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4 제 31 장 - 쥐구멍에도 볕 뜰 날이 있다. =========================================================================
스위트룸을 나서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능력자협회 서울지부 직원들이 그들에게 게스트 출입증을 하나씩 나눠주고 안내를 자청했다. 물론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감시를 하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가족들이 모두 새로 살 집을 구경하러 밖으로 나가자 소울은 안방으로 음료수를 준비해서 가지고 들어갔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니에요. 덕분에 간만에 편하게 잘 쉬었어요.”
“이거 좀 드세요.”
“고맙습니다.”
음료수를 건네자 나수연과 명장민은 사양하지 않고 바로 따서는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음료수를 원 샷하고 난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준비했다.
일단 인터뷰가 시작되자 소울은 전적으로 수동적으로 움직여야했다.
이미 나수연이 소울에 관해 미리 조사를 했기 때문에 그녀가 만든 각본에 따라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일단 이것 좀 확인해주세요.”
나수연은 가방에서 아주 얇은 최신형 노트북을 꺼내더니 그에게 동영상을 보여줬다.
“이건 뭐죠?”
“강남 세븐 병원 CCTV에 찍힌 장면이에요.”
“어? 그럼 저게 나란 말입니까?”
“네, 맞아요.”
소울은 조금 놀랐다. 기자라고 하더니 확실히 재주는 있는 모양이었다. 언제 저런 것을 다 확보했는지 신기하기도 했다.
“이거 본인 맞죠?”
“네. 맞네요.”
“대단한 활약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네?”
소울이 그녀를 쳐다보자 나수연은 묘한 표정으로 그를 직시했다.
“제가 여기 오기 전에 강남 세븐 병원에서 근무했던 간호사 몇 분과 통화를 했거든요.”
“간호사요?”
“네, 정혜자, 고하라, 채희라, 박은영 혹시 이 이름들 모르세요?”
“아니요. 잘 알아요. 다 아는 분들이네요.”
“그분들이 말해줬어요. 그 당시는 능력자도 아닌데 솔선수범해서 사람들을 구했다고요?”
“아, 아니 뭐 그렇게 까지 한 것은…….”
순간 나수연이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제지했다.
“그렇게 겸손 떨 필요 없어요. 어차피 방송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이에요.”
“네?”
“이소울 능력자께서는 그냥 제가 하라는 데로만 하시면 절대 손해 볼 일 없을 거예요. 제가 아니라 다른 기자를 만났다면 결코 일이 원하시는 데로만 흘러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전 달라요. 일단 전 이소울 능력자 편이에요.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말이에요.”
소울은 나수연의 말에 대충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지도 짐작이 갔다.
“유 박사님 때문인가요?”
“물론 그것도 있어요. 하지만 전 굳이 이소울 능력자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진 않아요. 진실만을 말해도 모두 놀라자빠질 일들을 하셨으니 까요.”
“제가 뭘 했다고 그러십니까?”
“호호호, 아직 이소울 능력자는 자신의 손에 가지고 있는 게 뭔지 잘 모르는 것 같군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이요?”
나수연은 소울의 말에 알면서 그러는지 진짜 몰라서 그러는지 살짝 헷갈렸다. 그래서 다른 동영상을 하나 틀었다. 이번에도 CCTV에 찍힌 장면이었다.
“좋아요. 그럼 이걸 한 번 보시죠?”
“어? 이건…….”
소울은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화면에는 제1 공격대로 들어가기 위해 접수대에서 자신이 한 말이 그대로 담겨 나오고 있었다. 듣기만 해도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지원했다는 연설 같은 말이었다.
“이제 제 말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강남 세븐 병원에서 한 일과 접수대에서 한 말, 그리고 오크군단 웨이브 때 제1 공격대와 같이 싸우면서 세운 전공들……. 마지막으로 몬스터인 하피에게 끌려갔다가 천신만고 끝에 집으로 살아 돌아온 일들이 합쳐지면 무슨 그림이 나올 것 같아요.”
“영웅 탄생인가요?”
“맞아요. 지금 이 시대가 아주 목말라하는 영웅, 영어로는 히어로의 탄생이죠. 우리도 이제 미국처럼 전 국민이 열광하는 영웅 한 명쯤은 있어야 하는 시점이니까요.”
“흐음.”
소울은 그제야 나수연이 엄청난 야망을 가지고 있는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만약 유정아가 개입되지 않았다면 아마 이런 일은 능력자협회나 능력개발청이 나서서 주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운 좋게도 나수연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그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철저하게 하나의 멋진 시나리오를 써서 드라마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녀의 목적이 무엇이던 간에 소울은 그녀가 만든 시나리오대로 가기만 하면 무조건 영웅이 될 상황이었다.
“이미 이소울 능력자의 진심은 저 스스로 확인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도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순진하게 굴어선 안 돼요. 만약 계속 그렇게 어리바리하게 구신다면 결국 매스컴에 실컷 이용만 당하다가 버림받게 될 거예요.”
“흐음.”
소울은 일단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한 때의 이슈로 영웅이 됐다가 사람들의 기억에 쓸쓸히 잊히느냐? 아니면 F급 소환계 능력자에게 불과한 사람이 E급, D급 능력자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며 나라와 민족의 진정한 영웅으로 존경받느냐는 지금 이 순간 이소울 능력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어요.”
“난 아시다시피 그런 영웅은 아닙니다만…….”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 눈에는 이미 영웅이에요. 그 누구도 이소울 능력자 같은 일을 하기는 쉽지 않죠. 또한, 이 시대의 영웅은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영웅이 되면 이소울 능력자가 원하는 만큼의 큰돈을 벌 수 있어요. 그것도 사람들의 존경과 함께 말이죠.”
소울은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도 그렇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그는 조용히 살고 싶어 하는 성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수연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하자 그 말에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큰돈이요?”
“네, 그것도 아주 큰돈을 벌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음, 예를 들면 이소울 능력자가 유튜비에 올린 동영상으로 3억을 벌었다고 했죠?”
“네.”
소울은 유정아가 나수연에게 벌써 입을 놀렸다는 것을 알고 속으로 살짝 짜증이 났다. 하지만 나수연의 뒷말을 듣고는 그런 생각이 싹없어졌다.
“아마 제가 준비한 방송이 나가고 나면 지금 올린 동영상의 조회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거예요. 또한 그 영상에 광고를 붙이려고 하는 사람도 줄을 서겠죠. 그것만으로도 몇 억은 쉽게 벌수 있어요?”
“아!”
이미 유튜비로 3억을 번 소울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자신이 제대로 방송까지 탄다면 충분히 돈을 더 벌수도 있을 것이다.
“연예인들이 어째서 돈을 버는 줄 아세요? 유명하고 인기가 있기 때문이죠. 이소울 능력자는 이번 일로 인해 어지간한 연예인들보다 훨씬 유명해질 수 있어요. 그럼 아마 여러 가지 광고도 찍을 수 있을 거예요. 당장 능력자협회나 능력개발청에서 공익광고를 찍자고 할 거예요. 물론 정부도 마찬가지고요.”
“광고?”
소울도 연예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광고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찍기만 하면 억대의 돈을 벌어대니 정말 며칠 고생하고 꿀을 빠는 것이 광고라는 놈이었다.
“물론 기업에서도 거액을 주고 광고를 찍자고 할 거예요. 그것뿐일까요? 아메리카 TV 같은데서 차원의 균열에 들어간 경험담을 얘기하는 1인 방송을 해도 엄청나게 돈을 벌 수 있을 겁니다. 별풍선이야 주는 사람 마음이겠지만 배경화면에 광고를 넣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그것으로도 꽤 돈을 벌 수 있을 거예요. 요즘은 새로 나온 어플리케이션을 광고하는 배너만 달아도 돈을 꽤 받는다고 하더군요. 그런 것을 공식 홈페이지에 몇 개 달아놓으면 어떻겠어요?”
“정말 그게 가능할까요?”
“충분해요. 이소울 능력자에게는 기본적으로 국민들이 좋아하는 서민층 이미지가 있어요. 사람들은 잘난 사람이 잘난 일을 잘 해내는 것보다 이소울 능력자처럼 자신과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이 멋지게 일을 해치우는 것에 큰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된답니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 메이킹은 모두 저에게 맡겨두세요. 제가 그쪽으로는 좀 전문가거든요.”
“음, 좋습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서 나수연 기자가 얻는 것이 뭡니까?”
“특종, 기자로써의 명예, 언론사 안에서의 영향력, 상류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 승진, 방송사의 인맥 등등 제가 얻는 것은 이루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어요.”
듣고 보니 나수연에게 절대 손해 보는 일이 아니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서로 잘 되자고 하는 일이니 소울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당연히 나수연도 소울이 잘되는 것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좋습니다. 시키는 대로 한번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좋아요. 바로 그 자세에요. 강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을 잊으시면 안돼요.”
“네.”
소울과 나수연 기자는 굳게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그에게 날개를 달아줄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길고 긴 인터뷰가 시작됐다.
* * * * *
“자, 이곳에 두 손을 올려주세요.”
“네.”
그는 검사실 직원의 말대로 수박만한 둥근 수정체 앞으로 가서 두 손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이제 천천히 하나에서 열까지 세어주세요.”
“네, 하나, 둘, 셋, 넷, 다섯……”
이미 한 번 겪었던 일이라 소울에게 능력자 테스트는 전혀 어렵거나 낯설지 않았다.
다만 지난번처럼 자신의 몸을 뭔가 한번 훅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 있었을 뿐이다.
능력자협회 서울지부 능력자 검사실 직원이 열까지 다 세고 난 소울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의자에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
“네.”
확실히 소울이 이미 능력자라서 그런지 검사실 직원들은 무척 친절했다. 그리고 기대했던 만큼 결과는 빠르게 나왔다.
“이소울 능력자의 테스트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요?”
소울은 의자의 등받이에 기댔던 몸을 앞으로 세우면서 검사실 직원을 쳐다봤다.
“축하합니다. 이제 E급 소환계 능력자가 되셨네요.”
“아!”
그의 한 마디에 소울은 세상이 배는 더 밝아 보이는 것만 같았다. 소울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반쪽짜리 능력자라는 꼬리표는 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게 테스트 결과입니다.”
“네.”
검사실 직원은 테스트 결과가 프린트 되어 나온 종이를 그에게 보여주면서 하나씩 설명했다.
“F급 소환계 능력자셨죠?”
“네.”
“여기 보시면 주술력, 소환력, 정령력, 영력 등을 나타내는 스피릿 파워가 전에 비해 큰 수치로 증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통은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증가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이소울 능력자는 좀 예외적인 경우인 것 같습니다.”
“음.”
소울은 그의 말을 듣자 왜 자신의 스피릿 파워가 크게 증가했는지 알 것 같았다.
오크샤먼의 사체에서 획득한 주술환 모환을 먹어서 그런 것 같았다. 물론 까망이가 주술환 자환과 세이지의 아트란의 영단을 먹고 탄탈라스가 보내준 운디네를 흡수한 것도 관련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의 등급이 E급으로 올라갔으니 이제 제대로 된 최하급과 하급 소환수를 소환해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울은 당장 다른 소환수를 소환해낼 생각이 없었다. 아직 까망이의 능력도 다 개발하지 못했는데 다른 소환수를 소환한다는 것은 그리 좋은 생각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까망이의 능력개발이 우선이야. 그 다음 다른 소환수를 소환해도 늦지 않아.’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검사실 직원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아쉽게도 등급이 승급하면서 다른 종류의 능력이 생기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순수하게 훈련을 통해 단련된 것으로 보이는 육체와 E급 소환계 능력 외에는 특이할 만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소환계 능력자가 희소가치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역시 강력한 소환수를 소환해 내는데 성공한 일부 소환계 능력자에 한에서였다.
“능력자 등록증을 주시면 즉시 E급으로 발급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울은 검사실 직원에게 자신의 능력자 등록증을 줬다. 잠시 후, 자신의 손에 E급 능력자 등록증이 들어왔다.
E급 소환계 능력자라고 쓰여 있는 자신의 능력자 등록증을 보는 소울의 마음이 순간 먹먹해졌다. 하지만 창피하게 검사실 직원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수고하세요.”
“네, 안녕히 가세요.”
소울은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고 2층 뷔페식당으로 갔다.
은곡마을에 있는 전원주택을 구경하고 온 가족들이 2층 뷔페식당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때였다. 걸어가고 있는 소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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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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