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2 제 31 장 - 쥐구멍에도 볕 뜰 날이 있다. =========================================================================
소울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박은영에게 꼭 크게 한턱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기야! 이번에 차원의 균열 안에서 찍은 동영상 없어? 그거 올리면 대박 나겠다.”
“정말 그럴까?”
“이거 보고도 몰라? 이미 3억이나 되는 조회수를 기록했으니 후속 동영상이 나오면 아마 그에 못지않은 조회수가 나올 수도 있을 거야. 차원의 균열 안에 대한 동영상은 잘 올라오지 않으니까 올라오기만 하면 순식간에 관심이 집중될 거야.”
“그럼 정아 말대로 한번 올려볼까?”
“손해 볼 것도 없는 일인데 뭘 그렇게 고민해? 그냥 올리지? 참, 나한테 전투헬멧의 메모리칩 줘야하는 것 잊지 않았지?”
“알았어. 일단 내가 메모리 정리 좀 하고 넘겨줄게. 남는 메모리칩 있으면 몇 개 가져올래?”
“오케이.”
유정아는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서 새 메모리칩을 잔뜩 들고 왔다.
소울은 전투헬멧에서 메모리칩을 꺼내 그녀의 노트북에 연결시켰다. 그리고는 자신이 따로 표시해놓은 메모리를 모조리 새 메모리칩 하나에 담기 시작했다.
“이건 뭔데 따로 빼놓는 거야?”
“사업상의 비밀이야. 설마 동업자의 비밀을 빼 갈 생각은 아니겠지?”
“뭔데 이렇게 실드를 쳐대는 거지? 정말 궁금하네.”
소울은 자신의 행동이 쓸데없이 유정아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가 없을 때 할 것을 그랬다며 조금 후회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녀에게 이걸 보여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전투헬멧의 메모리를 모두 따로 새 메모리칩에 옮겨놓은 뒤 그녀를 쳐다봤다.
“자기한테 이 노트북 빌려 줄 테니까 내일 수연이 오면 같이 의논해서 어떤 동영상 올릴지 결정해. 나보다는 수연이가 그쪽으로는 전문가니까 말이야.”
“그래. 고마워. 여기 있어 전투헬멧에 들어있던 메모리칩이야.”
“잠깐만, 나 다른 노트북 가져올게.”
“그래.”
유정아는 방에서 자신의 노트북을 가져와 전투헬멧에 들어가는 메모리칩을 넣고 모든 데이터를 다운로드 받았다. 그리고는 깨끗이 메모리칩을 비우고 다시 소울에게 돌려줬다.
소울은 자신의 전투헬멧에 메모리칩을 다시 끼우고 그녀를 쳐다봤다.
“이번에 느낀 건데, 전투헬멧의 배터리가 너무 빨리 없어지는 것 같아. 여분의 배터리가 있었으면 좋겠어.”
“알았어. 자기를 위해 내가 내일 넉넉히 준비해서 주도록 할게.”
“고마워. 내짐 좀 정리해서 옆의 스위트룸으로 가져다 놓아야겠다.”
“그래? 그럼 나도 도울게.”
소울은 유정아의 도움을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가 소울의 전투슈트, 전투화, 전투헬멧을 옮기는 동안, 그는 마나집적진을 직접 분리해 앞으로 자신이 지낼 스위트룸인 1702호실로 모두 옮겨 맨 안쪽 골방에 다시 재조립을 해놓았다.
마나집적진이 제대로 잘 작동하는지를 확인한 그는 조만간 소환마법진이 새겨진 은판을 새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기야, 나 이것도 가져왔어.”
“어? 내 무기도 자기가 챙긴 거야?”
유정아는 그에게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숏소드 하나와 무척 가벼워 보이는 3연발 쇠뇌 하나를 보여줬다.
“정확히 말하면 이건 자기 소유의 무기는 아니지. 내가 새로 개발되는 무기로 계속 업그레이드 해주기로 했잖아. 이것들은 이전에 자기가 쓰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거야.”
“그래? 고마워.”
유정아가 대 몬스터 장벽 위에 놓아둔 자신의 무기들을 잘 챙겨 간 것 같았다. 새로 업그레이드 했다는 무기를 살펴보니 확실히 전에 비해 뭔가 강해보이고 또 가벼웠다.
그는 유정아가 왜 자신이 살고 있는 스위트룸인 1701호실의 옆방인 1702호실을 얻어 놓았는지 이유를 알게 됐다. 1701호실과 1702호실은 벽에 난 통로를 통해 얼마든지 한 집처럼 연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게 뭐야? 이렇게 되면 굳이 내가 옆으로 짐을 옮겨야 할 이유가 없잖아?”
“호호호, 이제 막 저녁식사 끝내놓고 가서 잠이라도 잘 생각인거야? 난 자기가 새벽까지 달리자고 할 줄 알았는데……. 그리고 내일 수연이와 독점 인터뷰를 하려면 어차피 장소가 필요하잖아? 겸사겸사 편하게 왔다 갔다 하면 좋지 뭘 그래?”
“하하하, 머리를 쓰는 일은 역시 참 잘하네.”
“내가 괜히 박사겠어?”
“어쭈? 이제 잘난 척까지?”
소울의 말에 유정아가 자지러질 듯 웃어댔다.
“호호호, 자기 정말 멋있어졌다.”
“뜬금없이 그게 뭔 소리야?”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아니면 납치되었다가 살아 돌아와서 그런지 모르지만 자기 뭔가 좀 변한 것 같아.”
“누구나 사람은 변하잖아?”
“그런 뜻이 아니야. 자기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예전과는 아주 달라. 마치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것 같아.”
“그거 칭찬이지?”
“응, 당연히 칭찬이지. 자신감이 넘치는 게 아주 보기 좋아. 역시 남자는 자신감 아니겠어?”
“당근이지.”
유정아는 환하게 웃는 소울을 보며 이상하게 자꾸 자신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예전의 소울과는 달리 그를 보면 자꾸 웃음이 나오고 몸이 달달해졌다.
‘개인적으로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은 별론데……. 하지만 오랜만에 나를 들뜨게 만드니 이것도 그리 나쁘진 않네.’
유정아는 소울 때문에 나중에 자신의 감정이 통제 불능이 되지 않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아직 거기까지 가려면 멀었다며 일단은 달달해진 몸부터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유정아는 갑자기 몸을 더워지는 것을 느끼며 돌연 입고 있던 박스 티를 훌러덩 벗어 버렸다. 그리고는 가슴을 앞으로 쭉 내밀며 두 손을 자신의 허리에 척 걸치고 도발적인 표정으로 소울을 쳐다봤다.
그는 그녀의 뇌쇄적인 모습에 감탄하며 잔잔한 미소를 짓고 쳐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다가와 그녀를 두 손으로 번쩍 안아 들었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침실로 걸어 들어갔다.
유정아는 소울의 이런 박력 있는 모습이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녀의 가슴이 또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서로의 욕망을 아낌없이 불태울 열락의 시간이 다시 도래했다.
* * * * *
푸타타타타…….
하늘에서 헬기가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세찬 바람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헬기장 주변을 빗자루 쓸 듯 쓸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헬기는 능숙한 조종사의 손길에 의해 결국 얌전한 새색시처럼 헬기장에 착륙했다.
헬기의 옆구리에서 문이 열리자 방송용 카메라를 든 건장한 청년과 미니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자 하나가 머리가 희끗한 남녀와 함께 내렸다.
젊은 여자는 건물 안쪽까지 걸어오면서 연신 자신의 미니스커트가 날리지 않게 잡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반면 나이가 지긋한 남녀는 서로에게 몸을 의지한 채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걸어왔는데 얼굴을 보니 긴장한 듯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엄마!”
“내 아들!”
“아버지!”
“소울아!”
헬기장을 벗어나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그들은 자신에게 달려와 안기는 소울의 몸을 꼭 붙잡고 격렬하게 끌어안았다.
“아이고, 내 아들, 이렇게 살아 있었구나?”
“장하다. 장해. 잘 돌아왔다.”
“아버지, 엄마!”
세 사람은 마치 KBS 방송국에서 했던 이산가족상봉 프로그램에 나온 사람들처럼 그렇게 오열을 하며 서로를 껴안고 한참을 울어댔다.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를 들고 있는 건장한 청년이 열심히 찍어대고 있었다.
격해진 감정을 한참동안 다스리지 못했던 그들은 방송용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카메라맨을 보고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손수건으로 서로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 우는 얼굴 나오면 안 되는데…….”
“엄마는 울어도 예뻐요.”
“이놈아, 우는 얼굴이 예쁜 여자가 어디 있어? 편집해달라고 해야겠다.”
“여보, 나도 좀 부탁해.”
소울의 어머니인 김혜진 여사가 정신을 차리자 아버지인 이대산이 농을 던졌다.
그제야 소울도 눈물을 닦고 나수연과 카메라맨을 봤다.
“나수연 기자님?”
“네, 제가 나수연이에요.”
“반갑습니다. 이소울입니다. 유 박사님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도 반가워요. 이쪽은 오늘 촬영을 해줄 카메라맨 명장민입니다.”
“명장민입니다.”
소울은 나수연 기자와 카메라맨 명장민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우리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얘기를 나누도록 하시죠?”
“네, 그러죠.”
그들을 모두 소울의 뒤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소울이 당분간 묵기로 한 17층의 스위트룸으로 들어갔다.
1702호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방금 대전에서 올라온 소울의 쌍둥이 동생인 소망이와 소현이가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엄마!”
“아빠!”
“소망아, 소현아!”
소망이와 소현이가 올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던 이대산과 김혜진은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은 소망이와 소현이를 차례로 안아주고는 물었다.
“너희들은 어떻게 말 한마디도 없이 여길 올라왔냐?”
“그건 아빠, 엄마를 놀래게 해주려고 그랬어요.”
“이런 철딱서니 없는 녀석들 같으니라고……. 놀래줄 것이 없어서 우릴 놀래주려고 그래?”
“헤헤, 그냥요. 재미있잖아요.”
“맞아요. 이렇게라도 해야 우리 가족 간만에 한번 다 모여 보죠.”
소울은 부모님과 동생들이 다 함께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자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드디어 우리 가족이 이렇게 한 자리에 다 모였구나. 앞으로 어떻게 하던지 다시는 이산가족처럼 헤어져서 살지 않고 한 지붕아래에서 살게 하겠다.’
소울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굳게 다짐하고는 그들을 거실로 인도했다.
“일단 우리 가족은 이쪽 소파에 앉도록 해요.”
“그러자.”
이대산이 소울의 말에 소파로 걸어가서 자리를 잡자 김혜진도 그의 옆에 앉으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런데 여기 진짜 고급스럽고 뭔가 굉장히 좋아 보인다. 소울이가 여기서 묵고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네.”
“하하하, 여긴 능력자협회 서울지부에서 운영하는 VIP 전용 스위트룸이에요. 그냥 잠시 머무는 곳입니다. 제가 살 거처는 지금부터 따로 마련해야해요.”
“그렇구나.”
“오빠, 음료수 가져올까?”
“그래. 소현아, 음료수는 냉장고 안에 있어.”
이대산과 김혜진이 소파에 앉아 멀뚱멀뚱 스위트룸 안을 살펴보자 소망이가 순발력 있게 부엌으로 들어가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고 소현이는 컵을 챙겨 쟁반에 담기 시작했다.
그 사이 소울은 나수연과 명장민을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네.”
“인터뷰는 여기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좋습니다. 밖이 훤히 보이는 통유리 앞의 소파에서 하면 되겠네요. 아늑한 느낌이 드는 게 그림이 잘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럼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일단 가족끼리 얘기 좀 잠깐 나누고 오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세요. 오랜만에 만나셨으니 천천히 말씀 나누고 오세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울은 나수연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거실로 돌아와 그가 소파에 앉자, 김혜진이 얼른 그의 옆으로 엉덩이를 옮기더니 그의 얼굴과 손을 자꾸 쓰다듬었다.
“아이고, 내 새끼!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얼굴이 다 반쪽이 됐네?”
“엄마, 형의 얼굴이 어디가 반쪽이야? 살 빠져서 보기 좋구먼. 얼굴에선 아예 광채가 나는 것 같은데?”
“으응? 그러고 보니 너 얼굴 되게 좋아졌다. 따로 무슨 화장품이라도 쓰는 거니?”
“화장품 안 쓰는데요. 그냥 엄마 본다니까 이렇게 하루 만에 활짝 폈네요.”
“호호호, 내 새끼, 역시 말도 예쁘게 하네.”
당신 기분 좋으라고 뻔한 거짓말을 해도 예쁘게만 보였다. 죽었다고 생각한 자식이 살아 돌아온 것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그저 기쁘기 한량없었다.
한참동안 소울의 얼굴과 손은 김혜진 여사의 독차지가 됐다. 30분이 지나서야 겨우 그녀의 손에서 빠져나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간단히 설명할 수 있었다.
이대산과 김혜진, 소망이와 소현이는 일단 소울이 능력자가 되었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앞으로 능력자로 살아가겠다는 그의 말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소울의 말을 모두 듣고 나자 그들은 소울이 잘되기만을 바랐다.
가족은 아마 그런 것인 모양이다.
서로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묵묵히 믿고 지켜봐주는, 힘들 때 서로를 붙잡아 주는 그런 관계인가 보다.
소울은 그동안 자신이 가족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또한, 사과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아니 하고 싶은 것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했다.
============================ 작품 후기 ============================
그는 무슨 얘길 했을까요?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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