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117화 (117/492)

00117  제 30 장 - 귀환  =========================================================================

오우거와 트롤에게 공격을 당하기 시작한 오크전사들은 순식간에 반 이상이 그들의 주먹에 뭉개지고 깨졌다. 또 손에 잡혀서 갈가리 찢겨져 나갔다.

서로의 겹치는 영역으로 인해 신경전을 벌였던 오우거와 트롤들은 잠시 암묵적인 휴전을 선포했다. 그리고는 오크전사들을 잡아 쭉쭉 찢어서 맛있는 식사를 시작했다.

덕분에 비스크와 소울은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오크전사들의 추격을 뿌리치고 도망가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헉헉, 좀 쉬었다 가자.”

“네, 헤엑 헤엑!”

소울은 수풀 속에 들어오자 땅바닥에 대자로 쓰러져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얼마나 뛰었는지 온몸이 땀으로 가득했고 심장이 벌렁거리는 것이 마치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비스크도 개처럼 혀를 밖으로 내밀고는 연신 헥헥 댔다.

[까망아, 몸에 묻은 피를 닦아야겠다. 근처에 개울 없니?]

[규!]

[있다고? 그럼 그리로 안내해줘!]

[규!]

까망이는 즉시 비스크의 어깨 위로 올라가 앉았다. 성게의 가시 같이 생긴 것 하나를 위로 쭉 뽑아 올리더니 그걸로 방향을 가리켰다.

“비스크, 일어나라.”

“네?”

비스크는 달리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잠시 쉬지도 못하게 하는 소울이 원망스러워 그를 흘려봤다. 하지만 소울은 그런 비스크를 쳐다보지 않았다.

“뒤로 돌아서 걸어가.”

“휴우, 네.”

소울이 마음을 정한 것 같아보이자 비스크는 할 수 없이 일어나 그가 말한 대로 몸을 돌렸다.

“1시 방향으로 걸어가.”

“네. 그런데 혹시 우리 물가로 가는 건가요?”

“닥치고 그냥 걸어.”

“네에…….”

비스크의 수다가 시작되려고 하자 소울은 즉시 원천봉쇄를 해버렸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그들의 귀에 개울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까망이가 최고구나.]

[규!]

[잘했다.]

[규규!]

소울은 까망이를 칭찬해주고는 서둘러 개울가로 가서 몸에 묻은 오크의 피를 물로 닦았다.

몬스터의 피를 묻히고 숲속을, 아니 차원의 균열 속을 걸어 다니는 것은 ‘제발, 나 좀 죽여주십시오!’ 하고 돌아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울은 자신의 몸에 묻은 몬스터의 피를 닦고, 토마호크의 날에 묻은 몬스터의 피와 체액도 꼼꼼히 닦았다.

비스크는 아예 몸 전체를 물속에 푹 담근 다음 피를 씻어 내렸다.

오직 까망이만이 허공에 둥둥 떠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강남필드로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지?”

“저쪽입니다.”

“어휴, 또 산이야?”

소울은 비스크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 산을 넘어가려면 또 얼마나 많은 몬스터들을 만나서 싸우고, 죽여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너 정말 강남필드로 가는 길 확실히 아는 거야?”

“당연하죠. 전에 저기서 과일 따먹고 놀았다고요. 제가 새대가리인줄 아세요?”

“흐음.”

눈을 가늘게 뜨며 비스크를 잠시 쳐다본 그는 말없이 등에서 전투헬멧을 꺼내 전원을 켜고 머리에 썼다. 가끔 이렇게 전투헬멧의 전원을 켜서 혹시 신호가 들어오는지 확인을 하고 주변 환경을 찍어 메모리에 저장해놓곤 했다.

삐빅!

“어?”

그때였다. 전투헬멧을 쓰자마자 가늘게 전파신호가 하나 잡혔다.

능력자협회에서 강남필드를 향해 주기적으로 쏴대는 것으로 혹시라도 능력자들이 길을 잃게 되면 이 구조용 전파신호를 받아 빠져나오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구조용 전파신호가 잡히네. 그렇다는 것은 여기서 강남필드가 그리 멀지 않다는 말이잖아!’

소울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흘렀다.

능력자들은 이 구조용 전파신호를 등대라고도 불렀는데, 말 그대로 차원의 균열 속에서 길을 잃은 능력자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소울은 구조용 전파신호가 잡히자마자 동서남북 방향으로 각각 열 걸음씩 걸어갔다. 그러자 전투헬멧이 자동으로 구조용 전파신호의 세기와 파장을 계산해 강남필드로 향하는 정확한 방향을 표시해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강남필드의 방향은 비스크가 말한 방향과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었다.

‘이 시발 똥개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비스크가 자신을 산으로 데리고 들어가려는 이유는 굳이 머리를 많이 굴리지 않아도 뻔했다.

차도살인(借刀殺人)!

중국의 고대 병법서 36계에 나오는 말로 남의 칼을 빌려서 적을 죽인다는 말이다.

비스크는 자신의 손으로 죽이기 힘드니까 다른 몬스터의 손을 빌어 소울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까망아, 비스크가 또 개수작을 부리려고 한다. 목에 바짝 붙어 있어라.]

[규!]

소울은 일단 까망이를 비스크에게 붙였다. 그리고 전투헬멧을 쓴 상태로 비스크를 앞장세웠다.

“이제 그만 떠나자.”

“네.”

비스크는 몸을 마구 흔들어 몸에 뭍은 물기를 사방으로 털어내고는 자신이 언급했던 산을 향해 걸어갔다.

“그쪽이 아니라 저쪽이야.”

“네? 거기는 강남필드로 가는 방향이 아닌데요.”

“상관없어. 뭘 좀 확인할 게 있어서 그래. 이쪽으로 걸어가.”

“네.”

비스크는 소울이 하는 말을 거역하지 않고 곧바로 몸을 돌려 소울이 지시한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소울은 수통에 물이 가득 차 있는지 확인하고는 그의 뒤를 쫓아 걷기 시작했다.

전투헬멧의 배터리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갈수록 전파신호가 세지고 있어서 소울은 전투헬멧을 당장 끌 수 없었다.

그는 전투헬멧의 다른 모든 기능은 꺼버리고 오직 내비게이션 기능 하나만 켜 놓고 전파신호를 따라갔다.

두 시간정도 걷자 전투헬멧의 배터리가 간당간당해졌다. 소우의 간도 쪼그라들어 간당간당해지는 것 같았다.

‘이 상태로는 10분도 못가겠다.’

소울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비스크 정면을 향해 최고속도를 내고 달린다. 늦으면 각오해.”

“네.”

비스크가 소울의 말에 즉시 최고속도를 내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역시 웨어울프가 숲속을 달리는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소울도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짜내서 미친 듯이 달려갔다. 숲속에서 뭐가 튀어 나올지 모르지만 앞에 가는 비스크가 막아 줄 것을 기대하며 죽어라고 달리는 것이다.

후다다다다…….

두두두두두…….

비스크와 소울은 마치 뒤에서 죽음의 사신이라도 쫓아오는 것처럼 죽기 살기로 달려갔다.

삐이익!

그리고 마지막 신호를 끝으로 전투헬멧의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어 버렸다.

“여기까지. 이제 그만 달려도 되겠다.”

“네에.”

소울과 비스크는 달리는 속도를 차츰 줄이더니 더 이상 뛰지 않고 느긋하게 걸어갔다.

전투헬멧을 벗어 등에 맨 소울은 배터리가 전부 방전된 것에 아쉬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았는데…….’

아쉬워하는 소울과는 달리 비스크는 소울 몰래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입을 씰룩대고 있었다. 비스크도 바보가 아니라서 소울이 뭔가 눈치를 채고 강남필드 방향을 스스로 찾아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결과다.

소울은 실패했다.

그리고 비스크는 성공했다.

이제 슬슬 그를 꽤서 이리저리 숲속을 헤매게 만들며 다니기만 하면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다.

비스크는 그렇게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느긋한 마음이 돼서 걸었다.

그렇지만 비스크는 아직 세상일이 때때로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바스락 탁탁!

그들의 앞 전방에서 뭔가가 빠르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고함에 가깝게 외치는 소리가 숲속을 울렸다.

“웨어울프다. 전투준비!”

소울은 숲속에서 중무장을 한, 한 무리의 능력자들이 나타나자 눈이 절로 동그랗게 변했다.

“잠깐만요!”

소울은 그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는 까망이에게 명령했다.

[까망아, 비스크에게 마비침 한 방 놓아줘!]

까망이가 거대말벌의 독침을 흡수해서 자신의 무기로 사용하는 것을 본 소울은 고블린의 독침과 독낭 하나를 통째로 까망이에게 쓰라고 넘겼다. 까망이는 그것들을 곧바로 흡수해서 이제 거대말벌의 독과 고블린의 마비독 두 가지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됐다.

[규!]

까망이는 지체 없이 비스크의 목에 고블린의 마비독을 찔러 넣었다.

“억!”

비스크가 자신의 오른쪽 목을 손으로 잡고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소울이 얼른 비스크에게 달려와 그의 뒤통수를 사커킥으로 세게 걷어차 버렸다.

퍽!

비스크는 영문도 모른 채 까망이와 소울의 이단 공격에 머리통이 깨지면서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어? 전투중지!”

“전투중지!”

소울이 갑자기 나타나 비스크를 처리하자 웨어울프와 전투를 벌이려던 능력자들은 즉시 전투중지를 선언했다.

필드에서 다른 능력자가 잡고 있는 맹수나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는 것을 공격하는 행위는 ‘스틸’이라고 해서 능력자협회에서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행위였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필드에서 이런 스틸 행위가 공공연하게 벌어졌었지만 최근에는 빠르게 퍼지고 있는 전투헬멧의 전투기록 모듈로 인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전투헬멧의 전투기록 모듈은 단순히 동영상 녹화만이 아니라 전투 시에 일어나는 능력자의 신체변화와 몬스터의 타격치 까지 전부 자동으로 측정되는 기능이라서 필드에서 일어나는 능력자간의 마찰을 점차 사라지게 하는 효자노릇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네버다이 길드의 제2 헌터장 유명우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소울입니다.”

소울과 유명우는 일단 서로 정중히 인사를 하고 악수를 했다.

유명우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탄탄한 근육으로 덮여 있는 모습이 적어도 E급 이상의 강화계 능력자로 보였다.

그의 뒤로 ‘네버다이’인지 ‘네바다’인지 하는 길드의 길드원이 그의 뒤로 반월형을 그리며 서서 소울을 쳐다봤다.

“혹시 혼자서 여기로 사냥 나오셨습니까?”

“아! 네,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유명우는 호기심이 넘치는 눈빛으로 소울의 전신을 샅샅이 훑어봤다.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최고 D급으로 분류되는 웨어울프를 혼자서 쓰러뜨린 능력자였다.

소울의 몸을 봐서는 절대 강화계 능력자는 아니라고 판단되었는데, 어떻게 웨어울프를 쓰러뜨렸는지 알 수 없었던 유명우는 절로 호기심이 치밀어 올랐다.

“이쪽은 어지간한 길드의 사냥팀이 아니면 잘 오지 않는 곳인데……. 등급이 꽤 높은가 봅니다.”

“그렇진 않습니다. 제 전투헬멧의 배터리가 다 돼서 길을 잃었을 뿐입니다.”

“그래요? 그럼 저희가 가지고 있는 여유분의 배터리를 하나 드리도록 하죠.”

“대단히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혹시 길드에 가입하시지 않으셨다면 이리로 연락 한번 주시겠습니까?”

“아! 물론입니다.”

소울은 유명우에게 전투헬멧의 배터리를 하나 받았기 때문에, 돌려주려면 어차피 한번은 꼭 만나야 했다. 그래서 그가 주는 명함을 받으며 흔쾌히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우는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버다이 길드라면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길드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3대 길드에는 못 껴도, 그 밑의 7대 길드에는 들어가는 꽤 유명한 길드였다.

그런데 소울의 행동을 보니 마치 전혀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이 말은

네버다이 길드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네버다이 길드 정도는 눈에 차지 않을 정도로 강자라는 말이 된다.

후자라면 당연히 3대 길드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텐데……. 홀로 사냥을 다니는 것을 보면 독고다이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흐음, 모를 일이군. 겉으로 보기에는 등급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데……. 어떤 능력자지?’

이게 모두 소울이 웨어울프를 너무 쉽게 잡아서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소울은 굳이 유명우의 오해를 풀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어차피 차원의 균열 안은 강한 자가 대우 받는 곳이다.

강한 자로 오해를 하고 있는데 굳이 ‘난 약자에요.’라고 꼬리를 내릴 사내가 어디 있겠는가?

당장 그가 웨어울프를 잡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유명우는 아마 소울에게 선뜻 전투헬멧의 배터리를 넘겨주지 않았을 것이다.

강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호의를 보인 것이다. 약자라고 생각했다면 아마 대충 돌아가는 방향만 가르쳐주고 철저히 무시하며 지나쳤을 것이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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