개서 편집해요.”
“네?”
“오크군단과 싸우는 장면과 하피에게 납치된 이후의 장면을 편집해서 둘로 만들어 올리자고요.”
“그게 좋을 것 같아요?”
“물론이죠. 이건 실제 사건이잖아요. 흥행성이 높아요. 적당히 편집하면 보는 사람은 아마 영화처럼 빠져들 거예요. 그렇다고 너무 심하게 편집을 안 되고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리는 수준에서 하고 몇 군데에 배경음악을 집어넣으면 좋을 것 같아요.”
“한번 생각해볼게요.”
“뭘 생각해봐요?”
“제가 편집할 능력이 안 되니까 편집할 사람을 알아보겠다고요.”
“아이 참, 이거 왜 이래요? 우리 사이에……. 제가 책임지고 멋지게 편집해드릴게요. 대신 편집했다는 사실은 맨 뒤에 밝히고 제 이름도 넣을게요.”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호호호, 그거면 됐어요. 그리고 참 이 영상의 일부는 저희 한성신문에서 좀 쓸게요. 물론 저희 한성케이블TV에서도 써야 해요.”
“설마 그냥 가져다 쓰시려는 생각은 아니겠죠?”
“당연히 대가는 지불합니다. 요새 주인 허락 없이 함부로 영상 가져다 썼다가는 큰일 나요.”
“대가만 확실히 지불하신다면야 저야 마다할 이유가 없죠.”
“감사합니다. 제가 편집부에서 최대한 뜯어내 볼게요.”
“부탁합니다.”
소울과 나수연은 의외로 상성이 좋았다. 화장기 하나 없는 나수연은 굉장히 지적으로 생긴 미녀였다. 하지만 워낙 눈빛이 날카로워서 어지간한 남자는 주눅이 들어 들이대지 못했다.
그러나 소울과 나수연은 그런 사이가 아닌지라 그녀는 무척이나 편안한 얼굴로 그를 대했다. 덕분에 소울은 그녀의 깨끗한 마스크를 보면서 지루한 인터뷰를 잘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지금 대전으로 내려갈 거야.”
“이 저녁에?”
“응, 내일 아침에 수업 있어.”
“나도.”
“그래 알았다. KTX 타고 갈거니?”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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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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