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115화 (115/492)

00115  제 29 장 - 탈출로  =========================================================================

‘차원의 균열 안에 그냥 사람이 모여 살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왕국이 존재하다니……. 이 말을 과연 누가 믿어줄까?’

소울은 비스크의 말을 들으면서 한쪽으로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하며 생각해봤다.

그동안 비스크를 통해 차원의 균열 안에 대한 놀라운 얘기를 많이 들었다.

지구에 차원의 균열이 나타나기 전(前)인 지금으로부터 6개월 전부터, 거대한 얀데스 산맥으로 엄청난 기운이 쏟아져 들어왔고 덕분에 지금 이 일대는 온갖 식물과 나무, 야생동물과 몬스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차원의 균열이 열려 지구 쪽으로도 기운이 흘러가고 있었다.

분명히 광대한 얀데스 산맥 안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정확히 뭔지, 어떤 것인지는 비스크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또한, 웨어울프들이 말하는 얀데스 산맥을 따라가다가 아마조나 강을 만나 하류로 내려가면 알제 왕국을 시작으로 인간의 영역이 나온다고 했다.

웨어울프들 중에서도 장로급들만 인간의 영역에 들어가 살며 정보를 보내온다고 했는데 비스크는 종족 중에서 등급이 그리 높지 않아 고급 정보를 접하지는 못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인, 강남필드로 돌아가는 길은 얀데스 산맥의 남서쪽으로 가야한다. 하지만 이쪽은 지형이 복잡해서 길안내가 없으면 몬스터들이 판을 치는 몬스터랜드 쪽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비스크가 직접 길을 안내해야 했다.

소울은 혹시 나중에라도 다시 찾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만 알 수 있는 기호를 사용해 지도를 만들어갔다.

이외에도 얀데스 산맥에 나는 각종 과일과 약초, 독과와 독초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채집방법에 대한 설명도 했다.

비스크는 몬스터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의 서식지와 약점이 뭔지도 얘기했다. 여기에는 웨어울프들이 사는 곳과 그들의 영역까지도 포함됐다.

소울은 전투헬멧에서 작은 카메라 모듈만 따로 빼내 비스크가 말하는 모든 것을 찍어 저장해 놓았다. 아마 나중에 이러한 것들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정보가 될 것이다.

“이제 그만하고 가자.”

“네에…….”

비스크는 소울의 말에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이제 막 자신이 얀데스 산맥을 얼마나 주름잡고 돌아다녔는지 얘기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숨을 딱 들이쉬는 순간에 정확히 파고들어 그 맥을 끊어버렸다.

비스크는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비스크!”

“네.”

소울이 그를 부르자 비스크는 영혼 없는 목소리로 힘없이 대답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뭔데요?”

“너 어떻게 우리말을 그리 잘하는 거야?”

“그거야 당연히 인간의 피를 마셨기 때문이죠.”

“얼마나 마셔야 그렇게 말을 잘하게 되는데?”

“우리 부족의 장로들이야 한 명으로도 가능하지만 저는 한 열 명쯤 되니까 가능해지더라고요.”

비스크는 소울의 질문에 또다시 슬슬 입에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왠지 뒤통수가 서늘해지자 곧바로 자신이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소울이 자신을 노려보며 진한 살기를 뿌려대고 있었다.

비스크는 그 모습에 절로 식은땀을 흘렸다.

“하하하, 그, 그게 모두 예전에 그랬다는 말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전 앞으로 절대 인간은 먹지도, 피를 마시지도, 죽이지도 않겠습니다. 헤헤!”

“웨어울프는 인간의 피를 마시면 그들의 기억을 훔칠 수 있는가 보네?”

“뭐 그, 그런 셈이죠.”

“잘 알았다. 이제 그만 입 닥치고 길이나 안내해.”

“네.”

싸늘한 소울의 말에 비스크는 얼른 눈을 바닥으로 깔고 앞장서서 걸어갔다.

‘저거 진짜 길잡이만 아니었어도…….’

소울은 속으로 이를 빠드득 갈았다.

마석을 빼앗겨서 힘이 많이 빠진 상태였지만, 그래도 웨어울프라는 종의 특성으로 인해 차원의 균열을 조용히 빠져 나가는 데는 비스크만한 길잡이가 없었다.

지금까지 몬스터들과 거의 조우하지 않고 이렇게 조용히 빠져나가고 있는 것은 그래도 비스크의 길안내 때문이었다.

깊은 숲 안으로 들어오면 방향감각을 상실하기 일쑤다. 길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거나 눈에 익지 않으면 마치 거기가 거기 같아서 금방 헤매게 된다.

비스크처럼 강남필드를 몇 번이나 몰래 드나들었던 웨어울프를 길잡이로 삼지 않았더라면 소울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소울은 운이 꽤 좋은 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행운의 여신이 그의 편을 들어주지는 않았다.

그에게도 이제 어두운 그림자가 서서히 비추기 시작했다.

“어?”

비스크가 갑자기 걸어가다 제자리에 딱 멈춰서더니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뭐야?”

“쉿!”

비스크에게 무슨 일인가 물어보자 그는 자신의 입술에 손가락을 올리더니 몸을 낮췄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11시 방면으로 다가갔다.

소울도 조심스럽게 비스크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수풀사이로 고개를 살짝 내밀어 앞쪽에 있는 공터를 살펴봤다.

“보이시죠?”

“응, 보인다. 웬 오크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지?”

비스크와 소울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속삭였다.

“대충 봐도 수십 마리는 되어 보이네요. 아무래도 이 부근에서 오크사냥꾼들이 사냥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지?”

“돌아가던가, 정면 돌파를 해야지요.”

“돌아가기는 어딜 돌아가?”

“그럼 정면 돌파 밖에 없네요.”

“저들을 모두 죽이고 가자고?”

“그럴 리가 있습니까? 당연히 몇 놈만 해치우고 빨리 튀어야지요. 일단 저를 따라오세요.”

비스크는 일단 오크사냥꾼들이 모여 있는 공터에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최대한 오른쪽으로 우회해서 돌아갔다.

하지만 이미 주변에는 오크사냥꾼들이 쫙 퍼져서 먹잇감을 사냥하고 있었다. 조잡한 활과 창을 든 오크사냥꾼들의 눈을 완전히 피해갈수는 없어 보였다.

“최소한 저놈들은 죽이고 돌파해야겠습니다.”

“좋아. 그렇게 하자고…….”

“네, 그럼 잘 따라오세요.”

“내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해.”

“헤헤, 알겠습니다.”

비스크는 소울을 한번 쳐다보고는 비굴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곧바로 오크사냥꾼을 향해 튀어나갔다.

후다다닥!

그가 목표로 하는 것은 오크사냥꾼 세 마리 중 맨 왼쪽의 한 마리였다. 오른쪽의 두 마리는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소울이 알아서 처리하라고 강요하는 것과도 같았다.

휘익!

소울은 비스크가 튀어나갈 때, 이미 까망이를 토마호크로 들어가게 한 후 오크 사냥꾼 한 마리에게 집어 던지고 있었다.

토마호크가 허공을 날자 그는 왼손에 샴쉬르를 들고 빠르게 정면으로 들이닥쳤다.

사사삭 사사삭…….

크왕, 와드드득!

퍽! 풀썩!

퍼억! 풀썩!

시작이 좋았다.

비스크가 오크사냥꾼의 목을 물고 옆으로 꺾어버리자, 토마호크도 정확하게 오크사냥꾼의 이마에 틀어박혔다.

까망이는 토마호크가 오크사냥꾼의 이마에 박히기 직전, 토마호크에서 튀어나와 자신의 몸을 짧은 단창처럼 변형시키며 옆에 서 있던 또 다른 오크사냥꾼의 눈으로 파고들어 뇌를 쑤셔버렸다.

일타쌍피!

토마호크 하나를 던져서 동시에 오크사냥꾼 둘을 잡은 셈이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까망이로 인해 그렇게 보였다는 말이다.

소울은 달려가면서 쓰러져 있는 오크사냥꾼의 이마에 박힌 토마호크를 낚아챘다. 거의 동시에 그의 어깨 위로 까망이가 가볍게 날아올랐다.

설명은 길었지만 비스크가 오크사냥꾼 하나를 처리하고, 소울이 토마호크를 던져 오크사냥꾼 둘을 처리한 것은 정말 찰나에 불과했다.

후다다다닥…….

사사삭 사사삭…….

비스크는 즉시 오크사냥꾼들이 사냥하고 있는 사이를 교묘하게 빠져나간 후 숲속을 질주했다.

소울은 쉐도우 스텝을 이용해 거의 소리를 내지 않고 비스크의 뒤를 쫓아갔다.

하지만 그들이 오크사냥꾼들이 사냥하고 있는 영역을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숲속에서 오크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쿠라하아 오크라이라이…….

“벌써 들켰네요. 이쪽입니다.”

비스크는 가던 길에서 즉시 9시 방향으로 꺾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3시 방향으로 꺾었다.

오른쪽 숲속에서 뭔가 빠르게 질주해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성질 급한 놈들이 제대로 자신들의 뒤를 쫓는 게 아니라 대충 가는 방향만 알아내고는 냅다 숲을 가로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비스크는 그 소리를 들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저런 식으로 해서는 결코 자신들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 비스크는 조금 달리는 속도를 늦추더니 11시 방향으로 살짝 방향을 틀었다.

이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자신들을 추격하는 오크사냥꾼들과 거리가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비스크의 시도는 반만 성공했다.

그들의 정면으로 오크병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억!”

비스크가 몸을 뒤로 눕히며 급정거를 했다. 소울도 비스크와 거의 부딪칠 뻔 했을 정도로 급히 멈췄다.

“왜?”

“앞에 오크병사들이 있어요.”

“또?”

소울이 비스크의 어깨 너머로 살펴보니 머리가 깨진 놈, 팔다리가 잘린 놈, 붕대를 감은 놈, 눈알이 빠진 놈 등 온갖 오크 잡놈들이 다 모여 있었다. 아무래도 강남필드에서 전투를 하다가 도망쳐온 패잔병 같았다.

“우회하자.”

“네.”

소울은 단호히 우회를 결정했다.

이놈들을 처리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되지만, 소리가 나면 분명히 주변에 있는 오크병사들이 자신들을 발견하고 쫓아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오크사냥꾼들이 추격해오고 있는데, 오크병사들까지 추격해오면 위험이 두 배로 올라갈 수 있었다.

비스크는 최대한 오크냄새가 나지 않는 곳을 교묘히 찾아서 우회했다.

한참을 돌아간 뒤 다시 돌아 내려가자 이번에는 패잔병이 아닌 오크 백인대가 전방에 나타났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소울과 비스크는 또다시 오크 백인대를 피해 우회해야했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자신들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서 오크전사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헉! 이거 길을 잘못 잡았네요.”

“왜?”

“오크전사들입니다.”

“젠장. 다시 우회하자.”

“이미 늦었습니다. 차라리 숨는 게 나요.

“그럼 빨리 숨던지.”

둘은 급히 커다란 나무사이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다행히 나무사이 앞에는 낮은 수풀이 펼쳐져 있어 그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재수가 없으려면 쓰레기차를 피하려다 똥차에 치여 죽는다고 했다.

진짜 재수 없게도 오크전사 하나가 오줌이 마려운지 나무사이 앞으로 걸어오더니 허리춤을 풀었다.

그리고는 우람한 좆을 꺼내 오줌을 갈겨댔다.

쏴아아아아…….

소울은 그 모습을 보며 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오크의 오줌이 전부 비스크의 얼굴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스크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인상만 쓴 채 주먹을 바르르 떨어댔다.

만약 오크전사들이 주변에 없었더라면 소울은 배를 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깔깔대고 웃었을 것이다.

오크전사는 시원하게 오줌을 싸대고는 털털 털어댄 뒤 몸을 돌렸다.

비스크는 그제야 손으로 자신의 얼굴에서 흐르는 오크의 더러운 오줌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비스크는 그 상태에서 조금 더 참고 기다렸어야 했다.

하지만 참을성 없는 웨어울프답게 비스크는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오크전사의 뒤통수를 쳐다보며 눈에 살기를 흘렸다.

오크병사였다면 아마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오크종족 안에서는 싸움에 이골이 났다는 오크전사들이었다.

노골적으로 자신을 향하는 발하는 살기조차 느끼지 못할 멍청한 오크전사는 아니었다.

오줌을 싸댔던 오크전사는 그중에서도 유독 살기를 잘 감지하는, 감각이 좋은 놈인 것 같았다. 비스크가 살기를 흘리자마자 오크전사는 즉시 몸을 돌리면서 칼까지 뽑아 들었다.

“우르크 굼네 하티?”

대충 ‘거기 누구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걸렸네.’

소울은 비스크와 눈으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비스크가 먼저 자신의 얼굴에 오줌을 갈긴 오크전사를 향해 튀어 나갔다.

화다닥!

아무리 마석을 잃었다고 해도 베이스가 웨어울프인 비스크였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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