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123화 (123/492)
  • 00123  제 31 장 - 쥐구멍에도 볕 뜰 날이 있다.  =========================================================================

    그의 생각과 계획을 모두 듣고 나자 제일 먼저 아버지 이대산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뭐냐? 서울 근교에 집을 사자는 말이냐?”

    “네, 맞습니다. 그냥 집이 아니라 전원주택을 사자는 말이에요.”

    “아니 무슨 돈이 있어서? 서울 근교의 전원주택을 사려면 꽤 돈이 많이 들 텐데?”

    “능력자가 된 후, 제가 벌어서 모아놓은 돈이 좀 있습니다. 일단 이걸 보시고 나면 이해가 빠르실 거예요.”

    소울은 미리 프린트 해놓은 자신의 은행계좌 내역을 아버지에게 보여줬다.

    이대산이 소울에게 받은 종이를 읽는 순간 소망이와 소현이는 총알같이 튕겨 일어나 그들의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소울을 쳐다봤다.

    하지만 이대산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고서도 잘 이해가 가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게 뭐냐?”

    “제, 은행계좌에요. 아래쪽에 보시면 잔고가 얼마 있는지 확인하실 수 있어요.”

    “잔고? 7억이라고 쓰여 있는데?”

    “맞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돈이 현재 7억 원입니다.”

    “뭐라고? 그럼 네가 능력자가 되고 나서 이렇게 많은 돈을 벌었단 말이야?”

    “예, 그렇습니다.”

    소울의 자신감 있는 목소리에 이대산은 그만 침을 꿀떡 삼키고 말았다.

    “어머, 여보! 우리 소울이가 그렇게 돈을 많이 벌었어요?”

    “그랬다는군.”

    “이리 줘 봐요. 나 좀 보게.”

    김혜진은 7억이라는 말에 눈에서 불이 번쩍 켜졌다. 그녀는 이대산이 들고 있는 종이를 날쌘 매가 날아가듯 가로챘다.

    “소망아, 잔고가 어디 있냐?”

    “여기에요. 이게 형의 은행계좌의 잔고를 나타내는 거예요.”

    “오오오! 우리 장남이 7억 원 벌었다는 것 맞네?”

    김혜진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하하하, 엄마, 이제 고생 끝, 행복시작이에요.”

    “그래? 호호호, 그냥 이 종이만 봐도 난 벌써 행복하다.”

    “에이, 그건 아니지요. 제 말을 조금만 더 들어보세요.”

    “당연하지. 어서 말해봐! 또 무슨 일로 이 어미를 놀래게 해줄래?”

    김혜진은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소울을 부담스럽게 쳐다봤다. 그런 김혜진의 얼굴을 보는 소울의 얼굴은 마냥 기쁘기만 했다.

    “제가 어제 좀 알아봤는데, 강남구 세곡동 은곡마을에 있는 25억 원짜리 주택이 지금 5억 원에 매물로 나와 있어요.”

    “세곡동이라면 몬스터 웨이브와 오크군단 웨이브 때 큰 피해를 본 지역 아닌가?”

    소망이가 즉시 부연설명을 했다. 소현이가 스마트폰으로 대충 위치가 어딘지 이대산과 김혜진에게 보여주었다. 소울은 계속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맞아. 바로 거기야. 대 몬스터 장벽이 세워지기 전이라서 두 번이나 아주 큰 피해를 입었던 곳이지. 그래서 대지 100평의 2층 주택이 5억 밖에 안하는 거야.”

    “하지만 그곳은 너무 위험한 곳 아니니?”

    김혜진이 날카롭게 물었다. 그러자 소울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위험한 곳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자곡로를 중심으로 대 몬스터 장벽이 2중으로 세워져 있어요. 그게 뚫린다면 서울 어디에도 몬스터에게 안전한 곳은 없다고 봐야 해요.”

    “그래도 난 몬스터들이 가까이 있는 곳은 싫은데…….”

    “오크군단 웨이브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금 주택가격이 바닥을 기고 있는 거예요. 하지만 조만간 안전하다는 것이 알려지면 다시 가격이 급등하게 될 거예요. 그때는 정말 예전의 시세처럼 25억 원이 되어도 살 수 없을지 몰라요.”

    “정말 그럴까?”

    “진짜 마음에 들지 않아 못살겠다는 생각이 드시면 그때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면 돼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6개월 안에 집을 산 것을 잘했다고 말씀하실 거예요.”

    소울은 노트북을 가져와 이대산과 김혜진에게 구매하려고 마음먹은 주택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뒤쪽에는 집이 있었지만 정면과 좌우에는 집이 아직 들어서지 않아 무척이나 넓고 시원해보였다.

    또한 집 자체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깔끔하고 모던한 느낌을 주었다.

    “어때요? 우리가 살기 딱 좋지 않아요. 어차피 소망이와 소현이는 대전에서 학교를 다녀야 하니 일단은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 살면 되요. 알아보니 오늘 당장이라도 계약하면 들어가 살 수 있다고 하더군요.”

    “집이 참 예쁘고 좋구나.”

    이대산을 따라 외진 강원도 산골도 마다하지 않고 살아왔던 김혜진이지만, 소울이 보여주는 주택의 사진을 보자 산간벽지의 삶을 접고 당장이라도 이 집에 들어가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맏아들과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집의 가장은 당연히 아버지이다. 하지만 가정의 중요한 결정의 열쇠는 어머니가 쥐고 있었다. 강원도 산골에서 아무리 땅을 파먹고 살아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지금의 상태에서 이대산은 당연히 아내인 김혜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여기가 마음에 들어?”

    “네, 난 여기서 우리 아들과 꼭 같이 살고 싶네요.”

    “위험하다잖아?”

    “당장 내일 죽더라도 난 아들과 살고 싶어요.”

    여자는 연약하다. 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아들과 살고 싶다는 어머니의 바람은 아버지가 도저히 막지 못하는 그런 성격의 것이었다.

    “에이, 모르겠다. 당신 마음대로 해.”

    “정말요?”

    “그래. 강원도 산골에서 그렇게 땅 파먹고 살게 한 것도 미안한데, 아들과 못살게 했다고 나중에 원망 듣지 않으려면 당신이 원하는 데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어머, 여보! 고마워요.”

    김혜진은 이대산을 덥석 끌어안으며 좋아했다.

    “아, 아니 이 사람이 애들 앞에서 왜 이래?”

    “뭐 어때요? 내 남편 좀 안겠다는데? 얘들도 이제 다 커서 괜찮아요.”

    “어허, 남사스럽게…….”

    이대산은 얼굴을 붉혔지만 그렇다고 아주 싫어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새까맣게 탄 아내의 얼굴과 점점 굳은살이 배겨가는 그녀의 손을 보며 남몰래 한숨을 쉬었던 이대산은, 자식이 돈 벌어서 집을 사겠다는데 그걸 말리거나 방해하고 싶진 않았다.

    비록 아버지로써 자식들에게 풍족하게 베풀지 못해 마음이 조금 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내와 자식들이 좋다면 자신은 어찌되었든 상관없었다. 그래서 웃고 있는 아내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일단은 먼저 이 집을 사고, 나중에 제가 돈을 조금 더 벌면 세곡동 사거리 남동쪽에 있는 이곳 반고개 마을에 땅을 좀 살게요. 거기에다 비닐하우스를 지으면 좋을 것 같아요.”

    “비닐하우스?”

    “네.”

    이대산은 소울이 나름 자신을 위해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아니 고마웠다.

    아들이 사겠다는 집에 들어가면 앞으로 할 일이 없을 것 같아 일용직이라도 나가서 일당을 벌려고 했던 그는 비닐하우스 얘기가 나오자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형, 그런데 비밀하우스 너무 힘들지 않을까? 아버지 연세도 있으신데?”

    “나도 다 생각이 있어. 일반 작물을 키울 것이 아니라 특용작물을 키울 거야.”

    “특용작물? 뭐?”

    “아직은 우리만 알아야 할 비밀이야. 그러니까 모두 입조심 해야 돼.”

    소울의 말에 이대산과 김혜진은 눈을 반짝거렸다.

    “뭔데 그렇게 뜸을 들이냐? 어서 말해봐라.”

    “네, 사실은 차원의 균열 안에서 자라는 과일이나 약초를 키워볼까 해요.”

    “그게 가능한 거야?”

    “알아봐야지요. 하지만 일단 성공만 한다면 아마 없어서 못 팔걸요?”

    “그거야 그렇겠지.”

    소울의 말에 모두들 머릿속으로 상상을 하느라 잠시 아무 말도 못했다.

    하지만 이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괜찮은 생각인 것 같다. 문제는 뭘 키우느냐 인데…….”

    “맞아요. 뭘 키우느냐가 사실 가장 중요해요. 그러니까 일단은 새로 살 집의 정원에 하나씩 키워보면서 우리 같이 연구 해봐요.”

    “그래, 그게 좋겠다. 집만 있다면야 뭘 하면서 살지는 느긋하게 생각해도 되니까 말이야.”

    그렇다. 자기 집만 있다면 뭘 할지는 천천히 생각해도 된다. 거기에다 소울은 능력자가 아닌가? 생활비 정도 벌어오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소울은 웃으며 가족들의 얼굴을 하나씩 쳐다봤다.

    “이번에 제가 차원의 균열 안으로 납치되었다가 살아 돌아오면서 몇 가지 중요한 정보를 가져왔어요. 그 중에 차원의 균열 안에서 자생하는 과일과 약초, 풀 같은 것이 사람에게 이로운 효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하지만 당장 키운다고 해서 바로 유통할 수는 없어요. 각 과일과 약초의 효능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부작용은 없는지 연구소에서 임상실험도 거쳐야 해요. 다행히 이런 테스트를 해줄 사람은 제가 미리 확보해놓았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그럼 또 차원의 균열인가 뭔가 하는 곳으로 네가 들어가야 하는 거니?”

    김혜진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소울은 미소를 지으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저도 이번에 죽을 뻔한 경험을 해서 절대 차원의 균열 안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에요. 몬스터 사냥도 제가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놈만 잡으려고 해요. 목숨은 소중하잖아요. 저 아직 장가도 안 갔고 말이지요. 엄마, 아버지에게 손자 안겨줄 때 까지는 절대 죽거나 다치지 않을 테니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그래. 항상 조심해야 한다.”

    “네.”

    이대산과 김혜진은 말리고 싶었지만 말릴 수가 없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소울이 이렇게 확신의 찬 눈을 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고집이 센 아이는 아니지만 저런 표정을 할 때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이미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그럼 이제 은곡마을 가서 살 집 구경 좀 하고 오세요. 그동안 저는 한성신문의 나수연 기자와 인터뷰를 하겠습니다.”

    “그래. 그게 좋겠다.”

    헬기까지 보내준 곳에서 인터뷰를 해야 한다니 이대산과 김혜진은 대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소망이가 모시고 가서 여기 부동산 회사의 사장을 만나봐!”

    “알았어.”

    소울은 소망이에게 은곡마을에 있는 부동산 회사의 전화번호와 주소가 담긴 메모를 건넸다. 그러면서 살짝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그의 귀에 속삭였다.

    “소망아, 지난번에 소환마법진이 새겨진 은판 만든 것 있지?”

    “응.”

    “돈은 넉넉히 보내 줄 테니까 그거 몇 개만 더 만들어줘.”

    “알았어. 뭐 어려운 일도 아닌데……. 그런데 형! 정말 괜찮겠어? 몬스터 사냥은 위험하잖아?”

    “걱정하지 마. 내가 말했잖아. 내 능력만큼만 하겠다고…….”

    “휴우, 난 자꾸 걱정이 돼. 차라리 요새 뜨고 있는 3대 길드나 7대 길드에 들어가면 안 돼? 아니면 7대 재벌길드에라도 들어가던가.”

    “야! 거긴 뭐 개나 소나 다 들어갈 수 있는 곳인 줄 알아? 나도 들어가고 싶다고. 하지만 능력이 안 되는 것을 어떻게 해?”

    “그럼 차라리 몬스터를 사냥하는 파티를 만들어봐. 길드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만 파티는 어렵지 않다고 하잖아. 아니면 좋은 파티를 찾아서 들어가던가.”

    “그건 한번 생각해볼게.”

    소망이가 걱정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F급 소환계 능력자로 몬스터 사냥을 한다고 하니 당연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아직 까망이에 대한 정체를 밝히지 않아서 더욱 그런 생각이 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까망이의 실체는 공개해서는 안 된다.

    소환계 능력자의 소환수는 당사자에게 비장의 무기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비밀과 약점이 알려지면 나중에 그것이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와 치명적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것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물론 소망이가 자신의 비밀을 누구한테 발설할 녀석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족을 납치해서 협박하거나 고문을 한다면 그걸 이겨내고 함구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비밀은 한명이라도 덜 아는 것이 좋다.

    “형! 혹시 국정현이란 사람 알아?”

    “응, 내가 살던 옥탑방주인이야.”

    “그렇구나. 그 사람이 형 짐을 집으로 부쳐줬더라고…….”

    “아! 그래?”

    소울은 국정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마 자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짐을 정리해서 보내준 모양이었다.

    고마운 일이다. 강남 세븐 병원에서 어려운 일을 같이 겪었던 사이였고 자신에게 옥탑 방을 내준 사람이다. 나중에 따로 연락을 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럼 두 분 모시고 나갔다 올게.”

    “찬찬히 잘 살펴보고 오도록 해. 그리고 이거 가지고 편하게 다녀와. 중간에 배고프면 맛있는 것 좀 사드리고…….”

    “응, 알았어.”

    소망은 소울에게 두툼한 돈 봉투를 건네받고 미소를 지었다. 돈을 받은 것보다 이렇게 형에게 용돈을 받는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더욱 기분 좋은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선호작, 추천, 응원의 댓글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